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2/22 주일설교, 상을 받도록

강대식 2015. 2. 22. 13:57

 

본문: 고전 9:24-27

 

1. 상을 받으라

 

예수 믿고 상을 받으셔야 한다.

하늘로부터 상이 있기 때문에 고난과 연단 중에도 믿음과 인내로 사는 것이다.

예수님의 산상수훈에서 보면, 상을 이미 받은 자가 있고, 상을 받을 자가 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복과 함께 상을 말씀하신다.

복 있는 자가 상을 받을 자이고

상 받을 자가 복이 있는 자이다.

 

어떤 사람이 상을 받느냐?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들의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이요 ---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할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5:3,4,9-12)

 

상을 이미 받은 사람이 있다고 하신다.

사람에게 보일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희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6:1-4)

 

이어서 주님은 말씀하신다.

기도할 때에, 사람에게 보일려고 하는 자들은 이미 상을 받았다.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금식할 때에, 사람에게 보일려고 하는 자들은 이미 상을 받았다.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구제할 때에, 기도할 때에, 금식할 때에, 나팔을 불지 말고 은밀하게 하는 자에게 상을 주신다.

사람에게 영광을 받은 자는 상을 이미 받은 자이다.

사람에게도 영광을 받고 하나님께도 상을 받을려고 하지만 가당치 않다.

 

꿩 먹고 알 먹고는 없다.

심령이 가난한 자에게 천국의 상을 주시고 애통하는 자에게 위로의 상을 주시고,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에게 배부르는 상을 주시고,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에게 천국의 상을 주신다.

 

주님이 나사로와 부자의 비유에서 말씀하셨다.

아브라함이 이르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16:25)

 

모세는 괴롭게 하신 날수대로와 화를 당한 년수대로 우리를 기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하나님의 은총을 우리에게 내리게 하사 우리의 손이 행한 일을 견고하게 해달라고 한다.

광야의 고난을 거치지 않고 가나안의 기업을 달라고 하는 것은 참으로 염치 없는 간구이다.

 

이 땅에서 부자 될려고 하지 말고, 부자 부러워하지 말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19:23-24)

 

재물과 하나님을 겸해서 섬길 수 없다고 하셨고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라고 하셨다.

하나님만을 섬기고,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는 자가, 참으로 부자이고 상을 받을 사람이다.

 

상을 받을려면 하나님이 계신 것과 그가 상주시는 분임을 믿어야 한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11:6)

 

하나님이 살아 계신 것을 믿지도 않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찾지도 않는 자들이 상과 복은 받을려고 한다.

하나님을 찾는 것은 예배를 소중히 여기고 항상 기도하며 사는 것이다.

 

2. 달음질하라(최선을 다하라)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고전9“24)

 

상을 받을려면 달음질하라고 하신다.

믿음은 경주이기 때문에 그렇다.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12:1)

 

경주를 잘 할려면, 잘 달리려면

무거운 것, 얽매는 것을 벗어 버려야 한다.

달리기 하는 운동 선수들의 유니폼을 보라

 

그리고 인내로서 끝까지 경주를 하여야 한다.

힘든 고비를 넘기지 않고서는 끝까지 달릴 수 없다.

인생의 경주에서도, 믿음의 경주에서도 끝까지 달리는 인내가 필요하다.

 

작은 고난에도 쉽게 포기하고 주저 앉는 사람은 끝까지 달릴 수 없다.

잘 달리는 말에도 끝까지 달리도록 채찍질한다.

 

바울은 달려갈 길을 다 달렸다고 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4:7-8)

 

바울은 목숨보다 더 귀한 것이 달려갈 길이라고 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20:24)

 

사람마다 주 예수께 받은 사명이 있다.

바로 그것이 그의 달려갈 길인 것이다.

주님이 나를 왜 이 세상에 보내셨는지, 우리는 주께 묻고 그 사명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

 

바울은 전제와 같이 다 부어지고 떠날 시각이 가까웠다고 하였다.

우리도 전제와 같이 포도주를, 피를, 목숨을, 다 부어야 하는 것이다.

게을러질려고 할 때마다,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귀한 말씀들을 기억하고 채찍질해야 한다.

 

사명의식이 투철하면, 게으를 수 없고 달려가지 않을 수 없다.

사명의식이 분명하면,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하지 않을 것이다.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하지 않을 것이다.

 

바울은 또한 내 몸을 쳐서 복종시킨다고 했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고전9:27)

 

주님은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다고 하셨다.(19:30)

우리는 먼저 되었다가 나중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세상 염려와 재물과 향락의 가시덤불에 기운이 막히면 달려갈 수가 없다.

 

달려갈 푯대를 분명히 하시기 바란다.

어영부영 땅의 것에만 팔려 세월을 낭비하다가는 슬피 울며 이를 갈 날이 오고야 만다.

하늘을 바라보고 주님을 바라 보아야 한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12:2)

 

주님도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고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으셨다.

그 과정을 거쳐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우리도 우리의 십자가를 참고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아야 한다.

 

주님은 우리에게 본을 보이시고 그 자취를 따라오라고 우리를 부르셨다.

그 본을 받고 자취를 따라간 바울의 말씀이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3:12-13)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부르신 부름의 상이 있다.

그것이 우리의 달려갈 길의 푯대이다.

우리의 달려갈 길의 마지막은 세상을 떠나갈 시각이다.

그 시각까지 이미 한 일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달려가야 한다.

 

뭐 좀 했다고 조금 이룬 일을 가지고 평생 욹어먹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도 모자라 후손들에게까지 세습하여 그 공을 물려주기도 한다.

세상 떠날 시각이 되지 않았는데도 벌써 달려갈 길을 마쳐버린 사람들이다.

 

상을 이미 받고 영광을 취한 자들은, 혀를 서늘케해 줄 할 물 한 방울이 그리운

영원한 불꽃 가운데 떨어지고서야 이를 갈며 슬피 울 것이다.

부르신 부름의 상을 받지 못하는 것이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닌 것을 볼 수 있다.

 

끝까지 목숨을 걸고 달려간 자의 상은 의의 면류관이요 썩지 않을 면류관이다.

달려가면서 우리가 싸워야 할 싸움은 믿음의 선한 싸움이다.

이 선한 싸움을 싸우며 마칠 때까지 달려간 사람에게 상을 주시는 것이다.

 

3. 절제하라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고전9:25)

 

달려서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다른 일들은 절제해야 하는 것이다.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기 위해서도 얼마나 절제하고 훈련에 훈련을 거듭하는가?

먹을 것 다 먹고 하고 싶은 것 다하고 즐길 것 다 즐긴 사람이 얻을 것은 없다.

 

절제할려는 인간의 의지가 얼마나 연약한가?

작심삼일이라고도 하고, 작심삼초라고도 한다.

초인적인 절제를 이루는 사람도 혹 있지만, 절제는 성령의 열매이다.

 

성령의 열매로 맺는 절제가 오래 가고 자연스럽고 은혜롭고 아름답다.

나의 연약함을 알고, 주님의 은혜와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절제를 이루어가야 한다.

한 두번 실패했다고 낙심 말고 포기하지 말고 이루어질 기쁨의 날을 바라보고 달려가야 한다.

 

끝까지 절제하고 인내함으로 달려가서 이기는 자에게 상을 주신다.

어울리는 것 좋아하고, 큰 거에 속한 걸로 만족하는 사람에겐 그걸로 끝이다.

절제하는 것, 끝까지 달려가는 것, 이기는 것, 다 외롭고 고통스러운 싸움이다.

 

요즘은 자식 귀하다고 오냐 오냐 뜻을 다 받아주다가 절제를 못 가르쳐 주고 있다.

그런 아이들은 수험생활의 고통과 인내를 견디지 못하여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한다.

그런 아이들은 군대생활도 못 견디고, 직장생활, 사회생활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된다.

 

달려가는 것, 이기는 것을 가르치면서 동시에 절제를 가르쳐야 한다.

자기 하나 밖에 모르는 이기심 덩어리, 망나니로 키우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귀할수록 더욱 절제를 가르치고 훈련시켜야 한다.

 

지나친 보호와 지나친 허락과 지나친 방임이 버릇 없고 절제할 줄 모르는 아이를 만들어낸다.

세 살 버릇 여든 간다.

사회 부적응아를 만들고 폐인을 만드는 공장이 다 가정이고 부모이다.

 

우리의 연약함과 한계를 알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음으로 살고 본을 보여야 한다.

상을 얻는 자는 한 사람이다.

금 메달보다 더 귀한 것이 의의 면류관이다.

 

금 메달은 다 썩을 면류관이지만, 의의 면류관은 영원히 빛나는 상이다.

목숨 걸고 달려가는 자에게, 절제할 줄 알고, 이기는 자에게, 이 영원한 면류관을 주신다.

계시록에서도 이기는 자에게만 상을 주신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3:21)

 

이기는 자는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3:5)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2:17)

 

상을 받도록, 의의 면류관을 받도록,

푯대를 향해, 달려갈 길을 다 달려가고, 절제하고, 이기자.

흰 옷을 입고, 주님과 함께 보좌에 앉고, 흰 돌과 만나와 새 이름을 받는

저와 여러분이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