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복음비판

[스크랩] "미국제 영성에 속지 말라"(마이클 호튼)을 읽고2

강대식 2010. 11. 11. 12:16

"미국제 영성에 속지 말라" (저 : 마이클 호튼)를  읽고 2

 

                                                                          

우리 시대를 어떻게 표현하는 것이 가장 적당할까? 사람들은 이 시대를 향하여 문화의 시대이며, 정보화의 시대라고 말한다. 이 말에 꼬투리 잡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2% 부족한 느낌을 받는다. 그것은 우리 시대가 가지고 있는 영적인 상태에 대한 이해 때문이다. 이 시대는 영적인 면에 있어서 신비적 영성이 지배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최첨단의 과학적 발달을 누리는 시대이지만 동시에 신비주의적 영성이 바닥부터 채워져 가고 있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그것은 교계의 대표적인 신문에 나타나는 광고만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참으로 염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 마이클 호튼의 “미국제 영성에 속지 말라”는 우리가 망각하고 있는 즉 2% 부족한 것에 대하여 성경적이고, 역사적이며 실증적인 관점에서 바른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특별히 이 책을 종교개혁주간에 읽을 수 있었던 것은 행복이었다. 우리는 종교개혁의 후예들로서 살아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종교개혁이 다시금 필요한 시대를 맞이하였다. 그것은 우리의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삶에 종교개혁자들의 외침이 점점 사라지고 있거나 혹은 변질되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교회의 가르침에 세상이 움직이지 않는다. 그리스도인의 정직함과 믿음의 행동은 세상은 경외의 눈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너나 잘하라고 비웃고 있는 모습을 본다. 이 모든 원인이 어디에서 왔을까? 그것은 교회가 본질적인 사명을 상실하였기 때문이다.

마이클 호튼은 이러한 상황에 대하여 종교개혁의 후예로서 바른 길로 되돌아오기를 소망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쓴 것이다. 이 책의 분명한 목적은 교회를 비판하기 위하여 쓴 것이 아니라 기독교 신앙의 가장 핵심적인 고백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좀더 성경적인 방향에 맞추기 위한 것이다. 특별히 종교개혁자들의 바른 신앙고백이었던 바른 교리의 회복을 촉구하는 한 편의 긴 설교이다.

사실 우리 시대는 신앙 고백적 신앙과 교리적 신앙에 대하여 인기가 없다. 교리를 설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시대이다. 교리보다 직접적 체험을 더욱 선호한다. 말씀에 근거한 신앙보다. 성령의 직접적 계시를 좋아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래서 말씀을 깊이 연구하고 알아가는 집회보다 성령의 뜨거움을 기대하는 집회가 더욱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이 모든 것은 교회 성장과 부의 창출이라는 영광의 신학에 물들여 있기 때문이다. 이제 십자가의 고난의 신학과 삶은 철지난 폐기물처럼 여겨지고 있는 시대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이러한 시대를 향하여 1세기의 영지주의 시대로 돌아가고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영지주의는 속사람의 구원을 추구하는 것이다. 영지주의는 방탕한 분파와 금욕적 분파가 있는 둘 다 육체를 경시하고 있다. 이들은 혼합주의며, 개인적이고 주관적이며, 멀리계신 하나님보다 가까이 계신 하나님을 우위에 두며 물질보다 영을 우위, 반제도적 성향,반성례주의,반역사주의,구약성경에 대한 의심, 페미니스트신학, 반 지성주의다.

이들은 개인적인 명상으로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또한 하나님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애써서 모여서 예배하는 것이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영지주의 현대적인 모습은 바로 교리 보다는 체험을 제도보다는 개인을 인지적인 것보다는 신화적이며 몽상적인 것을 공식적인 종교보다는 대중의 종교를 딱딱하고 비인격적인 이미지보다는 신성에 대한 부드럽고 따스한 이미지를 남성적인 것보다 여성적이며 양성적인 것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러한 모습이 지금 미국 교회를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설교가 복음의 내용이 아니라 자아실현을 위한 가르침으로 전락하였다는 것이다. 특별히 저자는 미국의 오순절 운동에 대하여 심각한 우려를 가지고 접근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여기에 오순절 부흥 운동의 기수 이었던 챨스피니를 평가하기를 상당한 영지 주의적 경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챨스 피니는 신조와 신앙고배 그리고 교회의 권위와 예배의식과 하나님의 주권을 배격하였으며 성례전도 중요시 여기지 않았다. 이러한 역사적 모습들이 현대의 교회 안에 깊이 뿌리를 박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오순절뿐 아니라 미국의 복음주의도 이러한 영지 주의적 성향으로 기울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영지주의가 미국의 문화와 현대 기독교를 다 삼켰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영지 주의적 모습이 이제 일상화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영광의 신학은 있으나 십자가의 고난은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찾아오시는 계시의 은혜는 사라지고 초월적 명상을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기를 좋아하는 것이다. 결국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자신을 계시하신대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을 둘러싼 역사적 사건들을 통해 자신을 계시하신 하나님을 이해하기 보다는 그리스도의 내적인 활동에 더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다. 결국 성경의 하나님은 없고 내가 만나고 만들어낸 하나님만 존재하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시대의 위기를 바라보면서 그리스도인들이 바로 서야 할 자리를 강조하고 있다. 그것은 사람에게 아부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말하는 본질적인 복음을 전하라는 것이다. 즉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은 바로 십자가 신학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죄인이며 죄는 오직 십자가 안에서만이 용서는 것이다. 또한 이 시대는 점점 말씀을 듣는 것을 거부하면서 엔터테이먼트의 예배를 통하여 자기만족에 이르고 있다는 것이다. 즉 설교와 설교자가 더 이상 필요 없으며 이 시대에 그리고 모든 세대에서 접촉하는 하나님의 방법은 성령의 의해 권능을 받고 성령의 지시를 받는 삶을 사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직 말씀과 성례전을 통하여 역사하신다는 것이다. 말씀과 성례전은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는 통로이기 때문이다. 또한 말씀 없이 성령의 역사는 없으며 구원도 없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이다. 성령은 오직 말씀과 성례전을 통하여 역사하신다. 그리고 이 일을 위하여 설교자를 세우신 것이다. 이것이 성경의 가르침인 것이다. 또한 오늘날 부문별하게 진행되고 있는 찬양에 대하여 분명한 입장을 제시하고 있다. 음악 스타일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영지 주의적 사고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응답은 말씀이라는 수단을 통하여 주신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시대의 가장 첨예하게 논쟁거리가 되고 있는 성령과 그의 사역에 대하여 분명하게 신앙고백서를 통하여 바르게 제시하고 있다. 성령의 역사는 말씀 선포와 올바른 성례전을 통하여 역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코 성경의 말씀 없이 역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말씀 없이 성령께서 직접 게시한다는 것은 영지주의 신앙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 정말 필요한 것은 성령에 대한 성경적 교리의 회복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완전 성화는 없으며 성경은 점진적 성화를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와 번영의 복음과 긍정적 사고방식의 복음이 아니라 십자가와 고난의 복음을 촉구한다. 긍정적 사고방식의 복음은 거짓 선지자이다. 오히려 고난을 통하여 자류를 누리고 십자가의 길을 가는 것이 참된 사랑의 길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이라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고통 하는 마음을 볼 수 있었다. 자신의 눈에 비친 미국 교회의 모습은 처참하였기 때문이다. 다시금 십자가의 신학을 회복하지 않는 한 참된 소망이 없는 것을 바라본 개혁자의 외침이었다. 그는 종교개혁 전통에 따라 바른 신앙고백과 교리의 회복이 있어야 함을 강조한다. 이것이 교회를 살리는 길이기 때문이다.

미국 교회의 것이라면 무조건적으로 따라가는 사대주의적 신앙에 경고를 보여주고 있다. 중국산 김치에 기생충 알이 발견 되서 전부 페기처분 되고 모든 수입품에 대하여 철저한 검역을 하도록 하였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 책은 미국 수입품에 기생충 알이 있으니 조심하고 잘 검역하여 수입하라고 경고하고 있다.

이러한 저자의 외침을 보면서 조국 교회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말할 수 없는 동일한 고통을 느끼었다. 영성이라는 말이 아무런 정의 없이 난무한 현실을 본다. 또한 모든 것에 영성이라는 말을 붙이고 환호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 의한 참된 구원에 길보다는 오직 직관과 체험에 의한 것이 더 중요시되고 있다. 신비주의적 은사집회에 사람들이 몰리고 이곳저곳에 생기고 있다. 체험이 모든 것을 사로잡고 있다. 이것은 사단의 전술에 휘말려 있는 것이다.

여기에 설교자는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기보다 쉬운 설교로 일관하고 있다. 의로움과 검소함과 거룩한 삶을 위하여 죄에 대한 바른 선포가 있는 설교는 사라지고 있다. 점점 부의 신학만이 난무하고 번영의 설교가 설치고 있다. 지금처럼 성령을 강조한 적은 없다 그러나 잘 보면 대부분 영지 주의적 성령관이 한국 교회를 사로잡고 있다. 더구나 교회 성장만 하면 모든 것이 인정되어지는 이 시대의 모습은 참으로 비참하다. 말씀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찬양을 통하여 내적인 만족을 누리는 시대다. 집회 광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교회를 위하고 사회를 위한 거룩한 삶을 사는 이들은 많지 않다.

그리고 다음 세대를 책임 질 이 시대 청년들의 신앙에서 성령의 음성을 듣는 것이 유행이 되고 지역의 영을 대적하는 것이 정설이 되어지고 있다. 설교보다는 성령의 음성을 중시하는 영지주의 청년들을 낳고 있는 일단의 단체들을 보면서 더욱 가슴이 아프기 때문이다. 설교자들의 권위가 사라지고 설교 듣는 이들의 준비됨도 사라지고 말았다. 다음 세대를 보면 두렵다. 하나님의 말씀을 유일한 권위로 삼고 전적으로 순종하기 보다는 또 다른 계시를 추구하는 시대를 보기 때문이다. 체험이 중요하다. 그러나 말씀보다 앞서가면 십자가와 관계없는 것이다.

긍정의 힘과 영웅적 그리스도인들에게 관심을 갖고 있는 우리 시대에 십자가가 보이지 않는다. 교리와 신앙고백은 찾아 볼 수 가 없다. 정말로 깜깜한 시대이다. 정말로 회복해야 할 신앙은 종교개혁 전통의 성경적 신앙고백과 교리의 회복이다. 이 시대와 맞지 않을지 모르자 이것이 소망이다. 종교 다원주의 시대의 강력한 힘은 원색적 복음이다. 이것이 이 시대를 살리고 하나님 나라를 준비하는 것이 된 다.

“미국제 복음주의 영성에 속지 말라” 참으로 적절한 시기에 나온 책이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하여 젊은 개혁자의 외침을 들을 수 있음에 너무 감사한다. 또한 무엇이 바른 진리의 길인지 그리고 길이 비록 좁고 가는 길이라 할지라도 포기하지 않고 가야함을 확고하게 되었다. 목회를 하면서 늘 갈등하고 고민하는 것이 참된 교회를 만드는 것인가? 아니면 성장을 위한 교회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흔들림에 일침을 가하여 주었다.

이 책은 종교개혁을 기념하는 이 달에 하나님의 주신 선물이다. 이러한 외침이 잠잠한 이 시대에 이 책이 많이 읽혀지기를 소망한다. 그것은 조국 교회에 소망이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http://blog.paran.com/thebookljh/41329686


출처 : 나실인성경원
글쓴이 : 강대식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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