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5/26 주일설교, '기뻐하시는 금식', 이사야 58:6-12

강대식 2024. 5. 26. 11:18

2024-05-26 주일설교

본문: 이사야 58:6-12

제목: 기뻐하시는 금식

 

1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은 고난 중에 있는 이웃들을 돌보는 것이다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58:6-7)

 

오늘 본문 앞에는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금식이 나와 있다.

마음을 괴롭게 하며 머리를 갈대 같이 숙이고 굵은 베와 재를 펴는 것,

그러면서도 금식하는 날에 오락을 구하며 온갖 일을 시키는 것.

금식하며 논쟁하며 다투며 악한 주먹으로 치는 것이다.

이렇게 금식하는 데도 어찌하여 주께서 보지 않고 알아 주지 않느냐고 하는 것이다.

 

오늘 본문을 전체로 보지 않고 몇몇 구절만을 인용하며 악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나님이 금식을 기뻐하신다고, 금식하면 내 흉악의 결박, 멍에의 줄이 끊어진다고 한다.

종교적 행위만을 강권하고 금식으로 옭아메고 자랑하고 엉뚱한 결과를 약속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금식은 그 절제하는 마음으로 고난 중에 있는 이웃을 돌보는 것이다.

억울하게 갇혀 있는 자들의 흉악의 결박, 멍에의 줄을 끌러 주는 것이다.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다.

 

그리고 주린 자에게 내 양식을 나누어 주고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고

헐벗은 자를 입히며, 골육을 피하여 숨지 아니하는 것이다.

이 금식들을 해보셨는지요? 이 말씀을 존귀하게 여기며 실천할려고 한 적이 있는지요?

오늘날 교회가 이 일에 신경이나 쓰고 있을까요? 그런 것 같아요?

 

하나님이 기뻐하는 이 금식의 행위들은 한 마디로 이웃을 내 자신 같이 사랑하는 것이다.

우리 주님은 마태복음 25장에서 동일한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을 본다.

주님이 영광 중에 다시 오시는 날 모든 민족을 그 앞에서 양과 염소의 무리로 나누신다.

그리고 그 구분은 천국과 지옥의 구분이고 이웃 사랑의 행위들을 했느냐가 기준이다.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25:34-40)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41-46)

 

영벌과 영생, 천국에 가느냐 지옥에 가르냐의 갈림길이 이웃 사랑의 행함에 있지,

교리를 지적으로 알고 믿고 고백했느냐에 있지 아니한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고, 헛 것인 것이다.

 

야고보 사도도 참다운 경건이 무엇인지를 동일하게 말씀했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1:27)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2:24-26)

 

구체적으로 무엇을 행해야 하느냐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 무엇을 어떻게 믿느냐에 있지 아니하다.

유대교회 로마교회 개혁교회 현대교회의 문제가 무엇인지가 분명해진다.

마음과 뜻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랑이 없이는 지속적으로 실천할 수 없는 선행들이다.

크고 첫째 되는 계명과 둘째 계명은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고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이다.

 

사랑으로 역사하지 않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

먹물로 쓴 교리 지식들을 머리 통에 아무리 많이 가졌어도, 행함이 없으면 죽은 믿음이다.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가고, 착한 행실이 사람 앞에 비치는 빛이다.

 

2. 이 금식은 공의를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호위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하면 네 빛이 새벽 같이 비칠 것이며 네 치유가 급속할 것이며

네 공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8-9)

 

하나님이 기뻐하는 금식의 그 행위들이 바로 우리의 공의라는 것이다.

정치인들이 그렇게 정의를 외쳐도 공정과 상식을 부르짖어도 헛소리에 그치는 이유이다.

이스라엘이 멸망한 것도 보면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와 이방인들을 볼보지 않은 것에 있다.

선지자들을 통해 그들을 돌보라고 공의와 정의를 행하라고 외쳤어도

그들은 자기들의 부와 권력을 쌓느라 다른 여지가 없었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금식의 행위들이 바로 정의이고 공의인 것을 마음에 새기고 실천하자.

거기에 복이 있고 천국이 있고 영광이 있다.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한다고 하신다. 그뿐인가?

 

속히 기도 응답이 있고, 부르짖을 때에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하신다.

네 빛이 새벽 같이 비치고, 네 치유가 급속할 것이라 하신다.

주린 자에게 네 심정이 동하며 괴로워하는 자의 심정을 만족하게 하면

네 빛이 흑암 중에서 떠올라 네 어둠이 낮과 같이 될 것이다.”(10)

 

나를 감싸고 있던 흑암들이 사라지고 이로 인하여 내 어둠이 낮과 같이 된다고 하신다.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며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11)

항상 인도, 영혼의 만족, 뼈의 견고, 물 댄 동산,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을 기억하라.

 

이러한 엄청난 하나님의 축복과 영광의 약속이 어디 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우리의 육신적 탐욕과 나의 부와 권력과 명예의 추구에만

몰두하고 땅에 보물을 쌓느라 전념하지 않았는가? 하늘의 셈법은 전혀 반대이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주리라”(6:38)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6:19-20)

 

3. 이 금식은 황폐된 곳을 다시 세우고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대대로 다시 쌓게 한다

 

네게서 날 자들이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며

너는 역대의 피괴된 기초를 쌓으리니 너를 일컬어 무너진 데를 보수하는 자라 할 것이며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라 하리라”(12)

 

네게서 날 자들은 후손들에 대한 축복이고 영광이다. 오래 황폐된 곳이 어딘가?

자기를 위해 보물을 땅에 쌓느라고, 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느라고,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위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느라고 나라와 땅은 황폐하고 만 것이다.

 

오랜 세월 동안 인류가 이기적 욕심과 죄악으로 황폐하게 만든 곳들을 다시 세울 사람은

네게서 날 자들이다. 후손들이다. 누구의 후손들인가?

이웃의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한

사람들의 후손이다.

주린 자에게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한 사람들의 후손이다.

주린 자에게 심정이 동하며 괴로워하는 자의 심정을 만족하게 한 사람들의 후손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기뻐하는 금식을 한 너는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는 사람이 될 것이다.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다시 쌓는다는 것은, 역사를 새롭게 쓰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고,

인류 역사상 다 파괴된 기초를 다시 세우고 쌓는 역사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유대교회가 2600년 동안, 로마교회가 1200년 동안, 개혁교회와 현대교회가 5백년 동안

긴 역사를 통해 파괴한 그 기초를 다시 세우고 다시 쌓는 자가 된다고 한다.

그 긴 세월 동안 허울 좋은 이론과 율법으로, 교리로 신조로, 철학으로, 영혼을 죽이고

탐욕만을 채우며 무너지게 한 곳과 그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할 것이다.

 

여기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고 하신 그 착한 행실들을

다시 살리고 회복한다는 것은 그 구제와 이웃 사랑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행위들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행위들이, 공의를 다시 세우는 것이고,

어둠을 밝히는 빛이 되는 것이고,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다시 쌓는 것이고

무너진 데를 보수하는 것이고,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에 되게 하는 것이다.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들을, 병든 자와 갇힌 자를 그 환난 가운데 돌보는 것이

단순한 구제와 자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가정과 교회와 사회와 나라에 공의를 다시 세우는 것이라고 하신다.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바울의 큰 계시와 모세의 출애굽의 사역과 다윗의 왕권의 사역으로

성경도 사명을 헤브론 사역으로 시작할 때, 하나님이 기뻐하는 금식부터,

제일 먼저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와 병자와 갇힌 자들을 위한 대규모 시설부터 세울 것이다.

 

초대교회와 발도인교회가 급속히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는 금식을 행함에 따라

그 믿음의 인내와 이웃 사랑의 실천에 사람들이 감동을 받고 매력에 끌리어 위험을 무릅쓰고

끊임없이 찾아 들었기 때문이었다. 전도와 선교로 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전도와 선교를 강권한 기록이 없고, 오직 변화된 성품과 삶만을 추구하고 실천하였다.

13세기에 전 유럽에 폭발적인 교회 개혁이 일어난 것은 역사적 사실들이 증거하고 있고,

그 영향을 받아 14세기 15세기에 르네상스가 일어난 것이다.

 

겹겹이 쌓인 역대의 어둠을 빛으로 밝혔고, 오래 황폐된 곳들이 다시 세워졌고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았고, 무너진 데를 보수하고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였다.

16세기 종교개혁은 그로 인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고, 그 개혁을 팔아 교회를 장악했다.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그 견고한 진들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무너뜨려야 하고,

그 외 인간들의 철학과 헛된 속임수인 모든 이론과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복종하게 해야 한다.

 

성경도 사명은 5백년 묵은 종교개혁의 견고한 진들을 무너뜨리고,

초대교회와 발도인교회의 순전한 가르침과 실천의 전통을 이어받고,

13세기 폭발적 교회 개혁과 르네상스를 다시 이 땅에 이루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성경도 아카데미의 커리큘럼은 말씀으로 교회를 개혁하는 WORD HALL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개혁하는 SOCIAL HALL로 이루어질 것이다.

교회개혁과 르네상스를 함께 이루어 갈 것이다.

폭발적인 교회 개혁을 이루시는 분도 하나님이시오, 르네상스를 이루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착실한 주의 종들이요 제자로서 그 소임과 사명을 다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