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11/30 주일설교, 마음을 같이하여

강대식 2014. 11. 30. 15:28

본문: 벧전 3:8-12

 

1 그리스도인 형제들을, 마음을 같이하여 사랑하라

 

벧전3:8)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베드로 사도의 마지막 부탁이다.

그리스도인 형제들은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다.

우리 주님은 부모 형제의 의미를 말씀해 주셨다.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동생들이냐 하시고 손을 내밀어 제자들을 가리켜 이르시되

나의 어머니와 나의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하시더라”(12:48-50)

 

나를 길러주고 사랑해주는 육친의 부모 형제들도 중요하고 사랑해야 하지만,

그리스도인이 되면, 이 개념들도 수정되고 보완되어져야 한다.

거기에만 매이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이 더 이상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지체들이다.

그 몸을 이루는 지체들이 새로운 부모와 형제 자매들이다.

주님은 주의 제자가 되는 요건을 이렇게 말씀하셨다.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14:26)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19:29)

 

성경 말씀들은 문자 그대로 아무 때나 적용할려고 해서는 안 된다.

그 말씀들의 의미와 뜻을 연구해서 적용해야 한다.

성경 전체의 문맥과 뜻과 조화를 이루며 상황에 따라 적용을 잘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을 그르치는 잘못과 어리석음을 범하게 된다.

 

그리스도인들은 다 마음을 같이하라고 하신다.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한 지체이니까 마음도 한 마음이어야 겠지요.

성경 교리의 중요한 요소들을 같이 믿어야 하고, 사랑의 실천과 의무들을 다같이 행해야 한다.

 

그러나 초대 교회 시절에도 같은 믿음의 형제들끼리 분쟁과 불화가 있어 왔다.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니”(6:1)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개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4:2)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너희가 육의 사람이 아니리요”(고전3:3-4)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당 짓는 것과 이단과 ---”(5:17-20)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기 위한 싸움과 헌신이 없다면 개혁도 부흥도 없을 것이다.

선지자와 사도들은 당시 잘못된 제도권 종교의 타락을 복음 진리로 개혁하는 개혁자들이었다.

그들이 없었다면 구약성경도 신약성경도 기독교 역사도 없었을 것이다.

 

종교 개혁이 없었다면 지금도 카톨릭의 부패와 악행은 계속 되었을 것이다.

믿음의 선한 싸움이 없다면 면류관도 없을 것이고 이기는 자에게 주는 흰 돌도 없을 것이다.

사랑의 실천에도 개혁의 선한 싸움에도 그리스도인들은 한 마음 한 뜻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인내와 위로의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 한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15:5-6)

 

그리스도인들은 서로 형제인 것을 알고 서로 불쌍히 여기고 동정해야 하고 사랑해야 한다.

어려움을 만난 그리스도인 형제들일수록 더욱 그래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서로 핍박하거나 미워해서는 안 될 것이다.

 

기독교는 또한 고통을 당하고 슬픔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고,

모든 사람들에게 예의바르고 겸손하게 대하라고 하신다.

그러나 정중한 예의로 대해서는 안 될 사람들도 있다.

극악한 죄인이나 사악한 배교자들이다.

 

이제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욕을 부리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모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속여 빼앗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고전10:11)

 

2 원수들을, 마음을 같이하여 축복하라

 

(벧전3:9)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

 

사도는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인하여

모든 사람들에게서 미움을 받고 핍박을 당하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해결이 안 되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뿐이고 혼란만 야기할 것이다.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이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하는 것이지요.

도리어 그들을 축복하고 악을 선으로 갚아주는 것만이 그 악순환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다.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인들이 부르심을 받았다고 하신다.

그리스도의 법은 욕을 하지 말고 대신에 복을 빌어주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신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5:44)

 

그리스도인들은 영광스러운 특권을 받은 만큼 어려운 의무들도 실행하라고 하신다.

우리는 그럴만한 가치가 없음에도 영원한 기업을 축복으로 주셨으니

우리도 원수들이 악한 말을 퍼붓고 핍박할 때도 축복해주고 기도해주라고 하신다.

 

그리함으로써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지는 복들을 이어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의 피로 용서 받았지만, 우리 주님은 주기도에서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용서한 것처럼 우리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게 하신다.

 

사실 우리의 경험에서 보아도,

원수에게 악심을 계속 품고 못 견뎌할 때보다 큰 맘 먹고 용서하고 기도해 주는 것이

우리의 마음을 빨리 확실히 안정되게 해주는 것을 본다.

 

우리 주님은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다고 하신다.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12:17-21)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목사들은 그 시대의 죄와 악에 대해 날카롭게 비판해야 한다.

그것은 악을 악으로 갚고 욕을 욕으로 갚는 것이 아니다.

모든 선지자들과 사도들은 그러한 비판과 설교를 행하였다.

그렇지 않았다면 핍박도 순교도 없었을 것이다.

 

이스라엘의 파수꾼들은 맹인이요 다 무지하며 벙어리 개들이라

짖지 못하며 다 꿈꾸는 자들이요 누워 있는 자들이요 잠자기를 좋아하는 자들이니

이 개들은 탐욕이 심하여 족한 줄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요 그들은 몰지각한 목자들이라

다 제 길로 돌아가며 사람마다 자기 이익만 추구하며”(56:10-11)

 

짖지 않는 개와 잠에 취한 목자는 늑대와 강도와 도둑의 가장 친한 친구이다(존 라일).

네가 이것으로 형제를 깨우치면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이 되어

믿음의 말씀과 네가 따르는 좋은 교훈으로 양육을 받으리라”(딤전4:6).

 

3 세상에서, 마음을 같이하여 화평을 추구하라

 

(벧전3:10-11)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고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며 그것을 따르라

 

이 험악한 세상에서 편안하고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는 탁월한 처방을 말씀해 주고 있다.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한다면 그렇게 하라는 것이다.

혀를 금하고 악한 말을 그치며 거짓을 말하지 말라고 한다.

 

오히려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며 그것을 따르라고 한다.

이 말씀은 시편 34편에서 인용한 말씀이다.

찾아서 전체를 읽어보시면 마음에 평안과 믿음의 소망을 주실 것이다.

 

생명을 사모하고 연수를 사랑하여 복 받기를 원하는 사람이 누구뇨라고 인용을 시작하고 있다.

너희 삶이 오래 가고 너희 날들이 화평하고 잘되기를 바란다면 혀를 조심하라는 것이다.

혀는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고 지옥 불에서 나온다고 했다.

혀는 길들이는 사람이 없고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하다고 했다.

 

신앙으로 살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처방이기도 하다.

혀를 잘 관리하고 통제하는 것이 현세의 삶을 안락하고 번영을 누릴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신중한 혀는 험한 세상을 평화롭고 안락하게 살 수 있게 해주는 아주 뛰어난 방법이다.

 

또한 악을 피하고 선을 행하는 것이 현세에서나 내세에서 만족과 행복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이다.

권력을 잡았다고 부를 쥐었다고 날뛰며 한 악행들은 현세에서도 내세에서도 심판을 면치 못한다.

역사의 준엄한 심판이 있고,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는 더욱 엄중한 심판이 내려질 것이다.

 

가능하면, 화평을 구하고 그것을 따르라고 한다.

같이 구할 것이 거룩함이다.

거룩함이 없이는 진정한 화평도 없는 것을 본다.

그것은 인간관계에서는 물론이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세상이 악한 데, 선하게만 살다가 손해 보는 것은 어떻게 할 것이냐는 문제가 있다.

이에 대한 해답을 사도는 들려주고 있다.

(벧전3:12)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의인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얼굴은 악행하는 자들을 대하시느니라 하였느니라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기울여주시고, 변함 없는 섭리로 돌보아주시고,

그리고 그들을 각별하게 존중하시고 사랑해 주신다.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의인의 간구에 기울이신다는 말씀이 그 뜻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손해나 상처들을 당하게 된다면 하나님께서 친히 갚아주신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어려움과 고통을 기도로 하소연할 수 있다.

하나님은 들으시고 섭리 가운데 역사하시고 결국은 우리의 승리를 도우실 것이다.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말하되 주는 나를 돕는 이시니 내가 무서워하지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13:5-6)

 

하나님은 무한히 선하실지라도 회개하지 않는 죄인들을 아주 미워하신다.

주의 얼굴은 악행하는 자들을 대하신다.

악을 행하는 사람들에게 그의 진노를 쏟아 부으실 것이다.

 

하나님은 의를 드러내실 것이고, 모든 세상 사람들에게 공의를 시행하실 것이다.

사람의 모든 행위마다 진노를 부으신다면 세상에 남아 있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나님은 인자하심으로 참고 회개하기를 기다리시지만 언제까지고 그렇게 할 수는 없다.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 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2:4-5)

 

때가 되면 죄와 악에 대해서는 응분의 댓가를 치르고 형벌을 받게 하신다.

어찌 저런 악인들을 그냥 놔두시냐고 흥분할 일이 못 된다.

우리는 그러한 악행들을 보면서 우리 안에도 있는 죄악들을 보고 타산지석을 삼아야 한다.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다른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13:4-5)

 

하나님을, 우리 인간과 같은 줄로 알았다가는 책망의 날이 오고야 만다.

네가 이 일을 행하여도 내가 잠잠하였더니 네가 나를 너와 같은 줄로 생각하였도다

그러나 내가 너를 책망하여 네 죄를 네 눈 앞에 낱낱이 드러내리라 하시는도다”(50:21)

 

인류 역사는 그렇게 이어져 왔다.

인간은 악행을 저지르고 회개할 줄을 모르다가 그것이 드러나고 댓가를 치루었다.

그러나 이 땅에서의 심판은 그래도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섞여 있는 심판일 뿐이다.

마지막 날 악인들이 받아야 하는 심판은 상상을 초월하고 영원한 지옥의 형벌이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피흘리심으로 우리의 죄에 대한 심판을 대신 받으셨기에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그러한 심판이 없는 것이다.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요일3:3)

 

주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한 지체가 되었다.

그리스도인 형제들끼리 다 마음을 같이하여 동정하며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자.

우리를 미워하는 원수들에게도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자.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들을 보기 위하여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고 거짓을 말하지 말자.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며 그것을 따르자.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의인의 간구에 기울이시는 것을 믿자.

주의 진노의 얼굴은 악행하는 자들을 대하신다는 것을 믿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