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의 우위성과 기도와 영혼 돌봄이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에룰 헐스
오늘날 설교를 교회 생활에서 중시하지 않고 아랫자리로 끌어 내리려는 경향이 많다. 이런 압력을 받는 때 청교도들에게서 우리는 좋은 모범을 본받을 수 있다. 그들은 설교의 우위성을 항상 유지하였다. 청교도설교의 기본원칙은 다음 세 가지이다.
1. 설교의 독특한 위치는 회심과 양육과 지속이다
아서 힐더샘(Arthur Hildersam)의 말은 이 특징을 잘 대변한다.
“설교는 목자장이신 그리스도가 보냄을 받고 행하신 주된 사역이었다(눅 4:18,43). 주님의 사역 중에서 그 어떤 일도 설교만큼 더 열심히 많이 행해진 일이 없다. 바울은 자신이 세례를 베풀기 위해서가 아니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그리스도의 보내심을 받았다고 하였다(고전1:17) 우리는 이 복음 전파 사역을 위해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 그러므로 복음 설교의 모든 기회를 기쁘게 받아 들여야 한다.”
청교도들은 모범적인 설교자들이 되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하였다. 그들은 설교가 그들의 일차적인 소명이라고 믿고 설교의 우위성을 견지하였다. 지성, 감정, 양심, 의지를 포함하는 인격체 전체에 설교보다 더 강력한 영향을 끼치는 은혜의 수단은 없다. 설교처럼 성령 하나님이 독특하게 사용하는 다른 방법이 없다.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러 왔던 세례 요한은 설교로써 자신의 사역을 마쳤고 인자 자신도 설교를 하기 위해 오셨다. 세례 요한은 바윗돌이 그의 강대상이었고 하늘이 그의 마이크였다. 그의 설교는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능력이 있었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메시지를 듣기 위해 먼 거리에서 모여들었다. 청중 들이 왔을 때 요한은 그들의 귀에 듣기 좋은 말들로 아첨하지 않았다. 그는 직접 그들의 양심에 대고 말하였다. 그는 청중들이 도움을 받아야 할 잃어버린 죄인들이라고 지적하였다.
오늘날 설교의 우위성을 부정하려는 무거운 압력이 점증되고 있다. 특히 미국 교회에서는 설교를 찬양 예배와 기타 음악 프로그램으로 대치하려는 경향이 있다. 어떤 교회들에서는 강해 설교는 고사하고 짤막하기 그지없는 설교가 겨우 끝자리 순서에 간신히 매달려 있는 형편이다. 이런 교회들의 주된 순서는 치유, 표적, 자극적인 간증들이다. 바울은 유태인들이 기적적인 표적을 요구한다고 지적하면서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한다’(고 전1:22-23)고 대답하였다.
설교자의 삶에서 설교의 우선권이 흔히 프로그램들에 의해서 빼앗긴다. 설교자의 에너지와 시간이 행정 업무로 소진된다. 이것은 효과적인 설교 사역을 막아 버린다. 돈 카슨은 미국에 있는 효과적인 강해 설교자치고 기도와 성경 공부를 보호하기 위해서 백방으로 노력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말하였다(행6:4), 미국에는 강해 설교를 통해서 세워진 초대형 교회들이 있다.
성령이 직접 통화를 하고 설교의 영감을 주기 때문에 설교문을 작성하거나 잘 준비된 아웃라인을 따라가는 것은 비성경적이라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성령은 충만한 기도와 헌신된 노력을 인정해 준다.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딤후2:15).
효과적인 강해 설교는 지성과 마음의 엄청난 단련을 요구한다. 설교자가 강해 시리즈를 하려고 시도한다면 이것은 뜨거운 기도와 묵상이 있은 다음에 도달할 수 있는 큰 작업이다. 설교의 우위성을 은근히 잠식시키는 또 하나의 현상은 토의 모임이 설교보다 그리스도의 왕국을 위해 더 낫다는 생각이다. 설교자가 문맥을 잡고 하나님의 말씀을 회중에게 영적 능력으로 적용하면 토의 모임과는 달리 회중은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고 격려를 받으며 심령이 새로워진다.
2. 설교자의 삶은 자신이 설교하는 실체를 드러내야 한다
회중들 특히 방문자들이 교회에 와서 말씀을 들을 때 마음속에 먼저 일어나는 질문이 있다. ‘이 설교자는 자기가 설교하는 대로 살고 있을까?’ 바울은 디모데에게 교훈하였다. ‘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살펴 이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딤전4:16). 리처드 백스터는 목회자들에게 이렇게 권면하였다· “자신이 은혜 가운데 있다고 만족하지 말라. 당신의 은혜가 적극적이고 생동적인 실천 속에서 지켜진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설교하기 전에 자신이 공부하고 준비한 설교들을 스스로에게 먼저 설교하라”.
사도 바울은 자신의 생활 방식을 디모데에게 권하였다. “나의 교훈과 행실과 의향과 믿음과 오래 참음과 사랑과 인내와 박해를 받음과 고난과 --- 어떠한 박해를 받은 것을 네가 과연 보고 알았거니와”(딤후3:10). 설교자의 거룩한 삶과 그의 설교를 듣는 양떼 사이의 밀착된 관계는 백스터의 다음 말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만약 우리가 우리의 사랑을 내려놓으면 회중의 사랑을 끌어올릴 수 없다. 우리가 오류나 무익한 논쟁으로 불량 음식을 먹으면 우리의 청중이 그 찌끼를 먹게 된다. 반면 우리가 믿음과 사랑과 열성이 넘치면 이와 동일한 은혜들이 어찌 회중에게 신선한 은혜로 흘러 들어가지 않겠는가!” 위선을 피하려면 설교자는 자신의 삶에서 자기가 설교하는 메시지를 드러내야 한다.
3. 기도와 깊은 성경 공부가 효과적인 설교의 기반이다
사도들은 갈등과 비난에 직면하고서 자신들의 우선권이 기도와 말씀이라고 주장하였다.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사역에 힘쓰리라”(행6:2-4).
목회자치고 비난의 대상이 안 되는 자가 누가 있겠는가? 우리는 모든 사람의 마음에 다 들 수는 없다. 그러나 모든 일에서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리려고 힘써야 한다. 그럼 어떻게 비난에 대처해야 할까? 그 대답은 기도이다. 우리는 모순을 초월한 자들이 아니다. 사실 우리는 청중들에게 목회자들에 대한 비판을 해 달라고 격려해야 한다. 목회자가 진정으로 겸비해지려고 한다는 것을 회중이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영적 자세는 기도의 삶을 통해서만 유지될 수 있다.
청교도 목사들은 설교의 우위성을 견지하는 데 가장 철저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균형을 잃지 않았다. 그들은 영혼의 의사로서 조언의 책임과 신자들을 격려하는 역할을 등한시하지 않았다. 우리는 청교도 시대와 다른 종류의 압력을 받으면서 산다. 그래도 역시 청교도들의 모범에서 감동을 받을 수 있다. 예로써, 서머셋에 있는 멜즈라는 작은 마을에 리처드 페어클러프(Richard Fairclough)라는 목사가 있었다. 그는 1682년에 61세로 사망했는데 존 하우가 그의 장례식 설교를 맡았다. 이 설교에서 존 하우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페어클러프의 설교를 듣기 위해서 먼 길을 왔는지 언급하였다. “오, 그의 가장 효과적인 사역 아래에서 회중들의 심령이 녹은 적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른다. 그의 기도와 설교와 다른 목회 활동에는 가슴을 뭉클케 하고 생기를 주는 어떤 신비한 능력과 권위가 있었다. 또 어떤 때에는 부드러움과 온화함과 호소력이 있어 그의 입에서 나오는 영력을 저지하기가 거의 불가능하였다. 그의 사역의 효과로 회중은 커다란 깨우침을 받고, 말씀을 알게 되고, 분별력이 생 기며, 갱신된 신자들로 바뀌었다. 그의 봉사는 놀라운 것이었다. 그의 마음이 온통 사역에 쏟아져 있었다. 여러 해 동안 그는 다른 사람들이 자고 있을 때 주님과 함께 있기 위해서 새벽 3시에 일어났다.”
이 실례는 청교도들이 사역에 성공한 원인이 기본 원칙에 철저했기 때문임을 잘 예시해 준다. 우리도 기도와 설교 사역과 영혼을 돌보는 일에서 그들처럼 균형을 유지하면 좋은 사역 성과를 올릴 수 있을 것이다. 기본 원칙에 대한 유추로 음악이나 스포츠를 들 수 있다. 음악가는 기본 기술을 습득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 음악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일은 기본 기술을 습득한 뒤에 가능하다. 스포츠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골프와 같은 게임도 기본기를 완전히 터득하지 않으면 이길 수 없다.
사역의 부름은 영적인 부름이다. 사역자는 경건과 거룩한 삶에 있어 다른 사람들을 앞서야 한다. 이것은 기본이다. 그 다음에 기도와 중보 사역올 해야 하고 동시에 설교 준비를 위한 말씀 공부와 묵상을 통해 머리를 항상 단련시켜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사역자는 자신의 소명을 생각해야 하고 자신에게 끊임없이 적용해야 한다.
기도는 우리가 섬기는 사람들을 품어 준다.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고”(삼상12:23). 우리는 사람들의 삶과 필요를 염두에 두고 설교해야 한다.
- 에룰 헐스, 『청교도들은 누구인가?』, pp 229-2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