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굿윈

부분적으로 더럽혀진 양심도 두려움과 의심을 증폭시킨다/ 토마스 굿윈

강대식 2012. 10. 31. 19:52

우리 안에 의심과 두려움을 불러일으키고 조장하는 육적인 이성과 의심의 타락한 원리들이 있듯이, 우리 안에는 많은 죄책감이 있고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잘못된 태도가 있다. 그리고 우리는 양심을 갖고 있는데, 이 양심은 부분적으로 더럽혀지고 더 나아가 이 모든 잘못된 원리들과 연합하여 우리의 두려움과 의심을 증가시킨다.

 

그리고 우리는 어둡고 약한 피조물이듯이, 죄 많은 피조물이기도 하다. 그리고 바다의 파도처럼 혹은 요단강의 범람처럼 이 죄악은 우리의 양심에서 부풀어올라 범람하게 된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의 진노가 임했을 때(시38:1,2), 탄식했다. “내 죄악이 내 머리에 넘쳐서"(4절). 우리의 양심이 우리 안에서 부글부글 끓고 바닥까지 휘저어져서 가열되어 찌끼처럼 올라와서 둥둥 뜨는 혼란 상태에 빠질 때, 마음은 교활해지고 거짓으로 가득 차게 된다. 다윗의 경우가 그랬다. 그가 살인죄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채찍에 맞을 때, 죄책감뿐만 아니라 자기 마음이 얼마나 간사한지를 깨닫고 ‘내 속에 지혜를’ 달라고 요청한다(시 51:6).

 

이 간사함 때문에 우리의 양심은 우리의 죄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 그런 간사함은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도록 가려 버린다. 그리고 이 간사함은 찌꺼기와 같아서 키질을 하며 밀을 까부를 때 위로 뜨게 된다. 마찬가지로 심령의 이런 소동과 키질 속에서 우리의 타락은 양심 속에서 위로 떠오르게 된다. 반면에 우리 안에 있는 은혜는 그 밑에 가라앉아 있어서 눈으로 볼 수 없다. 구름의 어둔 면처럼 우리 마음의 어둔 면도 우리 쪽으로 돌아서고 밝은 면을 차단시킨다. 그리고 우리가 최상의 상태에 있을 때에도 변덕이 일어나곤 한다. 우리의 양심 속에 변덕이 일어나면 우리는 고통과 고난의 이 지독한 발작에 던져지게 된다.

 

따라서 하나님의 영이 우리 자신의 은혜의 빛을 우리에게서 감추시고 우리의 양심이 우리의 가장 훌륭한 행위 속에 있는 교활과 타락을 드러낸다면, 우리의 마음은 우리 자신을 위선자라고 결론지을 것이다. 브래드포드(Bradford) 경은 자신의 편지에서 자신에 대해 그렇게 말했으며 다른 경건한 사람들도 그랬다.

 

양심은 병이 들었을 배설물처럼 색깔을 바꾸고 위선자처럼 어리석게 자신의 상태를 바라본다. 거듭난 사람에게서도 양심이 부분적으로 더럽혀져 있기 때문에 그렇다. 그리고 비록 우리가 부분적으로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달’았다고 하더라도(히10:22) 완전히 그런 것은 아니다. 우리의 인격이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해서 완전히 죄책감으로부터 벗어난다 하더라도 그렇다.

 

우리의 양심에 피를 뿌리는 것은 불완전하다. 그것은 양심이 부분적으로 성화된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양심은 우리의 상태를 증거하고 입증하는 것을 의무로 삼고 있는 기관이다. 따라서 다른 모든 기능의 성화가 불완전하듯이 양심의 성화도 그렇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이 양심과 더불어 우리 상태가 좋다고 증거하기를 거부하고 우리의 양심에 임재하시고 남은 더러움을 씻기 위해 양심에 그리스도의 보혈을 뿌림으로써 용기를 주고 격려하기를 중단한다면, 우리의 양심은 두려움과 의심과 자기 정죄에 빠지게 된다.

 

- 토마스 굿윈, 『어둠 속을 걷는 빛의 자녀들』, pp 62-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