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칼빈, 기독교 강요, 1권9장, 성경을 버리고 계시를 좇는 광신자들
제 9장 성경을 버리고 계시들을 좇는 광신자들은 경건의 모든 원리를 파괴시킴
성령께 그릇되게 호소하는 광신자들이 오류
성경을 버리고서, 이런저런 다른 길을 통해서 하나님께 도달할 수 있다고 상상하는 자들이 있으나, 이들은 오류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 아니고 광란의 상태에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최근 아주 경솔한 사람들이 일어나서, 성령의 우월성을 굉장히 과시하면서 성경을 읽는 행위 자체를 완전히 거부하고, 또한 여전히 성경을 따르는 자들 – 그들의 표현대로 하면, 스스로로도 죽어 있고 또한 영혼을 죽이는 율법 조문을 따르는 자들 – 의 단순함을 조롱하고 있다.
“네 위에 있는 나의 영과 네 입에 둔 나의 말이 이제부터 영원하도록 네 입에서와 네 후손의 입에서와 네 후손의 후손의 입에서 떠나지 아니하리라”(사59:21). 이것은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는 새 교회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다스림을 받는 것은 물론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스림을 받는 데에서 참되고 완전한 복을 누리게 될 것임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지자가 절대로 끊을 수 없는 끈으로 함께 묶어 놓은 것들을 서로 갈라놓는 이 사악한 자들의 행위야말로 정말 악하고 참람한 것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바울은 삼층천에까지 이끌려 올라갔었는데도(고후12:2) 율법과 선지자들의 가르침에서 교훈을 받기를 그치지 않았을 뿐 아니라, 탁월한 교사인 디모데에게 성경을 읽는 일에 전념하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이다(딤전4:13). 또한 그가 성경을 높이 찬양하고 있다는 사실도 기억할 만한 가치가 있다: “모든 성경은 ---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딤후3:16-17).
주께서 성령을 약속하시면서 그 영이 어떤 분이라고 말씀하셨는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말씀으로 전해 받은 것을 제자들의 마음에 알리시는 분이라고 하시 않는가(요16:13)! 그러므로, 우리에게 약속된 성령은 전혀 들어 보지도 못한 새로운 계시를 만들어 내거나 어떤 새로운 종류의 교의를 조작해 내어서 우리로 하여금 이미 인정된 복음의 교회에서 떠나게 만드는 그런 분이 아니시고, 오히려 복음으로 말미암아 제시되는 바로 그 교의를 우리 마음에 인쳐주시는 그런 분이신 것이다.
성령은 반드시 성경과 일치하심
하나님의 영으로부터 유익을 얻기를 진정 바란다면 우리가 성경을 읽고 그 말씀을 경청하는 일에 힘써야 한다는 것을 곧바로 깨닫게 된다. 복음의 빛이 비쳐졌으므로 이제는 선지자들의 가르침이 복음으로 대체되었다고 볼 수도 있는 상황에서, 선지자들의 가르침에 주의를 기울이는 사람들의 열심을 베드로가 칭찬하는 데서도 이 점을 잘 볼 수 있다(벧후1:19). 그러나 반대로 그 어떠한 영이라도 하나님의 말씀의 지혜를 지나쳐버리고 다른 교리를 우리에게 제시한다면, 그 영은 헛되고 거짓된 영이라 의심을 받아 마땅한 것이다(갈1:6-9).
사탄의 영이 성령을 빙자하여 숨어 들어오지 못하도록, 성령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성경 속에 새겨 놓으신 그 자신의 모습을 통해서 그 자신을 알아보도록 하신 것이다. 그분은 성경의 저자이시며, 동시에 그는 자기 자신과 다르게 변하실 수가 없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이 성경에 자기 자신을 계시해 놓으신 그대로 언제나 계시는 것이다.
성령과 말씀은 함께 역사함
거짓 사도들은 그리스도 없이 율법을 강조하여 사람들에게서 새 언약 – 이 새 언약에 의하여 주님은 “그의 법을 신자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시는 것인데(렘31:33) - 의 혜택을 빼앗아가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은혜에서 끊어진 상태로 마음은 그냥 내버려두고 그저 귀에서만 소리를 울리게 되면, 율법 조문은 죽은 것이요 주님의 율법은 그 독자들을 죽이는 것이 된다(고후3:6). 그러나 성령을 통하여 그 문자가 마음에 효과적으로 새겨지게 되고, 그것이 그리스도를 드러내면, 그것이야말로 “영혼을 소성시키고 —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는” 생명의 말씀인 것이다(시19:7). 바울은 자신의 설교를 가리켜 “영의 직분”(고후3:8)이라고 부르고 있다.
주님은 상호간의 결속을 통해서 그의 말씀의 확실성과 그의 성령의 확실성을 하나로 묶어 놓으셨으므로, 성령께서 빛을 비추셔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보게 하실 때에 말씀에 대한 완전한 신앙이 우리 마음속에 자리를 잡게 되며, 또한 우리가 성령을 그 자신의 형상, 즉 말씀 속에서 인식할 때에, 우리가 혹 속임을 당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없이 성령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능력으로 말씀을 기록하셨고, 그 동일하신 성령을 보내사 그 말씀을 효력 있게 확증케 하심으로써 그의 일을 완성하고자 하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두 제자들의 마음을 열어 주신 것은 성경을 알게 하시기 위함이었다(눅24:27,45). 바울도 데살로니가 사람들에게 “성령을 소멸하지 말라”고 명령하면서 곧바로 “예언을 멸시치 말라”는 말씀을 덧붙이고 있다(살전5:19-20). 그는 분명 이 말씀을 통해서, 예언이 멸시를 당하면 그 순간 성령의 빛이 소멸된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성령 없이는 진리의 모든 빛을 다 잃어버리는 것으로 아는 것처럼, 또한 말씀이 바로 주께서 그의 성령의 조명하심을 신자들에게 베푸시는 도구라는 것도 잘 알아야 마땅한 것이다. 신자들이 아는 성령은 다른 분이 아니라 바로 사도들 안에 거하셨고 그들 속에서 말씀하신 그 성령이시며, 또한 그 성령께서는 그의 말씀을 통해서 신자들을 독려하셔서 날마다 말씀을 듣게 하시는 것이다. (p 112)
- 존 칼빈, 기독교 강요, 상권(크리스챤다이제스트), 108-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