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시스 쉐퍼

심리학적 죄책감으로부터의 안도감이 구원이 아니다/ 프란시스 쉐퍼

강대식 2014. 3. 3. 13:52

 

테리 서던(Terry Southern)은 우리가 역사상 처음으로 범죄를 없앤 첫 세대라고 재치있게 표현하였다. 범죄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더 이상 범죄를 범죄라 부르지 않는다는 의미다. 즉 우리는 매사를 심리학적으로만 설명한다는 것이다. 배운 사람이건 그렇지 않은 사람이건 현대인이 구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때, 그가 생각하고 있는 것은 도덕적 죄책으로부터의 구원이 아니라 심리학적 죄책감으로부터의 안도감 같은 것이다.

 

복음을 전하고 주님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정말로 오해하고 있다고 나는 확신한다. 사람들은 “신앙 고백”을 하고는 있지만, 메시지를 잘못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진정으로 구원받은 것이 아니다. 그들은 심리학적 필요성을 느끼며 심리학적 안도감을 원하지만, 그들은 기독교의 메시지가 심리학적 안도감에 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그것을 포함하고 있기는 하다), 존재하시는 거룩한 하나님 앞에서의 진정한 도덕적 죄책에 관해서 말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진정 필요한 것은 진정한 도덕적 죄책으로부터의 구원이지 죄책감으로부터의 단순한 안도감이 아니다. 나는 신앙 고백을 한 많은 사람들이 진정한 복음을 한 마디도 듣지 못함으로써 구원을 받지 못하고 멀어져 가고 있다고 확신하는데, 왜냐하면 그들을 죄라는 말을 죄책감이라는 말과 똑같이 여기는 그들 자신만의 사고 형태와 그들 자신만의 지성 구조를 통해서 복음의 메시지를 여과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울은 그것을 용인하지 않는다. 그는 지체없이 하나님의 진노를 말하며, 하나님의 진노에 대해 말하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은 기독교 신앙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라 말한다. 어떻게 구원을 받는지를 말해주는 위대한 구절을 보자.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요3:36). 그러나 이 구절이 다음과 같이 끝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인간이 하나님의 진노- 하나님의 도덕적 진노- 아래 있다는 사실을 보지 않고 기독교 복음을 전하는 것은 진정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바울에게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구원이라는 것이 내게 왜 필요합니까?”라고 말하는 사람에 대한 응수가 있다. “그는 ”당신에게 구원이 필요한 까닭은 당신이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법을 어겼습니다“고 응수한다.

 

우리는 여기에서 주의해야 하는데, 왜냐하면 매우 그릇된 기독교 율법주의가 있기 때문이다.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이에 대해 반박하고 있다. 그럼에도, 적절한 율법주의가 없이는 기독교 메시지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이것이 바로 비그리스도인의 생각가 그리스도인의 생각을 구별해 주는 것이다. 비그리스도인, 특히 20세기의 비그리스도인은 율법적, 도덕적 토대가 없다. 모든 것이 허공 속을 떠다니고 있다.

 

- 프란시스 쉐퍼, 『개혁과 부흥』(Death in the city), pp 78-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