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사역의 메시지가 기독교 운동의 심장이요 영혼이었다/ G. 메이첸
한 위대한 종교가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의 메시지로부터 힘을 얻었다. 그 메시지 없이는 예수와 그의 제자들은 곧 잊혀질 것이다. 그 동일한 메시지와 의미가 수 세기 동안 기독교의 운동의 심장이요 영혼이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명칭은 그 결정적인 변화가 일어난 이후에 처음으로 적용되었으며, 1,900년 동안 한 종교에 그렇게도 확고하게 결합되어 있던 이름이 갑자기 다른 종교에 붙여질 수 있는지는 극히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예수의 제자들이 그들 스승의 가르침으로부터 떠난 한 사건이 기독교의 토대라고 말하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왜냐하면 예수 자신이 똑같은 일을 했기 때문이다. 예수는 종교와 윤리의 일반 원리를 선언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예수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라고 말씀하셨다. 예수가 갈릴리에서 선포한 복음은 나라가 임한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예수는 그 나라가 임하는 것을 하나의 사건으로, 혹은 일련의 사건들로 취급했다. 예수가 그 나라를 또한 현재의 일로 간주한 것, 어떤 의미에서 이미 와 있는 것으로 설명한 것도 사실이다. 예수의 말씀을 해석할 때 그의 선포의 이 측면을 도외시하면 제대로 해석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나라가 임하는 것이 분명한 대이변을 수반한다는 또 다른 측면을 도외시해서도 안 된다.
예수와 초대 교회는 단순히 종교의 일반적이고 항구적인 원리들을 선언하지 않았다. 도리어 예수와 초대 교회는 모두 발생한 어떤 일에 의존하여 메시지를 형성했다. 한 가지 차이점이 있다면, 예수의 가르침에서는 그 사건이 아직 미래인 반면, 예루살렘 교회의 가르침에서는 그 사건의 서막이 이미 과거였다는 점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예수와 제자들이 모두 어떤 사건을 선포했다는 점이다. 예수는 오늘날 자유주의 설교자들이 주장하는 것같이 단지 항구적인 진리를 선포하기만 한 인물이 아니었다. 도리어 그는 이전에 있었던 적이 없는 일이 이제 발생하려는 역사의 전환기에 서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예수는 사건만을 선언한 것이 아니라, 그 사건의 의미까지 선언했다. 당연히 사건이 발생한 다음에야 그 충만한 의미가 분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그런데 예수 자신이, 비록 예언의 형태이긴 하지만, 새 시대의 기초가 될 그 위대한 사건의 의미를 설명했다. 모든 복음서들에서 예수의 말이라고 주장된 것들이 실제로 그의 말이라면, 그가 그 일을 장엄하게 수행했음이 확실하다. 비록 네 번째 복음서를 거부한다 하더라도, 또한 가장 과격한 비평을 나머지 세 복음서에 적용한다 해도, 예수의 가르침에서 이 요소를 제거하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의 말씀으로 들려진 말씀, 그리고 마가복음 10:45의 발언은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실로 치열한 토론의 주제였다. 이런 말씀이 실제 예수의 말씀이었다고 인정한다면, 예수에 대한 현대의 견해는 전혀 받아들일 수 없다.
우리는 지금 예수가 항구적인 도덕 원리들을 선언한 것으로 스스로 만족하지 않았음을 주목해야 한다. 그는 다가오고 있는 어떤 사건을 선언한 것이 확실하다. 그가 사건의 의미를 설명했을 때, 그 설명이 아무리 짧다 해도, 그는 비교리적 종교 혹은 오직 영원한 원리만을 교리로 가르치는 종교와, 분명한 역사적 사실의 의미에 뿌리를 둔 종교를 구분하는 선을 넘어간 것이다. 그는 오늘날 자신의 이름을 부정확하게 사용하는 철학적인 현대 자유주의 신학과 자신 사이에 큰 간격을 만들었다.
- 그레샴 메이첸, 기독교와 자유주의, 65-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