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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진리의 기둥과 터- 종교개혁 498 주기에

강대식 2015. 11. 2. 04:02

 

10년 전에 나는 진짜 스승들을 만났고 10년간 이들을 집중적으로 연구한 결과

그들이 말하는 진리가 진짜인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23세때 한산촌 결핵요양원에서 진리에 대해서 눈을 떴는데

이제 70이 되었다. 다음 달이면 만 70이다.

 

나는 50세에 하나님을 만나면서 이 진리를 만났고 목사가 되었지만,

그 진리에 잔뜩 진흙이 덮여있는 것이었음을 10년의 방황 끝에 나중에야 알았다.

60세에 그 진리의 스승들을 만남으로 그 진흙들을 벗겨내고

진주와 보화를 찾았고 내 모든 것을 팔아 이것들을 샀다.

앞으로 10년 동안, 80까지 이 진리를 전하고 살고 제자들을 길러내는 것이 소망이다.

 

내가 만난 스승들의 첫째 그룹은 루터와 칼빈과 개혁자들이다.

그리고 둘째 그룹은 그 종교개혁의 진리를 완성한 청교도들이다.

 

루터가 독일 비텐베르그 교회 계시판에 95개 조항의 글을 올림으로

종교개혁이 시작된 지 오늘(2015-10-31)498년 되는 날이다.

그것은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종교개혁이고 신학혁명이었다.

 

기독교는 성경에서 출발하고 성경 위에 세워지는 종교이다.

그런데 중세 천년 동안 카톨릭은 성경을 떠났고

권력의 횡포만 부리다 암흑시대를 만들었다.

구약 이스라엘도 처음으로 준 성경을 떠났고 권력의 부패로 멸망했다.

 

그러나 종교개혁과 청교도들이 시대 이후 교회는 다시 500년 동안

중세화, 카톨릭화, 이스라엘화 되고 있다.

진리가 중심이 아니고 성장이 중심이 되면 항상 일어나는 현상이다.

 

물고기가 물속에 있으면서도 물에 있는 줄 모르듯이,

그들은 자기들이 얼마나 변질되고 진리에서 떠나있는지를 모르고

기득권에 연연하며 산다.

 

이들은 구약에서는 진리를 말하는 선지자들을 죽였고,

급기야는 하나님이 보내신 진리 그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

지금도 교회는 그러고 있다.

 

역사를 공부해야 한다.

역사를 공부하면 모든 것이 반복되고 있고 오늘도 그 연장인 것을 알 수 있다.

역사를 모르면 오늘이 전부인 줄 알고 매달리고 추태를 반복하게 된다.

 

교회는 진리의 기둥과 터다.

진리는 성경에 있다. 하나님의 유일무이한 말씀이기 때문에 그렇다.

성령이 오시기 전에는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인정하지 않는다.

 

인생도 진리의 터 위에 진리의 기둥으로 세워야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

죽으면 끝이 아니다.

다음 세상이, 영원 세상이 기다리고 있다.

그 세상은 두 곳으로 갈라진다. 천국과 지옥이다.

그 천국의 영원 세상에서 다시 만나 함께 살 수 있기를 고대한다.

 

종교개혁으로 시작하여 청교도로 완성한 그 진리의 맥은

19세기까지는 이어오다 19세기 말부터 완전히 끊기고 말았다.

20세기 중반에야 소수의 사람들이 이 진리의 맥을 캐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미국을 세운 처음 사람들도 이 사람들이었지만

한 세대가 지나자 변질되고 건국의 아버지들은 자유주의자들이었다.

 

자본주의도 그 진리 위에 세워져서 성공할 수 있었지만

그 진리를 떠나면서 부익부 빈익빈의 천민 자본주의가 되고 말았다.

 

오늘날 한국교회도, 세계교회도, 카톨릭처럼 성경의 진리에서 떠난지 오래이다.

그리스도인들도 이 성경의 진리에서 떠난지 오래이다.

세상과 경쟁하며 바벨탑만 높이 높이 쌓고 있다.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은 내려질 것이고 인생 마지막이 올 것이다.

최후의 심판대 앞에 다 서서 이 진리를 기준으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진리가 무엇인가?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한 빌라도가 물은 질문이다.

그는 질문을 잘하였지만 답을 구하지는 않았다.

 

사람들은 다 그렇다.

진리를 찾는다는 사람들도 엉뚱한 곳에서 찾고 있다.

그들은 결코 진리를 중심으로 진리의 터 위에서 살려고 진리를 찾은 적이 없다.

다 밥벌이 수단으로, 출세와 영달의 수단으로, 이용할 뿐이다.

 

예수는 교회가 "장사하는 집", "강도의 소굴"이 되었다고 하셨다.

금력()이 중심이면, 장사하는 집이 되고

권력이 중심이면, 강도의 소굴이 된다.

구약 이스라엘도, 중세 카톨릭도, 청교도 이후 500년간의 교회도 그렇다.

그러나 그 안에서 누리는 자들은 항상 깨닫지 못하였다.

 

진리가 터와 중심이 아니고, 하나님이 터와 중심이 아니고,

자기들의 기득권의 유지와 확장이 중심이기 때문에 그렇다.

 

진리는 존재이지 이론(사상)이 아니다.

예수가 진리이고, 성령이 진리이고,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이다.

진리의 원천을 버리고 떠나고 부인하는 인간의 사상은 회색 이론에 지나지 않는다.

 

진리는 밭에 감추인 보화이다.

발견하면 자기의 모든 것을 팔아 그 밭을 사는 사람의 몫이다.

상인이 진주를 발견하면 자기의 모든 것을 팔아 그 진주를 사는 사람과 같다.

 

바울은 이 진리를 발견하고서

그동안 자기에게 유익하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고 버렸다.

 

진정한 종교개혁은, 성경으로 하는 신학혁명은 그와 같다.

인생 혁명도 마찬가지다.

기득권을 무화(無化)시키지 않고 혁명은 할 수 없다.

생명을 걸지 않고서는 혁명을 할 수 없다.

쌓고 쌓는 것으로는 바벨탑만 쌓을 쌓을 뿐이고 미친년 보따리만 많아질 뿐이다.

 

예수는 성경의 진리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혔고,

권력자들은 기득권 때문에 그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

종교 기득권자들은 도스토옢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나오는 대심판관들이다.

 

영원한 것은 진리와 영혼과 하나님 뿐이다,

진리의 터 위에 진리를 중심으로 세우지 않는 것들은 다 무너질 날이 온다.

나는 이 진리를 만났고, 10년 동안 연구하여 확신을 갖게 되었고,

나눌 준비가 조금 되었다.

그래서 청교도 아카데미를, 나사렛 땅에, 갈릴리 땅에 개설하였다.

 

청교도들이 세웠던 처음의 하바드 신학교, 테넌트가 세웠던 통나무학교,

스펄전이 세웠던 목사학교처럼 시작할려고 한다.

예수가 세웠던 12제자학교, 칼빈이 세웠던 제네바 아카데미도 그랬다.

 

그것들은 다 후에 대학이 되면서 학위를 주면서 변질되고 타락하였다.

우리 학교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대학이나 학위일랑은 십자가에 못 박을 것이다.

 

화요일날 오면 누구나 무료로 배울 수 있는 아카데미다.

마지막 날이 오기 전에, 심판의 날이 오기 전에

진리의 터 위에 진리의 기둥으로 영혼의 집, 영생의 집을 세우기 바란다.

 

진리는 성경의 진리만이 유일하고 절대적이다. 살아 있는 진리이다.

세상에 진리가 많지만 그것들은 진리의 원천을 버렸고 진리의 능력을 버렸다.

하나님 없이는 진리를 만날 수도 없고, 진리를 살 수도 없다.

진리는 제대로 만나서 올인해야 한다.

 

사람들은 많이 배워서 머리에 쌓는다.

그러나 배운 진리대로 살지 않고 마음의 욕심을 따라 산다.

사람은 마음에 있는 것을 행한다.

성령으로 성경의 진리가 마음에 새겨져야 그 진리를 살 수 있다.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흐르는 십자가에 있다.

그 십자가 아래 오면 진리를 만나고,

새 존재가 되고, 진리를 살 수 있게 된다.

 

내가 가진 진리들이,

철학과 헛된 속임수, 미혹의 영과 귀신의 가르침인 것을 언제나 알게 될꼬?

출처 : 청교도 아카데미 PBA
글쓴이 : 강대식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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