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장 그리스도의 첫해 사역
1. 복음의 시작
공생애 첫 해와 그 기간에 하신 일들에 대해. 복음서 저자인 마가는 다음 말씀으로 시작한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막1:1). 선지자들이 선한 일이 올 때라고 가리켰던 그 해의 시작이고, 약속, 예표의 관점에서 보면 세상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복음의 나타남과 완성의 시작인 것이다. 이 복음의 시작을 선지자들은 때로 ‘끝날’(사2:2, 미4:1), ‘여호와의 은혜의 해’(사61:1-2), ‘하나님의 나라’(단2:44), ‘새 하늘과 새 땅’(사65:17)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복음의 시작을 어떻게 부르든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복음의 시작이 그리스도의 탄생부터가 아니라 세례 요한의 사역과 설교부터라는 것이다.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마11:12). 그 외 행1:21-22, 행10:37. 그리고 마가가 복음의 시작이라고 말한 뒤 어떻게 말하는지를 보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막1:1-2). 또한 요한의 침례(이 의식은 유대인들 가운데 단지 개종자나 이교도가 유대 교회 안에 들어오도록 허용하기 위해 사용되었다.)가 유대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선포되고 제시되었다는 점에서. ①이제 유대인들은 새로운 고백의 단계로 들어가야 했다. ②이제 이방인들과 유대인들이 하나의 교회와 몸으로 연합해야 했다. ③요한의 교리와 설교 속에는 율법의 문자적 교리와는 다른 경향과 특징이 있었다. 즉 요한은 율법의 행위를 통한 모든 의를 부인하고 회개하며 마음을 새롭게 할 것, 뒤에 오실 이를 믿을 것을 요구했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그리스도의 공생애의 첫해를 요한의 설교의 시작으로 본다.
2. 세례 요한의 설교
이제 복음의 미명이 밝아오기 시작한다. 요한은 샛별처럼, 발그레하게 물드는 아침 하늘처럼 동녘 하늘에서 솟아오른 의의 태양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고 선포한다. 요한은 설교에서 사람들이 처한 상태에 따라 그들이 해야 할 의무를 구체적으로 알려 주었다. 바리새인들의 위선과 경건하지 못함을 날카롭게 꾸짖었다. ‘주의 곧은 길’이라고 부르는 의의 길로 인도했다. 설교와 세례를 통해 사람들의 심령을 메시아와 복음의 교리를 받아들이도록 이끌었다. 요한의 설교는 예수님에 대한 설교로 마치 예수님의 말씀을 여는 서문과 같았다. 그러나 이것을 주목해서 보라. 요한의 설교의 가장 일반적인 초점은 회개였다. “나무 뿌리에 놓인 도끼, 타작 마당에 있는 키, 불 속에 있는 쭉정이.” 요한의 입은 그의 옷만큼이나 거칠었다. 완고하고 고집 센 마음 안에 그리스도를 위한 길을 닦고 예비해야 했기 때문이다.
직접 요한의 설교를 들어 보자.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마3:2). 그것은 요한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을 설교하기 시작했을 때 했던 말이다. 그런데 그리스도 역시 똑같은 말씀으로 설교하셨다(마4:17). 제자들을 파송하실 때 제자들에게도 똑같은 교리를 설교하라고 명령하셨다(마10:7). 이 설교에서 우리는 다음의 두 부분을 주목해야 한다.
(1)의무는 회개다. 여기에서 의미하는 것은 복음적인 회개다. 율법은 회개에 대해 엄격하게 언급하지 않는다. 참되고 철저하며 완전한 회개가 복음의 은혜다.
(2)의무를 행해야 할 동기는 바로 이것이다.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천국’을 이해하는 몇 가지 관점이 있다. ①때로 천국은 영광스런 다른 세상으로 이해된다. ②때로 천국은 그리스도의 교회로 이해된다. 그들은 구주요 메시아로 고백하고 교제를 나눌 자들인데 그 교회에 당신도 속할 수 있도록 회개하라는 말. ③때로 천국은 그리스도의 영적인 나라로 이해한다(단2:44). ④때로 천국은 복음에 대한 설교 혹은 은혜의 나라와 그리스도 안에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자비에 대한 설교로 이해된다. ⑤때로 천국은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이해된다. 오 이 설교가 우리에게도 얼마나 합당한가? 그리스도인들이여! 천국이 우리에게 가까이 오지 않았는가? 우리가 영광의 문 앞에, 영원한 세계에 가까이 있지 않은가?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그러니 회개하라. 회개하라! 왜 회개해야 하는가? “천국이 가까이 왔기 때문이다.”
3. 예수님의 세례
이미 할례를 받으신 예수님은 이제 세례를 받으신다. 우리는 예수님이 할례와 세례라는 두 증거 속에서 천국으로 들어가는 길을 열고 계신 것을 본다. 세례는 그리스도가 공적인 사역과 연관되어 처음으로 모습을 나타내신 사건이다(마3:13).
그리스도는 왜 세례를 받으셔야 했는가
(1)세례라는 상징을 통해 그리스도가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 속으로 친히 들어가시기 위해서다. 그것은 마치 왕이 백성이 있는 도시로 들어가기 위해 도시의 평민이 되는 것과 같다.
(2)그리스도가 친히 요한의 설교와 세례를 입증하시는 증인이 되고 요한에게서도 그에 대한 증언을 받기 위해서다.
(3)그리스도가 친히 세례를 받으심으로써 교회의 세례의 물을 거룩하게 하기 위해서다.
(4)다른 사람들도 동참하게 될 세례의 본을 그리스도가 친히 보여 주기 위해서다.
(5)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증언을 하늘에서 직접 받기 위해서다.
(6)그리스도가 모든 의, 즉 도덕적인 의뿐만 아니라 상징적이고 의식적이며 예표적인 의까지도 모두 성취하기 위해서다. 어떤 이들은 제사장들이 직무를 수행하기 전에 몸을 씻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너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회막 문으로 데려다가 물로 씻기고”(출29:4). 분명히 그것은 그리스도가 세례를 받으신 주된 이유였다.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의 공적인 직분을 수행하는 첫 발을 내딛기 위해서였다.
요한은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었는가
아마도 요한이 그리스도를 직접 본 것이 그때가 처음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요한은 계시를 통해 이미 그리스도를 알고 있었고, 세례 뒤에는 더 견고한 확증을 받았다.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주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요1:33).
그리스도의 세례의 영광 혹은 탁월함은 어디에 있었는가
세례 전의 그리스도는 구름속에 가려져 있는 태양과도 같았다. 조개껍질 속에 들어 있는 진주, 밭 속에 묻혀 있는 금광과도 같았다. 그러나 지금 그리스도는 대중 앞에 나타나셨다. 그리고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하늘이 열리고 하늘에서 성령님이 내려오셔서 그분의 성스러운 머리 위에 임하셨다. 하나님 아버지는 하늘에서 말씀하시며 세상에 그리스도의 신성을 선포하셨다. 이 징표들이 그리스도의 세례의 영광이시다.
그리스도가 세례를 받으실 때 혹은 세례를 받으신 뒤에 하신 기도는 무엇이었는가
“백성이 다 세례를 받을 새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눅3:21). 세례를 받자마자 물에서 나와 기도하는 것은 세례를 받는 자들이 행하는 방식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세례받으실 때 예수님이 하신 기도가 그 뒤에 따라온 것을 위해서 하신 것이라고 생각한다. 즉 “성령님이 하늘에서 내려오시고 하나님 아버지가 하늘에서부터 증언으로 아들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 기도하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분명히 이 본문 말씀에는 그리스도의 기도가 담겨 있다. 그리고 또 다른 장소에서 우리는 같은 기도에 대한 같은 반응을 발견한다(요12:28). 한 가지 이유를 더 들면, 그리스도가 지금 우리의 구속과 복음 전파라는 위대한 사역을 시작하시기 전에 그것에 대해 성령의 강림이라는 눈에 보이는 인 침을 받기 위해 기도하셨다고 말할 수 있다.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 치신 자니라”(요6:27). 그것은 서명 날인을 통해 사명을 주는 방식에서 빌려온 표현이다. 분명히 그리스도의 기도에 하나님이 성령을 보내 주셨고 성령이 그리스도에게 인을 치셨으며 그리스도에게 우리의 구속이라는 사명을 허용하고 확증시켜 주셨다. 즉 그리스도의 기도에 성령의 인 침이라는 목적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성령님이 예수님에게 왜 임하셨는가
(1)세례 요한에게 확증을 주기 위해
(2)그리스도가 친히 기름 부음을 받기 위해 혹은 그분의 직분으로 임명받기 위해.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제사장 직분을 수행하기 위해 실제 기름 부음을 받았듯이 그리스도는 성령으로 기름 부음을 받으셨다(사61:1-2).
성령님은 어떤 이유로 이때에 자신을 계시하셨는가
(1)그리스도의 영적인 나라와 홀이 가까이 와 있었기 때문에 성령님을 통해 시작부터 인 침을 받고 확고하게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2)어떤 이들은 마지막 선지자들이 죽은 뒤 성령님이 이스라엘을 떠나셨다고 하는데, 성령님이 눈에 보이는 확실한 모습으로 다시 회복되셔야 하기 때문이다.
(3)복음이 시작될 때 삼위일체 하나님을 온전하고 명확하게 감지할 수 있게 증명하는 것이 가장 합당하기 때문이다.
왜 다른 모습이 아닌 비둘기의 모습으로 나타나셨는가? ①그리스도의 순결함과 정결함, 명료함, 긍휼과 사랑을 보여 주기 위해 ②세례를 받는 자들 안에 어떤 순결함이 있어야 하고 악한 모습이 전혀 없어야 함을 보여 주기 위해 ③노아의 홍수에 나오는 비유에 응하기 위해. 노아의 홍수 때 비둘기가 물이 잦아들었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듯이 지금 비둘기가 복음의 전파에 하나님의 진노가 가라앉았다는 소식을 전해 준다.
4. 그리스도의 금식과 시험
시험 받으신 장소
세례의 물에서 나오시자마자 그리스도는 곧바로 시험의 불 속으로 들어가신다. 성령이 머리 위에 내려오시자마자 그리스도는 바로 같은 성령에 이끌리어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신다. 하나님이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라고 말씀하시자마자 사탄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이라고 질문한다. 이 모든 것은 단지 그리스도가 앞으로 맡게 될 예언적 직분을 위한 준비였다. 그래서 나는 마4:1-12절에서 기록된 순서와 방식을 따라 살펴볼 것이다.
이 광야는 세례 요한이 살았던 광야와는 다른 곳이었다. 세례 요한이 살았던 광야는 사람이 거주하는 곳이었다면 예수님이 가신 광야는 오직 들짐승만 가득한 곳이었다(막1:13). 광야와 같은 고독한 장소는 시험의 강도에 많은 영향을 미칠뿐만 아니라 천국이 더 활짝 열린다. 그리스도는 기도하기에 좋은 장소로, 사탄은 시험하기에 좋은 장소로 각각 도움을 받았다.
그리스도가 광야로 가신 이유는 성령에 이끌리셨기 때문이었다. 오, 놀랍도다! 그리스도를 잉태하게 하셨던 성령님이, 이제 마귀에게 시험을 받게 하시려고 예수님을 광야로 이끌고 가시는 것이다.
성령님이 그리스도를 광야로 이끌어 가신 목적은 (즉각적인 목적) 악한 마귀에게 시험을 받게 하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아들이 악한 마귀에게 공격을 당하시도록 광야로 이끌려 가셔야 한다는 것이 잘 이해되지 않지만, 하나님은 또 다른 목적을 가지고 계셨다. 바로 하나님의 영광이 이 일에서 나타난다. 사탄이 그리스도를 시험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그리스도가 사탄을 이기고 승리를 거두시겠는가? 바로 여기에 그리스도의 능력이 있다. 시험을 허락하는 것은 우리의 유익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이제 우리는 적의 싸움의 방식이 무엇이고 어떻게 그것을 물리칠 수 있는지를 알고 있다. 그리스도가 친히 배신과 탐심, 우상숭배를 하도록 시험 당하셨기 때문이다.
악한 마귀들이 공격한 때와 상황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셨을 때”였다. 모세는 율법을 전달받고 전할 때, 엘리야는 율법을 회복할 때 사십 일을 금식했다. 이 두 예표가 보여 준 시간을 성취하기 위해 그리스도는 율법을 성취하고 복음을 선포하실 때 40일을 금식하는 것을 합당하다고 생각하신 것 같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지만 또한 인간이셨다. 배고픔을 느끼셨다. 사탄은 예수님을 공격할 기회를 찾았다. 사탄은 어떤 미끼를 사용해야 하는지, 언제 어떻게 그 미끼들을 놓아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다. 사탄은 온갖 종류의 시험을 알고 있다. 사탄에게는 아이들을 속이기 위한 사과가 있고 어른들을 속이기 위한 금이 있다. 사탄은 절제하지 못하는 자들에게는 세상의 헛됨을 이용하고 야심으로 가득한 자들에게는 세상의 왕국을 이용한다. 사탄은 유혹하고 시험할 인간의 기질과 성정을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의 모든 외적 사건과 상황, 기회를 관찰한다.
세 가지 시험
첫 번째 시험은 이것이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마4:3). 우리 구원의 모든 일이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다.”라는 한 가지 본질적인 진리에 달려 있다. 그런데 사탄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이라는 전제로 내리친다. 이 얼마나 두려운 도입인가? 그리고 이어서 사탄은 예수님이 굶주리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예수님에게 스스로의 힘으로 떡을 만들어 먹으라고 유혹한다. 그것을 통해 육체에 새로운 힘을 주고 신성을 입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유혹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의 섭리를 불신하고 사탄의 명령을 따라 행하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로서는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런 식으로 굶주림을 면하는 것을 거부하신다.
그러면 그런 사탄의 시험에 그리스도가 무엇이라고 대답하시는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기록되었으되.’ 예수님은 신적인 능력으로 사탄을 쉽게 반박하고 좌절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오히려 사탄을 성령의 검으로 물리치는 것을 선택하셨다. 분명히 그것은 우리를 가르치시기 위해서였다. 하나님의 말씀이 지옥의 권세를 물리칠 수 없다면 하늘이나 땅에 있는 어떤 것도 그 일을 할 수 없다.
두 번째 시험은 마치 이런 내용이다. ‘만일 네가 하나님이라면, 모든 사람의 눈이 너에게 고정되어 있는 바로 지금 위험 속에 너 자신을 던지는 것보다 네 영광을 전하고 신성을 선포하기에 더 좋은 방법이 어디 있겠느냐? 영광스런 호위 천사들이 하나님의 명령으로 너를 지키고 돌보지 않겠느냐? 그러니 어서 뛰어내려 보아라.’ 사탄의 시험에 그리스도는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마4:7)라고 대답하신다. 즉 하나님은 신뢰해야 할 분이지 어느 누구에게도 결코 시험을 받지 않으신다.
세 번째 시험은 더 끔찍했다. 창조자에게 마귀 앞에 엎드려 경배하라고 하니 이것만큼 신성모독과 우상숭배가 있었는가? 사탄은 능력으로 모든 왕국의 영광들을 한곳에 끌어 모아 아름답고 경탄할 만한 광경을 만들어 예수님의 눈 앞에 나타나게 했다. 사탄은 야심이야말로 인간을 가장 쉽게 무너뜨리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리스도는 명령하신다.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마4:10).
적용.
(1)사탄의 전략
①사탄은 우리를 관찰한 다음 시험거리를 우리 각자의 기질에 맞춘다. 예를 들어, 야심에 쉽게 영향을 받는 사람은 명예나 권력으로, 쾌락과 관능에 약한 자는 쾌락의 미끼로, 탐심으로 가득한 자는 황금으로 된 낚시 바늘을 던져 놓는다.
②사탄은 우리의 성정을 관찰하고 각자의 성정에 시험거리를 맞춘다. 화를 잘 내는 사람에게는 싸우고 말다툼을 하도록 유혹하고, 무기력하고 냉담한 사람에게는 게으르고 나태함에 빠지게 한다.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약1:14).
③사탄은 우리의 외적인 조건을 관찰한 다음 그것에 시험거리를 맞춘다. 예를 들어, 우리가 부유함과 번영 속에 있다면 우리가 교만함에 빠져 하나님을 잊도록 유혹하고, 우리가 역경 속에 있다면 하나님을 향해 투덜거리게 한다.
④사탄은 우리의 영적 상태를 관찰하고 그것에 시험거리를 맞춘다. 우리가 악명 높게 사악하다면 사탄은 우리를 무신론으로 이끌고 불경한 말을 하게 한다.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릴 때는 심령을 흩뜨리고 분산시켜 우리가 하나님에게 온전히 마음을 올려 드리지 못하게 한다. 그러나 아! 누가 사탄의 ‘계책, 간계, 깊이와 불화살’을 다 알 수 있겠는가?
(2)사탄의 간계를 물리치는 일반적인 수단들
①그리스도가 명령하신 것을 계속 기억하는 것.(엡6:10-11, 벧전5:8을 보라.)
②사탄의 제일 처음 내미는 제안을 피하는 것. (엡4:27을 보라.)
③그리스도의 공로를 주장하며 탄원하라.
④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읽고 묵상하는 것. 거룩한 집회에 참석하고 우리에게 소명으로 주신 직업에서 열심히 일하는 것, 믿음으로 사는 것을 덧붙일 수 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해야 한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마26:41). 시험에 들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시험 즉 유혹을 거부하는 것이고 커다란 승리를 얻는 것이다.
5. 그리스도가 처음으로 나타나심
예수님이 몇 가지 증거를 통해 나타나셨다. 그리스도가 그렇게 나타나신 이유.
(1)그리스도의 모든 나타나심이 곧 그분의 사명과 신성을 시인한 것이기 때문이다.
(2)그리스도의 나타나심 안에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3)그리스도의 나타나심 안에는 죄를 제거하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4)그리스도의 나타나심 안에는 사탄을 무너뜨리는 것이 있다.
(5)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은 우리로 그리스도를 믿도록 이끈다. 또한 그 결과로써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예수님에 대한 첫 번째 확증이 어디에 있는가?
(1)하늘에서는 하나님 아버지가 증인이시다(요8:18). 예수님 자신이 증인이시다(요8:15). 성령님이 증인이시다(히10:15).
(2)이 땅 위에서는 세례 요한이 증인이다(요5:33, 1:7). 제자들이 증인이다. 그리스도의 많은 사역과 이적이 증언한다. 그 증언들에는 불일치나 모순이 전혀 없다. 오히려 모든 것이 예수님에 대해 이렇게 증언한다. 예수님은 “메시아다”(요1:41).
적용.
(1)복음 설교에서 이런 증언들을 통해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확증되어야 한다.
(2)성령의 증언을 통해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서 확증되어야 한다.
6. 그리스도가 성전에서 채찍으로 물건을 사고파는 자들을 내쫓으신 것
복음서는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요2:13)라고 말한다. 그곳부터 따라가면 우리가 예수님을 발견하는 첫 번째 장소는 바로 성전이다. 모든 유대인이 모이는 절기의 성전이야말로 그리스도가 하나님 아버지의 일을 하기에 가장 적절한 시기요 장소였다. 그러나 성전에서 그리스도는 먼저 시장을 발견하신다(짐승을 사고 팔며 돈을 바꾸는 모습). 그 광경을 보시고 그들을 벌하시며 모두를 성전에서 내쫓으신다. 그리고 유대인들이 표적을 보여 달라고 하자 예수님은 죽으시고 삼일 만에 그 육체가 부활하실 것을 예언하신다. 그것은 예수님의 육체를 성전에 비유해서 표현하신 것이었다. 그러나 그 일이 성취될 때까지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여기에서 그리스도가 하나님을 향한 열정에 이끌리어 어떻게 행동하시는지를 보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시편 기자의 말을 떠올리게 된다. “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이 나를 삼키고 주를 비방하는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시69:9). 삼킨다는 표현은 영양분을 섭취할 때 사용하는 표현이다. 섭취한 영양분은 몇 가지 과정을 거친 뒤 몸 속으로 소화, 흡수된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열성에 사로잡혀 있을 때 다른 것에는 전혀 마음을 쓰지 않는 것처럼 온전히 마음을 기울인다. 여기에서 그리스도가 열성적으로 일을 하시면서 어떤 위험과 위기, 비난을 감수하시는지를 보라.
그리스도가 하신 행동은 말라기의 예언을 성취한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주가 갑자기 그의 성전에 임하시리니 곧 너희가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하실 것이라 그가 임하시는 날을 누가 능히 당하며 그가 나타나는 때에 누가 능히 서리요……”(말3:1-3).
이것을 통해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그리스도에게 회중 가운데 임해 달라고 간구하는 것이야말로 모든 것을 질서 가운데로 이끄는 특별한 수단이요 동기다.” 때로 나는 회중 안에서 웃고 잡담하거나 잠을 자기도 하는 일부 사람들의 부적절한 태도를 볼 때마다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영의 임하시는 장소에 어울리는 태도인가? 당신은 왕이나 세상 권세 앞에서 그런 태도로 행동하겠는가? 때로는 성례전을 한창 하는 중에도 악한 마귀가 몇몇 사람을 잠들게 하기도 한다. 그러나 오! 당신이 잠들어 있는 동안에도 당신의 심판만은 결코 잠들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가? 그 사실이 당신을 두렵게 하지 않는가? 그리스도가 잠자고 있는 우리를 진노 가운데서 찾아오셔서 우리에게 채찍질을 가해 성전에서 지옥으로 쫓아내신다고 해도 아무런 할 말이 없다. 분명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우리를 어떻게 바라보실지를 명확히 알고 그에 합당한 행동을 해야 한다. 하나님이 친히 우리의 경배의 대상이 되신다. 그렇다면 우리가 마땅히 하나님과 그리스도, 성령님에게 합당한 태도를 지녀야 하지 않겠는가?
'아이작 암브로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아이작 암브로스, "예수를 바라보라1" 14장 예수님의 사역 적용 (0) | 2015.08.05 |
---|---|
[스크랩] 아이작 암브로스, "예수를 바라보라1" 11-13장 그리스도의 두 번째 해-네 번째 해 사역. (0) | 2015.07.30 |
[스크랩] 아이작 암브로스, "예수를 바라보라1" 9장 그리스도의 탄생 적용 (0) | 2015.07.15 |
[스크랩] 아이작 암브로스, "예수를 바라보라1" 8장 그리스도의 탄생 (0) | 2015.07.05 |
[스크랩] 아이작 암브로스, "예수를 바라보라1", 3장 예수님을 바라봄의 의미 (0) | 2015.06.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