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스크랩] 4/23 주일설교, 떠날 시각, 딤후 4:6-8

강대식 2017. 4. 24. 13:30

2017-04-23 주일예베

본문: 딤후 4:6-8

제목: 떠날 시각

 

사람은 이 땅에서 영원히 살지 못하고 누구나 반드시 죽음으로 이 세상을 떠나야 한다.

자기가 떠날 시각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 권한에 두셨다(1:6).

 

이 세상에 오는 데는 순서가 있지만 갈 때는 순서가 없다.

어리고 젊다고 늦게 가는 것도 아니고 늙었다고 먼저 가는 것도 아니다.

죽음은 예고 없이 찾아와 우리로 하여금 이 세상을 떠나가게 한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9:27).

다윗은 죽을 때, “세상 모든 사람이 가는 길로 가게 되었다고 했고(왕상2:3),

누가 살아서 죽음을 보지 아니하고 자기의 영혼을 스올의 권세에서 건지리이까”(89:48)

수년이 지나면 나는 돌아오지 못할 길로 갈 것임이니라”(16:22)고 했다.

 

죽으면 그만이고 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살았을 때 실컷 즐기고 먹고 마시자고 한다.

성경은 우리가 육신의 장막을 벗을 뿐 영혼은 하나님께로 가서 심판대 앞에서

생애의 삶을 정산하며 심판을 받는다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다.

 

우리 주님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셔서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양의 무리와 염소의 무리로 구분한다고 하셨다.

양의 무리들은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라 하시고, ‘창세로부터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는다고 하셨다.

 

그러나 염소의 무리들은 저주를 받은 자들이라 하셨고,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고 하셨다.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간다고 하셨다(25:31-46).

 

죽음이 끝이 아니니, 세상을 떠날 시각에 우리가 두려움과 아쉬움과 회한이 없도록 준비해야 한다.

사도 바울은 자기의 유언서라고 할 디모데후서에서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말씀해 준다.

떠날 시각을 전혀 준비하지 못하고 뜻밖에 맞이하지 않도록 본문을 통해 사도 바울을 본 받자.

 

1. 떠날 시각은 전제와 같이 다 부어진 시각이 되어야 한다.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딤후4:6)

 

사도 바울이 떠날 시각이 가까워 온 것은 전제와 같이 벌써 부어진 시각이다.

하나님은 구약 제사에서 번제 화목제를 드리면서 소제와 함께 꼭 전제를 붓게 하셨다.

소제는 곡물 가루로 드리는 제사이고, 전제는 주로 포도주를 부어드리는 제사이다.

 

피와 땀을 다 쏟아부어 주의 일을 하는 것이 내가 전제와 같이 부어지는것이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고 하늘에 보물을 쌓는 일에 내 피와 땀을 다 쏟아 붓는 것이다.

 

우리는 전제를 생각할 때, 우리 주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도록 힘쓰고 애써 간절히 기도하신 것을 생각하게 된다(22:44).

주님이 자기를 낮추시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신’(2:7) 것이 전제와 같이 자기를 부으신 것이다.

 

사도 바울이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자기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20:24)고 할 때

전제와 같이 자기를 붓는 자세일 것이다.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믿음의 선진들은 하나 같이 전제와 같이 자기를 부은 사람들이다.

노아, 아브라함, , 요셉, 모세, 다윗이 그러하다.

죽으면 죽으리라 왕 앞에 금식하고 나아갔던 에스더 왕비도 그러하고,

왕을 무서워하지 않고 목숨을 걸었던 다니엘과 세 친구들도 전제와 같이 자기를 부은 사람들이었다.

 

전제와 같이 자기를 붓는다는 것은 일상 생활에서도,

견실하며 흔들리지 아니하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고전15:58) 자세이기도 하다.

게으름과 나태함과 안일함의 생활 태도는 전제와 같이 나를 붓는 자세와는 정반대일 것이다.

 

우리도 그동안의 자기 일에만 바쁘고 주의 일에는 소홀히하고 무심하였던 자세를 떨쳐버리고,

사도 바울과 같이 세상 떠날 시각이 가까웠을 때 전제와 같이 벌써 나를 다 부었다고

고백할 수 있도록 우리의 생활 자세를 다시 한번 가다듬도록 하자.

 

2. 떠날 시각은 싸움과 달음질과 믿음을 다한 시각이 되어야 한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딤후4:7)

 

그리스도인의 삶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감으로 믿음을 지키는 삶이라 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한다.

죄와 싸우고 사탄과 싸우고 육신과 세상과 싸워야 한다.

 

정욕과 탐심과 싸워야 한다.

그리스도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이다.

바리새인들은 입술로만 하나님을 공경하고 속에는 탐욕과 방탕이 가득하였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거듭날 때 이미 그분과 함께 죄에 대하여 죽은 자이다.

그것을 믿고 여기고, 내 죽을 몸에 남아 있는 죄와 싸우는 싸움을 해야 한다.

전제와 같이 자기를 부을려면, 피흘리기까지 죄와 싸워야 한다.

 

죄의 배후에는 사탄이 도사리고 있고 육신과 세상이 친구하고 있다.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되는 것이니라”(4:4)

 

육신의 생각도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8:7)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고 선한 싸움을 잘 할려면

먼저 내가 내 몸을 쳐서 복종시켜야 한다.

남의 티는 나중에 보고 먼저 내 눈 속에 있는 들보부터 제거해야 한다.

 

우리의 싸움은 육신에 따라 육신으로 싸우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는 것이다.

하나님의 능력만이 오직 어떠한 견고한 진도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내 속에 능력으로 역사하는 이의 역사를 따라 나도 힘을 다해 수고하노라”(1:29)

 

우리의 선한 싸움의 대상은 혈과 육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사탄과 그 통치조직들이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6:12-17).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는 것은, 진리의 허리띠, 의의 호심경, 복음의 신발을 신는 것이고,

믿음의 방패, 구원의 투구,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는 것이다.

거기에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는 것이다.

결국 우리가 말씀과 기도의 경건 훈련에 힘쓰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전제와 같이 자기를 다 부을려면 달려갈 길을 달려가야 한다.

믿음은 우리 앞에 당한 경주이고,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려야 경주를 잘할 수 있다.

믿음의 경주는 상을 받기 위한 것이다.


달음질하기를 향방없이 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달려가는 방향과 목표는 너무도 분명하다.

바울은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향하여 달려간다고 하였다.

 

내가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 달려가노라”(3:12-14)

 

전제와 같이 나를 붓기 위해서는 믿음을 지켜야 한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사는 사람이다.

돈이나 재물, 소유나 환경으로 사는 것이 아니다.

떡만으로 살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사람이다.

 

바울을 따랐던 데마는 세상을 사랑하여 그를 떠나고 말았다.

아브라함은, 오직 믿음으로, 고향 친척 아버지집을 떠나 낯선 땅으로 복종하여 갔다.

모세도,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였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11:26)

 

그리스도인은 오직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만을 진리로 믿기에,

세상에 살되 세상에 속하지 않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에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들이다.

 

우리 주님은 주님 다시 오실 때에 믿음 가진 사람들이 얼마나 있겠느냐고 하셨다.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18:8)

이사야도 메시야의 죽음을 예언하는 53장에서 시작을 이렇게 하고 있다.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53:1)

 

우리 주님이 몇 안되는 제자들에게 책망을 많이 하시는 말씀은,

믿음이 적은 자들아이었다.

 

믿음은 들음으로 난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주 읽고 들음으로 믿음은 생겨나고 자라게 된다.

믿음은 말씀을 들음으로 실천함으로 돈독해지고 강화되고 성장한다.

성경을 즐거워하고 주야로 묵상하는 자가 복 있는 사람이다.

 

3. 떠날 시각은 의의 면류관이 예비된 시각이 되어야 한다.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4:8)

 

전제와 같이 다 부어지고 떠날 시각을 맞이하는 사람에게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다 마치고 믿음을 지킨 사람들에게

주 곧 의로운 재판장은 의의 면류관을 예비하시고

대심판이 이루어지는 날 친히 씌워 주실 것이다.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 주실 것이다.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자기를 위하여 보물을 쌓고

하늘에는 아무것도 쌓지 않은 사람들은 가슴을 치고 통곡하고 이를 갈며 슬퍼할 것이다.

이 땅에서 썩어질 면류관을 많이 쓰고 교만과 횡포를 일삼던 사람들은 영원한 고통과 형벌을 받을 것이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6:7-9)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부르신 것은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살고

성공하고 출세하게 하기 위해서 부르지 않으셨다.

아들의 형상을 닮게 하기 위해서 부르셨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게 하기 위해 부르셨다.

 

아들의 형상을 닮고 말씀으로 살게 하시기 위해서 고난과 인내와 연단으로 만들어 가시는 것이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게 하기 위해서 내가 완전하니 너희도 완전하게 하기 위해서

주리게도 하시고 낮추기도 하시면서 광야 생활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하게 하시는 것이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면서, 생수와 만나를 주시면서,

불뱀과 전갈이 있는 그 위험하고 광대한 광야를 통과하게 하시는 것이다.

마침내는 복을 주시고 가나안의 기업을 주시기 위해서이다.

영원한 복락과 영생하는 천국을 주시기 위해서이다.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8:17-18)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다 지칠 때마다, 달려갈 길을 가다가 힘들 때마다.

믿음의 시련이 올 때마다 우리는 이 말씀을 기억하고 힘을 얻고 위로를 받아야 한다.

말씀은 내 삶에서 살아 역사해야만 한다.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던 부자는

지옥에서 혀를 써늘하게 해줄 물 한 방울을 구하는 신세가 되고,

고난을 받고 천대를 받던 거지 나사로는 천국에서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 위로를 받게 된다.

 

얘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16:25)

 

심령이 가난하고 죄를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고,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다.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도다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의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34:18-19)

 

고난 중에도 형통케 하시며 위로와 평안을 주시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아야 한다.

여호와의 천사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 치고 그들을 건지신다고 하신다(34:7)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게 하신다.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게 하신다.

사도 바울의 오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시기를 소원한다.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고 고백할 수 있게 하자.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다고 고백할 수 있게 하자.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의의 면류관을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라고 고백할 수 있게 하자.


출처 : 청교도 아카데미
글쓴이 : 강대식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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