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5 주일설교,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
본문: 고전 2:1-5
1 복음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를 전하는 것이다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니라”(고전2:2)
하나님의 말씀 중에서 가장 기쁜 소식이 복음이다.
복음의 주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다.
그분의 인격과 그분의 사역을 전하는 것이 복음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지 않았다면,
그분이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처리하지 않으셨다면,
아담이 죄로 인해 잃어버렸던 우리의 구원과 회복은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복음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을 전하는 기쁜 소식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영원한 성자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것이다.
그분은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구원하시기 위해 대속 제물로, 화목 제물로, 오셨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20:28, 막10:4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오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롬3:25)
“하나님이 ---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요일4:10)
대속 제물로, 화목 제물로 그분이 십자가에서 피흘리시고 죽으시지 않으셨다면
인간은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없고 하나님과 화목할 수가 없었다.
이 일은 오직 하나님의 아들이신 영원한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제물이 되셔야 했다.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심 위에 서 있다.
그것이 복음의 핵심이고 정수이다.
교회는 이 반석 위에 세워져 있다. 이 모퉁이 돌 위에 세워져 있다.
교회의 모든 설교와 가르침은 이 복음 위에서 이 복음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바울처럼 이 사실과 진리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여야 한다.
그런데 교회와 성도들이 타락하면 다른 것이 중심이 되고 다른 것을 알기로 작정하게 된다.
하늘을 잃고 세속화하여, 이 땅에서의 축복과 형통이 중심이 되고 쟁취하도록 작정을 하게 된다.
하나님도 예수도 십자가도 인간의 복과 형통을 위해 존재할 뿐이다.
저주를 축복으로 바꿔준 것만이 중요하게 된다.
믿고 구하기만 하면 다 이루어진다는 믿음의 신학, 형통의 신학이 교회를 사로잡고 있다.
사랑과 축복의 하나님만 강조되고, 십자가와 의와 거룩의 하나님은 안중에 없다.
신비주의적 은사와 체험이 여기에 덧씌워져 완벽한 사탄의 아성을 이루고 있다.
예수님이 가장 경계한 거짓 선지자들도 십자가를 팔고 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속죄가 오직 인간의 해방과 치유와 축복을 누리기 위한 것이라 한다.
십자가는 용서와 치유, 생명과 부요, 영광과 축복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고
그 혜택을 이 땅의 삶에서 현실로 누리고 체험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성경 구절들을 근거로 나열하고 있지만 교묘하게 말씀의 원 뜻을 왜곡하고 있다.
이 땅에서의 축복과 영광이 목적이 되면, 모든 말씀은 땅의 것으로 전락하고 왜곡되고 만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은,
찰나에 지나지 않은 이 땅 나그네 인생을 물론 포함하지만,
영생을 주시고, 하늘의 신령한 모든 복을 주시기 위한 것이다.
축복과 형통을 누리는 것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구하시는 것은
십자가의 피로 말미암아 구원받았으면, 영 혼 육을 모든 더러운 것에서 깨끗이 하는 것이다.
거룩하고 흠이 없는 하나님의 자녀로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워지는 것이다.
그 모든 과정에서 떡만으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것이다.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숭배니라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골3:1-6)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사실로 인하여 구원 받았다면,
우리의 관심과 욕심이 이 땅의 것에 끌릴 때마다 이 말씀을 기억하고 돌이키시기 바란다.
2 복음은 사람의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전하는 것이 아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하지 아니하였나니”(고전2:1)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고전2:4)
오늘 다섯 절의 말씀 가운데 두 절에 걸쳐 사람의 지혜를 언급하고 있다.
하나님의 증거, 복음을 전할 때에 사람의 말과 지혜의 아름다움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의 설득력과 지혜의 말로 전하는 것은 복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늘날 설교를 잘하고 못하고가, 잘 가르치고 못 가르치고가, 은혜 받고 못 받고가,
사람의 말과 지혜의 아름다움과 설득력에 달려 있다면, 많이 배우고 못 배우고에 달려 있다면,
음부의 권세가 교회를 이기고 점령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우리 주님은 예수가 그리스도이시고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는 반석 위에 세우신
주님의 교회는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하셨다.
사람의 말과 지혜의 아름다움과 설득력 배후에 사탄이 자리잡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사탄의 영, 세상의 영은 사람의 관심과 의지를 이 땅과 이 땅의 것들에 붙들어 매고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은 사람의 관심과 의지를 하늘과 영원한 것에 붙들어 맨다.
십자가와 온갖 성경 구절들을 나열하면서도, 오직 이 땅에서의 축복과 영광만을 추구한다면,
그 정체를 얼른 알아차리고 그들에게서 떠나고 인사도 하지 마시기 바란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배운 교훈을 거슬러
분쟁을 일으키거나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그들에게서 떠나라
이같은 자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들의 배만 섬기나니
교활한 말과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 —
너희가 선한 데 지혜롭고 악한 데 미련하기를 원하노라
평강의 하나님이 속히 사탄을 너희 발 아래에서 상하게 하시리라”(롬16:17-20)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복음을 전할 때 필요한 것은
사람의 유창하고 아름답고 설득력 있는 지혜와 말이 아니라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떠는 마음이다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고전2:3)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전하는 데,
그렇게 유창하고 자신 만만하고 말과 지혜의 아름다움으로 하고 설득력으로 할 수 있겠는가?
십자가를 팔아 다른 목적, 이 땅의 것을 구하고 자기 배를 섬기니까, 그럴 수 있는 것 아닌가?
십자가 복음 앞에 겸손하고 스스로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떠는 것이 복음적이 아닌가?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에 하나님의 구원하는 능력이 있는 것이지,
사람의 지혜와 말이 능력이 되어서야 사람의 영광을 취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도적질하는 거지요.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시고 교만한 자에게는 대적하신다.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고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할 때에
때가 되면 높이실 것이다.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관을 주실 것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진리와 도를 생각할 때마다
우리는 스스로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어야 할 것이다.
자기의 지혜와 지식과 학벌을 자랑하고 그 아름다움과 설득력을 높이는 자들은
소돔과 고모라 멸망하듯이 멸망할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사탄과 거짓 선지자들은 함께 산 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져질 날이 올 것이다.(계19:20)
사람은 이 땅에서 자기의 지혜와 지식과 그 아름다움과 설득력을 자랑하지만
바울은 그 말의 지혜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헛되게 한다고 말씀하고 있다.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전1:17)
하나님은 이 세상 지혜를 미련하게 하셨다.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지혜니라”(고전1:21-24)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한 것을 믿으라.
하나님은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시는 분이시다.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1:26-29)
자랑하는 자는 주안에서 자랑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다.(고전1:30)
세상에서 우리 모양이 어떤 모양이든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 속에 주어진 것이다.
우리의 자랑은 하나님이요 그리스도요 그분의 부르심이요 구원하심이다.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있으니 그분의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이 우리의 것이다.
우리의 영적인 신분과 하늘의 시민권을 알고
어디서나 기죽지 말고 겸손하면서도 당당하게 사시기 바란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들을 낮추시고 오히려 약하고 겸손한 자들을 들어 쓰신다.
3 복음은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전하는 것이다
“내 말과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고전2:4-5)
‘다만’은 다른 것이 아니라 오로지의 뜻이다.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다.
십자가의 복음을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그 능력으로 전할 때에만이
우리의 믿음이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사람의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전하게 되면
우리의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게 되고 만다는 것이다.
그래서 능력은 없고 사람의 지혜만 넘쳐나고 있다.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은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사람들은 맘대로 안 되니까 기다리지 못하고 사람의 지혜와 방법을 동원하고 만다.
그렇지만 우리는 성령의 나타나심과 그 능력을 구하고 의지하고 의탁할 수 있다.
우리는 성령께서 나타나시고 능력으로 역사하시도록 순전한 말씀을 전하고 들어야 한다.
사람의 지혜와 세상의 지식들로 혼잡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받은 것처럼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말씀을 전하고 들어야 한다.
그 말씀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심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영과 진리로 예배 드리는 것이고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하나님은 찾으시고 기뻐하신다.
그곳에 성령이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나시고 증거하시고 능력으로 역사하신다.
성령의 나타나심과 그분의 능력을 우리는 구하고 의지하고 살아야 한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갈5:24-26)
성령을 물리치고 근심시키고 소멸하는 것은 사람의 정욕과 탐심이다.
우리는 성령으로 거듭나고 살아 났다. 그렇다면 성령으로 행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정욕과 탐심으로 살며 헛된 영광을 구하니 서로 노엽고 투기하는 것이다.
우리 주님도 성령을 구하라고 하셨다.
그러면 육체의 욕심을 이기고 탐심을 물리칠 수 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눅11`:13)
믿는 자에게 성령은 안에 계시지만,
주님은 또 구해서 받는 성령을 말씀하고 있다.
위로부터 임하는 성령 또한 주님은 말씀하셨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
기독교 역사에서 진정한 회심과 부흥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를 순전하게 전할 때
항상 성령의 특별한 부으심으로 인함이었다.
하나님의 성령, 그리스도의 영은 항상 우리 속에 우리와 함께 하시고 능력으로 역사하시지만,
우리는 우리의 연약함을 알고, 성령의 ‘특별한 나타나심과 능력’을 구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의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될 것이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