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비판

[스크랩] 심리학이 쓴 세 개의 가면, 첫째 가면: 자기 사랑/옥성호("초등학문들" 강의안5)

강대식 2016. 6. 13. 05:00

 

04 심리학이 쓴 세 개의 가면

 

심리학이 오늘날 교회 안에 자기 사랑, 긍정적 사고방식, 성공의 법칙이라는 가면을 쓰고 활동하고 있다.

 

1. 심리학의 첫 번째 가면: 자기 사랑(Self-Esteem, Self-Love, Self-image)

 

자신에 대한 보상이야말로 옳고 그름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윤리적 원칙의 기준이 된다. 객관적인 윤리적 원칙에 근거하지 않는다. 나의 자존감을 높일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옳고 좋은 것이며 나의 자존감을 낮추는 것은 나쁘고 피해야 하는 대상이 된다. 이 지극 정성의 자기 사랑에 따르면 누군가를 비판하는 비판적 사고만큼 자존감에 해를 주는 것도 없다. 그러니 남을 비판하는 것, 부정적인 것은 나쁜 것이 된다. 왜 비판하는지에 대해서는 알려고 하지 않는다. 자기 실현(self-actualization), 자기 충족(self-fulfilment) 등의 각종 용어로 대표되는 자신에 대한 이 애틋한 자기 사랑이 기독교 속으로 들어온 지는 매우 오래 되었다.

 

1) 자기 사랑의 전파자들

 

- 카를 융(Carl Jung)

 

융에게 인간은 (드러나지 않은) 신의 모습을 담고 있는 존재이다. “융에게 인간이 하나의 신인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너무 당연하며 그 표현이 사랑을 넘어 자신에 대한 숭배로까지 연결되는 것은 대단히 자연스러운 결과이다.” p. 155

 

환자들은 정신 치료사들이 사제의 역할까지 하기를 강요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의 정신 치료사가 자신들을 우울증에서 해방시켜 줄 것을 기대하고 요구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 정신 치료사들은 신학의 영역에 속한 문제들에 대해서도 감당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그의 제자 자코비의 말이다. “융파의 정신요법을 요약하면 치료와 구원을 의미한다. 정신요법이 사람을 치료하는 능력이 있을 뿐 아니라 한 개인으로 하여금 구원에 이르게 하는 길과 방법을 알고 있기도 하다. 여기서 말하는 구원이란 자신의 존재 전체에 대한 지식과 충족에 이르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것은 항상 모든 영적 구도의 목적이기도 했다. 의학적 측면을 제외하고 나면 융의 정신요법은 교육과 영적 인도를 위한 시스템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

 

융에게 있어서 정신 분석이란 의학이 아니라 종교이며 그에게 있어서 치료는 단순한 질병의 치료가 아니라 영혼의 구원이었다. 또한 그에게 있어서 그 구원의 모습은 인간이 자신에 대한 완전한 지식을 겸비함으로 발생하는 인간 완성의 결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에게 있어서 영적 추구란 인간 완성을 위해 필요한 여정이었다. 이를 위해 융은 인간 개개인마다 집단 무의식과 개인 무의식으로 구성된 자신의 무의식구조를 파악하는 것을 시작으로 그 무의식의 구조가 개인의 삶 속에서 의식을 통해 표출되는 표현들 간의 상호 상관관계를 파악함으로 인간 구원의 과정이 완성될 수 있다고 믿었다. 결론적으로 역사 속에서 이 피조물의 범위 너머에 실존하시는 하나님은 개개인의 무의식 속에 존재하는 개념상의 신으로, 또 하나님을 아는 데에 사용되어야 할 인간의 이성과 열심은 나 자신을 알기 위한 것으로 100% 대체 되었다.

 

- 에릭 프롬(Erich Fromm)

 

1900년 독일에서 태어나 베를린에서 정신분석학을 공부한 후 1933년 미국으로 건너온 에릭 프롬은 한국 교회 내에서 사랑과 관련하여 성경의 메시지를 현대인의 언어에 맞게 재해석한, 마치 사랑의 전도사라도 되는 듯 잘못 알려진 대표적인 사람이다. 그는 인간을 형성하는 데에 가장 중요한 요소를 사회라고 파악했다. 사회가 인간의 무의식에 주는 영향에 대해 자신의 연구를 집중하였다.

 

에릭 프롬은 인간 본성에 대한 낙관적 사고를 가지고 있었다.

프롬에게 있어서 사랑은 인간 스스로의 내부에서 샘솟는 것이지 어디선가에서 주어지는 그 어떤 것이 아니었다. “사랑은 인간 속에 내재된 것이며 인간 자체로부터 발산되는 것이다. 사랑은 어떤 고귀한 존재로부터 인간에게 부여된 것도 아니며 또 우리에게 의무로 주어진 것도 아니다. 사랑은 인간이 (자신 밖의) 세상과 자신을 연결시키는 인간 고유의 힘이며 또 이 사랑을 통해 인간은 진정한 인간이 된다.”

 

프롬의 생각은 기독교가 말하는 인간에 대한 생각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프롬이 기독교에 대해 갖고 있던 반감은 너무 자연스런 결과이다. 프롬은 자신이 기독교의 교리를 받아들이는 순간 그것은 자신이 믿는 이론 전체가 붕괴되는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인간 스스로 무엇이 옳은지 알 수 있는 능력이 있고 또 자연적으로 주어진 인간의 잠재력과 지성을 사용해 옳은 것을 행할 수 있다는 (나와 같은) 인간 중심의 가치관을 갖고 있는 사람의 주장은 인간의 내재된 본성이 악하다는 (기독교의) 주장이 옳은 것으로 판명되는 경우에 순식간에 허물어질 수 있다.” p. 160

 

그는 <그리스도 교리>라는 책에서 기독교의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필연적으로 정치적 지배자와 기독교인들을 동지로 만든다고 주장했다. , 기독교의 교리가 인간 스스로 천국을 만드는 인간의 능력 자체를 부정하는 이상 기독교인은 지도자를 의지하게 되고 그 지도자는 기독교도의 힘을 이용해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이루게 된다고 했다. <너는 신이 될지어다: 구약 성경과 그 전통에 대한 완전 새로운 해석>이라는 책에서 주장했다. “이제 기존의 하나님이라는 개념은 인간이 하나님이라는 개념으로 반전되고 수정되어야 한다. 그리고 (성경에서 말하는) 거룩한 신이 진짜 존재한다면 그 신은 내 속에 존재하는 바로 그 신이며 또 동시에 내 곁에 있는 사람의 속에도 존재하는 그 신이다.”

 

인간 본성에 대한 낙관적 사고를 가지고 있던 에릭 프롬은 종교개혁가 존 칼빈이기독교 강요에서 인간의 전적 타락을 주장한 부분과 관련하여 칼빈이야말로 인류의 전염병과 같은 존재라고 말하였다.” p. 161

 

이런 에릭 프롬의 글들이 수많은 기독교 서적에 아직도 인용되고 있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가 나름대로 개념화한 사랑의 정의, 사랑의 종류 등은 거룩한인간이 드러내는 한 측면을 표현한 것일 뿐 성경이 말하는 사랑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는 것은 너무 확실하다. 신으로 격상된 인간을 우리가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자신이 신인 줄 모르고 고개를 숙이고 사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네가 신이야, 사랑하고 사랑받아야 할 신이라고!’라는 복음을 전하라고 에릭 프롬은 지금도 무덤에서 외치고 있을 것이다.

 

- 칼 로저스(Carl Rogers)

 

정신 분석 시장에 있어서 칼 로저스의 공헌은 심리치료란 일반적으로 환자라고 알려진 사람들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가 필요한 것으로 확대 발전시킨 것이다.’ 1902년에 태어나 한때 목사가 되기 위해 신학교를 다녔던 로저스는 그가 다니던 신학교(Union Theological Seminary)에서 종교와 관련한 자유주의 철학 사상을 접한 후 기독교를 완전히 버렸다. 그리고 그는 기존의 틀에 박힌 믿음들에 근거하지 않고 처음부터 시작함으로 진짜 인간을 도울 수 있는 사상을 찾아 그 사상을 통해 인간을 돕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소위 말하는 간접적 또는 고객 중심(non-direct or client-centered)의 상당법을 개발하여 자신을 찾는 사람들에게 적용했다. 그는 또한 심리 치료를 단순한 치료가 아니라 인간이 자신을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바꾸며 자아를 발전시키는 하나의 과정으로 인식했다. 그렇기에 심리 치료는 더 참되고 더 완성된 자기 자신을 이루려는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과정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p. 162

 

2) 자기 사랑이 가진 오류

 

첫 번째로 자기 사랑을 하나의 치료약, 다른 말로 하면 결과를 내기 위한 원인으로 인식하고 있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이 자기 사랑은 단순히 교회와 학교의 문제가 아니라 전반적인 사회에서도 각종 사회 문제까지 다 해결해줄 것이라는 환상을 주는 하나의 만병통치와 같이 인식되고 있다. 그리고 마치 자존감의 결여가 범죄를 일으키는 가장 큰 원인 가운데 하나라는 식으로까지 오해를 주고 있다. 그러나 현실을 살펴보면 진짜 악독한 범죄자일수록 엄청나게 높은 자존감, 자신에 대하여 엄청나게 높은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을 우리는 흔히 목격한다. 자존감이 없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왜곡된 자신에 대한 사랑이 어쩌면 범죄의 더 큰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잘못 유도된 자존감은 오히려 인간이 가진 죄성을 합리화시키며 상상할 수 없는 괴물을 만들어 내는 사탄의 도구로 이용될 수 있는 여지까지도 있는 것이다.

 

자기에 대한 진정한 사랑은 그냥 자연스럽게 솟아나는 것이지 강제로 심은 후 빨리 뿌리를 내리고 빨리 자라도록 하기 위해 마구 그 위에 비료를 뿌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침마다 거울을 보며 나는 내가 좋아.”를 반복하거나 내가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를 상기시키는 책의 구절들을 반복해서 읽게 하는 등의 조작을 통해 강제로 생기고 자라게 하는 것이 아니다. 자기 사랑은 어느 날 돌아보니 전보다 더 책임감 있고 남에 대해 배려하는, 더 성숙해진 나 자신을 보고 그냥 씩 웃을 수 있는 정도면 된다.” pp. 165-6

 

두 번째는 우리 주변의 사람들이 자기 사랑이 너무 모자라서 문제라는 시각이다. 그렇기 에 이 부족한 자기 사랑을 키워 주기 위한 전방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세상에 자기 사랑이 부족한 인간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인간은 자기 사랑이 너무 지나쳐서 문제이지 결코 모자라서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p. 166

 

3) 자기 사랑에 대한 성경의 경고

 

성경은 자기 사랑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길이라고 말하기는커녕 자기 사랑이야말로 말세에 드러나는 가장 조심해야 할 위험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딤후 3:1~2).” 위의 구절에서 자기 사랑 이후에 나열되는 돈에 대한 사랑이나 자랑이나 교만이나 모두 어떻게 보면 자기 사랑에 대한 결과적인 모습으로도 볼 수 있다.” pp. 167-8

 

4) 성경은 자기 자랑이 아니라 하나님을 자랑하라고 말한다.

 

우리가 자랑하며 살아야 하는 것은 가 아니라 하나님이어야 한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자랑하며 살라고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고 있다.(9:23~24)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누리며 살라고 말하지 하나님을 아는 나 자신에 감동하며 살라고 하지 않는다. “누가 너를 남달리 구별하였느냐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같이 자랑하느냐(고전 4:7).”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 중에 내 스스로 창조해 낸 것이 무엇이 있는가? 다 하나님께 받은 것이 아닌가? 성경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을 마치 내가 스스로 창조한 듯이 자랑하는 인간의 교만에 대해 경고 하고 있다. 왜 네가 주인이 아니면서 주인 행세를 하느냐는 것이다. 나의 재능과 관련해서 찬양을 받으실 분은 그 재능을 주신 하나님이시지 그 재능을 거저 받은 내가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자랑할 만한 재능을 다른 사람에게도 주실 수 있지만 굳이 내게 주신 것은 내가 자랑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빚진 마음으로 살라고 주신 것이다. 내가 자랑할 것은 전혀 없다.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100:3).” 성경은 너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 알지어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하나님을 알라고 한다. 하나님을 바로 알 때 비로소 우리는 나 자신도 바로 알게 된다. 우리가 자신을 바로 알게 될 때 우리는 자신에 대한 긍지에 차서 사랑하고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찬양하게 된다. 우리는 모두 우리 각자의 존재를 하나님께 빚지고 살고 있다. 내 스스로 숨쉬고 내 스스로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자는 이 세상에 단 한 명도 없다. 우리는 존재 자체를 빚진 자이다. 여기서 무슨 자랑이 있을 수 있겠는가? 나 스스로 감탄하는 나의 재능도 그 재능이 발휘되기 위한 존재를 하나님이 유지시키시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지 않는가? 이 상황에 내가 나를 보면서 감탄할 것이 무엇이 그리 있겠는가?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15:5).” 창조주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진실이고 우리의 현주소이다.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같이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느니라(고후 3:5).” 우리의 만족은 내가 나를 보면서 우러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통해 나오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스스로를 만들어 낸 창조자가 아니고 우리는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pp. 177-8

 

5) 성경은 자기 사랑이 죄라고 말한다

 

6) 자기 사랑이 성경적이라는 가르침에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

 

7) 나 중심의 종교가 위험하다.

 

기독교는 철저히 하나님 중심의 종교이다. 그 속에서 가 강조되면 될수록 하나님은 잊혀지게 되고 기독교는 어느 새 하나님 중심의 종교에서 중심의 종교로 바뀔 수 있다. 그래서 위험하다는 것이다.” p. 181

 

내 귀를 즐겁게 하는 자기 사랑의 메시지를 멀리 할 수 있는 영적 분별력이 절실한 때이다. 존 파이퍼 목사는 말했다. “당신이 하나님으로부터 사랑받는다고 느끼는 이유가 하나님께서 당신이 대단한 존재라고 느끼도록 해주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당신이 하나님을 영원히 높여드리는 기쁨을 누리는 존재로 하나님이 당신을 자유하게 하셨다는 사실 때문입니까?”

 

마틴 로이드 존스목사는 말했다. “내가 진짜 그리스도인인지 아닌지를 알아볼 수 있는 방법 중의 하나는 바로 이것입니다. 내가 나의 본성을 미워하고 있는지 아닌지의 여부입니다.”

출처 : 청교도 아카데미
글쓴이 : 강대식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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