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강해·존스

[스크랩] 로이드 존스, 로마서강해12권, 5장, "영적인 예배, 이치에 합당한 예배"

강대식 2014. 2. 10. 13:50

“(1)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2)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롬12:1-2)

 

사도는 우리에게 그 제사는 ‘살아 있는 제사’ ‘거룩한’ 제사가 되어야 하고, ‘하나님께 열납될 만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덧붙여서 또한 그 제사는 ‘이치에 합당한’(영적) 것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베드로전서 2:2 “순전한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신령한 젖’(spiritual milk)의 헬라어 단어와 ‘이치에 합당한’(reasonable)의 헬라어 단어는 같은 단어이다. 베드로는 몸을 자라게 하는 보통의 젖과 대조시켜 마음을 자라게 하는 신령한 젖을 취하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사도는 외향적인 것만 드리는 어떤 것과를 대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 제사는 한 의식의 부분을 통과하는 정도만 되어서는 안 되며, 그 제사는 내면적이고 정신적이고 영적인 것이어야 한다. 사람들은 항상 눈에 보이는 눈부신 것을 좋아해서 기독교 신앙이 맨 처음부터 맞서 싸워야 했던 큰 문제는 예배를 외향적으로 만들려는 경향이었다. 유대인들은 예배하는 외적인 의식에 익숙해 있었다. 그리고 이교도에 속해 있던 사람들이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로 인정하였을 때, 자동적으로 교회로 들어오게 되었다. 회심하지 않은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의 꾸미지 않고 단순하고 영적이고 내면적인 예배를 접했을 때 허전한 느낌을 가진 것이다. 그 결과 교회의 지도자들은 하나의 타협책을 강구하게 되었다. 제사장들은 정교한 의식으로 빠져 들어가고 사람들 중에 있었던 제단이 멀리 옮겨지게 되고 사람들은 예배드리는 광경을 지켜보게 되었다. 심지어 많은 이교도들의 의식이 기독교 형식으로 옷 입혀졌다. 그들은 이교도들이 지키는 날들을 ‘거룩한 날들’이라고 정하였다. 실상 그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그들은 이 이교적인 실천 교리들에 세례를 주어 기독교로 둔갑시켰으며, 기독교를 낮추어 절반의 이교주의로 변환시킨 것이 아닌가?

 

또한 사도는 율법주의적인 자세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들에게 말하고 있다. 골로새 교회에 여러 다른 교훈과 종교들을 조합시켜 만들어 들어온 사람들이 있었다.(골2:16-23) 그들은 “자 이것만 행하면 된다. 이 원칙들과 규례들을 행하기만 하면 만사형통이다”라고 말을 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카톨릭 교회로 들어가는 것이다. 사도는 그것은 율법주의적이라고 말하고 있다. 사도는 디모데전서를 통해서도 말하고 있다.(딤전 4:1-6)

 

바울은 여기서 몸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를 다루고 있으며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거짓 선생들의 말을 청종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어떤 이들은 문자 그대로 적용하여 밥을 먹지 않고 몸을 희생하고 고기를 먹지 않고 채소만 먹으라. 결혼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바울은 여기서 여러분의 몸을 드리는 것이 항상 합리적이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그 일의 정당성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요4:19-23에서 사마리아 여인은 구약적인 차원에서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이 당시 유대인들의 전체 문제꺼리였다. 예수님, 모든 사도들, 초대 그리스도인들이 흠 잡힐 문제였다. 그것은 그들이 외향적이며 의식적이며 낡은 시각을 지닌 드러난 방식으로 예배하지 않고, 전적으로 내면적이고 영적인 것이라고 주장하였다는 사실 때문이다. 산, 성전, 예루살렘, 그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고 ‘신령과 진정’만이 문제가 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몸을 실천적으로 어떻게 사용하는가?

첫째, 내가 내 몸을 가지고 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 내 몸을 내 자신의 개인 소유로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바울은 ‘성령의 전’이라고 말한다.(고전6:19) 내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그 몸을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몸은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 몸이 주어진 것은 우리 자신의 인격을 나타내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인격성과 능력을 표현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벧전3:3-4)

 

둘째, 몸을 무시함으로써 몸을 함부로 쓸 수도 있다. 몸을 무시하는 것은 영적이지 못한 일이다. 여러분의 몸을 경멸해서는 안 된다.

 

셋째, 너무 많이 먹음으로써 몸을 함부로 쓸 수도 있다. 그렇게 하면 몸을 너무 중요한 것이 되게 만들어 몸에 매이고 마는 것이다. 또 몸의 소욕이 여러분을 주장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은 합리적인 사람이다.(눅21:34) 마시는 것, 성(SEX)에도 해당된다. 몸이 숭배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전10:31) 우리는 할 수 있는 한 우리 몸을 건강한 조건으로 유지해야 한다. 운동을 해야 하고 몸이 적당한 조건에 있을수록 여러분의 마음과 이해력도 그런 상태에 있게 될 것이다.

 

넷째, 우리 몸을 하나님께 드려야 하되, 하나님께서 마음대로 주장하시도록 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여러분 자신의 모든 부분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원리이다.

 

‘황금의 입을 가진 웅변가’라고 불리워진 위대한 설교자인 요한 크리소스톰은 어떻게 몸이 한 제사가 될 수 있는가에 대한 대답을 제시한다.

“눈이 악한 것을 쳐다보지 못하게 하라. 그러면 그 눈이 한 제사가 될 것이다.

혀로 야비한 것을 말하지 않으면 그것이 한 제물이다. 혀가 야비한 것을 토해내지 못하게 하라. 그러면 그 혀가 한 제물이 되는 것이다.

손으로 죄를 행하지 못하게 하라. 그러면 그 손은 번제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더하라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못하다.

손은 구제를 하는 데 쓰고, 입은 우리를 저주하는 자들을 축복하는 데 쓰고, 귀는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는 일을 즐거워하는 데 써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여러분이 드려야 할 ‘이치에 합당한 예배’ ‘영적인 예배’ 참으로 영적인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여러분의 몸을 악한 것으로 여기거나 멸해야 할 것으로 여기지 말라. 오직 하나님이 주신 한 선물로 여겨야 한다. 우리 몸을 자신을 위해서 사용하지 말고, 하나님의 영광과 찬미를 위해서 쓰시도록 하나님께 드려라.

사도는 그 모든 요점을 ‘이치에 합당한’ ‘영적인’ 이라는 한 단어 속에 표현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어 그 요점을 이해하게 하시고, 우리의 매일 삶 속에서 실천하게 하도록 하시옵소서!

 

출처 : 청교도 아카데미(PBA)
글쓴이 : 김영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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