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요이 1: 4-11
4절에, “너희 자녀들 중에 우리가 아버지께 받은 계명대로 진리를 행하는 자를 내가 보니 심히 기쁘도다”라고 말씀한다.
그를 심히 기쁘게 하는 것은 관계의 끈이 좋아서가 아니라,
우리가, 사도들이, 아버지께 받은 계명대로 자녀들이 진리를 행하기 때문이다.
진리는 성경에서 계명 또는 교훈이고, 신학 용어로는 교리인 것을 명심해야 한다.
세상과 교회는 이제 진리가 어떤가는 중요하지 않고, 힘이 있고 세력이 크면 다인 곳이 되었다.
그러나 주님은,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다’고 하셨다.
우리 주님은 이 땅에 오셔서 유다 땅 가장 작은 마을 베들레헴 마굿간에서 나셨고
갈릴리 외진 마을 나사렛에서 30년 동안 목수 생활을 하셨다.
그리고 3년 반의 주 사역지도 예루살렘 사람들이 천시하는 갈릴리 바닷가였고,
택한 제자들도 예루살렘 문벌 좋고 학력 좋은 자들이 아니라 어부와 세리들이었다.
그리고 주님은 갈보리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
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어찌하여 진리보다 큰 힘과 세력만을 좋아할까?
베들레헴과 나사렛과 갈릴리에 예수님과 진리가 있다는 것을 왜 모를까?
그분의 몸인 교회는 그렇게 시작하고 그렇게 성장해 간다는 것을 왜 모를까?
오늘날 교회는 베들레헴의 말 구유를 잃어버렸고, 나사렛과 갈릴리와 갈보리를 잃어버렸다.
그것들은 성탄절과 수난절에 예쁘고 아름다운 그림과 장식과 찬양으로만 있을 뿐이다.
그것들은 피해가야 할 것이고 우리 믿음 생활 가운데 있어서는 안 될 것들이 되고 말았다.
우리 주님은 진리로 우리를 자유케 하기 위해 오셨다. 소유와 환경으로가 아니다.
요8: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요8:36)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
갈5:1)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죄에서, 세상에서, 사탄에서 자유롭게 하려고 그분은 피를 흘리셨고 그 피로 우리를 사셨다.
그 피로 주님의 교회를 사셨고, 세우셨다.
‘자기 피로 사신 교회’(행20:28), ‘내 교회를 세우리니’(마16:18).
그 교회는 음부(사탄과 세상)의 권세가 이기지 못할 거라 하셨다.
지금 교회는 세상과 구별하기가 힘든 곳, 음부의 권세가 이기는 곳이 되고 말았다.
주님은 성전에 들어가셔서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사람들을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셨다.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어야 하는데 너희가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다고 하셨다.(마21:12-13)
교회 안에서 힘 있는 사람들끼리 거래와 매매가 이루어지고
돈을 바꾸고 비둘기를 판다. 헌금으로 계급을 사고 힘을 얻는다.
돈과 권세는 힘을 얻게 하고 세상의 역학이 교회에서도 그대로 작용한다.
세상인지 교회인지 겉모양은 다른데, 내용상으로는 다른 것이 없다.
진리를 알려고 하고 진리로 자유하고 진리를 살려고 오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경외하고 섬길려고 오는 것이 아니다.
이 땅에서 복 받고, 죽어서 천국 가기 위해 오는 것이다.
온통 관심은 내 복주머니요, 이 땅에서의 형통이다.
주님이 다시 오심과 그리스도의 심판대에 대해서는 관심도 미련도 두려움도 없다.
그분이 요구하시는 것은 진리대로 사는 것이요 거룩과 성결이라는 것에는 외면을 한다.
가진 것 보호 받고 더 많이 풍성히 가지고 누리는 것이 그들의 하나님이다.
그 신은 배요 그 영광은 부끄러운 것이요 그 마침은 멸망이라 해도 아랑곳 하지 않는다.
그 많은 재물과 그 큰 권력으로도 진리를 살 수 없고 구원을 살 수 없다.
이 땅에서도 지옥 살지 않고, 죽어서도 지옥가지 않는 길은,
이 땅에서도 천국 살고, 죽어서도 천국 가는 길은, 동일한 기준에서 판가름이 난다.
오직 내 배가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진리대로 사느냐 하는 것이다.
아버지께 받은 계명대로 진리를 행하는 것이 사도는 물론 하나님을 심히 기쁘게 한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되, 그 사랑도 계명을 따라 행하는 것이다.
서로 사랑하자--- 또 사랑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 계명을 따라 행하는 것이요
진리 안에서의 사랑이요, 진리를 따라 사랑이다.
진리와 교훈을 떠난 사랑은 맹목이요, 자기사랑의 연장이요, 자기 중심적 이기적 사랑일 뿐이다.
그 많은 유행가가 사랑 타령을 하지만, 그 사랑이 실현되지 않는 것은 진리가 없기 때문이다.
1. 진리를 행하는 자가 될려면, 진리를 알아야 한다.
(요이1:5-6) 이는 새 계명 같이 네게 쓰는 것이 아니요 처음부터 우리가 가진 것이라
또 사랑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 계명을 따라 행하는 것이요
계명은 이것이니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바와 같이 그 가운데서 행하라 하심이라
‘처음부터 우리가 가진 것’이라고 했다. ‘처음부터 들은 것’이라고 했다. ‘그 계명’이다.
처음부터 누구에게서, 무엇을 듣고, 배우고, 알았고, 가졌느냐가 중요하다.
진리는 주님으로부터 사도와 선지자들로부터 들어서 알아야 한다.
그 후로는 교회에서 목사들의 설교와 가르침을 통해서 들어서 아는 것이다.
그런데 그리스도 안에 일만 스승이 있되 아비는 많지 않는 것이 문제이다.
아비는 진리의 복음으로 해산하는 수고로 생명을 낳고 키우는 사람이다.
진리는 지성으로 알고, 영으로 알고, 삶으로 알아야 한다.
진리를 먼저, 지성으로 알아야 한다.
지성으로 진리를 알려고 하지 않는 사람은 항상 초보에 머물고 성장할 수가 없다.
경건 서적을 도무지 읽지 않는 사람은 본능과 감정대로 살고 미혹에 빠지기 쉽다.
우선 지성을 통해, 책을 통해, 새로운 내용의 자극과 가야할 방향과 목적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믿음의 선진들이 성경을 정리해 준 교리(진리)와, 그 해석과 적용을 공부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성경을 교리로 진리로 알아야 우리의 삶 가운데 적용할 수가 있다.
교리로 진리로 정리되지 않으면, 숲을 모르고 나무 토막들만 붙들고 요동하게 된다.
오늘날은 영상의 시대이다.
영상은 우리의 뇌리에 박혀서 우리를 생각 없는 노예로 만들고 유혹한다.
그러나, 책은 우리의 정신을 깨우고 자극을 주어서 생각을 하게 만들어 준다.
청교도들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부지런하고도 열심히 읽고 연구해야 한다.
청교도들은 기독교 참신앙의 모델, 성숙한 신앙의 모델이고, 예수를 가장 잘 믿음 이들이었다.
청교도들은 성경을 사랑하고 성경에 대한 최고의 참고서들을 썼다.
‘여러분이 함께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과 비슷해질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청교도를 읽는 것은 교회 역사상 가장 훌륭한 지성인들이 있는 학교에 입학하는 것과 같다.
진리는 또한 영을 통해 알아야 한다.
진리는 성령께서 조명해 주셔야 한다.
우리 주님이 빛을 비춰 주셔야 한다.
수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며 묵상하며 알기를 힘써야 한다.
영으로가 아니면, 진리의 말씀도 은혜로 주신 많은 것들도 알 수가 없다.
고전2:14)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진리는 또한 삶으로 알아야 한다.
알고도 듣고도 행치 않으면 아무 유익이 없다.
듣고 알고 행하는 자는 주추를 반석위에 세운 지혜로운 사람과 같다고 하셨다.
진리이신 주님과 성령 없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도 살 수가 없다.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주님 자신이요, 성령 자신이신 것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 ‘내가 진리요’, ‘진리의 성령’
세상은 진리를 말하고 살아야 한다고 하면서도, 살지 못하는 것은, 날로 악해지는 것은,
주님과 성령 없이 진리를 살려고 하는데 그 원인이 있다.
회심하고 돌아와서야 진리를 알면서도 살지 못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2. 진리를 행하는 자가 될려면, 미혹되지 말아야 한다.
(요이1:7-9) 미혹하는 자가 세상에 많이 나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런 자가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니
너희는 스스로 삼가 우리가 일한 것을 잃지 말고 오직 온전한 상을 받으라
지나쳐 그리스도의 교훈 안에 거하지 아니하는 자는 다 하나님을 모시지 못하되
교훈 안에 거하는 그 사람은 아버지와 아들을 모시느니라
미혹하는 자가 세상에 많이 나왔다고 하신다. 그들은 적그리스도들이라고 하신다.
그 당시가 그랬다면 지금은 어떻겠는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심을 부인한다는 것은 그분의 신성과 인성을 부인하는 것이다.
그저 훌륭한 한 인간, 한 종교인으로 보는 것이지요.
미혹하는 자들은 사도들이 전한 교훈 안에 거하질 않고 지나쳐서
자기들의 생각과 사상을 전하는 자들이다.
이들은 다 하나님을 모시지 못하는 자들이다.
교훈 안에 거하는 사람만이 아버지와 아들을 모시는 사람이다.
스스로 삼가 사도들이 일한 것, 교훈과 교리들을 잃지 않아야 온전한 상을 받을 수 있다.
주님은 바리새인의 누룩과 사두개인의 누룩들을 조심하라고 하셨다.
바울은, 누룩 없는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해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고 했다.(고전5:7-8)
악하고 악의에 찬 누룩으로도 말고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으로 하라고 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의 생각, 자기 사상을 섞어서 혼잡하지 않아야 한다.
하나님께 받은 것처럼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순전하게 전해야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악하고 악의에 찬 누룩을 분별 못하고
바리새인의 누룩과 사두개인의 누룩을, 누룩 없는 새 덩어리와 분별할 줄을 모른다.
세상에도 헛된 스승들이 많지만,
교회 안에도, 그리스도 안에도, 일만 스승들이 있다.
분별하지 못하면 그들에게 당할 수 밖에 없고 그 노예가 되고서도 자유하는 줄로 착각하게 된다.
항상 배우나 끝내 진리의 지식에는 이를 수 없는 얀네와 얌브레들이 되고 만다.(딤후3:8)
그들은 욕심에 이끌리고 그 마음이 부패하여, 지도자와 진리를 대적하다가,
믿음에서 버림 받게 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러했고, 오늘날의 교인들이 또한 그러하다.
이스라엘은 죄의 회개와 심판을 경고하는 선지자들의 말은 듣지 않고 돌로 쳐죽이고 핍박했다.
위로와 평안과 복을 말하는 거짓 선지자의 달콤한 말들이 그들에겐 더 좋았다.
거짓 선지자들은 하나님 주신 적이 없는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전했다.
예레미야를 통해 하신 말씀이 오늘날 우리 교회와 나라에 하신 말씀으로 들어야 할 것이다.
(렘5:26-31) 내 백성 가운데 악인이 있어서 새 사냥꾼이 매복함 같이 지키며 덫을 놓아
사람을 잡으며 새장에 새들이 가득함 같이 너희 집들에 속임이 가득하도다 그러므로 너희가
번창하고 거부가 되어 살지고 윤택하며 또 행위가 심히 악하여 자기 이익을 얻으려고
송사 곧 고아의 송사를 공정하게 하지 아니하며 빈민의 재판을 공정하게 판결하지 아니하니
(유전 무죄, 무전 유죄)
내가 이 일들에 대하여 벌하지 아니하겠으며 내 마음이 이같은 나라에 보복하지 아니하겠느냐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 땅에 무섭고 놀라운 일이 있도다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며,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교인들)은 그것을 좋게 여기니, 마지막에는 너희가 어찌하려느냐
우리 주님의 산상수훈의 결론도 거짓 선지자들에 대한 경고로 맺고 있다.
(마7:15-16)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3. 진리를 행하는 자가 될려면, 교훈 안에 거하지 않는 자를 멀리해야 한다.
(요이1:10-11)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하지 말라 그에게 인사하는 자는 그 악한 일에 참여하는 자임이라
그리스도인은 사도와 선지자들의 교훈의 터 위에 세워져야 한다.
오직 그 교훈으로 가르치는 자들에게서 처음부터 듣고 배워서 알고 살아야 한다.
그 터에서 지나치고 넘어가고 섞어서 혼잡하는 자들이 미혹자들이고 적그리스도들이다.
요일4:1) 영을 다 믿지 말고 온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
거짓 선지자이고 미혹자들인데도 사랑하라고 했으니 사랑해야 하는가요?
기독교는 교리대로 진리대로 믿고 사랑하는 종교이지,
그냥 믿고 사랑하는 종교가 아니다.
진리와 교리가 없으면 기독교도 기독교적 삶도 없다.
청교도적 교리와 진리가 없으면 청교도적 삶도 있을 수가 없다.
교리 없이 삶과 도덕을 앞세우고 교리를 왜곡하는 자들이 항상 이단들이었다.
그 이단들이 바로 펠라기우스주의자들, 알미니안들, 영지주의자들과 일부 경건주의자들이었다.
그 이단들의 후예들이 현대의 휴메니스트들이요, 뉴에이지들이요, 신비주의자들이다.
그들은 성경과 교리(진리)를 믿지 않고 성경이 말씀하는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자기들의 철학 종교 사상을 믿고 그것으로 성경을 왜곡하고, 우상들을 만들어 신으로 믿는다.
성경을, 교리로 진리로 모르니, 많은 사람들이 거짓 선지자들의 미혹에 넘어가고 있다.
그 사랑을 외치고 실천한 사도 요한이 하는 말씀이다.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하지 말라“고 한다. ”그에게 인사하는 자는 그 악한 일에 참여하는“ 자라고 하고 있다.
사도 바울도 로마서에서 말씀한다.
(롬16:17)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배운 교훈을 거슬러 분쟁을 일으키거나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그들에게서 떠나라
맹목적으로 사랑 타령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진리가 우선이고, 진리 안에서 사랑이 있을 뿐이다.
사도는 이 사랑을, 진리대로 행하는 것을 심히 기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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