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2:7의 ‘자기를 비워’는 하나님이 인성을 취하셨다는 의미다/ 워필드
워필드는 그리스도의 양성 교리가 지적으로만이 아니라 경건 실천에서도 그리스도인들의 ‘보편적 전제’가 아니었던 때가 없었다고 지적했다. 한 본성뿐인 그리스도는 오직 ‘한편으로는 가현설적인 불법적 종파들과 에비온파와 그 계승자들에게서,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역동적 몬타누스주의자들’에게서만 발견된다.
교회는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두 본성 교리를 갖고 있었다. 두 본성 교리는 아주 이른 시기부터, 아니 발생 단계부터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공통된 것이었다. 기독교가 전파된 모든 곳에서, 사람들은 기독교도들을 예수 그리스도를 예배하는 자로 인정했다. 두 본성 교리는 그리스도인들의 의식에 깊이 뿌리박혀 있었기 때문에, ‘급진적인’ 소시누스주의와 18세기 계몽주의가 대두하고 나서야 처음으로 두 본성 교리는 ‘불가능한 것’으로 치부되었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양성 교리를 한결같이 견지한 사실은, 이 교리가 ‘신약 성경 진술 자체에 단단히 자리 잡고 있다’는 것으로만 설명할 수 있다. 워필드는 케노시스주의자들의 성경 이해에 대해 ‘그들은 성경을 산산조각냈다’고 논평했다. 메킨토시는 신약 성경에서 ‘예수님의 삶과 의식’은 ‘100% 인간적인 것으로’ 묘사된다고 썼다. 이에 워필드는 “메킨토시 교수의 케노시스 이론과 관련해 가장 기이한 것은 그가 자신의 이론과 관련해, 성경적 근거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는 점이다”고 응수했다.
워필드는 메킨토시는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고 말한 분을 어떻게 그런 식으로 묘사할 수 있는지 의아해했다. “우리는 매킨토스 교수가 주님의 인격에 대한 자신의 선험적 도식을 도무지 용납하지 않는 신약 성경 본문에 자신의 도식을 부과하고자 할 때 겪는 어려움에 대해 동정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워필드는 케노시스 이론은 관련된 성경적 근거를 완전히 결여하고 있다고 100% 확신했다. 케노시스 이론은 관련된 모든 성경적 자료와 역사적 사실에 반하여, 단지 철학적 전제 위에 기초해 있다. 이에 반해 역사적 기독교의 두 본성 기독론 신약 성경에서 광범위하고 일치된 지지를 받고 있다. 그리스도의 양성 교리는 신약 성경 전체에 전제되어 있다.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본체’시라는 말은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속성 전체를 완전하게’ 그리고 하나님을 하나님이게 하는 모든 ‘특성’을 소유하고 있음을 보다 정확하고 ‘가능한 명확하게’ 강조한 표현이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셨고 하나님이기 위한 모든 것을 완전히 소유하고 계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는 자신을 전혀 고려하지 않으셨다. 여기서 그리스도가 성육신하실 때, 자신의 신성을 단념하거나 버렸다는 암시는 전혀 없다. 오히려 바울은 이 땅에서의 삶 내내 자신의 신성을 완전히 지니고 있었다고 단언하고 있다. 예수님은 “죽기까지” 자기를 낮추셨다. “자기희생을 의식적으로 계속 실천한 삶이었다.” 예수님은 사람이 되신 것이 아니라 ‘사람과 같이’되셨다.
“우리 주님은 한때 하나님이었으나, 성육신 때 사람일 뿐인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이 아니다. 바울은 항상 하나님이신 분이 사람도 되셨다고 가르쳤다.” 워필드는 “우리 주님이 중단 없이 계속 ‘하나님의 본체’시라는” 사실은 이 구절 전체를 지배하는 바울 주장의 ‘핵심’이라고 주장했다.
그리스도는 사람이 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취하셨고, 실제로 “종”이 되셨다. 그리스도는 인성을, 참된 인성을 “취하셨다.” 성육신은 성자 하나님이 사람 안으로 들어가심이 아니라, ‘인성을 취하사 자신을 그 인성과 위격적으로 결합하신 것’(하나님이 인성을 취하신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참사람이 되셨음에도 여전히 ‘하나님의 본체’셨다. “세상의 주가 종이 되셨고, 다스림을 본질적 권리로 가진 분이 순종을 삶의 방식으로 삼으셨다.”
바울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가 “인성을 ‘취해’ 자신과 위격적으로 결합하시고, 그 인성 안에서 진정한 인간의 삶을 사신 하나님, 즉 하나님이면서 동시에 사람”이시라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아들은 성육신 후에도 중단 없이 여전히 ‘하나님의 본체’라는 것과 성육신 이후 하나님의 아들에게는 ‘두 본성’이 공존하다는” 것이다. 이 성경 구절은 그리스도가 참사람으로 이 땅에 사셨으나 이 땅에서의 삶은 “다만 이타적인 목적 이행을 위해 채택한 것으로 그분의 신적 본질에는 이질적인” 삶이었다.
- 프레드 재스펠, 「한 권으로 읽는 워필드 신학」, pp 421-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