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10/20 주일설교, '거짓 선지자, 거짓 선생', 벧후 2:1-3

강대식 2024. 10. 20. 12:32

2024-10-20 주일예배

본문: 벧후 2:1-3

제목: 거짓 선지자, 거짓 선생

 

1.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백성 가운데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벧후2:1)

 

구약시대에도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다.

그런데 너희 중에도교회 안에서도거짓 선생이 있을 것이라는 예언이다.

사람들은 교회 안에는 이단 말고는 거짓 선생이 없을 줄 알고 있다.

 

거짓 선지자, 거짓 선생들, 거짓 목사들은 항상 제도권 종교를 장악하고 있는 자들이었다.

그들이 오히려 참 선지자들을, 참 교회들을, 핍박하고 학살하였다.

유대교회 역사에서 기득권 세력들에 핍박 당하지 않는 선지자는 없었다.

 

그 사실은 로마교회에서도 개혁교회에서도 현대교회에서도 마찬가지인 것을 알아야 한다.

교리만, 율법조문만, 멋 있으면, 체계를 잘 세우면, 되는 것이 아니다.

사도 바울은 그런 것들은 다 사람의 지혜요 먹으로 돌판에 쓴 것이라 하였다.

 

우리 주님도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하셨다.

개혁교회의 교리조문들도 율법조문과 동일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현대교회의 철학조문들도 율법조문과 동일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다 죽이는 율법조문들인 것이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누룩이다.

 

로마교회가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해 완성된 신학대전도

개혁교회가 어거스틴으로 시작해서 루터와 칼빈 청교도들에 의해 완성한 교리체계와 신조들도,

하나 같이 사람의 지혜와 세상의 초등학문으로, 먹으로, 머리 돌판에 쓴 것임을 알아야 한다.

 

청교도 신학에 16년동안 절여 살았던 나도 뒤늦게야 깨닫고 가슴을 쳤다.

발도인교회의 역사와 초대교회의 실상을 접하고서야 눈이 번쩍 떠졌다.

종교개혁 5백년은 무너뜨려야 할 견고한 진이고, 초대교회와 발도인교회로 속히 돌이켜야 한다.

그런데 그것을 접한 사람들도 여전히 그 제도권에 머리 숙이며 밥벌이를 계속하고 있다.

 

그들이 곧 베드로 사도가 말씀하는 거짓 선지자요 거짓 선생인 것을 알아야 한다.

영으로 마음판에 쓴 편지와 먹으로 돌판에 쓴 편지를 분별해야 한다.

영으로 영혼을 살리는 참 선생과 먹으로 영혼을 죽이는 거짓 선생을 분별해야 한다.

 

초대교회는 이제까지 먹물들이 말해온 교리사가 아니고,

당시에 남은 문서들을 통해서 참 실상을 알려주는 메노나이트의 알렌 크라이더를 통해

그 실상을 접하면, 지금의 개혁교회와 얼마나 다른 것인 줄을 알게 된다.

16세기 종교개혁 이후 5백년 동안 우리가 속아 온 것을 알고 가슴을 치게 된다.

 

그 이후 그 전통을 지켜온 발도인들의 역사를 보면, 그 사실은 더욱 명확해진다.

어찌하여 그들은 좋은 나무가 되어 아름다운 열매를 맺었고,

로마교회 개혁교회 현대교회는 못된 나무가 되어 나쁜 열매를 맺어 왔는지가 명확해진다.

못된 열매 맺는 좋은 나무가 없고, 또 좋은 열매 맺는 못된 나무가 없다.

 

그들은 영으로 사는 새언약의 일꾼들이었고,

개혁교회 거짓 선생들은 먹으로 사는 율법조문 교리조문의 먹물들이었다.

머리에는 신학이 있어도, 마음은 이익을 따라 산다.

사람의 계명을 교훈으로 삼아 가르치니 하나님을 혓되이 경배할 뿐이다.

그리스도 안에 일만 스승이 있어도 복음으로 생명을 낳는 아버지 스승은 많지 않다.

 

원래 선지자란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전하고 가르치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들이 권력자들과 가진 자들의 편에 서서 자기들 마음 속에서 지어낸 말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이라 전하고 또 기록된 말씀을 사람의 지혜로 해석하여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으로 살도록 부추기는 일을 하였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선지자와 제사장이 다 사악한지라 내가 내 집에서도 그들의 악을 발견하였노라 내가 사마리아 선지자들 가운데 우매함을 보았나니 그들은 바알을 의지하고 예언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그릇되게 하였고 내가 예루살렘 선지자들 가운데도 가증한 일을 보았나니 그들은 간음을 행하며 거짓을 말하며 악을 행하는 자의 손을 강하게 하여

사람으로 그 악에서 돌이킴이 없게 하였은즉 그들은 다 내 앞에서 소돔과 다름이 없고

그 주민은 고모라와 다름이 없느니라 --- 너희에게 예언하는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말라

그들은 너희에게 헛된 것을 가르치나니 그들이 말한 묵시는 자기 마음으로 말미암은 것이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온 것이 아니니라 항상 그들이 나를 멸시하는 자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평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며 또 자기 마음이 완악한 대로 행하는 모든 사람에게 이르기를 재앙이 너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였느니라”(23:11-17)

 

오늘날 목사들은 선지자와 제사장을 겸하고 있다.

그런데 그들이 사악하여 교회에서도 악을 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마리아 선지자들에게서는 우매함을 보았고

예루살렘 선지자들에게서는 가증함을 보았다.

 

예루살렘의 선지자들의 가증함은 간음을 행하고 거짓을 말하고

악을 행하는 자의 손을 강하게 하였다. 그 악에서 돌이킴이 없게 하였다.

간음과 거짓과 악행은 붙어 다니고 세트로 이루어진다.

우상과 짝하는 것이 영적 간음이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는 것이다.

 

영적 간음은 육체적인 간음으로 항상 전진한다.

이를 합리화하느라 거짓을 일삼고 권력에게 부자에게 빌붙어

그들을 악행을 회개시키는 것이 아니라 손을 강하게 하여 주고 편안하게 해주며 조장한다.

 

하나님 앞에서 그 거짓 선지자들 제사장들은 뭐와 같으냐?

불과 유황으로 멸망한 소돔과 같고, 그 백성은 함께 멸망한 고모라와 같다.

한 가지로, 소돔과 고모라처럼 멸망할 자들이라는 것이다.

선지자와 백성이 짝짜꿍하여 함께 저주와 멸망의 길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너희에게 예언(설교)하는 선지자(목사)의 말을 듣지 말라!

그들은 우선 맘이 편하고 복과 소망에 넘치게 하지만, 헛된 것을 가르치고 있다.

그들이 가르치는 묵시(설교)는 자기 마음에서 나온 것이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자기 탐욕과 정욕에서 나온 것이고, 말씀을 빙자하여 헛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거짓 선지자들에 대한 경고는 구약 대선지서 소선지서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오늘날 대부분의 목사들은 선지서를 설교하지 않는다.

축복에 대한 말씀만 골라 설교하고, 저주에 대한 말씀을 가르치지 않는다.

천국에 대한 말씀만 골라 가르치고, 지옥에 대한 말씀은 설교하지 않는다.

 

목사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는 선생 목사에게 왜 선지서는 가르치지 않느냐?’ 하고 물으니

그가 대답하기를 다 똑같은 말만 하고 있지 않느냐였다.

여러분, 제발 선지서들을 읽어야 한다. 그 이스라엘이 지금의 교회이고 곧 나이다.

거기에 그 거짓 선지자들에 목사를 대입하고, 그 이스라엘에 나를 대입하고 읽으면 틀림이 없다.

 

위로와 축복의 말이 좋다고 은혜 받았다고 사람들은 몰려들 간다.

우리 주님은 지옥 말씀하지 않고 천국 말씀한 적 없고,

평강과 형통 말씀하며 반드시 저주와 멸망을 말씀하신다.

성경은 항상 균형을 말하지, 어느 한 쪽으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다.

어느 한쪽으로, 좌로나 우로 치우치는 것이, 거짓 선생들의 특징이다.

 

2. “그들은 멸망하게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이는 자들이다

 

그들은 멸망하게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2:1)

 

이단은 끝이 다르다는 뜻이다.

같은 것 같은데 보니까 끝이 이상한 것이 이단이다.

성경을 쉽게 잘 가르친다고 하는데, 끝에는 교주가 하나님, 예수가 되고

속한 무리와 교회만이 천국이고, 아닌 자들은 다 지옥 자식들이 된다.

 

자기들을 피로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자기들의 교주가 주가 된다.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다.

멸망은 먼 것 같아도 그렇게 멀지 않다.

 

이단 중에 가장 큰 이단은, 가장 큰 거짓 선생들은, 제도권 종교를 장악하고 있는 자들이다.

이들은 갖은 전도와 전도 폭발의 방법과 수단을 동원하여 사람 수를 늘려서 세력을 만들고,

세속에 물들어, 현재의 정치 권력과 한 편이 되고, 부한 자들과 한 통속이 되어,

하나님이 돌보라는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더 어렵게 만든다.

 

종교적 열심은 있는 것 같은데 말씀의 행함은 없는 거짓 선생들이

바로 사마리아 선지자들이고, 바리새인의 누룩이다.

 

반면에, 현대판 예루살렘의 선지자들은 세속주의에 물들어서,

세상 지혜와 성경의 말씀을 교묘히 섞어 간음을 행한다.

악을 선하다 하고 선을 악하다 하며 가증한 일들을 서슴치 않는 거짓 선생들이

바로 사두개인의 누룩이고 예루살렘의 선지자들이다.

 

믿음의 행함은 없어, 켜 놓은 등불은 없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못 되고

속 따로 겉 따로, 맘 따로 행함 따로가 있을 뿐이다.

말씀의 소리는 요란한데, 성품과 행함의 열매는 없다.

 

주님은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하셨다.

그들은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다.

주님은 그들의 열매 곧 성품과 삶의 열매를 보고 알라고 하셨다.

가시나무가 포도를 맺을 수 없고, 엉겅퀴가 무화과를 맺을 수 없다.

 

3. “탐심으로 지어낸 말을 가지고 너희로 이득을 삼을 것이다

 

여럿이 그들의 호색하는 것을 따르리니 이로 말미암아 진리의 도가 비방을 받을 것이요

그들이 탐심으로써 지어낸 말을 가지고 너희로 이득을 삼으리니

그들의 심판은 옛적부터 지체하지 아니하며 그들의 멸망은 잠들지 아니하느니라”(3)

 

문제는 그들이 이익을 따르지 진리를 따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진리는 이익을 위한 도구이고 수단이고 방편일 뿐이다.

어릴 때부터 공자왈 맹자왈 배워서 과거 합격하고 벼슬 따고 부자 되는 것이 목적이다.

 

공부 잘하여 좋은 대학 가서 공무원 판검사 되고 의사 기술자 정치인 경제인 되어,

이익을 많이 쟁취하기 위해, 하나님도 재물도 권력도 겸하여 섬긴다.

죄와 회개는 뒷전이요 예수 믿는 것도 이익을 쟁취하기 위한 수단이다.

 

호색은 간음이면서 이익을 쫓아간다는 뜻도 포함된다.

진리를 표방하며 이익을 호색하고 따라가니, 참 진리의 도가 비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재물과 축복 노래를 잘 부르고 읊어야 능력 있고 실력 있는 목사가 된다.

 

그들에 대한 심판과 멸망은 결코 잠들지 않는다.

참 그리스도인들의 상과 축복과 영광도 결코 잠들지 않는다.

이 땅에서도, 현세에도, 여러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