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탄식하는 중보 기도(롬8:26-27)/ 로이드 존스, 로마서강해 6권11장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롬8:26-27)
사도의 논점은 우리가 우리의 연약함으로부터 떠오르는 어려움들 때문에 절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역설한다. 첫째, 저는 여러분들에게 연약함이란 그 자체가 죄가 되는 것이 아님을 상기시켜 드린다. 그것은 태초에 사람이 타락한 결과로 된 것 가운데 하나이다.
여러분이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는 상황에 때때로 처한다는 단순한 사실이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는 표증은 아니다. 연약은 도리어 우리가 사도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기만 하면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에 대한 가장 놀라운 증거를 가져다 줄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첫째, 우리는 성령께서 친히 우리를 도와주신다는 것을 상기하게 된다는 것이다. ‘돕다’는 ‘함께’ ‘극복하다’ ‘들다’라는 의미이다. 두 사람이 서로 극복할 어떤 것을 함께 드는 것을 뜻한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성령께서 우리에게 모든 것을 할 것을 일일이 다 지시한다고 하는 말씀은 아니라는 것이다. 성령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도와주시고 우리에게 보조적인 역할을 해주고 우리의 짐을 들어주시는 것이다.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그것은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말 없이’라는 뜻이다. 말로는 표현을 않거나 또는 어떤 뜻을 나타내지 아니하는 탄식이나 신음을 의미한다. ‘말하지 않고 탄식으로’라는 의미이다. 사도는 우리가 가진 느낌이 너무나도 깊고 오묘하여서 우리가 그 느낌을 표현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사도는 단순히 우리가 그러한 당혹에 빠진 나머지 스스로를 표현해 낼 수 없고 우리의 원하는 것을 나타낼 수 없다고 말하고 있을 따름이다. 우리는 알지 못한다. 누가 탄식하는가? 하나님은 탄식하지 아니하신다. 성령께서 지식이 부족한 일이란 있을 수가 없다. 탄식은 우리 속에 있다. 이 말로 할 수 없는 방식으로 탄식하는 것은 우리이다.
성령께서는 고통 가운데 있는 우리를 발견하신다. 우리는 그릇된 간구를 드리기를 원하지 않는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서 당황해 한다. 성령께서는 하나의 대변자로 오셔서 우리가 어떻게 기도해야 되는지에 대해서 말씀하신다. 변호인의 임무는 그 사람의 입에 말을 넣어 주는 것이고 할 말을 하는 것이다. 우리는 알지 못하지만 그는 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은혜를 입은 두 대변인이 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버지 곁에 계셔서 우리의 대변인이 되신다. 또한 성령의 변호가 우리 속에 있어 우리가 할 말을 알려 주신다. 둘은 완벽한 병행을 이룬다.
성령께서는 언제나 우리 속에서 역사하고 계시며, 우리가 행한 일은 모두 우리 속에 있는 성령의 역사의 결과이다. 그러나 사도가 여기서 취급하고 있는 것은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성령의 역사가 아니다. 우리가 고난과 시련 속에 처해 있을 때 성령께서 행하시는 일은 특별한 사역이다. 우리가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는 그러한 상황에서 대처해야 되는 특별한 유형의 기도이다. 그러므로 어느 의미에서 성령께서 친히 간구하신다고 말해야 한다.
이러한 탄식이 어떤 가치가 있는가? 하나님께서 그 탄식을 들으신다는 것이다.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감찰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다.(렘 17:9-10) 그러므로 말이란 언제나 필요한 것은 아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대할 때에 필요하다면 말없이 대할 수 있다. 그는 우리의 느낌과 우리의 소원에 대한 모든 것을 아신다. 저는 이 인식보다 위안이 되고 더 큰 위로를 주는 것이 없음을 안다. 심지어 그것이 너무나도 작은 신음이라서 자기 자신도 알지 못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그 속삭임을 들으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탄식을 들으실 뿐 아니라 그 탄식들을 이해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를 아신다. 비록 우리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표현할 수 없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아신다.
하나님께서는 이해하실 뿐 아니라 그 생각들을 인정해 주시고 그것들을 환영하시고 그것들을 좋아하신다. “그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우리는 그보다 더 놀라웁게 나아갈 수 있다.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그가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시느니라”. 바울은 성령께서 우리에게 주신 간구들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간구들이라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성령께서 좇아 오셔서 우리의 짐을 거들어 주고, 우리 속에서 우리의 변호인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것을 확증하고 있는 것이다.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뜻대로’ 일을 행하신다. 그것은 하나님의 계획의 일부이고,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는 계획의 일부이다. 이것은 우리의 성화의 일부이고 우리를 지탱해주는 하나님의 방식의 일부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지쳐 있다는 것을 아신다. 우리의 연약함 때문에 우리가 당황하게 될 때 성령을 보내신다. 성령께서 행하시는 일은 하나님의 가련한 백성들이 이 시간 세계를 지나는 동안에 그 백성들에 관한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해석하시고 이해하시는 이 탄식을 산출하도록 성령을 보내신 이가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성도들 안에서만 이 일을 행하신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이 하나님의 기쁘신 뜻이요,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하나님만이 성도들에게 그의 성령을 보내신다. 만일 여러분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이러한 탄식에 빠져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때, 그것은 여러분이 성도라는 적극적인 증거가 된다는 것이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하나님의 후사라는 적극적인 증거가 되는 것이다. 탄식들은 여러분의 최종적이고 궁극적이고 완벽한 구원에 대한 절대적인 증거일 뿐만 아니라 하나의 보증이다.
여러분은 당혹함으로부터 출발하여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였다. 여러분은 탄식하고 신음한다. 마귀는 여러분이 전적으로 그리스도인일 수 없다고 넌지시 말한다. 그러나 여러분은 이제 그를 대적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말할 수 없는 탄식을 한다고 해서 좌절되거나 침체되지 말고, 여러분의 머리를 쳐드시기 바란다.
언뜻 보기에 절망적이고 사람을 침체시키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우리가 하나님께 대해서 참된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가장 강력한 증거들 가운데 하나로 끝을 맺는 것이다. 그 얼마나 영광스러운 구원인가! 그것을 기뻐하시기 바란다. 그리고 탄식과 신음하는 것 때문에라도 하나님을 찬송하시기를 바란다.
- 한가족교회, 김영희사모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