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9/14 주일설교, "생명의 빛"

강대식 2014. 9. 14. 14:09

본문: 56:10-13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 앞에서, 생명의 빛으로 살기 위함이다.

그리스도께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이 되어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원한 것은 하나님과 화목하여 하나님 앞에서 생명의 빛으로 살기 위함이다.

 

우리 주님은 이 땅에 생명의 빛으로 오셨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1;4-5,9-13)

 

사망은 오직 생명이 와야 물리칠 수 있고,

어둠은 오직 빛이 와야 물러간다.

우리 주님은 생명이고 또한 빛으로 오셨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생명이신데 사람들의 빛이시다. 우리를 위한 생명의 빛이신 것이다.

 

우리 인생 가운데 있는 어둠과 사망은 첫 조상의 죄와 조상들의 죄와 우리의 죄로 인해 온다.

사람들은 인생의 모든 비극과 불행의 원인이 죄에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려고 한다.

죄의 회개 없이 인생의 비극과 불행, 어둠과 사망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 주님의 공생애 사역의 제 일성은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였다.

죄를 회개하지 않고 구원의 복음을 믿거나 받아들일 수 없다.

그러나 실제적 순서는 복음을 듣고 우리의 죄를 회개하는 것이다.

 

구원의 복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십자가의 복음을 듣지 않고서는

사람은 죄를 깨닫지도 못하고, 자기가 죄인인 줄도 모르고, 회개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십자가에서 인류의 모든 죄의 형벌을 대신 지고 죽으신 분만이

우리에게 죄를 회개하라고 할 수 있고, 구원의 기쁜 복음을 주실 수 있다.

 

회개하고 회심하고 복음을 믿는 사람만이 생명으로 빛으로 하나님 앞에서 살 수 있게 된다.

믿는 것은 생각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고, 그분을 생명의 빛으로 나의 주님으로 영접하는 것이다.

말로만 믿고, 생각으로만 믿고, 그분을 생명의 빛으로 주님으로 영접하지 않는 자들이 많다.

 

그분을 믿음으로 영접하였다면, 내 인생의 주인은 이제 내가 아니고 그분으로 바뀌어야 한다.

어둠과 사망의 일들을 벗고, 빛과 생명이 있는, 마음과 삶으로, 살아가야 한다.

내가 항상 하나님 앞에 있다는 의식으로 살아가야 한다.

 

요셉은 항상 하나님 앞에 자기가 있음을 알았기에 죄를 지을 수 없었다.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39:9)

 

다윗도 자기의 죄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께 지은 죄임을 고백한다.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51:4)

 

오늘 우리 본문도 말씀하고 있다.

주께서 내 생명을 사망에서 건지셨음이라 주께서 나로 하나님 앞, 생명의 빛에 다니게 하시려고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지 아니하셨나이까”(56:13)

 

하나님 앞, 생명의 빛에 다니게 하시려고

고난과 연단의 과정 가운데서도 실족하지 않게 지켜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산다는 것, 생명의 빛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 그것이 중요하다.

 

복은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고, 그러한 삶에 부수적으로 따라오고 임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삶, 고난 가운데서도 말씀을 붙들고 순종하는 삶,

그 삶에, 하나님의 축복과 영광이 임하는 것이다.

 

그러한 삶이 그리스도인의 삶이고, 소망과 축복이 풍성한 삶이다.

그러나 우리 안에 여전히 세상이 들어와 있고, 죄의 본성들이 남아 있다.

하나님은 고난과 연단들을 주셔서 정화시키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 가시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저 문제 해결, 위기 극복, 잘되고 형통하는 것, 복만을 구하는데

그것은 기복신앙이고 미신이고 탐심과 야망을 이루고자 하는 우상숭배일 뿐이다.

그래서 형통의 신학, 믿음의 신학, 4차원의 영성을 진리인 줄 알고 사로잡히는 자들이 많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왕이었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훈련하고 연단하는 과정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하는 것이었다.

쉽게 복과 천국을 말하는 사람들은 다윗의 생애와 요셉이나 모세의 생애를 봐야 할 것이다.

 

다윗의 이 시편은 사울왕이 두려워서 도망하여 블레셋 가드 왕에게 갔다가

그들이 알아보는 바람에 미친 체하고 대문짝에 그적거리며 침을 수염에 흘리는 동작을 하여

위기를 모면하고서 쓴 것이라고 한다.

 

서두에 다윗이 가드에서 불레셋인에게 잡힌 때에라고 되어 있다.

다윗의 믹담 시라고 했는데, 그것은 황금 시편이라는 뜻이다.

요낫 엘렘 르호김곡조에 맞추게 되어 있는데, ‘조용히 멀리 날아가는 비둘기를 의미한다.

 

다윗은 죄가 없었고 남에게 해를 끼치지도 않았으며, 비둘기처럼 온유하고 인내하였지만,

저 멀리 방황하며 이국 땅에서 피난처를 찾아야 했다.

거기서 다윗은 골짜기의 비둘기들과 같이 구슬피 울고 있었다.

 

나의 유리함을 주께서 계수하셨사오니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이것이 주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나이까“(56:8)

- 우리가 고난 중에 흘리는 눈물도 주의 병에 담으시고 주의 책에 기록됨을 믿으라.

 

다윗은 비둘기처럼 구슬피 울면서도 하나님께 대하여 원망하거나 환난에 대해 분노하지 않았다.

이 점에서 다윗은 털 깎는 자들 앞에서 묵묵히 있었던 양과 같았던 그리스도의 모형이었다.

또한 다윗은, 그리스도인들이 어디에 있든, 어떤 고난과 슬픔 가운데 있을지라도,

조용한 비둘기처럼 처신해야 하는 그리스도인들의 모범이었다.

 

1. 생명의 빛으로 살려면,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의 말씀을 찬송해야 한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여 그의 말씀을 찬송하며 여호와를 의지하여 그의 말씀을 찬송하리이다

 

다윗은 그에게 닥친 위험들이 몹시 위협적이고, 그가 의지하던 다른 모든 것들이 실패했을 때,

하나님을, 자신의 의지처로 삼기로 결심한 것이다.

우리도 두렵고 어려운 위기와 슬픔이 닥쳐올 때, 하나님만을 의지하자.

 

여호와는 나의 힘과 나의 방패이시니, 내 마음이 그를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도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크게 기뻐하며 내 노래로 그를 찬송하리로다. 여호와는 그들의 힘이시요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의 구원의 요새이시로다. 주의 백성을 구원하시며 주의 산업에

복을 주시고 그들의 목자가 되시어 영원토록 그들을 인도하소서”(28:7-9)

 

그 위기와 고난 가운데서도 다윗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말씀을 찬송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다윗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찬송한다.

우리도 고난과 슬픔 중에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찬송해야 한다.

 

성경 가운데, 역사 가운데, 하나님은 약속의 말씀대로, 위대한 권능과 지혜로 일하셨다.

어제와 오늘이 동일하신 주님께서는, 하나님 앞에서 빛의 생명으로 사는 사람들에게,

이전에 주의 백성들에게 행하셨던 것처럼, 이제도 큰 일을 행하실 것이다.

 

사도 바울도 고난 중에 하나님만 의지하게 되었음을 고백하고 찬양한다.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실 것이며,

이 후에도 건지시기를 그에게 바라노라”(고후1:8-10)

 

믿는 자들에게 고난은 선택 과목이 아니라 필수 과목이다.

사람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 줄을 모르고, 자꾸만 세상의 떡과 재물로만 살려고 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주리게도 하시고 낮추기도 하셔서,

말씀의 사람, 성령의 사람, 하늘의 사람,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 가시는 것이다.

 

그 위대한 회심의 사람, 바울에게도 그 큰 능력과 계시를 맡기시면서도 육체에 가시를 주셨다.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고후12:7-10)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있다면, 우리가 약할 그 때에 강함이라는 역설의 진리를 믿을 수 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서 광야 40년 동안 그가 자랑할 수 있었던 모든 힘을 다 빼버렸다.

그 약함 위에 하나님의 능력을 부어주셔서, 강하게 하시고, 크게 쓰셨다.

 

우리가 풍부에도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우고 있노라면 능력을 주실 날이 온다.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4:12-13)

 

12절과 13절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원인과 결과, 논리적 결과임을 알자.

우리 힘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체의 비결을 배우면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음을 믿자.

 

2. 생명의 빛으로 살려면,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네게 어찌하리이까”(56:11)

 

우리가 모든 일에 하나님을 의지한다면 어떤 사람도, 환경도, 위험도 두려워할 것이 못 된다.

우리가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지 못하니까 특히 사람들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니까, 조금만 문제가 생겨도 두려움부터 앞서는 것이다.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말하되

주는 나를 돕는 이시니 내가 무서워하지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13:5-6)

 

돈은 필요하지만, 사랑의 대상이 되면 많은 문제를 일으킨다.

일만 악이 돈을 사랑하는 데서 나오고, 많은 근심과 미혹을 받아 자기를 찌른다고 했다.

있는 바를 족하게 여기고, 우리를 버리지도, 떠나지도 않으시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한다면,

우리는 담대히 말할 수 있다.

주는 나를 돕는 이시니 내가 무서워하지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정말 우리를 돕는 분,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지 어떤 사람이 아니다.

하나님이 그를 통해 공급하게 하시는 것이지, 그가 공급자가 아닌 것이다.

그러니 공급자랍시고 큰소리 치고 횡포를 부리는 사람을 무서워할 것이 못 된다.

사람이 나를 어찌하지 못하는데, 믿음이 없으니까, 지레 겁먹고 그를 두려워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나의 공급자인 것을 내가 믿고 그를 무서워하거나 두려워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은 그를 돌려놓거나, 아니면, 다른 자를 통하여 나에게 공급하실 것이다.

저는 목회하면서 그런 경우를 많이 봐왔고, 한가족교회의 역사가 그것을 증거한다.

 

우리 주님은 우리가 정말 두려워해야 할 분이 누군지를 말씀해 주셨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10:28)

 

3. 생명의 빛으로 살려면, 서원한 것을 이행하고 감사제를 드려야 한다.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서원함이 있사온즉 내가 감사제를 주께 드리리니

주께서 내 생명을 사망에서 건지셨음이라"(56:12-13)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하던 시절에 하나님께 서원한 것이 있다.

그 서원들은 사실은 하나님이 하시도록 명하셨고 격려하신 것이다.

고난 중에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때 깨달은 바가 있다. 다짐한 것이 있다. 서원한 것이 있다.

 

한나는 아들이 없다고 브닌나로 인하여 많은 고통의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 아들을 주시면 하나님께 그의 생애를 드리겠노라 서원하였다.

그녀는 그 약속을 이행했고, 하나님은 32녀의 축복을 주셨다.

 

고난을 주셔서 잉태치 못하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셨고,

그 고난 끝에 서원을 하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셨다.

한나는 그 사망과 같은 고통에서 생명을 얻고 위로를 받고 격려를 받았다.

 

우리가 죄를 깨닫거나 징계를 받는 동안에 하나님께 했던 서원들,

환난과 곤경에 처해 있을 때 하나님께 했던 서원들을

풀리고 나니까, 잊어먹지 말고 감사제를 올리며 이행하시기 바란다.

 

그리스도인은 무엇보다도 죄의 삯인 사망에서 건짐을 받은 사람들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건짐을 위해 십자가에서 제물이 되시고 희생하셨다.

은혜로 믿음을 주신 삼위 하나님께 항상 감사와 찬송을 올리는 우리가 되자.

 

우리 인생의 죄값인 사망을 해결하시기 위해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다.

우리 인생의 어둠을 해결하시기 위해 우리에게 빛을 주셨다.

하나님 앞에서 살게 하기 위해 우리에게 이 생명의 빛을 주신 것이다.

 

다시는 우리가 죄로 인하여 사망을 불러들이고, 어둠을 불러들이는 생각과 일들을 삼가자.

우리의 남은 생애가 이 생명과 빛으로 하나님 앞에 살아가는 믿음의 삶이 되게 하자.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고 약속의 말씀을 찬송하고,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서원한 것을 이행하고 내 생명을 사망에서 건지셨음을 감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