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를 바라보지 못하게 하는 것들로부터 시선을 돌리라/ 아이작 암브로스
교리. 먼저 우리는 다른 모든 것에서 시선을 떼야 함.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에서 우리의 시선이 다른 곳으로 돌아갈 수 있는 모든 것에서 우리의 생각을 돌려야 한다. 플라톤의 문에는 “기하학자가 아닌 사람은 어느 누구도 이곳에 들어올 수 없다.”라고 적혀 있다. 그러나 내 성경의 문에는 그와는 명백히 대조를 이루는 글귀가 기록되어 있다. “세상적인 마음을 가진 자는 어느 누구도 이곳에 들어올 수 없다.” 예수님에 비한다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주님은 롯에게 다음과 같이 명하셨다. “돌아보거나 들에 머물지 말고”(창19:17). 롯은 소돔을 바라보지 않는 한 소돔의 음란함을 거부하고 혐오할 수 있었다. “그날에 사람이 자기를 지으신 이를 바라보겠으며 그의 눈이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뵙겠고 자기 손으로 만든 제단을 바라보지 아니하며 자기 손가락으로 지은 아세라나 태양상을 보지 아니할 것이며”(사17:7-8).
우리가 시선을 떼어야 하는 것들은 무엇인가?
1. 선한 것: 히브리서 기자는 앞 절에서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에 관해 말한다. 그들은 분명히 믿음의 본으로써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자들이다. 그러나 이 두 번째 대상에 우리 눈이 사로잡혀 있을 때, 히브리서 기자는 구름을 모두 흩어 버리고 그 자리에 예수님을 세운다. ‘아포란’ 예수 그리스도에게 시선을 돌리라고 말한다. 그것도 매일 끊임없이! 성도들은 우리를 선한 길로 인도하는 데 도움을 줄 수는 있지만, 그들도 역시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일 뿐이다. 예수님만이 인도자 중의 인도자시다. 그 모든 성도의 인도자시고, 우리 모두의 인도자시다.
2. 악한 것: 일반적으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는 모든 것에서 시선을 떼야 한다. 그것이 악한 것이라면 더욱 그래야 한다.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서도 시선을 떼야 한다. 그것이 죄로 물든 자아든, 자연적 자아든, 종교적 자아든 관계가 없다. 구체적으로, 우리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에서 시선을 떼야 한다. 사도 요한은 그것을 세 가지로 분류한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요일2:16). 즉 쾌락, 이익, 명예다.
1) 우리는 죄로 물든 세상 쾌락에 대해 이 세상에서 눈을 돌려야 한다. “이 사람들은 --- 육에 속한 자며 성령이 없는 자니라”(유19). 우리는 쾌락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예수님을 바라볼 수 없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13:13-14). 어거스틴이 이 말씀을 읽었을 때 그는 더 이상 읽을 수가 없었다. 아니, 더 읽을 필요도 없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 즉시 빛이 내 마음속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것처럼 모든 의심의 어둠이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어거스틴의 눈은 쾌락에서 돌이켰고 그 후로는 영원히 오직 예수님께만 고정되었다.
2) 우리는 죄로 물든 이익에 대해 이 세상에서 눈을 돌려야 한다. 죄로 물든 이익을 바라보는 것은 예수님을 바라보지 못하게 방해한다.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요일2:15). 세상이 우리 안에서 지배하는 만큼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잦아들게 되어 있다.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약4:4). 그리스도인들 안에 있는 탐심은 영적 간음이다. 하나님과 그리스도 안에서 충분한 모든 것을 갖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피조물 안에서 행복을 찾으려고 갈망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명백한 영적 우상숭배다.
3) 그리스도보다 세상을 더 좋아하는 것에서 눈을 돌려야 한다. 이것은 탐심과 간음의 가장 높은 단계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몸을 창녀의 몸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아, 세속화여! 사모함으로 불붙는 생각들은 마땅히 그리스도에게 바쳐야 할 것이고 수고도 마땅히 그리스도를 위해 드려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것을 모두 세상에 주려고 한단 말인가? 이 사람은 하나님을 자신의 힘으로 삼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부를 의지한 자다. 이 사람은 그리스도 예수보다 자신의 돼지를 더 사랑한 거라사인이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요일2:15). 세상이 영광스럽게 보이는 한, 그리스도는 결코 그 사람에게 소중한 분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달콤한 맛을 느낄수록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더 쓴맛을 느끼게 된다.
4) 우리는 세상의 죄로 물든 명예에 대해 이 세상에서 시선을 돌려야 한다. 이 명예가 단지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좋게 생각하거나 좋게 말하기를 바라는 마음, 그들에게 칭찬을 받거나 영예를 누리기를 바라는 무절제한 갈망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어떤 사람이 무수히 많은 사람의 입에서 내뿜는 입김에 이리저리 날리며 하늘을 떠도는 깃털을 좋아 달린다고 해보자. 과연 그가 그 깃털을 붙잡을 수 있을까? 설사 그가 붙잡는다고 해도 그것은 한낱 깃털에 불과하다. 바로 이생의 자랑, 영예, 헛된 영광이 그것과 같다. 그런 것은 얻기는 어렵지만 일단 손에 얻고 나면 몇 사람의 입김에도 금세 변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것이 안 좋은 점 가운데 최악의 것은 그것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지 못하게 방해한다는 것이다.
- 아이작 암브로스, 『예수를 바라보라』, 1권, pp 41-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