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호튼

[스크랩] 경건주의는 내적 체험에 집중하고 교리의 중요성을 경시했다/ 마이클 호튼

강대식 2013. 12. 18. 05:28

 

경건주의는 개인의 내적 체험에 주의를 집중하고 일반적으로 교리의 중요성을 경시하면서 인간 중심적인 경향에 기여했다. 경건주의가 독일 계몽주의에 미친 영향은 종종 언급되어 왔다.

 

경건주의는 종교적 경험에 대한 민주주의적 확신과 교리나 추론에 대한 참을성 없는 태도로 넓은 지지를 확보했지만 점차 자기 나름의 정통주의로 굳어져 갔다. 경건주의 가문에서 태어나 몇몇 존경할 만한 경건주의자 교사들에게 배운 칸트는 경건주의는 그 전성기에 경건주의의 진지한 추종자들에게 ‘아무런 감정의 방해를 받지 않는 고요함, 그런 쾌활함, 그런 내적 평안”을 주었다고 증언했다. 칸트가 경건주의에 있어서 칭찬한 미덕들 중에는 ’종교는 교리나 의식이나 기도가 아닌 경험에 의존한다는 확신‘이 있었다.

 

칸트는 경건주의를 ’광신주의‘라며 거부했지만 경건주의의 영향은 칸트의 저작 곳곳에 분명히 나타난다. 경건주의 속에서 자라난 다른 근대 철학자들로는 피히테, 헤겔, 셸링, 쉴러, 포이어바흐, 슐라이어마허, 키에르케고르, 니체 등이 있다. 따라서 칸트와 슐라이어마허를 포함한 계몽주의와 낭만주의의 주요 사상가들 대부분이 경건주의 안에서 자라났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우리 시대에는 하나님에서 자아로, 교리에서 종교의 주관적 유용성과 개인적 행복을 위한 영성으로의 전환이 자유주의 진영 못지않게 복음주의 진영에서도 분명히 나타난다. 사회학자 크리스천 스미스는 이런 영성의 성격을 ‘양태론적인 치유적 이신론’으로 묘사했다.

 

진리나 교리의 중요성이 우리가 우리의 도덕적 진보와 종교적 체험에 가장 유용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의해 결정된다면 분명히 가장 중요한 기독교 교리들 중에 다수가 그 중요성을 상실하고 결국 그 특징마저 상실할 것이다. 삼위일체부터 시작해서 조직신학과 교회의 실천 속에서 모든 주제를 재평가하고 우리의 삶을 성부, 성자, 성령의 구별되지만 나뉘지 않는 사역의 결과로 다시 생각함으로써만이 교리가 그 나름의 실천적 가치를 입증한다.

 

더 나아가 우리가 신학의 대상을 무엇이든 우리가 마침 유용하다고 생각하는 것에만 국한시킨다면, 종교가 인간의 열망과 절실한 필요의 투사에 불과하다는 근대 무신론의 종교 비판은 더욱 설득력을 얻게 된다.

 

근대 합리론자들에 의해서 이성이 초자연적으로 계시된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등을 돌리게 되자마자 칸트는 하나님에 대한 합리적 지식은 봉쇄되었다고 선언했다. 칸트는 종교를 비기독교적인 이론 개념의 위에서 ‘구해’ 냈지만, 그 결과는 종교를 그와 똑같이 비기독교적인 실천개념에 넘겨주는 것에 불과했다. 칸트는 내면적 삶과 실천적 도덕을 교리보다 강조하는 복음주의적인 경건주의 안에서 자라남으로써 이미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준비가 되어 있었다.

 

슐라이어마허는 신학의 기초로서 실천적 도덕보다 감정을 선호했음에도 불구하고 궁극적으로 칸트의 인간 중심적이고 공리주의적인 방향을 따라간다. 이는 신학을 오로지 실천적인 것으로 정의하고 실천적인 것을 하나님의 화해 사역이 아닌 우리의 활동의 측면에서 정의하는 데서 오는 필연적 결과다.

 

아마도 우리의 실용주의적이고 계산적이며 과학적인 문화 속에서 지배적인 것은 이론이 아닌 실천이며 지적인 미덕들 중에서도 지혜와 추론적인 지식 및 직관적인 지식과 분별력 위에 군림하는 태크네(만들기를 위한 전문 지식)일 것이다.

 

오늘날 우리 앞에 놓인 중차대한 사명은 드라마, 교리, 송영, 제자도 사이의 상호작용 속에서 생각과 느낌과 행동의 통일을 회복하기 위해 하나님의 창조적이고 재창조적인 말씀의 능력을 재발견하는 것이다.

 

- 마이클 호튼, 개혁주의 조직신학(언약), pp 104-106

 

출처 : 청교도 아카데미(PBA)
글쓴이 : 강대식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