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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0 주일설교,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 고전 2:12-14

강대식 2020. 8. 31. 01:39

2020-08-30 주일설교

본문: 고전 2:12-14

제목: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

 

1.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것과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이 있다.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고전2:13)

 

오늘날 교회의 가장 큰 문제는,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것과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의 차이와 구별을 모른다는 것이다.

그 차이와 구별은 천국과 지옥을 가르고 하늘과 땅을 가른다.

 

이것은 보수신앙과 자유주의신앙과의 차이가 아니다.

자유주의 신앙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부인하고,

성경의 역사적 사실들과 영적인 것을 부인하고 현대인이 믿을 수 있는 것만 받아들인다.

보수신앙은 그것을 다 인정하니까, 보수적으로 성경을 믿으니까, 안심하고 있다.

 

보수신앙과 이 시대의 신앙도 항상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것임을 모르고 있다.

자기들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개혁자들과 청교도들의 신앙, 곧 성경 해석을 만나보기 전에는 모르기 때문에 그렇다.

 

혹 책을 통해 그들의 성경 해석을 만나보더라도 그 차이와 구별을 모른다.

좀 깊구나 다르구나 하면서도 오늘날에는 그렇게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만다.

이 시대의 신학으로 재해석한 잘못된 견해들에 만족하고 끝내고 만다.

 

자유주의 신앙과 크게 다르지 않게 보수신앙도 사람의 지혜에 의존하고 있는 것을 모른다.

개혁자들과 청교도들의 신앙을 성령의 조명과 인도로 지혜로 만나보기 전에는 그렇다.

그것은 오늘날 대부분의 신자들이 사람의 지혜로 가르친 신앙에 머물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성령의 지혜가 가르친 성경으로, 신앙으로, 돌아가고, 돌이키는 것, 그것이 개혁이고 부흥이다.

개혁자들과 청교도들이 한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사도들이 초대교회에서 성령의 지혜로 가르친 전통으로 돌이키는 것이었다.

 

형제들아 굳건하게 서서 말로나 우리의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전통을 지키라”(살후2:15)

여호와여 우리를 주께로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주께로 돌아가겠사오니

우리의 날들을 다시 새롭게 하사 옛적 같게 하옵소서”(5:21)

 

로이드 존스는 부흥은 옛 우물을 다시 파는 것이라 하였다.

성령의 지혜가 가르친 것으로 돌이키는 개혁 없이는 참다운 부흥은 없다.

사실은 그리스도인의 축복도 형통도 없다. 천국도 없다.

 

왜 사도 바울이 고전 12장에서 사람의 지혜와 성령의 지혜의 차이와 구별을 강조하고 있는지

눈여겨 보고 반성하고 돌이켜야 한다.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1:17)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1:20)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1:21)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2:1)

내 말과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2:4-5)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2:9-10)

 

그리고서 오늘 본문 말씀으로 이어진다.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2:12)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모든 것들은 사람의 지혜로는 알 수 없다.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한 것이다.

세상의 영을 받은 사람들은 도무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은 사람만이 성령이 가르치신 지혜로 알 수 있다.

 

사람의 지혜의 근원은 세상의 영인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아,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해야,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모든 것들, 영적인 일들은 영적으로만 분별할 수가 있다.

그리스도, 십자가, 성경, 구원, 교회, 천국, 가나안, 축복과 영광 ---

 

우리의 패러다임이 사람의 지혜와 세상의 초등학문으로 온통 물들어 있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이제까지의 교회생활과 자기신앙에 개혁을 가하고, 회개하고 복음을 다시 회복해야 한다.

 

평안하다 평안하다 나는 천국 간다 나는 구원 받았다 안심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주여 주여 부르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요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랴야 들어간다는 주님의 말씀에 심각하게 귀를 기울여야 한다.

 

2. 육에 속한 사람은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한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고전2:14)

 

육에 속한 사람의 대표는 유대인들이요 헬라인들이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지혜니라”(고전1:22-24)

 

현대 교인들도 대부분은 육에 속한 자들이요 성령을 받지 못한 자들이다.

유대인은 바로 현대 교인들인 것을 알아야 한다.

헬라인은 현대 불신자들이다.

 

사람의 지혜와 세상의 초등학문으로 무장한 자들이 항상 제도권 종교를 장악한다.

유대 종교를 장악하고 통치하던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

현대 교인들도 유대인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을 대적하고 그리스도를 못 박고 사람의 지혜로 만든 하나님과 그리스도만 믿는다.

 

그들은 육에 속하여 있는 고로 오직 사람의 지혜만을 안다.

그들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믿지 아니하고 어리석게 보고 그것들을 알 수도 없다.

그러한 일은 성령을 받고 성령의 지혜로 가르침을 받은 자들만이 영적으로 분별할 수 있다.

 

얼마나 많은 목사들과 신학교수들과 교인들이 자기들은 성령을 받았다고

성령의 지혜로 가르침을 받았다고 착각하고 있는지 모른다.

성령을 받았더라도 성령의 지혜로 가르침을 받지 않으면

육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고전3:1)일 뿐이다.

 

개혁자들과 청교도들은 어거스틴을 통하여 성령의 지혜로 가르친 초대교회의 신앙으로 돌이켰다.

루터와 칼빈은 어거스틴의 서적들을 탐독하였다.

어거스틴은 초대교회의 신앙, 곧 사도들과 교부들이 성령의 지혜로 가르친 신앙을

신학으로 집대성하였다.

 

소위 개혁주의자들은 개혁자들의 신앙과 삶은 본받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론과 신조들만을 공허하게 강조할 뿐이다.

신앙과 삶이 없으면 현대판 바리새인의 누룩이요 사두개인의 누룩일 뿐이다.

 

주님의 말씀대로 말씀을 영으로 생명()으로 살 때,

비로소 거기에 참 신앙과 삶이 있는 것이다.

개혁자들과 청교도들은 그 신앙으로 그렇게 살았다.

 

이들을 핍박하고 불에 태워 죽이고 감옥에 가두고 고문한 사람들은 누구였느냐?

그 시대 제도권 기독교를 장악하고 있던 교황을 위시한 주교들과 서기관들이었다.

그들은 육에 속한 자들이고 성령의 가르침을 받지 않고 오직 세상의 영을 받은 자들이었다.

사람의 지혜와 세상의 초등학문으로 무장하고 통달하고 지배하는 무리들이었다.

 

지금 우리가 성령의 지혜로 가르침을 받는 길은 오직 하나이다.

개혁자들과 청교도들의 귀한 유산을 물려 받아서

사도들과 초대교회들이 믿고 살았던 성령의 지혜의 전통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오늘날 목사들을 배출하는 유명 신학대학들은 결코 이 유산들을 가르치지 않고 있다.

오직 사람의 지혜와 세상의 초등학문으로만 성경도 가르치고 그 유산도 재해석할 뿐이다.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일만 스승인 것을 알아야 한다.

 

복음으로 생명을 낳는 아버지 스승은 극히 귀하다.

이 생명의 길은 찾는 이도 적어서 찾아가지 않으면 만날 수가 없다.

이 아버지 스승들을 만나야 비로소 내가 얼마나 사람의 지혜에만 붙들려 살았는지 알게 된다.

 

제 목사 24년을 돌아보면,

처음 10년 동안은, 성령은 받았지만, 사람의 지혜로 사로잡혀 살았던 세월이었다.

그러다가 로이드 존스의 로마서강해와 교리강좌를 만나고서야,

비로소 사람의 지혜로 가르친 것과 성령의 지혜로 가르치는 것의 차이와 구별을 알게 되었다.

 

로이드 존스는 젊은 시절에 조나단 에드워즈를 아버지 스승으로 만나 청교도가 되었다.

에드워즈를 청교도의 에베레스트라고 하였다.

루터와 칼빈 보다 더 높은 산으로 여겼고 최고 정상으로 여겼다.

첫째도 에드워즈를 읽으라 했고, 둘째도 셋째도 에드워즈를 읽으라 권했다.

 

한 권으로 읽는 조나단 에드워즈 신학’ 1000페이지를 읽었는데,

에드워즈를 아버지 스승으로 만나지 않고, 일만 스승의 하나로 볼 뿐이었다.

학자들의 한계이다.

 

급하다고 개혁자들과 청교도들을 직접 읽으려 한다거나, 소개하는 책들을 보아서는,

백전 백패하고 말 것이다.

신뢰할만한 아버지 스승을 먼저 만나고, 그분의 손을 잡고 들어가는 것이,

안전하고 확실하고, 끝까지 갈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제 경험으로는 우리 시대에는 로이드 존스를 아버지 스승으로 만나는 것이 제일 좋다.

그분의 책들을 마음을 열고 꾸준히 읽고 또 읽노라면

여러분은 청교도와 개혁자들을 참 모습으로 만나게 될 것이고,

어느새 여러분은 청교도와 개혁자가 되어 있을 것이다.

 

3. 개혁과 부흥은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돌이키는 것이다.

 

교회와 내 인생의 부흥을 정말로 원하는가?

그러면 먼저 개혁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로, 말씀께로, 돌이켜야 한다.

 

먼저 내가 개혁 이전의 상태에 있음을 확실히 깨달아야 한다.

내가 그동안 교회 생활 목사 임직 생활 오래 했지만

성령의 지혜로 가르친 것을 모르고 오직 사람의 지혜로만 산 것을 확실히 반성해야 한다.

 

그런데 이 작업을 혼자 힘으로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청교도 아카데미가 필요한 것이다.

최소 3년은 집중적으로 해야 한다.

 

그리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게속 반복해서 공부하고 또 공부하고 죽는 날까지 해야 한다.

우리의 낡은 부대, 묵은 포도주는 속 깊이 가라앉아 있다.

모압처럼 술병 밑에 가라앉아 움직이지 않는 찌끼는

그릇을 비우거나 병들을 부숴야 한다.(48:11-12)

 

한편으로는 주로 로이드 존스의 책들과 다른 청교도들의 책들을 공부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우리의 교회와 신앙이 얼마나 사람의 지혜로 물들어 있는지를 공부해야 한다.

우리 주님은 분부하신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하셨다.

배우기 전에는 자기의 실상을 모른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가르친신 기간은 3년 반이었다. 그 위에 성령을 부어주셨다.

바벨론에서 다니엘과 친구들이 교육 받은 기간도 3년이었다.

서당 개도 3년이면 풍월 읊는다고 한다.

 

그런데 내가 10년여 동안 목사들, 중직자들 가르쳐 보았는데,

극히 열매가 적었다고 하는 것이 나의 결론이다.

열심도 없고 집중하지도 못하고, 스스로 연구하고 변화하는 노력이 없으면,

10년을 해도 귀동냥으로 끝나고, ‘좀 안다로 끝나는 것을 보았다.

찌끼는 그대로 있는 채, 위의 술만 이리 저리 옮기다 끝난다.

 

로이드 존스를 읽어본 목사들은 많이 있지만,

그렇고 그렇게끝나는 것은, 사람의 지혜로 가르치는 것과 성령의 지혜로 가르치는 것의

차이와 구별을 알아차리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집중과 충성과 헌신이 없으면,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와 도움이 없으면,

아무리 좋은 가르침도 자기를 변화시킬 수 없고,

버려야 할 것을 버리지 못하고, 취해야 할 것을 취하지 못한다.

 

사도 바울이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만나고서는

자기에게 유익했던 모든 것을 해로 여기고 배설물처럼 버린 것을 본받아야 한다.

낡은 가죽부대와 묵은 포도주를 버려야 새 포도주를 새 부대에 넣을 수 있다.

 

수년을 같이 공부하면서도 하나도 버리지 않는 모습에 나는 그만 질렸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23년 목회직을 버렸다.

로이드 존스는 의사직을 버렸다.

 

청교도들은 교구와 사택과 봉급을 버렸다.

개혁자들은 목숨을 버렸다.

모세는 왕궁을 버렸다.

 

우리 주님은 하늘 보좌를 버리셨다.

제자들도 그물과 모든 것을 버려두고 주님을 따랐다.

꽉 차 있는 것들을 버리지 않으면 새로운 것을 하나도 넣을 수 없다.

 

얽메이고 무거운 짐들을 벗지 않으면 달려갈 수 없다.

사람의 지혜로 가르침을 받은 것들을 버리지 않으면,

성령의 지혜로 가르침을 받은 것들을 얻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