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거스틴

어거스틴, 『하나님의 도성』, 크리스챤다이제스트, 1998(2012), 1138면, 35,000원

강대식 2013. 1. 31. 19:26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하나님의 도성」은 서양 사상사의 획기적인 작품들 중의 하나이다. 그리스도교에서는 2,000년 역사상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과 칼빈의 「기독교 강요」와 더불어- 가장 위대한 3대 저서 가운데 하나로 꼽고 있다.

410년 알라릭은 로마를 초토화했다. 그 소식을 지중해 건너편에서 듣고 큰 충격을 받은 아우구스티누스는 로마가 이교도의 손에 의해서 파괴된 그 원인을 추구하는 동시에 로마가 파괴된 책임이 절대로 그리스도교도들에게 있지 않다는 것을 변명하고 그 책임이 신의 뜻을 어긴 로마 시민에게 있다는 것을 말하고 그러나 그 배후에는 역사를 주관하시는 신의 섭리가 있다는 것을 밝히려는 데 그 동기가 있었다. 그는 로마가 초토화된 후 3년간 숙고하다가 413년에 「하나님의 도성」을 쓰기 시작하여 425년, 그가 죽기 4년 전에 이 대작을 완성했다.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제1권에서 10권까지는 그리스도교의 신앙을 변호하고 있으며 11권에서 22권까지는 두 도성이 인류역사 안에서 어떻게 서로 관계를 가지면서 진행되는가를 고찰하고 있다. 특히 마지막 세 권(20~22)에서는 그의 특유의 종말론을 전개한다.

「하나님의 도성」은 처음으로 시도된 거대한 역사철학인 동시에 역사신학이다. 그는 인간 역사의 단계마다 사건마다 측면마다 신의 섭리와 역사를 발견했다. 이러한 역사관이 시발점이 되어 서구의 역사학이 발전되었다.

 

우리에게 히포의 성 어거스틴 (St. Augustine of Hippo)으로 더 잘 알려진 아우렐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는 로마의 아프리카 속주에 있는 내륙도시인 타가스테(Thagaste:오늘날의 튀니지아와 동 알제리)에서 A.D. 354년에 태어났다. 그가 출생한 세기는 역사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그다지 친숙하지 않다. 왜냐하면 그 시기는 고전 그리스-로마 문명의 쇠퇴와 서구 유럽 문명의 출발 사이에 걸친 5세기의 중간기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때는 그리스도교를 위해서는 중요하고 특징적인 시대였다. 왜냐하면 그때 로마 황제가 이교도이자 박해자로부터 그리스도교의 보호자요 중재자로 변신했으며, 이집트와 팔레스타인과 시리아와 소아시아에서 수도원 운동이 현저하게 발달했으며, 각처에서 대규모 교회당과 다른 종교 건물이 건립되었으며,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처음으로 대 신학적 논쟁과 신학적 정의 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또한 이 시기는 아마도 근대세계에 의해서보다는 고대나 근대에 동등한 정신적 비중을 지닌 어느 집단에 의해서도 높이 평가받는 위대한 신학자들의 시기이기도 했다. 이들은 교부신학의 황금기에 활동했던 교부들이었다. 그 중에는 대 바실, 그레고리 나지안젠, 닛사의 그레고리, 요한 크리소스톰, 암브로시우스 제롬, 그리고 아우구스티누스가 있었다. 이 모든 사람들은 329년(바실)과 354년(아우구스티누스) 사이에 탄생했으므로 로마제국이 공식적으로 그리스도교화 된 이후에 성숙에 이르게 된 1, 2 세대의 후예였다.

 

아우구스티누스로 하여금 회심하도록 이끈 자극 중의 하나는 밀라노에서 볼 수 있었던 이집트 수도사들을 모방한 수도원 생활의 모범이었다. 그는 세례받은지 4년 후에 히포 레기우스로 가서 몇몇 동료들과 함께 수도사처럼 생활하기 시작했다. 그는 391년에 성직자로 서임되었다가, 395년에는 그 도시의 감독으로 성별되었다. 그 이후 35년 동안 그는 분지모양으로 된 그 도시에서 아직도 기둥의 마루와 받침이 남아있는 교회당 가까이의 집에서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