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가된 의’는 모든 종교를 두 부류로 나눈다/ 이안 머리
모든 종교를 두 부류로 나누는 것은 전가된 의의 진리이다. 믿음의 체계에는 오직 두 가지 종류가 있다. 그 가운데 한 가지 믿음을 영원히 상징하는 자들이 바로 그리스도를 거부한 유대인들이다. 그들의 입장은 사도 바울의 말로 특징지을 수 있다.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롬10:3). 그들은 자신의 삶과 성품을 근거로 하나님에게 받아 주실 것을 구했다. 그들은 “어떻게 인간이 하나님 마음에 들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우리의 행위와 성품을 통해서”라고 답했다.
그런 믿음과 대조를 이루는 것으로 신약은 하나님의 은혜로 들어가는 그리스도의 길을 제시한다. 그것은 인간의 행위에 전혀 의지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우리를 받아 주시는 것이 우리의 도덕적, 종교적 노력 때문이 아니라 오로지 “그분의 의” 때문이라고 가르친다. 그것은 하나님이 공급하신 의, 곧 “의의 선물”(롬5:17)이다- 그것은 우리가 행한 의가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거저 받은 의이다. 믿음을 이렇게 두 부류로 나누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제3의 선택권, 즉 믿음의 세 번째 체제가 없기 때문이다.
믿음이 없는 유대교는 타락한 인간이 만들어 낸 모든 종교의 특징을 다 가진 믿음이 되고 말았다. 모든 거짓 종교는 정도는 다양하지만 한결같이 인간의 행위와 의무, 의식을 강조한다. 우리의 공로를 바탕으로 하나님께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논리를 부인하는 것은 오직 기독교뿐이다. 기독교는 인간이 성품이나 행위로 심판에서 결코 구원을 얻을 수 없다고 가르친다. 복음은 죄인들이 오직 그리스도의 의를 받아들였을 때만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다고 말한다. 그 말은 그들이 “하나님의 의에 복종했을 때”(롬10:3)라는 뜻이다.
사도 시대에도 세상은 오늘날만큼이나 온갖 종교적 개념으로 가득 찬 시대였다. 그러나 그 때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오직 두 가지 길과 직면하게 된다. 즉 바울이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라고 부른 것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이 되거나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의지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롬10:5-6).
성경은 그리스도와 그분의 의에 대한 믿음이 없는 곳에는 구원이 없다고 증거한다. 영원한 생명을 얻는 다른 길은 없다.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여기에 분명한 원칙이 있다. 세상에는 수많은 믿음이 있지만 오직 한 가지 믿음만이 참된 믿음이다. 나머지는 어떤 형태를 띠고 있건 모두 “그들 자신의 의를 세우려고 추구하는” 자들의 고백일 뿐이다. 그에 대한 유일한 대안은 “하나님의 의”에 대한 믿음이다.
여기에 직접적이고도 영원히 대립하는 두 가지 믿음의 체제가 있다. 그리고 그 둘은 결코 화해할 수 없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은 자기를 부인하며 공로로 말미암은 구원은 자기를 앞세우는 것이다. 그 가운데 한 가지를 믿는 것은 필연적으로 다른 것을 부인하는 것이다.
- 이안 머리, 『오래된 복음주의』, pp 98-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