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스크랩] 1/20 주일설교, `나의 생명조차`, 행 20:24

강대식 2019. 1. 20. 15:39

2019-01-20 주일설교

본문: 20:24

제목: 나의 생명조차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노라 하고 있다.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려 함에 그러하고,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 그러하다.

 

길이 있고, 사명 곧 일이 있다.

길은 달려감으로 마쳐야 하고, 사명 곧 일은 완수함으로 마쳐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말아야 한다.

 

1. 달려갈 길을 마쳐야 한다.

 

믿음의 길은 우리 앞에 당한 경주인 것이다. 달려가야 한다.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고전9:24)

 

상을 받을려면 모든 일에 절제하여야 하고, 향방 없이 달려가지 않아야 한다.

먼저 내 몸을 쳐서 복종시켜야 한다.

달릴려면 올바른 목표를 정하고 달려가야 한다.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3:14)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향해 달려가야 한다.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공의로 통치하시고 상 주시는 분임을 믿어야 한다.

 

세례 요한도 그 달려갈 길을 마칠 때에그리스도를 증거했다.(13:25)

바울은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다고 했다.(딤후4:7)

 

잘못된 푯대를 향해 달음질하면 그 끝은 멸망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극한 방탕에 달음질하지 아니하는 것을 그들이 이상히 여긴다고 했다.(벧전4:4)

하나님이 보내지 않았음에도 거짓 선지자들은 달음질하였다.(23:21)

 

하나님의 상과 축복은, 야망이 크다고, 빨리 달려간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9:16)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며 큰 문 넓은 길로 많은 사람이 멸망을 향해 간다고 하셨다.

생명의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조차 적음을 기억해야 한다.

다 구원 받고 상 받는 것이 아니라 거룩한 씨들만이 받는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피흘리심으로 우리 죄를 대속하고

하나님과 화목하는 길을 열었다.

하나님이 은혜로 선물로 주시는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아야 하고, 이후로는

말씀과 성령으로 성화의 길, 주 예수의 형상을 닮아가는 자들이 거룩한 씨들이다.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의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못 들어간다고 하셨다.

그들은 형식적인 종교생활은 잘했지만, 속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 찼고,

행함과 생활은 그리스도의 거룩함과 거리가 멀었다.

 

성령으로 거듭나고 회심하였다면 이제는 성화의 길을 달려가야 한다.

우리 주님의 성품과 삶을 닮아가는 길을 달려가야 한다.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는 길을 달려가야 한다.

 

달려갈려면,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들을 벗어버려야 한다.

마음 속 죄악들과 옛 사람의 성품을 버려야 한다.

이전에 행하던 악하고 더러운 행실과 거짓과 위선들을 버려야 한다.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 같은 가시떨기들을 제거하는 일에 달려가야 한다.

옛 사람과 그 행위들의 돌맹이들을 제거하는 일에 달려가야 한다.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 옥토를 만드는 일에 달려가야 100배의 결실을 맺을 수 있다.

그 결실은 상과 축복인 것이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다.

믿음의 길을 오직 믿음으로 달려가야 한다.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며 달려가야 한다.

 

어떤 환경에서도 자족하기를 배우고,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워야 한다.

고난을 통해 이 비결을 배우지 못하면 믿음의 길을 달려갈 수가 없다.

 

내 영혼이 낙망하며 불안해 하는 것은 소망을 하나님께 두지 않고

세상과 세상의 것들에 두기 때문이다.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은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참음으로 꾸준히 그 길을 부지런히 달려갔기 때문이다.

 

2. 주 예수께 받은 사명을 마쳐야 한다.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그 사명은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이었다.

값없이 주시는 은혜로 구원하는 그리스도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일이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소식이 바로 은혜의 복음인 것이다.

 

우리 각 사람도 주 예수께 받은 사명이 있다.

다 사도이고 다 선지자일 수는 없다.

다 목사이고 다 선교사일 수는 없다.

 

하나님이 줄로 재어 정해준 구역에서 일을 하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야 한다.

종교개혁자들은 직업을 소명이고 사명이라고 하였다.

각자의 직업을 사명으로 알고 말씀으로 믿음의 정신으로 살았기에

각 분야의 산업이 발달하고 자본주의가 깨끗하게 발전할 수가 있었다.

 

영국과 미국이 4백년에 걸쳐 초강대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청교도 정신이 말씀과 믿음의 정신이 바탕이 되고 중심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말씀 중심, 원칙 중심의 삶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거대한 제국을 이룰 수 있었다.

 

각 분야에서 각 직업에서 그리스도인의 특징과 의무로 사는 것이 중요하다.

축복은 하나님이 주시지 사람이나 세상이 주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떡으로만이 아니라 말씀으로 살 때, 그 원칙 중심으로 살 때,

축복하시고 오래 번영하게 하신다.

 

복 있는 사람은 성경을 즐거워하고 주야로 성경을 묵상하는 사람이다.

어디로 가든 무엇을 하든 형통하는 길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다.

다윗이 그래했고, 여호수아가 그러했다.

 

내가 오늘 명하는 모든 명령을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고 번성하고 여호와께서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차지하리라”(8:1)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들으면 복이 될 것이요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도에서 돌이켜 떠나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고 다른 신들을 따르면 저주를 받으리라”(11:27-28)

 

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두었으니 택하라고 하신다.

하나님을 무시하고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만 살면, 사사시대 암흑시대가 열린다.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는 곳에 천국이 열린다.

 

어디에 있든 무슨 일을 하든, 그곳에서 오직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그리스도인의 정신으로 사명감으로 헌신하시고 충성하시기 바란다.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기쁜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는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인이나 주께로부터 그대로 받을 줄을 앎이라”(6:6-8)


사는 길이 오직 성경에 있고 형통하는 길이 오직 성경에 있다.

베뢰아 사람들처럼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시기 바란다.


원함으로도 달음박질로도 얻을 수 없는 축복과 형통이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있고, 그 말씀들을 삶의 원칙으로 사는 데 있다.

노블레스 오블리쥬를 지킨 가문들이 오래 번영하였고,

원칙을 지킨 개인과 나라들이 오래 번영하였음을 인류 역사는 증거하고 있다.

 

직업은 직업을 위해 있지 않고, 오직 자기만을 위해 있지 않고,

말씀으로 사는 사명을 위해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속이 다르니까 겉도 달라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팔복의 특징과 모습으로 사는 데 하나님의 축복이 있다.

심령이 가난하여 겸손하고, 자기 죄를 애통해하며, 자기 주장을 부인하여 온유하며,

의에 주리고 목마를 때에 복이 있다.

 

3.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하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

 

달려갈 길을 달려갈 때에도,

주 예수께 받은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도,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하게 여기지 않는 정신과 자세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달려갈 길은 중도에 그치고 말 것이다.

주 예수께 받은 사명도 흐지부지 끝까지 마치지 못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길은 자기 생명을 거는 각오와 준비가 절대로 필요하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매일 지고 주님을 따라야 한다고 하셨다.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오히려 죽는다고 하셨다.

몸은 죽여도 영혼을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라고 하셨다.

 

달려갈 길을 갈 때나,

주 예수께 받은 사명을 완수하려 할 때나,

우리는 세상 떠날 시각까지 우리의 생명과 피를 전제와 같이 다 쏟아 부어야 한다.

 

대충대충 하는 둥 마는 둥 게으름을 피우는 나무는 아무 열매도 거둘 수 없다.

삼년이나 열매를 구했어도 얻지 못하는 나무는 찍어버리라고 하신다.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두루 파고 거름을 주어야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천국은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고 극히 값진 진주와 같다.

자기 소유를 다 팔아 사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것이 천국이다.

망대를 세우다가 그 기초만 쌓고 능히 이루지 못하면 보는 자가 다 비웃을 것이다.

 

자기에게 유익하던 모든 것을 다 해로 여기고 그리스도를 위해 배설물로 여겨야 한다.

모세는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다.

이는 상 주심을 바라보았기 때문이었다.


믿음의 사람들은 한결같이 사명을 위해 자기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

이런 사람만이 그리스도를 얻고 하나님이 부르신 부름의 상을 푯대로 하여 달려갈 수 있다.

의의 면류관은 오직 믿음의 사람들의 몫인 것을 기억해야 한다.

 

새해가 되었으니 우리의 심령을 새롭게 함으로 우리 인생에 변화를 주어야 한다.

이 세상을 그만 본받고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해야 한다.

그 하나님의 뜻과 약속에 우리의 운명을 걸어야 한다.

 

사도 바울은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을 향해 가고 있었다.

오직 성령은 각 성에서 결박과 환난이 그를 기다린다고 증언하셨다.

그러나 그는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은혜의 복음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하였다.

 

새해를 우리가 참으로 복되게 하려면,

사도 바울의 이러한 자세와 각오가 우리의 자세와 각오가 되기를 바란다.

자기 소유를 다 팔아 사는 정신, 극히 귀한 것을 귀한 것으로 여기는 정신,

믿음의 선진들을 본받아 믿음과 오래참음으로 사는 정신,

그 정신과 자세가 우리의 한해의 수확을 결정할 것이다.

 

사도 바울의 결단과 각오와 고백이 우리 한해의 표어가 되게 하자.

달려갈 푯대가 되고 주 예수께 받은 사명을 감당하는 각오와 결단이 되게 하자.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후에는 심판이 있다.

세상 만을 쫓다가 허망한 죽음을 맞이하면 돌이킬 길이 없다.

무섭고 두려운 심판만이 기다리는 비참한 종말이 오기 전에 회개하고 돌이키자.


출처 : 청교도 아카데미
글쓴이 : 강대식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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