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 없는 사명은 눈이 멀었으며, 사명 없는 표지는 죽은 것이다/ 마이클 호튼
성경이 말하는 언약은 하나님의 은혜로운 결정, 구속하는 행동 그리고 복음을 통한 효과적인 부르심, (우리 자신의 친밀함, 취미, 음악적인 취향 혹은 정치적인 견해를 기본으로 선택한 것이 아닌), 한 가정의 형제자매 관계 안에 우리를 놓으심에 그 뿌리가 있다. 그러나 미국의 언약은 개인의 선택, 도덕적인 개선 그리고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되기 위해 하나님과 맺는 계약에 그 뿌리가 있다.
그리스도가 왕이 아니신 곳에서는, 선지자 또는 제사장도 아니시다. 그리스도는 자신의 교회를 다스리신다. - 교회의 구조와 방법을 제정하심으로써- 그렇게 그리스도는 자신의 좋은 선물을 세상에 효과적으로 나누 주신다.
내가 속해 있는 신앙고백을 중시하는 신앙 진영에서 우리는 상응하는 사명지향성 없이 표지만 가지고 있는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말씀, 성례 그리고 치리를 신실하게 수행하는 것이 사명이다(마28:18-20). 밖을 바라보지 않고, 세상 끝까지 이 좋은 소식을 실어 나르려 하지 않는 교회는 이미 모여 있는 그리스도의 양 떼에게 이 소식을 진정으로 퍼 나르지 않는다.
참된 복음주의적인 교회는 복음 전도적인 교회일 것이다. 즉 복음이 말씀과 성례를 통해 전달되는 장소이며, 복음을 세상에 증거하는 사람들이다. 신자와 비신자들 모두 하나님의 좋은 소식을 듣는 곳이 될 것이다. 우리는 율법과 복음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 지내고 부활하기 위해 교회에 온다. 우리의 빈약한 대본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펼쳐지는 드라마에 편입된다. 그러고 나서 이 세상으로 들어가 이 대본에서의 우리의 새로운 역할을 수행한다.
더 많이 용서받은 자들이 더 많이 사랑한다(눅7:47). 우리는 그리스도와 그리스도가 베푸시는 온갖 선물들의 수혜자일 때만이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의 일부가 된다. 그리스도의 증인이요 이웃의 종이 되는 것이다. 표지 없는 사명은 눈이 멀었으며, 사명 없는 표지는 죽은 것이다. 레슬리 뉴비긴이 강조한 것처럼, 교회는 사명에 뛰어들지 않는다. 교회가 사명이다. 그러나 우리의 사명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명이다.
- 마이클 호튼, 『그리스도 없는 기독교』, pp 263-2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