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2-17 주일설교
본문: 슥 4:6-9
제목: 오직 나의 영으로
70년간의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돌아 왔을 때,
하나님은 성전을 재건하는 일을 총독인 스룹바벨에게 맡기셨다.
그때 상황은 매우 어려운 상황이어서 성전 건축의 엄두를 내지 못할 때였다.
중차대한 성전 건축을 위해,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보내어 예언하고 격려하였고,
이 건축이 사람의 힘이나 능력으로가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영으로,
세워질 수 있음을 우리에게 교훈하고 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스룹바벨이시다.
스룹바벨은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이신 그리스도의 모형이다.
스룹바벨은 성전의 머릿돌을 놓았고, 성전을 완성하였다.
그리스도는 인간의 힘과 능력으로 세운 건물 성전을 십자가의 죽음으로 헐고
삼일만에 부활하심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예수님 성전을 세우셨다.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요2:19,21)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성전인 몸을 구성하고 있는 지체 성전들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건물(지체 성전)마다 서로 연결하여 한 성전이 되어 간다.
우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간다.
이를 위해서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다(엡2:20-22)
그리스도인은 성령으로 거듭나고 회심함으로써 그 출생이 이루어진다.
성령이 안에 거하심으로 주님의 성전이 된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를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전3:16-17)
그리고 그 성전은 하나님의 영으로, 말씀으로, 계속 성장하는 성전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성화이고,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가 되기 위하여,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따라 나도 힘을 다해 수고해야 한다.
성전을 건축하는 자세로 우리의 인생과 믿음생활을 스룹바벨처럼 건축해야 한다.
스룹바벨과 함께 하시는 성전 건축의 역사를 보면서 본을 받기로 하자.
1. 성전 건축은 오직 하나님의 영으로 이루어진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스룹바벨에게 주시는 말씀이다.
‘만군의 여호와’는 무수한 천사들과 하늘의 군대를 부리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이름이다.
그분은 인간의 힘이나 능력으로가 아니라, 오직 그의 영으로 이 일을 할 수 있다고 하신다.
스룹바벨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에게 주신 말씀으로 받아야 한다.
우리의 싸우는 무기도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하셨다.
오직 어떠한 견고한 진도 무너뜨릴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우리는 선한 싸움을 싸운다.
예수님이 십자가 죽음으로 건물 성전을 헐었듯이
우리도 잘못 건축된 우리 인생 건물들을 죽음으로 헐어내야 한다.
그래야 부활하신 주님처럼 새 인생 성전을 성공적으로 건축할 수 있다.
사람들이 성전 건축에는 관심이 없는 것이 문제이다.
다들 자기 자신들의 바벨탑을 건축하느라 바쁠 뿐이다.
하나님 없는 바벨탑은 아무리 높고 화려해도 무너지고 멸망하는 것이 정해진 운명이다.
하나님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다고 하셨다.
그리스도인은 바벨탑을 세우지 말고 성전을 세워야 한다.
그것이 사는 길이고, 영생과 복락을 누리는 길이다.
내 인생 성전도, 오직 하나님의 영으로 세워질 수 있다.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이웃 강대국을 의지하고 도움을 청했다.
애굽의 도움은 헛되고 무익하다고 하였다.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은 말을 의지하며 병거의 많음과 마병의 심히 강함을 의지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앙모하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구하지 아니하나니 ---
여호와께서 그의 손을 펴시면 돕는 자도 넘어지며
도움을 받는 자도 엎드러져서 다 함께 멸망하리라”(사31:1,3)
성령으로 거듭나고 회심하였으면, 육체를 따라 행하지 말고 성령을 따라 행해야 한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을 낳고, 오직 영의 생각만이 생명과 평안을 낳는다.
간단한 진리이지만, 교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이 진리를 무시하고 멸망의 길로 간다.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롬8:13) 하셨다.
성령으로 행할 때만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않을 수 있다.
베드로 사도는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고 하셨다.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인생은 곧 끝나고 만다는 것이다.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향락을 따라 사는 것은 지나간 때로 족하다고 하였다.
육체의 남은 때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라고 한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할려면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야 한다.
무엇으로? 오직 하나님의 영으로만 그것이 가능하다.
성령을 구하면 주님은 주신다고 약속하셨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눅11:13)
예배도 영으로 드려야 참된 예배이고,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예배이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영과 진리, 항상 같이 가야 한다.
기독교 역사에서 보면 영만을 믿고 말씀을 무시한 사람들은 신비주의에 빠지고 말았다.
성령 없이 말씀만 강조한 사람들은 율법주의 지성주의에 빠지고 말았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좌우로 치우치지 말아야 한다.
예배도, 영과 진리로, 우리의 인생도, 영과 진리로 건축해가야 한다.
영과 진리만이 참된 예배, 참된 삶, 참된 믿음생활을 보장해 줄 수 있고,
참된 축복과 영광을 누릴 수 있게 해 준다.
2. 큰 산도 평지가 된다.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성전을 건축할 때에 만나는 온갖 난관들과 반대들이 큰 산이다.
제거하지 않으면 일을 진행할 수 없는 큰 산과 같은 장애물들이 큰 산이다.
도저히 뛰어넘을 수 없는 큰 산일지라도 결국 극복되고 제거되리라는 것이다.
유대인 원수들은 큰 산들처럼 교만하고 상대하기 힘든 자들이었다.
믿음 앞에는 항상 큰 산들이 마주한다.
네 집안 식구들이 원수라고 하셨다. 큰 산이라는 것이지요.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아주 거대하고 대단히 위협적이며 두려운 존재로 보이는 너는 누구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네가 하나님이 세운 스룹바벨 앞에서는 평지가 될 것이다.
하나님이 영을 부어주시면 그 큰 산들은 점점 작아져서 쥐구멍 속으로 들어가 버리게 될 것이다.
주의 길을 준비하고자 할 때에는 산마다, 언덕마다 낮아진다고 하셨다(사40:4).
믿음은 산들을 옮겨서 평지로 만들어 버릴 것이다.
의인은 믿음으로 살고, 믿음은 결국 모든 큰 산들을 평지로 만들 것이다.
스룹바벨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다.
주님 앞에 난관의 큰 산들이 있었지만, 주님 앞에서 모두 평지가 되었다.
하나님의 은혜로 해내지 못할 일은 없다.
우리를 가로막고 우리를 두렵게 하고 절망케 하는 큰 산들도
하나님이 영으로 역사하시면 평지가 되고 말 것을 믿으시기 바란다.
우리가 낙심하지 않고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되면 거두게 하실 것이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나는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시42:5)
하박국 선지자의 찬양과 확신이 우리의 것이 되기를 바란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합3:17-19)
어떤 고난과 역경과 위험도 슬픔도 고독의 큰 산도 평지가 될 날이 오고야 한다.
이것은 우리 스룹바벨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이고 보장이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8:38-39)
모든 고난들은,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성령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 깊은 뜻과 지혜를 알 수 없지만
그 고난들이 마침내 복을 주시기 위함이라는 것은 확실하다.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여러분을 가로막고 있는 큰 산에게 이렇게 말하시기 바란다.
원수 같은 큰 산에게도 이렇게 말하시기 바란다.
3. 은총, 은총이 함께 하실 것이다.
“그가 머릿돌을 내놓을 때에 무리가 외치기를 은총, 은총이 그에게 있을지어다”
“스룹바벨의 손이 이 성전의 기초를 놓았은즉 그의 손이 또한 그 일을 마치리라”
머릿돌을 내놓을 때에, 성전 건축은 시작된 것이고, 성전의 기초를 놓은 것이다.
머릿돌을 놓고 기초를 놓은 그 손이, 그 일을 마친다는 것이다.
은총, 은총이 임하고 함께 하여, 이 거룩한 일을 완성하고 마치게 할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그 은혜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시고 예정하셔서, 때가 되니까,
성령을 부어주시고 거듭나게 하시고 회심하게 하셨다.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총이고 은혜이다.
성자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고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의롭다 함을 받게 하셨다.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실 때 성소의 휘장이 둘로 찢어지고 은혜의 보좌로 가는 길이 열렸다.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하게 나아가 긍휼하심과 때를 따라 도우심을 받게 하셨다.
성전 건축의 머릿돌을 놓을 때부터 시작하여 완성될 때까지 은총, 은총이 우리에게 있을 것이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빌1:6)
우리도 성전을 건축하기 위하여 머릿돌을 놓은 스룹바벨들이다.
이는 힘으로도 능력으로도 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의 영으로만 되는 건축이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고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는 성전 건축이다.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골2:7)
그 안에 뿌리를 박고 세움을 받는 성전 건축자가 되라 하시는 것이다.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가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지혜로운 자라고 하셨다.
듣고도 행하지 않는 자는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어리석은 자라고 하셨다.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쳐도,
무너지지 않는 집을 지을 것인지, 무너짐이 심한 집을 지을 것인지, 우리 선택에 달렸다.
듣고도 행치 않는 것은 그 속이 다른 철학과 속임수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르는 것이지,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침을 받으면 하나님을 헛되이 경배할 뿐이다.
우리의 마음 중심을, 우리의 욕심과 야망으로 채울 것이 아니라,
은혜와 은총이 우리 안에서 왕 노릇하시도록 자리를 내어 드려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와 은총이 우리 마음을 차지하고 통치하시도록 보좌를 내어드려야 한다.
내 힘과 능력으로, 애굽의 힘과 능력으로, 집을 세우려다가는
가나안 땅에서 멸망 당한 유다의 자취를 따르고 말 것이다.
오직 하나님의 영으로 내 인생의 성전을 건축하자.
큰 산들이 무너지고 평지가 되는 역사를 경험하자.
하나님의 은총, 은총이 항상 우리에게 있고 머물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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