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강해·존스

[스크랩] 로이드 존스, 로마서강해12권, 4장 "살아있고 거룩한 제사들"

강대식 2014. 2. 3. 09:11

 

“(l)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2)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1-2)

 

바울은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 몸을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첫 번째 이유는 기독교 구원 안에 전인이 수반되어 구원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우리의 이지나 영, 의지만 구원받는 것이 아니다. 몸도 구원받는 것이 완전한 구원이다.(롬8:10-11, 23)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을 쓴 이유가 그 진리를 확증하기 위함이었다. 고린도교회 안에서 “부활이 이미 지나갔고 몸은 아무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혼과 영이다”라고 말하는 자들이 있었다.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타락하였을 때에 그의 영과 혼뿐만 아니라 몸도 타락하였다. 그러므로 전체 사람이 구원받게 된다는 것은 이 위대한 구원에 있어서 핵심적인 구원이다.(빌3:20-21)

 

두 번째 이유는 우리 형제의 각 지체들의 상호 관계나 연합성을 우리로 하여금 상기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금욕주의자들은 몸 그 자체는 전혀 적절치 않고 그들에게 있어서 문제가 되는 것은 한 존재로서의 나 자신일 뿐이다. 그들은 심지어 구원만 받으면 몸으로 무엇을 행하느냐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몸은 죽게 될 것이고 죄 짓는 것을 그런 식으로 정당화 한다. 요한일서는 그 것에 대한 무서운 가르침을 다루고 있다. 우리는 몸을 멸시하거나 그 몸은 전혀 상관이 없다고 말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 몸은 성령의 전이기 때문이다.(고전6:19) 이 점을 인식한다면 그 몸으로 행한 일에 대하여 주의하게 될 것이다.

 

세 번째 이유는 결국 몸이 우리 영혼이 행동하는 도구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은 중요하다. 영혼은 진공 속에 거하는 것이 아니다. 로마서 6장에서 계속 그 점을 말하고 있다.(:12-13)

 

네 번째 이유(매우 강력한)는 몸이 결국 유혹과 죄의 주요한 원천 중 하나라는 것이다. 바로 그 점이 이 주제를 그처럼 중요하고 심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만일 자기 몸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으면 금방 영혼이 고통을 받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모든 그리스도인의 가장 큰 싸움은 몸을 장악하려고 위협하는 죄와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사도는 우리가 어떻게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어떻게 우리가 그리스도와 죽었으며, 또한 어떻게 그리스도와 장사되었고 ,어떻게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였는지를 6장에서 진술하고 있다.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지어다”(6:11) 사도는 우리에게 보편적인 논리만 주지 않고 우리를 땅으로 내려가게 한다.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 노릇 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치 말고”((6:12) 그것은 죄가 항상 몸 속에 성가시게 굴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우리는 전적으로 타락했다. 우리 구원에 있어서 영과 혼이 구속받았으나, 죄의 가장 중요한 죄소가 몸 안에 있다는 것은 하나의 큰 비밀이다. 항상 죄가 그 몸 안에 있어 우리를 항상 조종하고 왕 노릇을 하고 싶어 한다. 만일 우리 몸을 산제사로 드리는 일을 소홀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즉시 우리가 몸을 통해 죄로 떨어지게 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모든 사람이 거듭나 구속함을 받은 지금에도 ‘육체와 마음의 소욕’이 여전히 남아 있다. 사도는 본문으로 보편적인 가르침을 주고 있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사로 드리라” 그것이 대응하는 방식이다. 하나님께서는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하셨을 때, 그 가나안 땅에 있던 모든 원수들을 다 멸절시키지 않으셨다. 하나님께서는 그 이스라엘의 원수들을 “너희 눈에 가시와 너희의 옆구리에 찌르는 것”으로 남겨 두셨다.(민33:55) 우리에게도 똑같은 일을 하게 하신다.

 

왜 내 몸을 산 제사로 드려야 하는 것인가?

그것은 나의 존재 전체, 내 몸의 모든 지체를 가지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6:20) 여러분의 영, 여러분의 이해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말고 여러분의 몸으로도 영광을 돌려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교리에서만 관심을 가진다. 또 어떤 사람들은 자기들이 하고 싶은 것만을 하기를 원한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들에게 주어진 압력을 못마땅해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여기에서 당신의 종, 사도 바울을 통해서 우리에게 압력을 가하고 계신다.

 

‘산 제사’ - 첫째, 구약시대 이스라엘 자손들이 행한 것과 여러분이 마땅히 해야 하는 것을 대조시키고 있다. 옛 경륜 속에서 제사장들은 짐승을 잡아 그 죽은 몸을 제단 위에 올려 놓았지만, 사도는 우리에게 죽은 몸을 올려 놓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몸을 올려 놓는 것 즉 ‘산 제사’를 드리라고 말하고 있다. 바울은 고전13:3에서 “내가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만일 사랑을 가지고 바른 방식으로 그러한 일을 하지 않았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베드로는 정확히 같은 말을 하고 있다.(벧전2:3-5) 우리 주님 자신이 산 돌인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이 성전 안에서 그 속에 생명이 있는 산 돌들이다.

 

둘째, 바울은 우리의 몸을 제물로 드려야 한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고 싶어 한다. 구약시대 제사장들은 그 동물을 한 번만 죽이면 되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도 그와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몸이 산 제사이다. 시간 시간마다 계속 자기의 몸을 하나님께 드리고 있어야 한다. ‘돌’과 ‘산 돌’ 사이의 차이이다.

 

‘거룩한’ - ‘구별하다’는 뜻만 아닌 우리 몸을 흠 없고 점 없이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 구약 제사 규례에 “향기로운 냄새를 흠향하신다”는 표현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 열납될 만한 것을 하나님께 드린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그리고 있다. 사도는 너희 몸을 드리되 하나님께 정말 아름다운 향기와 함께 올려 드려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이고 하나님께 대한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하기 원하기 때문에 여러분 자신의 몸을 매일 드릴 때 거기에 달콤하고 향기로운 냄새가 날 정도의 조건으로 몸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바울은 엡5:1-2에서도 똑같은 표현을 쓰고 있다. 우리 주님께서 그렇게 하셨다. 여러분도 똑같이 그렇게 해야 한다.

 

바울은 말하고 있다.

“너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야 하고 하나님을 경배하고 하나님을 찬미해야 한다. 하나님의 그 놀라우신 탁월하심을 항상 드러내야 한다. 너희의 영과 혼뿐만 아니라 몸으로도 말이다. 그러므로 몸을 산 제사, 거룩한 제사,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달콤하게 받으실 만한 그런 제사로 드려라”

 

출처 : 청교도 아카데미(PBA)
글쓴이 : 김영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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