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혁, “브레이너드는 굉장한 일을 한 사람은 아니었다. 오랫동안 주의 일을 감당하지도 못했다. 그는 21세에 개종을 하고 24세에 헌신을 해서, 29세로 생애를 마쳤던 질그릇과 같이 연약한 사림이었다. 그는 폐결핵을 비롯한 온갖 질병으로 가득 찬 사람이었다. 인디안 틈에서 온 몸과 심혈을 쏟어 버린 이름 없는 선교사였다. 그러나 그의 삶 속에는 하나님의 능력의 심히 큰 것이 있었다. 그의 삶 속에는 하나님께서 임재하고 계셨다. 그가 기도로 숨쉬었고, 기도로 움직였고, 기도로 선교하다가 기도 가운데 숨을 거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그의 생애는 후세에 수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가슴과 생애를 뒤흔들어 놓았다. 그는 1740년대 미국을 휩쓴 대각성 운동의 주도자 조나단 에드워즈의 심장에 깊은 감동을 끼쳤고 존 웨슬리의 마음에 큰 전환점을 마련해 주었다. 윌리암 케리와 헨리 마틴, 짐 엘리엇 선교사의 마음을 움직여서 복음 사역에 종사하도록 하였다. 존 웨슬리는 모든 설교자들이 브레이너드의 일기를 세밀히 읽어야 한다고 말했다.”
조나단 에드워즈의 서문
브레이너드의 생애에서 쉽게 분간해 낼 수 있는 한 가지 요인이 있는데, 바로 그가 천성적으로 우울증과 낙망의 상태에 쉽게 빠지는 정서를 지녔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서 그의 신앙과 헌신에 대한 놀라운 증거들을 뒤집는 것으로 여기는 이들이 많다. 그것은 전혀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이다. 그를 아는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듯이, 그는 사물을 꿰뚫어 보는 천재성과 선명한 사고와 면밀한 추리와 매우 정확한 판단을 지닌 인물이었다. 그는 인간 본성에 대한 위대한 통찰을 지녔으며, 또한 전반적으로 사리 분별이 매우 밝은 사람이었으며, 동시에 신학적인 판단과 지식에서도 뛰어났고, 특히 체험적인 신앙에 있어서는 더더욱 그러했다.
그는 참된 견고한 경건과 열광적인 상태를, 빛과 판단에 기초를 둔 이성적이며 성경적인 감정들과 또한 변덕스런 욕심이나 상상에 근거한 강한 감동과 동물적인 격렬한 감정 따위에 기초하는 감정들을 서로 정말 정확하게 구별하였다. 그는 인간이 이런 것들에 노출되어 있음을 예민하게 감지하고 있었다. 그것들이 얼마나 광범위하게 인간을 사로잡았으며, 얼마나 많은 무리가 그것들에게 속임을 당하였으며, 그것들의 사악한 결과들과 또한 그것들이 기독교 세계에 끼친 무시무시한 해악을 놀랍게 지각한 것이다. 그는 이처럼 상상에 근거한 열광적인 신앙의 갖가지 현상들을 묘사하여 그 그릇됨과 헛됨을 드러내며, 또한 이런 신앙과 참된 영적인 헌신의 크나큰 차이를 입증하는 데에 나로서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
그의 영민함은 다른 이들의 체험들을 분별하는 데뿐 아니라 자기 자신의 마음의 갖가지 활동들을 분별하는 면에서도 나타났다. 특히 자신의 내면적인 활동 가운데 우울증에서 비롯된 것이 어떤 것인지를 분간하는 면에서는 내가 지금까지 만난 그 어떤 우울한 사람들보다 뛰어났다. 이것이 그의 특유한 판단력 덕분이었음은 물론이다. 그에게서 나타나는 또 다른 불완전한 면은 바로 지나친 과로였다. 체력과 피로를 적절히 조절하는 일에 신경을 쓰지 않은 것이다. 사실, 섭리의 부르심을 받고서 자신의 체력에 지나치도록 수고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로서는 극히 어려운 일이었다. 그는 마침내 자신이 이 문제에서 실수를 범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을 이어 그의 선교 사역을 담당하게 된 그의 동생에게 이런 실수를 범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경고하였다.
다른 불완전한 요소들도 그의 모든 신앙적 정서와 신앙 활동에 뒤섞여서 그의 생애 전반에서 나타났다는 것을 기꺼이 인정한다. 이 세상의 아무리 훌륭한 성도라도 언제나 그렇듯이 본성적인 것이 영적인 것과 뒤섞여 나타난 것이다. 천성적인 기질이 브레이너드의 신앙 활동에 어느 정도 영향을 주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 점은 경건한 다윗이나 사도 베드로, 요한, 바울에게서도 분명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어쩌면 브레이너드의 불완전한 요소를 가장 정확하게 분별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 자신이었을 것이다. 사려 깊은 독자라면 그가 나이가 들수록 그의 은혜가 무르익었고, 그 마음의 신앙적인 활동이 더욱 순결해졌고, 그의 판단이 더욱 예리해졌다는 것을 쉽게 관찰할 수 있을 것이다. 그에게는 그를 가르치고 순결하게 해 주는 요소가 많았고, 그는 이를 놓치지 않고 거기서 유익을 얻은 것이다.
이런 모든 불완전한 요인들에도 불구하고, 경건하고 사려 깊은 독자라면 여기 제시되어 있는 이 전기야말로 마음에서와 실천에서 참된 훌륭한 경건의 놀라운 모범으로서 생명력 있는 신앙의 실체와 경건의 능력을 크게 확증해주는 것이요, 이것이야말로 그대로 본받을 만한 귀한 가치가 있으며 또한 여러 가지 면에서 조심스럽게 관찰하는 이에게 영적인 유익을 줄만한 것임을 기꺼이 인정하게 될 것이다.
독자는 브레이너드가 그의 일기에 기록한 내용이 세상에서 존귀와 박수를 받기 위한 것도 아니요 혹은 그의 생전에나 그의 사망 이후 세상이 그것을 보도록 하기 위하여 계획적으로 쓴 것도 아니요, 그 스스로 사사로이 사용하기 위하여 기록한 것이었음을 유의하여야 한다. 그는 자신의 사망 이후 그의 일기의 한 부분이라도 출간하여 공개하는 일에 대해 거의 어찌 해볼 수 없을 정도로 반대하였다. 죽어가면서도 지극히 철저하고도 결연하게 반대하였다. 거기 몇몇 친지들이 그렇게 철저하고도 절대적인 금지는 철회해 줄 것을 옆에서 간곡히 권면하여, 마침내 다음과 같은 단서를 달아서 공개할 것을 기쁘게 허락하였다. 곧, “그가 남긴 글들이 내 손에 주어져서 내가 하나님의 영광과 신앙의 유익을 위하여 최선이라고 여기는 대로 그것들을 처리하도록” 한 것이다.
- 동서(원광연 새번역판), pp 9,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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