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작 암브로스

예수를 바라보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 / 아이작 암브로스

강대식 2013. 4. 3. 12:11

그것은 다음의 모든 행위를 포함하는 행위다.

예수님을 알고 생각하고 갈망하고 소망하고 믿고 사랑하고 기뻐하고 누리며

그분을 닮아가는 것이다.

마음속에서 우리의 감정을 뒤흔들고

그로 인해 우리 삶에 영향력을 미치는 바라봄이다.

우리의 심령을 소생시키고 생명력을 갖게 하는 바라봄이다.

따뜻한 감정과 고양된 결단력,

거룩하고 올바른 대화 속으로 우리를 이끌고 빚어가는 바라봄이다.

한 마디로 그것은 예수님을 내적으로 경험하는 바라봄이다.

 

모세의 얼굴을 가렸던 수건 대신 하나님은 그분의 교회에 복음이라는 선명한 거울을 주셨다. 그래서 이제 복음 아래 있는 자는 하나님의 긍휼, 진리, 선하심과 그분의 신적인 다른 속성들의 영광스런 빛 속에서 묵상하는 믿음을 통해 그리스도를 바라본다. 그리고 그 수단들을 통해 모든 믿는 자는 거룩한 영광과 새로운 삶에서 그리스도를 닮아가게 된다.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히12:3).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후3:18).

 

예수님을 바라보라는 것은 명령이다. 왜 명령인가? 그 유일한 이유는 바로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명령은 명령할 권위를 가진 자가 지시를 통해 선포한 것으로 분명하게 부과된 의무다.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한다는 법을 모든 사람에게 부과하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뜻이다.

 

그렇다면 그분에게 왜 명령을 내리시는 지를 물어 아는 것이 우리의 의무가 아니라 순종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다. 피타고라스 학파 안에서 제자들이 논쟁을 벌일 때 ‘그분이 직접 말씀하셨다.’라는 사실이 모든 논쟁을 종식시키기에 충분했다면,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 안에서는 그분의 뜻이라는 것만으로 더욱 충분해야 하지 않겠는가!

 

바라보는 자에게 다른 어떤 방법보다도 더 온전하게 고치시는 분이 바로 높이 들리신 예수님이다.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은 우리에게 가장 특별한 유익을 주기 위해 하나님이 정하신 위대한 명령이다. 얼마나 많은 영혼들이 다른 수단들에 매달리고 있는가! 그런 수단들을 통해서도 그리스도가 유익을 주시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들은 예수님과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것들이다. 다른 것을 통해 일 년에 할 수 있는 것보다 그리스도에게 직접 나아가는 자가 하루에 얻는 것이 더 많다! 그래서 그것을 선택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완전하고 복합적이며 높은 복음의 명령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 명령이 무엇인가? 그것을 바로 예수님을 바라보라는 것이다.

 

- 아이작 암브로스, 『예수를 바라보라』, 1권, pp 64-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