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갈 4:1-9
1. 초등학문의 종이 되지 않아야 한다
갈4:8-9)“그러나 그 때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 노릇 하였더니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 뿐 아니라 더욱이 하나님이 아신 바 되었거늘
다시 약하고 천박한 초등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그들에게 종 노릇 하려 하느냐?”
초등학문은 성경 밑줄에 주가 달려 있다.
“고대의 우주관과 운명론 등”이라고 한다.
오늘날은 현재의 모든 세상 학문들을 말한다고 할 수 있다.
성경을 알기 전에는 세상의 학문이 최고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성경의 진리, 하나님의 말씀과 지혜를 알고 나면, 그것은 초등학문에 지나지 않는다.
초등학문의 문제는, 하나님 없이,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 없이,
인류와 세상을 구원할려고 하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는 구약교회에서와 마찬가지로, 세상의 초등학문이 들어와서 주인노릇하고 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의 경고는 오늘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진리에 비하면 초등학문은 “약하고 천박한” 학문이다.
“약하고 천박한 초등학문”인데,
그 초등학문이 교회에서 성경을 해석하고 설교하고 가르치는 주인이 된지 오래 되었다.
대부분의 교인들은 우리 목사님 최고! 하면서, 설교와 가르침에 환호하고 있다.
유명 교회와 유명 신학교들에서 가장 높이 존경을 받는 것은
얼마나 세상의 유명 대학교와 신학교에서 학위를 받았느냐는 것이다.
그 학위들은 바로 “약하고 천박한 초등학문”의 학위들이다.
현대의 뜻있는 선지자들은, 이 현상을 가리켜,
“세상의 포로된 교회”, “바벨탑에 갇힌 복음”, “그리스도 없는 기독교”,
“신비주의와 손잡은 기독교”, “심리학(마켓팅)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 라고 지적하고 있다.
하나님은 이 현상을 가리켜 이미 예레미야 시대에 통렬하게 경고하셨다.
“이 땅에 무섭고 놀라운 일이 있도다.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며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은 그것을 좋게 여기니 마지막에는 너희가 어찌하려느냐“(렘5:30-31)
오늘날 우리 시대는 예레미야 시대보다 더 악한 시대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하나님 보시기에는 “무섭고 놀라운 일”이라고 하시는데
“내 백성들”, 곧 구약 교인들과 현대 교인들은 “그것을 좋게 여기고” 있다.
하나님의 생각과 백성들의 생각은 이렇게 다르기만 한다.
사람의 생각과 가는 길이 하나님의 생각과 가는 길이 같은 적이 없었다.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은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사55:7-8)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배역하고, 기독교라는 이름으로 극악무도한 짓을 행했다.
중세 천년의 암흑시대는 카톨릭이 기독교의 이름으로 악행을 저질른 시대였다.
화려한 건물을 짓고 엄숙한 의식을 행하면서, 탐욕과 방탕을 위해 그 만행을 저질렀다.
오늘날 대형 교회들은 이들의 행태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지 않은가?
때가 되니,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들의 순교와 희생을 통해 종교개혁이 일어나게 하셨다.
그들을 계승하여 영국교회를 개혁할려고 목숨을 바친 사람들이 청교도들이었다.
종교개혁자들과 청교도들이 일어난지 500년이 경과하고 있는 오늘날은 어떤 모습인가?
유명 교회일수록, 목사들을 길러내는 유명 신학교일수록, 기독교 유명 단체일수록,
“약하고 천박한 세상의 초등학문들”이 그들의 설교와 가르침들을 지배하고 있다.
교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은 적이 없고, 거듭나고 회심한 적이 없으면서,
교회를 구성하고 기독교를 대표하는 양 행세를 하고 있다.
구약 이스라엘 교회가 저질렀던 패악을, 카톨릭이 저질렀던 만행을,
지금의 개신교의 대부분의 교회와 단체들이 그대로 저지르고 있지 않은가?
그들은 십자가를 본받지 않고 영광만을 추구하고 있다(마르틴 루터).
사도와 선지자들, 종교개혁자들과 청교도들은 “십자가의 신학”을 가르쳤지만,
종교의 제도권을 장악한 이들은 구약시대나 신약시대나 항상 “영광의 신학”만을 가르쳤다.
그 신학은 주님을 따라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따라 로마 황제의 권력과 영광을 추구하는 신학이었다.
약하고 천박한 세상의 초등학문으로 무장한 저들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쓰여진 성경을,
저들의 세속주의에 맞게 해석을 하고, 자기들의 기득권을 합리화하는 적용을 일삼았다.
죄와 회심, 심판과 지옥은 아예 언급이 없거나 의미를 상실하고,
오직 상처와 치유, 천국과 영광, 축복과 형통의 길만이 찬송되고 가르쳐진다.
오늘날 교회의 설교와 가르침은 약하고 천박한 세상의 초등학문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내면의 성숙을 위해서는 심리학, 외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기업을 키우는 경영학,
영성 형성을 위해서는 신비주의가, 성경의 진리와 성령의 역사를 대신하고 있다.
어느 시대에나 인류와 종교가 항상 저질러 온 패역과 악행들이지만,
그 시대에 속한 사람들은 어쩌면 그 현상을 그렇게 모를 수가 없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한데 어울려 좋다고 여기다가 결국은 파멸과 멸망으로 끝이 났다.
우리의 끝이 이렇게 되지 않도록, 현실을 알고, 진리를 알고, 돌이켜야 한다.
하늘이 땅보다 높은 같이, 하늘과 땅의 차이만큼
하나님의 길과 우리의 길, 하나님의 생각과 우리의 생각이 높고 다름을 알아야 한다.
약하고 천한 세상의 초등학문에 알게 모르게 젖어 있는,
현재 우리의 생각과 사고방식과 가치관들을 돌이키지 않으면,
구약교회 이스라엘의 멸망과 같이 신약교회 오늘날의 교회도 같은 운명이 되고 말 것이다.
2. 초등교사의 종이 되지 않아야 한다
갈4:1-2)“내가 또 말하노니 유업을 이을 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이 없어서 그 아버지가 정한 때까지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에 있나니”
모세의 율법과 의식은 그리스도가 오시기까지 어린 동안에 후견인과 청지기 노릇을 하였다.
율법은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초등교사일 뿐이었다.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는 더 이상 초등교사 아래 아래에 있지 아니한다.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초등교사 아래에 있지 아니하도다”(갈3:23-25)
초대 교회 사도 바울의 시대에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구약 교회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받았는데,
유대인들의 율법 초등교사들이 율법과 의식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며 교회를 어지럽혔다.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게 하고 율법과 의식을 지켜 유대인들로 만들려고 하였다.
오늘날 개신교도 카톨릭의 절기들을 다 가져와 지키고, 화려한 의식들을 그대로 닮아가고,
심지어는 교회 건물과 장식까지 부활시키고 있는 것을 본다.
영이 없으면 육신 덩어리가 되어 탐욕과 방탕을 추구하고,
속이 변화되지 않으면 겉만 꾸미는 것이다.
주님은 저들을 회칠한 무덤이라고 하셨다.
율법을 주신 목적은 구원의 방법이 아니라, 정죄를 위한 것이었다.
아담의 범죄 이래 모든 사람이 마음과 양심이 부패되고 오염되었음을,
그래서 죄를 지을 수 밖에 없고,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음을 알게 하기 위함이었다.
율법은 사람을 정죄하는 의요,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을 구원하는 의이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롬3:20-22)
율법은 우리 힘으로 다 지킬 수는 없는 하나님의 의였다.
믿음이 와서 그리스도로 옷 입으면 우리가 지켜야 하고 지킬 수 있는 하나님의 의이다.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롬3:31)
우리 주님도 율법을 페하기 위함이 아니라 온전케 하기 위해 오셨다고 하셨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페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마5:17-18)
문제는, 그리스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으려 하지 않고
율법을 지킴으로 의롭다 함을 받을려고 하는 데 있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헛되게 하는 것이었다.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갈2:21)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갈5:4)
율법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없으면, 사람의 전통을 율법화 계명화 하는 데 악용되어 왔다.
율법화의 대명사, 바리새인들에게 우리 주님이 하시는 말씀이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느니라
또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전통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저버리는도다”
거짓 선지자들은 말씀을 율법화하여 사람들을 옭아 맨다.
양의 옷을 입고 있지만 노략질하는 이리들이다.
숫자와 외양과 화려함에 압도되어 그들의 종 노릇하는 양들이 너무 많다.
그리스도와 성령이 없는 율법은 외식만 조장할 뿐이다.
자기들의 특권과 기득권은 이 율법으로 꽁꽁 싸서 보호하고 키우고,
다른 사람들은 이 율법으로 꽁꽁 싸서 정죄하고 꼼짝 못하게 한다.
하루 살이는 걸러내고 낙타는 삼킨다.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면서도 안에는 탐욕과 방탕이 가득하다.
하나님의 계명에는 없는데, 있더라도 그런 취지가 아닌데, 잘못된 전통을 하나님의 계명인양
순진한 사람들에게 율법화하여 겁주고 강요하여 그들의 노예로 만들고 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자유를 모르고 그들의 강압에 종노릇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갈5:1)
사람이 권력으로 다스릴려고 만들어낸 사람의 계명들과 하나님의 계명들을 분별해야 한다.
율법처럼 휘두르는 사람과 전통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의 계명을 두려워해야 한다.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지 못하고 안하는 교훈들은 바리새인들의 율법일 뿐이다.
성경을 줄줄 외고 있어도, 순전한 교리가 없고, 그리스도가 없고, 성령이 없으면
그것은 바리새인의 율법이 되고 만다.
3. 유업을 받는 아들이 되어야 한다.
갈4:4-7)“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아심이라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로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니라”
세상의 초등학문도, 율법의 초등교사도, 우리의 구원이 될 수 없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자비하신 하나님께서는 때가 찼을 때 아들을 보내 주셨다.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셨다.
그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해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함이었다.
‘속량’은 원래 몸값을 치루고 종을 놓아주어 양민이 되게 하는 뜻이다.
‘속량’은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값을 치루시고 우리를 자유케 하시는 것이다.
속량으로 끝나지 아니하고 아들의 명분,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다.
이를 확실히 하기 위해서 보증으로 우리에게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 주셨다.
아들의 영이기에 우리는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되는 것이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 아빠 아버지라 부르며 우리는 기도해야 한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죄의 종도 아니요, 율법의 종도 아니요, 세상의 종도 아니다.
그러나 이 자유와 특권을 육체의 기회로 삼지 말아야 한다.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갈5:13)
그 자녀에게는 또한 하나님의 유업을 받는 특권이 주어졌다.
천국을 유업으로 받고, 영생을 유업으로 받고, 하나님의 모든 것을 누리는 유업을 받게 된다.
우리 죄를 대신 속량해서 자유와 아들의 특권, 유업을 상속 받을 특권을 주신 것은
그 자유와 특권을 알고 이 땅에서도 자유와 안식과 평안을 맛보다가
죽은 후에는 주님의 품에 안기어 영원한 복락을 유업으로 받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 안에 처리해야 할 종 노릇하던 시절의 초등학문과 초등교사들이 있다.
이것들을 씻어내기 위해 하나님은 아들과 함께 고난의 연단을 주시는 것이다.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생각하건데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롬8: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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