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나단 에드워즈

일시적 자극으로 마음 근원이 변화한 것처럼 보이는 경우/ 조나단 에드워즈

강대식 2012. 12. 25. 01:00

선한 사람은 쌓은 선에서 선한 열매를 맺습니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선한 생각들이 선한 열매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생각과 그 속에 쌓여있는 것의 본질은 같은 것입니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생각들 대부분이 헛되고 어리석고 감각적이고 세상적이고 이기적이라면, 마음에 쌓은 것, 곧 그 마음의 원리가 그러한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마옴에 쌓아 놓아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생각들이 영적이고 거룩한 것이라면, 여러분 은 분명 영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그렇지 못하다면 여러분이 가진 모든 생각들은 자신이 영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아님을 증거하는 셈입니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나 영적인 모양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 생각들이 마음의 샘 근원에서 나온 것이 아닐 수도 있음을 주목해 보아야 합니다. 외부로부터 내면에 가해지는 일시적인 자극으로 인해 마치 마음 근원의 본질이 변화한 것처럼 보이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경우, 내면에 존재하는 ‘양심’은 가책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그 양심의 가책은 마음에 영향을 끼치거나 인상을 주어 이전에 가지고 있던 성향이나 정서와 정반대의 성질을 가진 행동들을 유발합니다. 물은 아래로 흘러내리는 성질이 있지만 도구를 이용한다면 땅 위로 솟구쳐 올라갑니다. 그러나 도구를 통해 가해지던 압력이 중단되면 물은 그 본래의 성향으로 돌아와 낮은 곳으로 흘러갑니다.

 

마음의 가책이나 외부의 어쩔 수 없는 환경으로 인해 갑자기 떠올랐다가 사라지는 경우를 영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마음의 상태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소낙비’로 불어난 물은 한동안 맹렬한 기세를 자랑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불어난 물줄기가 이내 말라버리는 것처럼 ‘뇌성벽력 같은 갑작스런 양심의 가책’의 대단한 지극도 머지않아 잦아들고 시들해지는 것입니다.

 

물론 그 시간만큼은 영적으로 생각하는 은혜에 조금이라도 관계되어 있었다는 사실은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그런 은혜의 수준은 여전히 전과 같이 낮은 상태로 돌아가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뿜어내는 샘의 구멍을 차단하면 물은 흘러나올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물의 통로를 막았던 방해물이 제거되는 순간부터 그 샘은 다시 예전과 같은 분량의 물을 쏟아낼 것입니다.

 

일시적으로, 또는 부분적으로 일어나는 영적인 생각 자체를 전혀 유익하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거기에는 분명한 가치의 차이가 있습니다. 마음의 자연스러운 내면의 원리로 인해 거룩한 생각들이 일어나고 마음의 거룩한 성향이 사람의 정서를 온전히 장악하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 사이에 비교할 수 없는 가치의 차이가 존재합니다.

 

자발적이지 않은 외부의 자극으로 잠시 가지게 된 관념의 영향을, 온전히 영적인 것에 사로잡혀 하늘의 것을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려는 심령의 상태와 같은 가치로 여길 수는 없는 것입니다.

 

- 조나단 에드워즈, 『영의 생각, 육신의 생각』, pp 45-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