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3/16 주일설교, "지혜의 부름을 들으라"

강대식 2014. 3. 16. 16:11

본문: 잠 1:20-33

 

본문은 지혜를 의인화 인격화해서 말씀하고 있다.

지혜와 하나님을 동등한 것으로 말씀하고 있다.

모든 참 지혜의 근원이 하나님이시므로, 궁극적으로 하나님과 지혜는 동일시될 수 있다.

 

1. 지혜의 부름을 들으라.

 

하나님은 지혜와 진리로 우리를 부르신다.

지혜가 길거리에서 부르며 광장에서 소리를 높이며 시끄러운 길목에서 소리를 지르며

성문 어귀와 성중에서 그 소리를 발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지혜는 길거리에서 광장에서 길목에서 성문 어귀와 성중에서 부르신다.

우리가 들을려고 하면 어디에서나 지혜를 들을 수 있지만

우리는 마음을 닫고 귀를 닫고 자기의 어리석은 지혜에만 귀를 기울인다.

자기 귀를 즐겁게 해주는 소리만 들을려고 한다.

 

지혜의 부름을 듣지 않는 자들은 어리석은 자, 거만한 자, 미련한 자들이다.

어리석은 자들은 어리석음을 좋아한다.

거만한 자들은 거만을 기뻐한다.

미련한 자들은 지식을 미워한다.

 

어느 때까지 어리석음과 거만과 미련 떠는 것을 하겠느냐고 하신다.

나의 책망을 듣고 돌이키라

보라 내가 나의 영을 너희에게 부어 주며

내 말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하나님의 말씀은 영이고 생명이다.

(요6:63)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쓰여진 영의 말씀이고 생명의 말씀이다.

성경을 기록한 사람들은 성령의 기름부음과 통제를 받아 받은 계시에 오류가 없도록 하였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항 능력을 갖추게 한다.

 

(딤후3:16-17)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한 성품을 이루고 싶은가?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고 싶은가?

성경을 들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지혜를 들어야 한다.

 

성경은 교훈을 주시고, 의로 교육하여 주신다.

죄와 허물을 책망해 주시고, 우리를 바르게 해주신다.

그렇게 해서 성품과 능력을 갖추게 해주신다.

 

성경을 떠나서, 그 지혜를 떠나서 기독교는 존재할 수 없다.

기독교는 말씀의 종교요, 책의 종교이다.

말씀은 지혜요 영이다. 성령의 조명과 역사가 없으면 말씀은 한낱 지식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스도는 영원한 말씀이시고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지혜 중의 지혜이시다.

그리스도 안에 온갖 지혜와 지식의 보화가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말씀하시던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말씀하셨다(히1:1-2).

말씀과 지혜이신 그분에게 하나님은 모든 심판을 맡기셨다.

 

우리의 믿음도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

(롬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말씀은 영으로 듣고 영으로 살아야 한다.

말씀(진리)과 영으로 드리는 예배만 하나님은 받으신다.

(요4: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훈과 책망을 듣고 돌이켜야 한다.

말씀으로 영으로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지 못하고 경외하지 못한 것,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듣지 않고 살지 못한 것, 회개해야 한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야 한다.

죄를 회개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성령을 부어주신다.

말씀을 듣고 회개하고자 할 때 성령을 부어주시고 거듭나게 하시고 회심케 해주신다.

 

세례 요한은 주님을 믿고 영접할 수 있도록 회개의 세례를 베풀었다.

(막1:4-5) 세례 요한이 광야에 이르러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라

 

회개의 세례와 우리 주님의 성령의 세례가 맞물려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마3:11)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이 말씀을 생각하면서 23절 말씀을 다시 보면 영과 말씀의 연관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책망을 듣고 돌이키라 보라 내가 나의 영을 너희에게 부어 주며

내 말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영을 부어주시고 말씀을 나타내 보이신다)

 

2. 지혜를 듣지 않으면 재앙이 임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으로 공개적으로 선포되고 들려졌지만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람들이 듣지 않았다.

세상 사람들이야 마음과 귀가 닫혀 있어서 당연하지만 문제는 교회 사람들이다.

 

구약 교회도 지혜의 말씀을 듣지 않았지만, 신약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24-25절 말씀은 구약 교회에만 해당되는 말씀 같은가?

(잠1:24-25) 내가 불렀으나 너희가 듣기 싫어하였고 내가 손을 폈으나 돌아보는 자가 없었고

도리어 나의 모든 교훈을 멸시하며 나의 책망을 받지 아니하였은즉

구약 교회들은 선지자들의 말씀을 듣지 않았고

그리스도가 오셨을 때 모든 종교 지도자들과 백성들도 듣지 않았다.

그때 듣지 않던 교회들이었는데, 오늘 교회들은 듣는다고 생각하는가?

 

사도 바울이 세운 갈라디아 교회인데도 그가 하는 책망을 들어보라.

(갈1:6-10)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지금 교회의 모습이 아닌가?)

 

20세기를 대표하는 로이드 존스 목사는 19세기말 이후 100년의 신학을 듣지 말라고 한다.

그때부터 유명 신학교의 신학과 목사들의 설교가 세상 지혜로 혼합되었기 때문이다.

참다운 지혜의 가르침을 받은 적이 없는데도, 성령이 없는데도, 회개한 적이 없는데도,

듣기 좋은 설교와 가르침은 이미 세상의 지혜이지 그리스도의 지혜가 아닌 것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가 묻지 않은 설교와 가르침, 영의 역사가 없는 설교와 가르침은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마귀로부터 온 세상 지혜일 뿐이다.

이러한 지혜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위해 있을 뿐이다.

이 세상도, 그 정욕도 다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만 영원히 거할 것이다.

 

야고보 사도도 말씀한다.

(약3:15)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니

 

위로부터 난 지혜는 세상 지헤와 다르다고 했다.

(약3:17)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예수님이 바리새인의 누룩과 사두개인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하신 뜻을 알아야 한다.

(막8:15) 예수께서 경고하여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이 말씀을 마태, 누가복음에서도 하신다.)

 

바리새인의 누룩과 사두개인의 누룩은 그 당시의 신학과 가르침을 대표한다.

예수님 당시의 보수신학이 바리새인 누룩이요, 진보신학이 사두개인의 누룩이다.

당연히 지금의 보수신학도 바리새인의 누룩이요, 지금의 진보신학은 사두개인의 누룩이다.

 

구약시대와 예수님 당시도 그들은 자기들의 신학이야말로 바른 신학이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보수신학하는 사람들, 진보신학하는 사람들이 서로 자기들의 신학이 옳다고 하고 있다.

신약교회 교인들은 옛 시대와 지금 시대가 다른 시대인 줄로 착각하고 있다.

 

구약교회 교인들은 순전한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들을 죽였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

그러면, 지금의 신약교회 교인들은 선지자와 예수님을 안 죽이고 십자가에 못 박고 있지 않나요?

프란시스 쉐퍼가 말한다.

 

“풍요로운 사회의 결과가 어떤지 주목해 보라. “내가 그들을 배불리 먹인즉 그들이 행음하며 창기의 집에 허다히 모이며.” 그들은 풍요를, 죄를 짓는 데 사용하였다. 우리도 그와 같지 않은가? 풍요로운 미국과 북유럽의 종교개혁 국가들은 종교개혁의 믿음을 외면하고 그런 식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살찌고 두루 다니는 숫 말같이 각기 이웃의 아내를 따라 부르짖는도다”(렘5:8). 지금 80년대에는 더 큰 도피를 위하여 약물과 알콜이 함께 사용되고 있다. 탈기독교 세계에서 만연하는 죄를 반박하지 않는 교회는,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해 교회가 가져야 할 메시지에 관해 보여 주신 선례를 따르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은 진실을 말하는 사람에 대하여 관심을 갖는다.”

 

말라기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드르이 말을 분명히 들으신다고 한다.(말3:16-17)

정한 날에 그들을 특별한 소유를 삼고, 섬기는 아들을 아낌같이 아끼신다고 하신다.

 

예수님 당시와 마찬가지로, 이 시대와 교회도,

바리새인의 누룩과 사두개인의 누룩으로 혼합 혼잡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순전한 말씀과 순전한 영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

영을 다 믿지 말고 설교를 다 믿지 말아야 한다.

 

종교개혁자들과 청교도들의 성경 해석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들은 바울의 말씀대로 말씀을 혼잡하지 아니하고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처럼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씀을 전하고 가르쳤다(고후2:17).

 

말씀을 혼잡하고 영을 혼합하는 것은 배교이고, 배교에는 항상 심판이 임하였다.

(잠1:25-30) 도리어 나의 모든 교훈을 멸시하며 나의 책망을 받지 아니하였은즉

너희가 재앙을 만날 때에 내가 웃을 것이며 너희에게 두려움이 임할 때에 내가 비웃으리라

너희의 두려움이 광풍 같이 임하겠고 너희의 재앙이 폭풍 같이 이르겠고

너희에게 근심과 슬픔이 임하리니,

그 때에 너희가 나를 부르리라 그래도 내가 대답하지 아니하겠고

부지런히 나를 찾으리라 그래도 나를 만나지 못하리니

대저 너희가 지식을 미워하며 여호와 경외하기를 즐거워하지 아니하며

나의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나의 모든 책망을 업신여겼음이니라

 

선지자들의 말씀과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않던 구약교회 이스라엘은

이 말씀대로 비참하게 멸망당하고 말았다.

그것은 그 시대보다 더 악한 오늘 우리 교회에 대한 경고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은혜와 자비로 경고하고 또 경고하였지만 듣지 않은 그들을 심판하셨다.

두려움이 광풍같이 임하였고, 재앙이 폭풍같이 이르렀고, 근심과 슬픔이 임하였다.

심판의 때, 재앙의 때에는 하나님을 불러도 찾아도 소용이 없다.

심판과 재앙이 임한 이유는 순전한 말씀을 듣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다.

“지식(지혜의 말씀)을 미워하며, 여호와 경외하기를 즐거워하지 아니하며

나의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나의 모든 책망을 업신여겼“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은혜의 하나님이지만, 은혜라는 동전의 뒷면은 심판이다.

만일 하나님이 계시다면, 만일 하나님이 거룩하시다면, 반드시 심판이 있을 것이다.

이 시대에 효과있는 설교는 단 한 가지, 하나님의 심판을 전하는 설교뿐이다.”(프란시스 쉐퍼)

 

우리 시대에도 예수님 전한 메시지, 구약의 선지자들이 전했던 메시지를 전해야 한다.

교인들이 입술로만 하나님을 존경하고 마음으로는 외면할 때, 도시는 파멸(죽음)의 도시가 된다.

(렘9:11) 내가 예루살렘으로 무더기를 만들며 시랑의 굴혈이 되게 하겠고

유다 성읍들로 황폐케 하여 거민이 없게 하리라

(시랑은 하이예나요, 승냥이와 이리를 말한다. 승냥이는 자칼이요 여우와 늑대의 중간형이다)

(이들은 황무지, 황폐한 곳에서 산다.)

(렘21:4-7) 내가 든 손과 강한 팔 곧 노와 분과 대노로 친히 너희를 칠 것이며

이 성에 거주하는 자를 사람이나 짐승이나 다 치리니”.

 

심판하시는 ‘예루살렘’이 서울이요 뉴욕이요, 교회요 교인들인 것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심판은 이 땅에서 역사를 통하여 이루어져 왔고, 최후 심판이 기다리고 있다.

(잠1:31-32) 그러므로 자기 행위의 열매를 먹으며 자기 꾀에 배부르리라

어리석은 자의 퇴보는 자기를 죽이며 미련한 자의 안일은 자기를 멸망시키려니와

 

심판은 냉철한 공의로 이루어진다.

자기들의 행한 바에 따라 그 댓가를 받게 될 것이다. 악한 꾀의 열매로 배부를 것이다.

어리석고 미련한 자의 번영과 안일이 무섭고 놀랍게 자기를 죽이고, 멸망시킬 것이다.

 

3. 들으면 평안히 살 것이다.

 

(잠1:33) 오직 내 말을 듣는 자는 평안히 살며 재앙의 두려움이 없이 안전하리라

지혜의 교훈 앞에 복종하는 자들은 모두 안전하며 복되다는 것을 확실히 하고 있다.

 

지혜의 말씀을 사랑하고 여호와 경외하기를 즐거워하고

주의 교훈을 받고 주의 모든 책망을 귀하게 여긴 사람들은

평안히 살며 재앙의 두려움이 없이 안전한 복을 주신다고 하신다.

그는 재앙으로부터 안전할 뿐만 아니라 재앙의 두려움에서도 평안할 것이다.

 

은혜의 뒷 면은 심판인 것을 명심하자.

은혜와 심판은 하나의 앞 뒷면인 것을 기억하자.

은혜로 부르실 때 순종하고 경외하고, 심판하실 때 평안과 축복을 누리자.

은혜로 부르실 때 회개하고 복음을 믿고, 심판하실 때 상과 면류관을 받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