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강해·존스

[스크랩] 로이드 존스, "위대한 중보기도" (로마서강해7권14장, 김영희강의안)

강대식 2015. 11. 12. 19:39

 

  

첫째로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으로 인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 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 어떠하든지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 내가 너희 보기를 심히 원하는 것은 무슨 신령한 은사를 나누어 주어 너희를 견고케 하려 함이니”(1:8-11)

 

견고케 하려 함이니” - 사도 바울은 그들을 보고 싶어 하는 자기의 간절한 소원을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이 되면 그리스도의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며 그들을 만나 교제하고 싶어 한다. 그들이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사도가 그들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들의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었다는 사실을 즐거워는 하지만, 사도는 그들을 견고케 해주고 강하게 해줄 필요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회심은 끝이 아니고 시작이다. 회심하기만 하면 다 끝난 것이라면 신약의 서신들은 전혀 쓰여질 필요가 없을 것이다. 우리는 견고케 될 필요가 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갓난 아기는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먹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훈련받을 필요가 있고, 보살펴 줄 필요가 있다.

 

우리의 원수 사단이 있어 그리스도인이 되는 순간, 그 사람은 마귀의 특별한 공격대상과 관심의 대상이 된다. 야고보는 그것이 믿음의 증거라고 말하며, 그래서 그 시험을 기쁘게 여기라고 말한다.(1:2) 마귀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에게 일어났던 모든 일에 의심을 주고, 좌절시키려 애를 쓸 것임에 틀림이 없다. 마귀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막을 수 없지만, 그러나 비참한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하는 데는 가끔 성공을 한다. 거듭났으면서도 삶과 체험에 있어서는 불행해진 사람들이 많다. 여기에 우리는 마귀의 궤휼과 궤계에 대하여 알려주는 교리를 배워야 한다. 그래서 사도는 로마서 6,7,8장에서 죄의 전체 문제를 다루고 있다. 에베소 사람들에게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휼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그 점을 말하고 있다.


우리는 있는 힘을 다하여 복음을 전하도록 해야 하고, 또한 회심자들이 뿌리를 잘 내리고 터가 굳어져믿음 안에서 견고케 될 수 있도록 주의를 기울려야 한다. 그리스도의 복음진리에 대한 가장 위대한 증거는, 삶을 영위하는 그리스도인들 속에서 발견되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삶의 각 부분에서 견고해질 필요가 있다. 우리의 지성을 강하게 할 필요가 있고, 우리의 마음을 견고케 할 필요가 있다. 사도는 그들의 전인을 굳게 해주고 싶어 한다. “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다”(13)

 

첫째로” - ‘첫째로라고 말하였으나 둘째, 셋째를 말해 나가지 않는다. 문체와 형식에 관한 한 그는 그러한 것들을 별로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러면 설교할 때 형식이나 이러한 요점들도 말하지 말아야 하는가? 하고 질문할 것이다. 제 말은 형식이 우리의 이지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게 되어 본질을 잊어버리는 경향에 대해 심각하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을 위한 예배가 아름다움을 가장 앞세워서는 안 된다. 예배는 진실해야 한다. 진리가 첫 번째로 온다. 만일 우리가 형식의 아름다움이나 그와 같은 것 때문에 진리를 망각한다면, 우리는 심각한 죄를 짓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형식에 메여 있거나 고정되어 있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영의 큰 자유를 누리고 있는 사람이다. 위대한 부흥의 역사를 보면, 언제나 그러하였음을 발견할 것이다. 조나단 에드워드는 지독히 문체가 좋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의 설교를 통해서 부흥을 일으키고 정말 수많은 사람들을 구원하였다. 오늘날 우리는 여러 요점과 여러 개의 전할 항목들을 가지고, 그 뿐만 아니라 운에 맞추어 무엇을 나열하려는 고집을 피우고 있다. 그러한 것들이 멋있기는 한데, 그러한 것들은 죽음의 멋처럼 보인다. 속에 살아 있는 본질이 없이 그저 생명 없는 형식뿐이라는 것이다. 이 사람 바울은 첫째로라고 말한 다음에 자기가 말한 것을 잊는 것은 영의 영역에서 살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는 어떤 작은 형식이나 다른 것에 매이지 않는다.


우리가 형식에 노예가 된 것이 아닌지. 우리는 너무나도 세련되어 있다. 너무나도 단정하다. 성령께서 갑자기 임하시게 되면 어쩌나 하고 두려운 마음이 든다. 성령께서 갑자기 임하시면, 거의 정신을 잃어 세웠던 프로그램이 잊혀지고 시간 가는 것도 모르게 된다. 다시 말하자면, 현대 교회가 위엄을 차리느라 죽어 있게 되거나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의 도구가 되지 못할 정도로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 사람 바울은 그러한 위험에 빠져들지 않았다. 그는 성령으로 충만해 있고, 진리가 그 속에서 불타오르고 있고, 그 진리는 토해내어 진다. 이 사람의 서신들은 아름다운 것이 아니고, 그 서신들은 힘이 있고 화산처럼 능력을 뿜어낸다. 둘째, 셋째를 말하지 않는 바로 이 사람 때문에 저는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내가 나의 하나님께 감사함은” - 그는 위대한 기도의 사람이다. 그는 하나님께라고 말하지 아니하고 나의 하나님께라고 말하고 있다. 시편 18편에 보면 그 시편의 전반부는 나의 하나님이라는 표현으로 가득차 있다. 이 점이야말로 기도에 있어서 가장 사활적인 요점이라고 확신한다. 참된 그리스도인으로써 기도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은 하나님은 그저 멀리 떨어져 있는 하나님이 아니라 가까이 계시는 분이시다. 나의 하나님, 어떤 위대한 비인격적인 세력이나 힘이 아니라, 나를 도우실 수 있는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그 점은 기도의 진수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기까지 진정으로 기도할 수 있는지 의문스럽다. 사도 요한은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고 말한다. 나의 하나님 바로 그것이 기도의 시작이다. 우리는 우리의 소원을 아뢰며 애걸하기 전에 그 분을 알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자. 여러분은 그 분을 아는가? 그것이 아니고서는 나의 하나님이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조차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모든 신앙의 연합이라는 따위의 현대적인 대화에 대해서 참아낼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절대적으로 진수가 된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과는 어떠한 교제도 나누지 않는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입장에 있어서 본질적인 부분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대제사장이다. 내가 그 분 안에 있지 않고서는, 그 분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하게 나아갈 수 없다그 분을 아는 지식이 아니고서는 때를 따라 돕는 은혜와 긍휼을 얻을 수 없다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 - 그는 로마에 있는 그들을 본적이 없으나 언제나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다. 그는 마음으로 그들을 얻었다. 그는 모든 교회들을 위한염려로 눌린다고 한 적이 있다. 그는 감옥 속에서 죽어가고 있었지만 빌립보 사람들을 위해서 어떻게 기도하였는가? 그는 위대한 설교자일 뿐 아니라 교사요, 여행자이다. 그는 로마 사람들만이 아니라 어느 곳에서나 하나님의 나라의 영광을 위해서 쉬지 않고 기도한다.


출처 : 청교도 아카데미 PBA
글쓴이 : 김영희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