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G. 메이첸, 『기독교와 자유주의』, 황영철역, 복있는사람, 2013
“정통 기독교의 본질을 말하다”.
“전통 칼빈주의 신학자 메이첸이 선포하는 기독교 변증의 고전”.
“크리스채너티 투데이 선정, 20세기 위대한 100권의 책”.
「기독교와 자유주의」는 1920년대 초, 미국장로교회를 뜨겁게 달구었던 ‘신학 논쟁’의 와중에 탄생했다. 메이첸은 이 책에서 당대의 주도적인 흐름이던 자유주의 신학을 비판하며, 성경적인 신앙이란 사실과 교리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을 역설한다. 신론, 인간론, 기독론, 교회론에 관한 두 입장을 명석하게 대조하여 복음적 신앙을 변증해 나가면서, 시류에 적합한 신학을 추구했던 자유주의 신학의 실체를 분명하게 파악하게 해준다. 그렇게 함으로써 성경 66권이 분명하게 선포하고 있는 ‘구속적 종교’로서의 기독교 본질을 세밀하게 정리할 수 있도록 돕는다.
자유주의 신학에 대항해 기독교의 본질을 천명한 메이첸은 ‘독선적인 근본주의자’라는 오해를 받아 왔다. 그러나 그의 신학적 입장이 명확하게 정리되어 있는 이 책을 통해, 우리는 그가 말하는 교리가 성경적이고 올바르며, 그의 태도가 매우 정직하고 순전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은 우리 자신의 기독교 신앙을 점검해 보고, 정통 기독교의 본질을 굳게 붙잡는 데 귀중한 바탕이 될 것이다.
메이첸은 프린스턴 신학교 설립 백 주년을 기념하던 1912년, 미국장로교회가 쇄도하는 자유주의 때문에 위기에 처해 있다고 경고의 목소리를 발했다. 교회의 통일성과 평화는 물론 중요하지만, 믿음이 없는 자들을 기독교인이라고 인정하는 것과 자유주의적인 신념을 가진 자들을 신학 교수직에 임명하는 것은 질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메이첸은, 당대에 쇄도하고 있던 자유주의 신학의 뿌리에 놓인 것은 자연주의라고 규정했다. 그는 1장에서 자연주의란 “기독교의 발생에 하나님의 창조적 능력이 개입했음을 부인”하는 입장이라고 정의 내린다. 그리고 위대한 구속의 종교와, 자연주의에 기초한 자유주의 신학은 전혀 다른 형태의 종교라는 그 유명한 선언을 한다.
미국북장로교회는 1923년 총회에서 기독교 근본교리5개조를 다시 긍정했으나, 그에 반대하는 목사들에 의해 어번 선언서가 공표되고 요원의 불길처럼 지지자들이 늘어나는 일이 발생했다. 메이첸은 바로 그와 같은 격동의 시기에 본서를 출간한 것이다. 메이첸의 책은 근본주의와 자유주의 신학의 전쟁터 한가운데서 터진 폭발력 있는 저술이 되었다.
그러나 메이첸을 반대하거나 중도적인 입장을 취했던 이들에 의해서, 1929년 프린스턴 신학교 이사회가 재편성되고 구프린스턴 전통에서 이탈되는 결과가 나타나고 말았다. 1929년에 메이첸은 이에 반대하면서 교수직을 자진 사퇴하고, 그를 따르는 몇 명의 교수와 50여 명의 학생을 중심으로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를 설립한다. 메이첸은 그곳이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를 신학적 근간으로 삼은 구프린스턴 신학 전통을 계승하는 신학교가 되기를 염원했다. 독립 해외 선교회를 창립하기도 했으나, 이에 대한 총회의 치리로 정직을 당하게 된다. 메이첸은 이에 굴하지 아니하고 미국북장로교회를 탈퇴하여 정통장로교회를 설립한다.
그는 여러 과중한 책무를 수행하다가 때이른 1937년 1월 1일에 폐렴으로 숨을 거두게 된다. 죽기 직전 그가 동료 존 머레이 교수에게 보낸 전보에는, “나는 그리스도의 능동적인 순종에 대해서 감사드립니다. 그것이 없이는 소망이 없습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이는 그가 평생 동안 견지하고 충심으로 수호해 왔던 구속적인 기독교의 핵심 신앙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분리주의자라는 비난에도 메이첸은 “기독교 가르침에 따르면 참된 형제애는 구원받은 자들의 형제애”라고 말하며, 자유주의 신학과 정통적인 기독교 신앙을 가진 이들은 한 울타리 안에 머물러 있을 수 없다고 분명하게 선언한다.
메이첸의 입장은 전형적인 근본주의 주류와 달랐다. 그는 근본주의자라기보다는 고백적 장로교인이었다. 근본주의자와 메이첸은, 말하자면 공동 참전국이요 심지어 동맹군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메이첸을 근본주의라는 이름 속에 간단히 포함시킬 수는 없다.
오늘날의 세계는 메이첸이 직면했던 세상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여전히 자기들의 형상대로 하나님을 만들려고 하고 있고, 자신의 가치관을 하나님에게 투사하고 있으며, 여전히 영광의 신학자처럼 행동하고 있는 것이다. 메이첸에게 있어서, 종교의 감상주의를 대항하는 유일하게 일관된 길은 역사적 종교로서 기독교의 진리를 견지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일은 하나님에 의해 영감을 받았기 때문에 권위를 가지는 성경을 근거로 해야만 했다. 여기서 벗어나면 기독교는 불확실한 것이 되며, 기독교 신학이란 개인이 편안하게 느끼는 성경 가르침의 한 조각에 불과하게 된다. 결국 취향과 감상의 문제가 되고 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바르트의 신학을 되살려 복음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교회를 위한 선지자적 가능성을 제안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요즘의 맥락에서, 메이첸의 접근법이 중요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만약 메이첸이 옳다면, 바르트 신학이 제공하는 가능성은 좋게 생각하며 세상의 지혜를 대항하기에 부적절한 것으로 판명될 것이며, 나쁘게 생각한다면 세상의 지혜를 표현하는 바로 그 용어일 뿐이다.
실로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높이는 영감 교리에 대한 메이첸의 충성이,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와 정통장로교회 설립의 핵심 쟁점 중의 하나였다. 그것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도전이다. 취향의 문제에 매몰되어 있는 세상, 회개와 믿음으로 부르시는 하나님 말씀의 선지자적 도전 앞에 서야 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메이첸이 제공하는 것만큼 강력하지 못한 성경관 위에서 그 일이 성취될 수 있을지 자문해야 한다.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이 실로 다음 세대 교회의 안녕에 치명적 중요성을 가지며, 오늘날 교회와 신학교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긴급한 문제일 것이다. 1920년대의 메이첸에게 이것이 그렇게 중요한 문제였다면, 그로부터 80년 이상이 흘러 세속화가 더 심화되고, 성경의 가장 기본적인 진리뿐 아니라 심지어 초월적인 진리라는 개념 자체에 대해 무지한 세상에 사는 우리에게 이는 얼마나 더 중요하겠는가?
성경에 뿌리를 두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이루신 역사적 행동에 근거한 복음은 여전히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상에 가장 필요한 것이다. 그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단순히 부적절하기만 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실제로, 어떤 의미에서도 역사적 · 구속적 기독교가 아니다. 그의 말이다. “그러므로 자유주의 신학이 기독교와 전혀 다르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 근거가 다르기 때문이다. 기독교는 성경 위에 서 있다. 기독교는 그 사상과 삶에서 성경을 근거로 한다. 반면 자유주의 신학은 죄 있는 사람의 무상한 감정에 근거해 있다.”
- 책 표지, 역자의 해설의 글, 칼 트루먼의 서문의 글에서 발췌, pp 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