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0 주일설교, 기도와 낙심
본문: 눅 18:1-8
1. 항상 기도하고
기도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하나님께 대한 특권이자 의무이다.
“항상 기도하라”고 하신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5:17)고 하신다.
사무엘은 ‘기도하기를 쉬는 죄’(삼상12:23)를 결단코 짓지 않겠다고 했다.
야고보서는 우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신다.
그리고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고 하신다.(약4:2-3)
에베소서는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고 하신다.(엡6:18)
우리 육신의 정욕과 탐욕은 끝이 없다.
이를 위해서 구하는 기도는 들어주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끝도 없는 이기적인 기도들을 다 들어주시면 세상은 무질서의 지옥이 되고 말 것이다.
내 아들만 합격 시켜주고, 내 딸만 취직시켜 주고,
우리 사업만 잘 되게 해주고, 우리 가문만 운수대통이 되게 해달라고 하면,
우리와 우리 새끼들만 오복과 만복을 달라고 하면, 어찌 되겠는가?
한쪽에서는 소풍 가게 비 오지 않게 구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농사를 위해 비를 달라고 한다.
한쪽에서는 독도를 달라고 하고, 한쪽에서는 독도를 지켜 달라고 한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느 기도는 들어주시고 어느 기도는 물리쳐야 할까요?
그래서 성경은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고 하신다.
성령 안에서 기도하면 육신의 소욕들은 내려놓게 된다.
일용할 양식만 구하게 되고, 다른 부분은 하나님께 맡기게 된다.
그런데 사람들은 속사포처럼 육신 충만, 야망 충만한 기도만 하고 끝내고,
그것을 안 이루어 주신다고 원망과 불평의 늪으로 이내 들어간다.
내가 그렇게 기도했는데, 하나도 안 이루어주신다고 한다.
성령 안에서 기도하면, 내 나라와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뜻을 구하게 된다.
우리 주님 말씀하신다.
마6:31-34)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잘 먹고 마시고 입고 잘 사는 것만을 구하는 것은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하신다.
이 모든 것이 있어야 할 줄을 하나님께서 다 아시니까 다른 것을 구하라고 하신다.
하늘에 시민권을 가진 하늘의 사람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자녀들은
다른 것을 구하라고 하신다.
너희는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우리 주님 가르쳐 주신 기도의 순서를 보면서, 우리의 기도 내용을 수정해야 한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로 시작한다.
땅으로부터 시작하지 않고, 땅에 있는 것들로부터 시작하지 않는다.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숭배니라.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골3:1-6)
우리가 다음으로 구할 것을, 주님은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이 여김을 받으시오며
하나님나라가 임하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이 여겨지는 일과
하나님 나라와 그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질 것을 구하라고 하신다.
그러면 이 모든 것을 더해 주신다고 하신다.
이 모든 것을 더해 주시면 하나님을 위해 쓰겠다가 아니다.
주님 가르쳐 주신 순서와 우리의 순서가 정반대인데도 깨닫지를 못한다.
정욕과 탐심을 위해 구해 놓고서는 하나님을 위해 구한 것으로 착각한다.
이것들로 말미암아 복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다.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기를 힘쓰자.
하나님 나라와 내 나라의 순서를 바꾸지 말자.
하나님의 뜻보다 내 뜻, 내 탐심을 앞세우지 말자.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자.
2. 낙심하지 말아야
원수에 대한 원한을 풀어 달라고 간청하는 한 과부와 불의한 재판장의 비유를 들어
우리 주님은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 것을 가르쳐 주신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재판장이라도 늘 와서 괴롭히면
번거로워서도 그 과부의 원한을 풀어주지 않겠느냐? 라고 하신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주지 아니하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하신다.
밤중에 떡 세 덩이를 빌리러 온 친구에게 떡을 주는 것도
벗됨을 인하여서가 아니고, 간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요구대로 준다고 하셨다.
이어서 하시는 말씀이다.(눅11:9-10)
“구하라 그러면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열릴 것이라”.
대개는 조금 구하다가 안 이루어주신다고 낙심하고 기도를 멈춘다.
그러지 말라고, 낙심하지 말라고 하신다.
그분의 나라와 그분의 뜻을 위해 기도한 것은, 성령 안에서 기도한 것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믿고,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라고 하신다.
과부의 원한도 풀어주시는데, 택하신 자들의 밤낮 부르짖는 기도를 안 들어 주시겠느냐?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시42:5)
3. 속히 원한을 풀어주시리라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않으면 속히 이루어주신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믿는 자들에게 항상 문제가 되는 것이 이 ‘속히’이다.
이 ‘속히’가 안 되니까 낙심하고 침체에 빠지는 것이지요.
세례 요한도 옥에 갇혀서 낙심과 침체에 빠져 제자들을 보내어 물었다.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고난이 길어지고 이루어지는 것이 없을 때, 우리야 오죽하겠는가?
아버지의 때와 우리의 때가 다른 것처럼, 우리의 ‘속히’와 아버지의 ‘속히’는 다르다.
모세의 ‘속히’와 하나님의 ‘속히’는 40년의 차이가 있었다.
아브라함의 ‘속히’와 하나님의 ‘속히’는 25년의 차이가 있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6:9)
아버지의 때가 이르러야 한다. 우리가 정한 때, 우리가 구하는 때가 아니다.
우리가 정한 때는 성령 안에서의 때가 아니고 육신 안에서의 때인 것이다.
우리가 유념할 것은, 아버지의 때가 이르러야 속히 이루신다는 것이다.
때가 되면 하나님은 속히 이루시는 것을 알 수 있다.
홍해와 요단의 갈라짐도, 여리고의 무너짐도, 때가 되니까, 속이 이루어졌다.
우리가 성령 안에서 항상 구하고 낙심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속히 이루어 주실 것이다.
그 작은 자가 천을 이루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루는 것도,
"때가 되면 나 여호와가 속히 이루리라“고 하셨다.(사60:22)
그 때가 되기까지 항상 기도하면서 낙심하지 마시기 바란다. 포기하지 마시기 바란다.
아버지의 때가 되면 속히 이루실 것을 믿으시기 바란다.
맹인 거지 바디매오의 이야기가 뒤이어 나온다.
옆 사람들이 잠잠하라고 꾸짖는데도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계속 더욱 크게 소리 지르니까, 주님은 눈을 뜨게 해주셨다.
4. 믿음을 보겠느냐?
믿음이 없으면 계속 부르짖을 수가 없다.
맹인 거지 바디메오에게도 ‘네 믿음이 너를 구하였느니라’고 하셨다.
열두 해 동안 혈루병을 앓은 여인에게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노라’고 하셨다.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부은 여인에게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노라’고 하셨다.
하인의 중풍병 치료를 구한 백부장에게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하셨다.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데리고 온 사람들의 ‘믿음을 보시고’, 치료하여 주셨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자주 책망하시는 말씀이 “믿음의 작은 자들아”였다.
우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다.(엡2:8)
우리는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롬5:1)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골1:23)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라’고 하신다.(고전16:13)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고 하신다.(골2:7)
마17:20)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믿음은 바라는 것들을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 하였다.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가 없다.
그분이 심판하시고 상 주심을 믿어야 한다.
믿음이 있었기에,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고향 친척 아비 집을 떠나 가나안으로 갈 수 있었다.
믿음이 있었기에, 믿음으로 노아는 120년 동안 방주를 짓고 구원을 받았다.
믿음이 있었기에, 믿음으로 모세도 왕궁의 특권과 보화를 버릴 수 있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소유와 환경이 아니라)
우리가 항상 기도하지 못하는 것도,
우리가 자주 낙심하는 것도,
하나님의 때가 되면 속히 이루실 것을 의심하는 것도,
다 믿음이 작고 부족하고 그 믿음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것도 다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믿음을 키우고 견고하게 하여야 한다.
믿음은 말씀을 들음에서 난다.
이를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읽고 묵상하고 지켜 행하기를 힘쓰기 바란다.
성령 안에서 기도하기를 힘써야 한다.
죄와 정욕과 탐욕을 버리고, 거룩한 삶을 살기를 힘써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이루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오늘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이다.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고 때가 되면 속히 이루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음으로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