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7/20 주일설교, "새 포도주"

강대식 2014. 7. 21. 17:14

본문: 2: 21-22

 

1 복음의 새 포도주는 성령의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새 포도주는 복음이다. 복음의 반대는 율법이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기쁜 소식이다.

유대인들은 예수를 거부하고 율법으로 구원 받을려고 했다.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서 하나님의 의에 복종치 않았다”.

 

구약의 율법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었음에도

그들은 마음에 수건이 덮혀 보질 못하였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벗겨질 있는 수건이었다.

 

그들의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벗겨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그 마음을

덮었도다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겨지리라 ---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후3:14-18)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은 세례 요한이 준비하였다.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 세례요한이 광야에 이르러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1:2-4)

 

예수님의 공생애 시작의 제 일성은,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1:15)였다.

세례 요한도, 우리 주님도 복음을 믿을려면 죄를 회개하라는 것이었다.

죄를 회개하지 않고서는 우리 주님의 복음을 믿을 수가 없다.

회개한 적이 없는 사람들이 구약 교회에도 넘쳐 났고, 신약 교회에도 넘쳐 나고 있다.

 

죄는 하나님을 믿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성령을 믿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음으로 하지 않는 모든 것이 죄이다.

사도신경은 하나님 아버지, 우리 예수 그리스도, 성령을 믿는다는 고백이다.

 

다른 모든 행위의 죄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죄에서 나오는 것들이다.

행위의 죄를 회개하고 잡을려면 그 근원인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

그 믿음은 성령이 선물로 주신다.

 

,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들을 줄줄 외던 유대인들이,

회개하지 못하고, 복음을 믿지 못하였는가?

스데반의 설교가 이를 설명해 준다.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도다

너희 조상들이 선지자들 중의 누구를 박해하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그들이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 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너희는 천사가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7:51-53)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것은 항상 성령을 거스르기 때문이었다.

성령을 거스르면 회개할 수가 없고 복음을 믿을 수가 없다.

마음에 성령이 없으면 자기 의와 교만으로 목이 곧아지고

성령으로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하면 복음을 들을 수도 믿을 수도 없다.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들을 박해하고,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그들이 죽였다.

그리고 그들의 후손들은 그 의인을 잡아 주고 살인하였다.

천사가 전한 율법을 받고도 그들은 그 율법을 거스려 지키지 아니하였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니라”(8:9)

그리스도의 영, 아버지의 영, 하나님의 성령이 오셔야 곧은 목이 부드러워지고

죄인인 줄 알고 회개가 터지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된다.

그 전까지는 믿음을 향한 예비 과정일 뿐이다.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36:26-27)

(성령이 와야 율법도 행할 수 있다.)

 

마음에 덮힌 수건을 벗겨 영광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보게 하는 분도 성령이시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게 하는 분도 주의 영이시다.

나의 죄를 보게 하는 분도 성령이시다.

 

예수님도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공생애를 시작하셨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분으로 증거하였다.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오셔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심으로 화목제물이 되어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케 하셨기에 우리의 죄사함의 길이 열리고

약속하신 성령을 보내주시는 것이 가능케 되었다.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심판하리라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16:7-9)

 

성령이 오셔야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깨닫게 된다.

죄는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것임을 말하고 있다.

 

복음의 새 포도주는 성령의 새 부대에 담는 것이었다.

복음의 새 포도주를 새 부대에 담아 주시기 위해

우리 주님은 십자가에서 많은 사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주셨고(10:45),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 되셔야 했다(요일2:2).

 

성령이 마음에 오시기 전에는 죄를 깨닫지도 예수를 믿을 수도 없기에

주님은 성령을 보내시고 우리로 성령을 구하게 하셨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11:13)

- 처음 믿는 자들은 믿기 위해 성령을 구하고, 이미 믿는 자들은 그 믿음으로 살기 위해

성령의 역사를 구해야 한다.

 

2 복음의 새 포도주는 은혜의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은혜는 내가 한 것이 아무 것도 없고 자격도 없는데도 거져 주시는 하나님의 은총이다.

은혜의 반대는 행위의 공로이다.

유대인들은 자기들의 어줍잖은 선행과 종교행위의 공로로 구원을 받을려고 하였다.

행위 면에서 자기들보다 못한 이방인들을 개 취급하고 죄인 취급하였다.

 

복음의 새 포도주는 주님의 십자가의 공로가 있었기에 우리에게 은혜로 주셨다.

십자가의 공로로 우리는 더 이상 율법과 심판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게 되었다.

하나님의 율법은 선하고 의롭고 공의롭지만, 우리가 우리 힘으로 지킬 수가 없는 것이었다.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고 우리가 죄인인 것을 알게 하기 위해 주신 것이었다.

그것을 지킴으로 의롭게 되고 구원을 받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가정교사가 되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기 위해서 주신 것이었다.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3:21-24)

 

우리 주님의 십자가의 공로로 우리는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되었다.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를 살리신 분은 우리 주님이시다.

그 은혜로 우리는 죄에서 해방되었고, 그 은혜로 남은 생애를 살게 된다.

 

믿는 자들에게는 은혜가 왕 노릇하여 영생에 이르게 한다.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임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5:21)

 

죄가 우리 인생에서 사망을 낳으며 왕 노릇 하고 있다.

인생들이 모를 뿐이지 역사는 그렇게 진행되어 왔고 그렇게 나아갈 것이다.

세상이 개혁과 정의를 말하면서도 날로 악해져가는 것이 이를 증거하고 있다.

 

죄와 사망의 이 고리를 끊고 영생과 천국에 이르게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은혜로만 가능하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 은혜가 의로 왕 노릇하여 영생을 누리게 한다.

은혜는 우리를 방종하게 하는 것이 아니고 의의 길로 가게 하고

왕 노릇하여 거룩함과 영광에 이르게 한다.

 

은혜가 왕 노릇하며 즉 우리 인생을 통치하여 책임져 주신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작은 일에 충성하며 이 은혜에 의지하여 믿음으로 살아간다.

율법은 우리를 굳은 마음이 되게 하고, 은혜는 우리에게 부드러운 마음을 준다.

 

은혜는 믿음을 주어서 어떤 환경에서도 놀라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게 해주고

은혜는 소망을 하나님께 두며 약속을 붙들고 인내하며 믿음의 길을 달려가게 해 준다.

그렇지 않고 있다면, 여러분은 은혜가 많이 부족한 상태에 있는 것이다.

 

우리가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주님의 제자가 되는 것도 은혜이다.

성령이 오셔서 우리 안에 계시고 영원히 함께 계시는 것도 은혜이다.

우리가 한 것은 죄 뿐인데 하나님은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시고

우리 죄 값을 대신 십자가에서 치루게 하시고 은혜로 구원하여 주셨다.

 

그 은혜로 하나님은 하나님의 모든 것을 상속받고 누리게 하셨다.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생각하건데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8:16-18)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친히 증언하시는 분은 성령이시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가 된다.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해서는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한다.

그 고난이 인내를 이루고 그 인내가 연단을 이루고 그 연단이 소망의 약속을 이루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고난이 아무리 힘들다 해도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는 비교할 수가 없다.

 

은혜와 진리는 우리 주님이 주셨다고 요한은 증거하고 있다(1:16,17).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예배에서 축도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지금부터 영원까지 함께 하실 것을 축원한다.

오늘도 그 은혜가 왕 노릇하며 불기둥 구름기둥으로 우리를 인도하고 갈 길을 지시해 주신다.

은혜는 우리의 일용할 양식을 공급해 주시고, 이 땅에서도 천국을 살게 해 주시고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게 살게 해 주신다.

 

3 복음의 새 포도주는 새 사람의 부대에 담아야 한다.

 

새 사람의 반대는 옛 사람이다.

복음의 새 포도주는 옛 사람에 담는 것이 아니고 새 사람의 부대에 담는 것이다.

성령으로 은혜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게 되면,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5:17)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천국에도 갈 수 없고 새로운 피조물이 될 수도 없다.

이전 것은 지나가고 새 것이 되는 변화는 성령으로 은혜로 믿음으로만 가능하다.

옛 사람을 벗고 새 사람을 입는 변화는 성령의 역사이지 육체로는 이룰 수가 없다.

 

많은 종교가 사람을 변화시키고 복을 받는 길을 제시하지만,

사람의 마음과 성품과 양심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지 못하면 공염불에 불과하다.

이전 것을 새 것으로, 옛 사람을 새 사람으로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가능한 것은

하나님의 영이 은혜로 해 주시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기들의 종교와 철학을 내려 놓지 못하고 사망의 길로만 가고 있다.

우리 주님의 복음의 새 포도주는 새 사람을 만들어 그 부대에 담고 있다.

옛 사람의 헌 부대에 아무리 새 포도주를 담아도 낡은 부대만 찢어지고 포도주만 버릴 뿐이다.

 

내 인생의 미래와 운명을 바꿀려면,

내 속사람부터 바꾸어야만 한다.

조상들이 물려준 헛된 행실로부터 끊어내야만 한다.

그것은 인간의 수양과 교육으로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겉 모양만 조금 고치고 세련되게 할 뿐 근본적인 변화를 이룰 수가 없다.

 

오직 흠 없고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만 이를 끊고 씻어낼 수가 있다.

오직 성령의 능력과 하나님의 은혜로만 새로운 생명으로 거듭나게 할 수가 있다.

진정한 기독교의 역사는 이러한 거듭남의 역사요 회심과 일대 전환의 역사인 것이다.

 

옛 사람으로부터 새 사람으로

옛 생명으로부터 새 생명으로의 변화가 없다면,

아직 성령의 새롭게 하심의 역사를 체험하지 못한 구도자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다.

 

우리 주님이 이 땅에 오시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율법이 줄 수 없었던 복음의 새 포도주가 부어지게 되었다.

우리는 이 복음의 새 포도주를 낡은 헌부대가 아니라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그 새 부대가 성령의 부대인 것을, 은혜의 부대인 것을, 새 사람의 부대인 것을 알자.

먼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새 포도주를 받기 위해 믿지 않은 죄를 회개하자.

그리고 그 새 포도주를 성령으로 은혜로 새 사람으로 담기를 힘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