설교

3/3 주일설교, 강건함과 사랑으로

강대식 2013. 3. 3. 15:46

본문: 고전 16:13-14

 

1. 깨어야 한다.

 

성경은 성도들에게 ‘깨어라’, ‘일어나라’고 하신다.

우리가 세상에서 사람들과 일들에 얽혀 살다보면 잠들고 주저 앉기가 쉽기 때문이다.

땅에 사로잡혀 하늘을 보지 못하고 내면을 보지 못하고 영생과 심판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말씀을 통해 매일 깨어나야 하고, 주일 예배를 통해 매 주일 깨어나야 한다.

세상과 우상의 잠에서 깨어나야 한다.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이 우리의 마음을 온통 차지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이 말씀의 결실을 맺지 못하게 한다.

세상을 어떻게 잘 살 것인지, 그래서 돈이 우상이 되어버리면,

우리는 세상과 일에 깊이 잠들기가 쉽다.

온통 일과 사람들의 관계로 인하여 하늘과 하나님과 영생을 잃어버리면

우리 내면을 가득 채우는 것은 욕심과 탐심과 정욕일 수 밖에 없다.

욕심이 잉태하여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여 사망을 낳게 된다.

 

육신의 잠에 빠지면 성령의 인도하심과 그 열매들에서 멀어지게 된다.

육신과 성령은 그 소욕으로 서로 싸운다고 하셨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이다.

 

육신의 잠에 깊이 빠지면 오직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대로만 살게 된다.

오직 이 세대를 본받게 되고 땅의 일만을 생각하며 세상 풍속을 따르게 된다.

그것은 공중권세 잡은 자를 따르는 것이요, 악한 영을 따르는 것이다.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는 것이 세상과 우상과 육심의 잠에서 깨어나는 것이다.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다.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어야 한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취하지 말아야 한다.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아야 한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아야 한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십자가를 지시기 앞서 땀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실 때

제자들은 한 시간도 깨어있지 못하고 깊이 잠들었다.

그 결과 시험에 빠져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였고, 제자들은 도망하였다.

 

세상과 우상의 잠은 육신의 잠을 불러오고 육신의 잠은 기도의 잠을 불러온다.

우리가 이렇게 잠든 사이, 사탄은 활개를 치고 우리를 사망과 멸망의 길로 인도하고 만다.

 

세상과 재물을 우상으로 받드는 잠에서 깨어나자.

육신과 정욕의 탐심과 게으름에서 깨어나자.

우리의 내면을 보고, 하늘을 보고, 영생을 바라보자.

 

2. 믿음에 굳게 서야 한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바라는 것들의 증거’라고 했다.

우리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들을 실상으로 붙들게 하는 것이 믿음이요,

우리가 바라는 것들이 무엇인지 증거해 주는 것이 믿음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살면서 무엇을 바라고 증거하는지 그 사람의 믿음이 드러낸다는 것이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가 없다.

믿음이 있는 자는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과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분이심을 믿는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에서 난다.

성경을 읽고 설교를 들어야 한다.

히11장 믿음의 사람들은 말씀의 사람들이었고 기도의 사람들이었다.

 

말씀을 읽지 않고 즐거워하지 않고 묵상하지 않고 지켜 행하지 않고서는

믿음에 굳게 설 수 없다.

말씀과 믿음은 함께 살며, 함께 세우고, 함께 성장하며, 함께 하나님께 나아가고 복을 받는다.

 

기도하지 않으면, 시험에 들고 세상의 유혹에 빠져들 수 밖에 없다.

우리의 심령을, 악한 사탄이 온통 차지하도록 내어주는 무장해제를 하는 것이다.

악한 마귀는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찾아 두루 다닌다고 했다.

 

바울 사도는 이 악한 마귀를 대적하기 위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한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을 상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악한 날에 우리가 능히 세상과 사탄과 육신을 대적하고 믿음에 굳게 서기 위함이다.

세상과 육신의 배후에 사탄이 도사리고 조종하고 역사하고 있음을 믿음의 눈으로 보아야 한다.

영적인 싸움에서 패할 때 우리는 세상과 육신의 잠에 깊이 빠질 수 밖에 없다.

성경을 사랑하고 즐거워하고 묵상하며, 기도에 힘쓰는 우리가 되자.

우리는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지고, 그 성결한 삶이 우리를 믿음에 굳게 서게 해준다.

그 성결한 삶과 굳건한 믿음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복과 형통과 영생이 임하게 한다.

 

우리는 성령이 주시는 믿음의 선물로 거듭나게 되고 의롭다 함을 받는다.

이 의롭다 함을 믿음으로 받지 않고서는 하나님을 볼 수 없고 천국에 갈 수 없다.

이 일을 위해서 그리스도는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는 제물이 되셨다.

 

그분이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심으로 우리 죄를 용서하셨고,

이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자들은 주님을 본받아 피를 흘리기까지 죄와 싸워야 하는 것이다.

죄를 물리치지 않고, 죄의 유혹과 싸우지 않고, 우리의 믿음은 성장할 수 없다.

 

3. 남자답게 강건해야 한다.

 

우리의 강건함은 믿음에 굳게 선 마음과 양심에서 나와야 한다.

믿음에 굳게 선 결과로 나오는 남자다움과 강건함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 강건함과 남자다움은 불화와 반목의 씨앗이요, 전쟁의 무기일 뿐이다.

 

말씀과 기도로 굳게 선 믿음으로 우리는 남자답게 강건한 자세와 삶을 살아야 한다.

약해야 할 때 강하고, 강해야 할 때 약해지는 악순환을 그쳐야 한다.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해야 할 때는 약해지고,

원망하고 불평하고 변명하고 짜증내고 성질낼 때는 강해지지 않아야 한다.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지 않으면,

우리는 믿음의 선한 싸움을 할 수 없고, 달려갈 길을 다 달려갈 수가 없다.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위에서 부르시는 부름의 상을 향해 달려갈 수가 없다.

 

남자답게 강건해야 말씀대로 살 수 있다. 성결한 삶을 살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죄와 마귀와 육체와 세상과 싸울 수 없다.

세상의 그 많은 죄의 유혹들을 물리칠 수 없다.

 

여호수아에게 왜, 오직 강하고 담대하라고 하시는가?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지 않기 위함이다.

그리해야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수1:7-8)

우리는 항상 말씀을 들음으로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해져야 한다.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해야 또한 우리는 말씀대로 살 수 있다.

이 순순환을 기억하시고 꿩먹고 알먹고 도랑치고 가제잡는 순순환의 삶을 살자.

 

하나님께 크게 쓰임 받은 모세의 명령이 그러하고 다윗 또한 마찬가지다.

내가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이 가는 길로 가게 되었노니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지라

 

힘써 대장부가 되어 여호와의 명령을 다 지켜 행하라는 것이다.

말씀과 믿음으로 대장부가 되고, 대장부가 되어 할 일은 믿음으로 말씀을 지켜 행하는 것이다.

혈과 육의 싸움에서 대장부가 되지 말고,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고, 사탄을 대적하는 데서 남자답게 강건해지자.

 

우리는 믿음에서는 연약하지 말아야 한다.

믿음의 삶을 사는 데서는 믿음에 굳게 서서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남자답게 강건하여져서, 오랜 고난으로 인하여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

 

4.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해야 한다.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되,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고 하신다.

남자다운 강건함과 부드러운 사랑은 조화를 이루기 어렵다.

 

그런데,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이 일을 행하라고 하신다.

믿음의 사람들이 할 수 있기 때문이고, 조화를 이루어야 복된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랑으로 행하지 않는 것은 오래 가지 못한다.

강건함도 굳건함도 오래 가지 못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예수님은 남자답게 강건함으로 십자가를 지셨고, 이 모든 일을 사랑으로 하셨다.

십자가는 강건함과 사랑이 한 데 녹아 있는 곳이다.

우리 각자의 십자가도 강건함과 사랑으로 지고 주님을 따르자.

 

믿음의 선진들은 믿음에는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함으로 순교도 마다하지 않았지만

그들의 삶은 모든 일을 사랑하는 행하는 삶이었다.

모세는 장성한 후에는 믿음에서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함으로

공주의 아들의 특권과 애굽의 보화를 과감히 버렸다.

 

이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민족을 사랑하기 때문이었다.

세상의 보화와 특권보다 하나님의 주시는 상을 더 사랑하였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기 때문이었다.

 

모든 율법(말씀)을 완성하는 것은 사랑이다.

믿음은 사랑으로 역사하는 것이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이 모든 율법의 강령이고 큰 두 계명이다.

남자다운 강건함도 사랑에서 나오고 사랑으로 행하는 것이어야 한다.

 

사도 바울이 자기에게 그토록 유익하였던 것들을 남자답게 배설물로 여기고 버린 것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를 그 무엇보다 사랑하기 때문이었다.

그가 그 많은 고난과 형극을 감당한 것도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성도를 사랑하기 때문이었다.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영혼들에 대한 사랑이 없었다면 다음과 같은 고백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20:24)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이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노라(딤후4:6-7)

 

그는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함으로 달려갈 길을 다 갔지만,

이 모든 일을 그는 사랑으로 행하였다.

우리도 또한 그를 본받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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