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튜 헨리

매튜 헨리주석 12, 『이사야』, 박문재역, 크리스챤다이제스트, 2008

강대식 2014. 3. 24. 19:36

성경의 책들은 모두 예언적이다. 우리는 이 주석들을 통해서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떠는 가운데 이 성경의 책들을 체계적으로 해설하고, 실제적인 교훈을 제시하고자 애써 왔다. 내가 성경의 책들을 예언적이라고 하는 이유는 성경에는 일부 역사서들(예언들의 의미를 분명하게 나타내기 위해서 여기저기에서 활용된다)과 애가가 들어 있긴 하지만 예언적인 책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구주께서는 종종 구약성경 전체를 율법과 선지자들(또는, 율법서와 예언서)이라 표현하신다. 예언서들은 의식과 관련된 명령들을 별로 다루지 않고 오직 율법 중에서 좀 더 무게 있고 중요한 문제들을 역설함으로써 모세 율법 중에서 의식법이 복음에 의해서 폐기될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또한, 예언서들은 그리스도와 그의 은혜의 나라에 관한 수많은 예언들을 통해서 모세 율법 중에서 의식법이 복음을 통해서 완성될 것임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이렇게 예언서들은 율법과 복음을 이어주는 끈이었기 때문에 그 사이에 두어지는 것이 합당하다.

 

성경의 책들은 예언적임과 동시에 하늘에 그 기원을 둔 신적인 책들이다. 신적인 것들과 대응되는 인간의 법, 인간의 역사, 인간의 시가(詩歌)는 있지만, 인간에게서 기원한 예언은 없다. 참된 예언이 되기 위해서 필수적인 것은 그 예언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위에티우스는 이것을 금언 형식을 빌려서 표현한다: 예언의 능력은 전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온다.

 

선지자를 가리키는 히브리어는 ‘나비’인데, 이 단어는 말하는 자, 웅변가, 사자, 해석자, 즉 전쟁을 선포하는 전령관이나 평화 조약을 맺기 위한 사자(使者)로서 인생들에게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는 자를 의미한다. 그러나 선지자가 옛적에는 ‘로에’ 또는 ‘호제’, 즉 선견자라 불렸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하여야 한다(삼상9:9). 왜냐하면 선지자들은 마음의 눈으로 먼저 그들이 전해야 할 것을 본 후에 그들이 본 것을 전하였기 때문이다.

 

엄밀하게 말한다면, 예언은 장차 있을 일들을 미리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예언의 능력을 일부 사람들에게 주신 것은 그들이 예언한 일들이 나중에 성취되었을 때에 그 예언이 하나님의 가르침에 대한 교회의 신앙이 옳다는 것을 확증해 주는 표가 될 뿐만 아니라, 살아생전에 선지자들이 예언한 일들이 성취되는 것을 보지 못하는 자들이라고 해도 그 예언에 의지하여 경계와 교훈과 위로를 받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따라서 오랜 후에 이루어질 예언들도 현재에 있어서 유익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장래의 일들을 미리 말하는 것 외에도 하나님으로부터 온 계시를 통해서 은밀한 일들을 드러내는 것도 예언의 한 분야이다. 성경의 예언은 어떤 경건하고 도덕적인 담화들과는 달리 옛적에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하고 쓴 것이라고 할 수 있다(벧후1:20-21). 수면 위를 운행하셔서 세계를 만들어 냈던 바로 그 성령은 선지자들의 마음 위를 운행하셔서 성경을 만들어 내셨다.

 

나는 여기서 우리가 모든 민족은 하나님과 종교에 관한 어느 정도의 인식을 가지고 있었을뿐 아니라 선지자들과 예언에 관한 개념도 가지고 있었고 그것들을 숭상하는 마음을 지니고 있었으며, 그런 식으로 그들이 숭배하였던 신들을 잘 알고 교통하기를 바라고 기대하였다는 것을 눈여겨 보아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신탁들과 복술하는 자들이 있었고 모든 시대에 세상의 모든 나라들에서 수많은 점술들이 사용되었다는 사실이 이것을 증명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