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성도들은 하늘에 가기 전에 “박해”의 골짜기를 지나야 한다. 하나님과 화해한 뒤에도 성도들은 이 땅에서 주어지는 외면적 고통 때문에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는지 모른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우리는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한다(행14:22). 그러나 큰 곤고함과 고통 중에 있는 가련한 영혼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온전히 돌보신다.
그리스도께서는 성도들이 당하는 고통의 문제들을 당신께 속한 영혼들을 거룩하게 하실 재료로 삼으신다. 그들의 고통을 영혼을 치료하는 약으로 사용하시어 작은 고통으로 더 큰 고통을 미연에 방지하시는 것이다. 외면의 슬픔으로 내면의 슬픔을 치료하시는 것이다.
“야곱의 불의가 속함을 얻으며 그의 죄 없이함을 받을 결과는 이로 말미암나니 곧 그가 제단의 모든 돌로 부숴진 횟돌 같게 하며 아세라와 태양상이 다시 서지 못하게 함에 있는 것이다”(사27:9).
또 그리스도께서는 내면적 위로를 통해 외적인 고통을 치료하신다. 내면적 위로의 거대한 파도로 외적 고통의 물결을 덮도록 만드시는 것이다(고후1:5).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신령한 위로 한 방울은 겉 사람이 받는 고통의 전 대양을 달콤한 것으로 바꾸기에 충분하다. 사랑하는 독생자를 내어주신 고통을 겪으신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위로를 생각해 보라. 그분의 위로야말로 세상의 모든 고통을 삼켜버릴만큼 충분한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닌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3).
성도에게 있어서 이 땅을 떠나는 것은 세상이 주는 모든 슬픔과 결별하는 순간을 맞이하는 일이다. 성도의 죽음은 슬픔의 장소에서 영원한 평안과 안식의 처소로 옮겨지는 복된 전환점이다. 이제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의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다.
그들의 모든 애통의 날들은 끝나고, 찬란한 옷을 입은 채 영원한 평안으로 들어가게 하실 것이다(사57:2). 그곳은 눈물과 탄식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그곳은 죽음 한 발자국 너머에 있다. 그 너머에 고통과 슬픔의 광경과 비명 소리는 들리지 않을 것이다.
- 존 플라벨, 『은혜의 방식』, pp 25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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