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거스틴

어거스틴, 「하나님의 도성」, 제3권, 전쟁의 사악함보다 내란의 잔혹함이 더 컸다(강의안4)

강대식 2015. 6. 16. 0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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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앞의 책에서 저자는 도덕적이고 영적인 재난에 대해 증명했지만, 3권에서는 외적인 재앙에 대해 말하고 있다. 로마의 건국 이후 심지어 거짓 신 숭배가 유일하게 시행되었을 때-그리스도 강림 이전-조차 로마인들은 항상 재앙으로부터 아무런 구원도 받지 못했다.

 

1. 심지어 신들이 숭배될 때에도 세상이 끊임없이 겪어왔으며 사악한 자들만이 두려워하는 해악에 대하여

 

저들의 신들은 무한정 숭배받을 때에조차도 이교도들이 두려워하기만 하는 해악들을 막아주지 못했다. 우리 구속주가 오시기 전에 여러 시기와 여러 장소에서 인류는 수없이 많고 때로는 믿을 수도 없는 재앙으로 억눌림 당했다. 그때에 오직 한 민족 히브리인들과 그 민족에 속하지 않았다하더라도 아주 비밀스럽고 정의로운 하나님의 판단으로 은혜받을 만하다고 간주된 개인들을 제외하고, 세상은 그런 신들 외에 다른 이를 섬겼는가?

 

2. 그리스인들과 로마인들이 공통적으로 섬겼던 신들은 일리움의 파국을 허락했는데도 정당화될 수 있었는가?

 

우선 로마 민족의 발생지인 트로이 혹은 일리움이 왜 동일한 신들을 존중하며 숭배했던 그리스인들에 의하여 정복당하며 탈취당하고 파괴당했던가? 어떤 사람들은 프리암이 자기 아버지인 라오메돈이 범한 위증죄의 대가를 치렀을 뿐이라고 대답한다.

 

그러므로 만약 저들이 그런 꾸민 이야기를 믿는다면, 그런 신들을 숭배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도록 하라. 만약 저들이 그 이야기를 믿지 않는다면, 더 이상 트로이인들의 계약위반에 대해 언급하지 않도록 하라. 아니면 저들로 하여금 어떻게 신들이 트로이의 약속위반은 미워했으면서도, 로마의 약속위반은 사랑했는지 설명하도록 하라.

 

3. 신들은 파리스의 간통에 의하여 기분이 상할 수 없었다. 이런 범죄는 신들 사이에도 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트로이인들이 그리스인들에 의하여 정복되었을 때 위증죄를 범한 트로이인들에 대해 화를 냈다고 생각할 이유가 전혀 없다. 어떤 이들이 신들을 옹호하여 변명하듯이, 그들이 트로이로부터 보호의 손길을 거두도록 만든 것은 파리스의 간통에 대해 분개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습성상 악을 복수하는 자들이 아니라, 부추기고 교사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4. 인간들이 스스로 신들의 후손인 체하는 것이 유용하다는 바로(Varro)의 견해에 대하여

 

저들 중 아주 학식있는 바로도 비록 과감하고 확신에 차서 그렇게 말하지는 않지만, 신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거짓임을 인정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는 용감한 사람들이 비록 거짓이라고 할지라도 스스로 신들의 후예라고 믿는 편이 국가를 위해서 이익이 된다고 주장한다. 그래야 큰 일에 과감하게 뛰어들어 그것을 정력적으로 해내고, 그럼으로써 바로 그런 확신으로 보다 풍성한 성공을 확보할 것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이제 당신은 신들 자신에 대해서조차 거짓이 말해지는 것이 시민들에게 유익하다고 판단되는 사회에서, 많은 종교적 신성한 전설이 창작되는 현상이 얼마나 이해할 만하며, 거짓을 위한 문이 얼마나 활짝 열려있는지 알 것이다.

 

5. 신들이 로물루스의 어머니의 간통에 대해서 전혀 분개하지 않은 것으로 보건대, 그들이 파리스의 간통을 징벌했어야 한다는 것은 믿을 수 없다

 

베누스가 인간인 안키세스를 통하여 아이네아스를 낳았는지, 또는 마르스가 누미토르의 딸로부터 로물루스를 얻었는가 하는 문제를 결정하지 않고 남겨 둔다. 왜냐하면 우리 성경도 이와 아주 유사하게 타락한 천사들이 사람의 딸들을 취하여(6:4) 그 당시에 땅이 용사, 즉 엄청나게 크고 힘센 사람들로 가득찼음을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저들의 책이 아이네아스의 어머니와 로물루스의 아버지에 대해 말하는 내용이 사실이라면, 신들은 자기들이 저질렀을 때에는 아무런 불쾌감도 일으키지 않았던 간통 사건에 대해 어떻게 인간들이 저질렀을 때에는 불쾌해 할 수 있는가?

 

나아가 마르스의 간통행위가 신뢰되지 않고, 그 결과 베누스도 문책대상에서 제외된다면, 로물루스의 어머니는 신과 동침했다는 변명이 효력을 상실하게 된다. 실비아가 베스타의 여사제였기 때문에, 신들은 파리스의 간음행위로 인해 트로이인들에게 행한 것보다 훨씬 더 가혹하게 이런 신성모독 행위에 대해 로마인들에게 복수해야 한다. 왜냐하면 심지어 로마인들조차 고대에 간음행위가 발각된 여사제는 생매장하곤 했던 반면에, 보통의 여인들이 그런 죄를 범하면 벌을 주기는 해도 사형까지 시키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6. 신들은 로물루스의 동생 살해 행위에 대해서는 아무런 형벌도 요구하지 않았다

만약 인간들의 죄가 신들을 그토록 격분케 만들어서 그들이 파리스의 죄를 응징하기 위하여 트로이를 불과 칼에 내버렸다고 한다면, 로물루스가 동생을 살해한 사건은 그들을 격노하도록 만들었어야 한다. 형제 두 사람이 도성을 건설했는데 그 중 한 사람은 사악한 행동으로 인하여 살해당함으로써 통치자가 될 수 없었다. 갓 건설된 도성에서 발생된 동생 살해 행위는 이미 번성하고 있던 도성에서 일어난 간통행위보다 더 신들의 분노를 자극했어야 한다.

 

직접 죽였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후안무치하게도 부인하거나, 또다른 많은 사람들은 수치심 때문에 의심하거나, 또 많은 사람들은 슬픔 때문에 숨기려 든다. 모든 사람이 로물루스의 동생이 적이나 낯선 사람에 의해서 살해당하지 않았다는 데 동의하고 있다. 로물루스는 로마인들의 진정한 수장이었다. 왜 그는 신들의 보호를 받았는가?

 

7. 마리우스의 장군인 핌브리아에 의한 일리움 파괴에 관하여

 

로마 내란의 불길이 처음 치솟을 때, 가련한 일리움이 그리스인들로부터 당한 약탈 이상으로, 마리우스 도당 중에 가장 흉악한 핌브리아의 손에 의하여 심하고 잔인한 파괴를 당할 만큼 악행을 저질렀는지 분명히 질문할 수 있다. 왜냐하면 앞서 그리스도인들이 트로이를 점령했을 때에는 많은 사람들이 도망칠 수 있었고, 도망치지 못했던 사람들은 비록 노예생활이기는 했지만 적어도 생명을 부지할 수는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핌브리아는 애초부터 한 사람도 살려주지 말고 도성과 모든 거주민을 다 불사르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런 일이 자행되는 동안에 양측으로부터 똑같이 존중받았던 신들은 아무 일을 하지도 않았고, 혹은 보다 정확히 말한다면 아무런 일을 할 수도 없었다. 이 때에도 도성이 그리스인들에 의하여 불타고 파괴된 후 다시 건설되었을 때, 그 도성을 유지시켜준 신들이 성서와 제단을 버리고 떠나갔다고 말할 수 있을까?

 

왜 신들은 토로이가 그리스의 영웅들이 아니라, 로마인 중에서도 가장 비열한 자에 의하여 파괴되도록 내버렸는가? 신들이 트로이를 버렸기 때문에 그 도성이 파멸된 것도 아니었다. 왜냐하면 항상 속일 기회를 찾고 있는 악마들은 자기들이 할 수 있는 일을 했기 때문이다.

 

8. 누마 통치기의 평화는 신들 덕분이라고 믿을 수 있는가?

 

사람들은 로물루스의 후계자인 누마 폼필리우스가 통치기간 동안 줄곧 평화를 유지함으로써, 통상적으로 전쟁이 터질 때면 열어놓는 야누스의 문을 닫았던 것이 신들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믿고 있다. 그리고 그는 로마인들 사이에 많은 종교의식을 제정함으로써 그러한 보응을 받았다고 생각되고 있다.

 

분명히 그 왕이 평온한 시기에 건전한 일을 추구하게 할 만큼 지혜롭고, 사악한 호기심을 내던지고 진정한 경건으로 참된 하나님을 추구하였더라면, 흔치 않은 평화 시기에 대해 우리의 축하를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상 그에게 그런 평화를 허락한 이는 신들이 아니었다.

 

나도 평화가 크게 유익하다는 점은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햇빛이나 비, 그리고 생활에 필요한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종종 감사치 않는 자들과 사악한 자들에게도 부여되는 참된 하나님의 유익이다. 그러나 신들이 로마와 폼필리우스에게 엄청난 혜택을 베풀었다면, 왜 그들은 나중에 로마 제국이 좀더 칭찬받을 만한 일을 했을 때에 그것을 부여하지 않았던가?

 

10. 로마제국은 누마의 평화스런 방법을 뒤따름으로써 조용하고 안전할 수 있었는데도, 그토록 광적인 전쟁수행에 의하여 확장되는 것이 바람직했는가?

 

저들은 로마가 계속적으로 부단히 전쟁을 치르지 않았더라면 그렇게 넓게 확장될 수도 없었고 그렇게 영광스럽게 될 수도 없었을 것이라고 대답하는가? 실로 정당한 주장이다. 그러나 제국이 확대되기 위하여 평화를 상실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인간의 신체라는 이 작은 세계에서도 부자연스런 고통을 가하여 거인과 같은 우람한 체구를 얻은 뒤에 평안히 쉬지도 못하고 신체의 크기에 비례하여 고통을 당하는 편보다는, 적절한 크기로 건강을 유지하는 편이 낫지 않은가? 처음 시기의 평화가 지속되었더라면, 어떤 악이 생겨났을 것인가? 그리고 그 결과가 좋지 않았을 것인가?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서서히 생명은 색조를 잃어가고,

주체할 수 없는 전쟁의 광기와 탐욕스런 소유욕이 뒤를 이었다.“(베르길리우스)

 

12. 로마인들은 누마에 의하여 도입된 신들에게 엄청나게 많은 신들을 첨가시켰지만, 그런 신들은 그들에게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했다

 

폼필리우스가 그토록 많은 의식을 도입했음에도 불구하고, 로마인들은 그에 만족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누가 로마를 보호하도록 위임받은 신들을 다 열거할 수 있겠는가? 토착신도 있고, 수입된 이방신도 있으며, 하늘과 땅과 지하와 바다와 샘과 강의 신들도 있으며, 바로가 말하듯이 명확한 신도 있으며, 불명확한 신도 있다. 동물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런 신들 사이에도 남성과 여성의 구분이 있다. 그렇다면 로마는 그처럼 구름떼같이 많은 신들의 보호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단지 몇 가지만 언급했던 그 크고 끔찍한 재앙들로부터 분명히 고통당하지 말았어야 한다.

 

로마는 수많은 신들을 불러 모아놓고는 그들을 위해 신전과 제단과 희생제를 바치고 사제를 제정하거나 임명하고 유지시켰다. 마땅히 홀로 이 모든 의식을 받을 만한 자격을 가지셨던 참되고 가장 높은 하나님의 진노를 샀다. 사실 로마는 신들이 좀더 적었을 때, 더 번성했다. 그러나 로마는 점점 커지게 되자 마치 큰 배에서 승무원이 더 많이 승선할 필요가 있다는 듯이, 더 많은 신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적은 수의 신들이 점점 커져가는 위엄을 방어해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13. 로마인들은 첫 번째 부인을 어떤 권리나 협정으로 얻었는가?

 

자기 남편인 유피테르와 함께, “토가(고대 로마의 겉옷)의 민족인 로마의 아들들을 양육했던 유노나 베누스 자신은 어찌된 셈으로, 정당하고 품위있는 방법으로 사랑하는 아이네아스의 후손들에게 아내를 찾아줄 수 없었던가? 로마인들은 아내가 부족했기 때문에 아내를 훔쳐온 뒤에, 장인되는 사람들과 전쟁을 치러야 되는 절박한 필요가 생기게 되었다. 그래서 잡혀온 불쌍한 여인들은 남편들이 가한 해악의 충격에서 채 벗어나기도 전에, 자기 아버지의 피로써 지참금을 바쳐야 했다.

 

로마인들은 승리한 후, 장인의 피로 얼룩진 손으로 그 불쌍한 소녀들을 강제로 포옹했다. 소녀들은 승리한 남편들이 무서워서 죽은 자기들 부모를 위하여 감히 눈믈도 흘리지 못했다. 전투가 심해질 때, 그녀들은 입술로 기도를 했지만 누구를 위해서 기도하는지 스스로도 알지 못했다.

 

14. 로마인들이 알바인들에 대항하여 벌인 전쟁의 사악함, 그리고 권력욕에 의하여 획득한 승리에 대하여

 

로마와 알바의 군대가 얼마나 끝없는 살상과 손실로써 평화를 끝장내었던가! 알바는 아이네아스의 아들인 아스카니우스가 건설했기 때문에 실상은 로마에게는 트로이보다도 더 모국에 가까웠는데도, 로마의 왕인 툴루스 호스틸리우스에 의하여 충동질받아 전쟁을 벌이게 되었다. 양측은 상당한 손실을 입고 고통을 받았기 때문에 급기야 싸움에 싫증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양측에서 세 쌍둥이의 결투로써 전쟁을 결말짓자고 합의되었다. 로마 측에서는 호라티우스 집안의 세 형제가 출정했고, 알바 측에서는 쿠리아티우스 집안의 세 형제가 앞으로 나왔다. 처음에는 호라티우스 가의 두 형제가 쿠리아티우스 가의 형제들에게 패하여 살해당했으나. 마지막 남은 호라티우스가 세 명의 쿠리아티우스 형제들을 죽였다. 그래서 로마가 승리했으나 이미 엄청난 재앙을 당한 터이라, 병사 중에 집으로 돌아간 사람은 6명에 1명 밖에 되지 않았다. 이 전쟁은 어머니 격인 나라와 딸 격인 나라가 서로 싸웠기 때문에 내란보다도 더 추악했다.

 

15. 로마의 왕들은 어떤 방식으로 살았으며 죽었는가

 

아첨하는 전설에 따르면, 로물루스는 승천했다고 한다. 그러나 로마의 어떤 역사가들은 그가 잔학했기 때문에 원로원에 의하여 몸이 절단당하여 죽었고, 율리우스 프로쿨루스라는 사람이 매수당하여 로물루스가 꿈에 자기에게 나타나 로마 사람들이 그를 신으로 숭배하라는 명령을 발표하였다고 말한다. 이렇게 하여 원로원의 조치에 분개하기 시작하던 시민들은 조용해지고 진정되었다는 것이다. 뒤이어 일식 현상이 있었는데 무지한 대중들은 이것이 태양운행의 정해진 법칙임을 알지 못하고서, 로물루스의 신적인 능력에다가 그 원인을 돌렸다.

 

키케로 역시 자신의 저술인 공화국론에서 사실이 아니라 상상이었음을 보여 준다.

로물루스는 굉장한 명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일식 기간에 갑자기 사라졌을 때 그가 신들 가운데 받아들여졌다고 생각되었다. 최고의 덕성을 가지지 않고서는, 죽을 운명을 지닌 어떤 인간도 그렇게 될 수 있다고 생각될 수 없었다.”

 

그가 갑자기 사라졌다는 어구로써 우리는 혼란 속의 난동이나 암살기도에 의하여 불가사의하게 살해당했다고 이해할 수 있다. 로마의 세 번째 왕으로서 번개에 의하여 죽임당했던 툴루스 호스틸리우스에 대해서 키케로는 같은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는 이런 죽음에 의하여 신들 가운데 들었다고 생각되지 않았다. 로마인들은 로물루스의 경우에 그렇다고 확신했거나 설득당했던 현상을 아무에게나 헤프게 인정함으로써 신이 된다는 이야기가 통속화되어 경멸당하도록 원하지 않았던 것이다.”

 

로마의 다른 왕들은 자연사했던 누마 폼필리우스와 안쿠스 마르키우스를 제외하고는 얼마나 끔찍스런 죽음을 당했던가! 알바를 정복하고 파괴시켰던 툴루스 호스틸리우스는 자신의 집과 더불어 번개에 의하여 잿더미로 변해버렸다. 프리쿠스 타르퀴니우스는 선왕의 아들들에 의하여 살해당했다. 세르비우스 툴리우스는 그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던 자기 사위 타르킨 수페르부스에 의하여 처참하게 살해당했다. 가장 훌륭한 로마 왕들에 대해 이런 극악무도한 살해사건이 벌어졌는데도, 파리스의 간통에 격분하여 불쌍한 트로이를 그리스인들의 불과 칼에 내던졌다고 하는 신들은 성소와 제단을 떠나가지 않았다. 오히려 살해자인 바로 그 타르킨은 장인을 이어 왕이 되도록 허락받았다. 그는 끔찍한 범죄행위를 통하여 왕위에 올라서는 카피톨을 건축했던 것이다.

 

21. 자기를 구해준 스키피오에 대한 로마의 배은망덕함과 살루스티우스가 최고라고 묘사한 시기 동안의 로마의 도덕성에 관하여

 

살루스티우스에 따르면 로마인들이 아주 도덕적이고 조화롭게 살았다는 시기, 2차 포에니 전쟁과 마지막 포에니 전쟁 사이의 기간에 대해 생각하기로 한다. 그러나 이런 도덕적이며 조화롭던 시기에도 로마와 이탈리아의 해방자인 대 스키피오가 정적의 탄핵을 받아 자신의 용기로써 구원하고 해방시켰던 나라를 떠나야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는 놀라운 능력으로 한니발을 패퇴시키고 카르타고를 굴복시킴으로써, 끔찍스럽고 파괴적이었으며 위태로웠던 2차 포에니 전쟁을 종결시켰었다. 우리는 그가 성년 초에 신들에게 헌신되었으며, 신전에서 양육되었다고 듣고 있다. 그러나 그는 놀라운 승리를 거둔 후에 로마를 떠나 리테르늄 성읍에서 만년을 보내야 했으므로, 망명지에서 돌아오라는 요청에도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다가 자신의 유해조차 그 배은망덕한 도성으로 옮기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2차와 3차 포에니 전쟁 사이의 기간에 여성을, 심지어 무남독녀라고 할지라도 상속자로 삼지 못하도록 금지시키는 악명높은 보코니아 법이 통과되었다. 나는 그 법보다 더 부당한 법이 있을까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이 두 차례의 포에니 전쟁 사이에 로마가 다소 불행을 덜 당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아프리카누스라는 별명을 얻었던 다른 스키피오가 로마의 경쟁자인 카르타고를 단기간에 굴복시킨 뒤에 철저히 파괴하여 마지막 포에니 전쟁을 종결시켰을 때, 로마 공화국은 번영과 안정에 의하여 유입된 타락한 풍습에서 생겨난 엄청난 해악으로 압도당했다. 카르타고의 갑작스런 파멸은 오랫동안 지속되던 적대관계보다 로마에 더 심각한 해를 입혔던 것으로 보인다.

 

22. 아시아에서 눈에 띄는 모든 로마시민을 학살하라는 명령을 내린 미트리다테스의 칙령에 관하여

 

아시아의 왕인 미트리다테스가 어느 날 아시아에 거주하는 모든 로마인을 처형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실제로 이 일이 시행되었다. 아시아에는 많은 로마인들이 개인사업에 종사하고 있었는데 이 얼마나 처참한 광경이 눈앞에 벌어졌던 말인가! 눈에 띄기만 하면 가차없이 무자비하게 살해당했던 것이다. 신들이 도대체 어떠한 도움을 주었는지 저들로 하여금 어디 말해보도록 하라.

 

23. 온갖 가축의 광기로 나타난 흉조에 뒤이어, 로마공화국을 괴롭혔던 내적인 재앙들에 대하여

 

공화국 내부에서 발생했기 때문에 훨씬 더 괴로움을 안겨주었던 재앙들에 대해서 가능한 한 간략하게 언급해 보자. 시민의(civil), 아니 야만적인(uncivil) 소란은 이제 더 이상 단순한 혼란이 아니라 시가전의 양상을 띠면서, 거리낌없이 유혈사태를 빚었다. 또 파당이 생겨나서 언쟁이나 논쟁이 아니라 물리적인 충돌과 무력사용을 불사하면서 상대방에게 덤벼들었다. 동맹국과의 전쟁, 노예전쟁, 내전 등으로 이탈리아에는 얼마나 파멸적이며 황폐한 참극이 발생되었으며, 로마인들이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려야 했던가!

 

라틴 동맹이 로마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키기 전에는, 지금까지 인간이 부리던 개와 말과 당나귀, 소 등 고분분하던 온갖 동물들이 갑자기 난폭해져서 온순한 성질을 잊어버리고는 우리에서 뛰쳐나와 제 마음대로 돌아다님으로써, 낯선 사람이든 주인이든 위험을 무릅쓰지 않고는 가까이 접근할 수 없었다. 이 일이 전조라고 한다면 정말로 끔찍스러운 재앙으로 내린 전조요, 그렇지 않다고 할지라도 그 자체로도 얼마나 끔찍스런 재앙이었던가! 만약 그런 일이 오늘날 발생되었더라면 그 당시에 동물들이 사람을 대항한 이상으로 이교도들이 우리에게 대항하여 광포하게 덤벼들었을 것이다.

 

24. 그라쿠스 형제의 선동에 의하여 발생된 내란에 대하여

 

내란은 그라쿠스 형제가 농업법과 관련하여 사람들을 선동했을 때 발생되었다. 그들은 귀족들이 부당하게 차지하고 있던 농지를 시민들에게 분배하려고 결심했었다. 그토록 오랜 관행이 되어버린 악습을 개혁하는 것은 위험, 아니 사건으로 입증되었듯이 불행으로 가득차게 되었다. 형인 티베리우스 그라쿠스가 살해당했을 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살해당했던가! 귀족이든 평민이든 법적 결정이나 절차 없이 무장한 군중과 폭도에 의하여 무차별적으로 학살당했다. 동생 그라쿠스가 죽은 후에, 도성 내에서 그라쿠스에 대항하여 군대를 출동시켜 그와 그 지지세력을 패배시키고 죽이고는 수많은 시민을 학살했던 집정관인 루키우스 오피미우스는 잔존 그라쿠스 세력을 추적하여 법적인 조사를 마친 뒤에, 3천명이나 되는 많은 사람들을 처형했다고 전해진다. 하물며 무장폭도에 의해서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을 것인지 우리는 짐작할 수 있다. 그라쿠스를 직접 암살한 자는 맺은 계약에 따라 희생자의 머리와 같은 무게의 금을 받고 집정관에게 머리를 팔았다. 이런 일련의 유혈사태 속에, 집정관이었다가 축출당한 마르쿠스 폴비우스도 모든 자녀들과 함께 살해당하고 말았다.

 

25. 이런 소란과 학살이 자행되던 장소에 원로원의 결의에 의하여 세워진 콘코르디아 신전에 대하여

 

비극적인 폭동이 발생하여 모든 계급의 시민들이 죽어 넘어진 그 장소에 콘코르디아 신전을 세우도록 한 원로원의 결의는 꽤 산뜻했다. 내가 보기에, 그 신전을 그라쿠스 형제가 형벌받은 증거로서 사람들의 눈에 띄게 되면, 민중을 향하여 연설하는 사람들의 기억을 자극하게 될 목적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 도성에 있었다고 한다면, 도성이 그처럼 내란으로 인하여 사분오열 되지 않도록 막았어야 할 여신에게 신전을 세워줌으로써 신들을 조롱하는 격이 아니었던가? 아니면 콘코르디아 여신은 시민들의 생명을 아무렇게나 내동댕이쳤기 때문에, 유혈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그 신전에 유폐되었다는 것일까?

 

29. 고트족과 골인들이 침입했을 때 로마의 경험과 파국과 내란 당사자들에 의하여 야기된 파국 사이의 비교

 

어떠한 외국 민족의 포악, 어떠한 야만인들의 흉포함이 시민에 대한 시민의 이런 승리와 비교될 수 있는가? 어떤 쪽이 로마에 더 불행했으며, 더 추악하며, 더 괴로웠는가? 최근의 고트족과 과거의 골인들의 침입인가, 아니면 자신들의 몸이나 다름없는 사람들에 대해서 마리우스와 술라와 그 일파가 저지른 잔인한 행동인가? 사실 골인들도 당시에 유일하게 방어되고 있던 카피톨 신전 외에, 시내 어디서든지 발견되는 모든 원로원 의원들을 학살했다. 그러나 카피톨 언덕으로 피난한 사람들에게 금을 내놓고 목숨을 사도록 허용해 주었다. 또한 고트인들은 아주 많은 원로원 의원들을 살려주었는데, 그들이 어떤 의원을 죽였다는 것보다 그것이 한층 더 놀라운 사실이었다.

 

그러나 술라는 마리우스가 아직 살아있는 동안에, 골인들조차 침입하지 않았던 카피톨 신전에서 정복자로 자리잡고는 그곳에서 살륙명령을 공포했다. 그리고 패주하여 도망간 마리우스가 나중에 돌아와서는 이전보다 더 잔학하고 잔인한 유혈사태를 일으키기는 하겠지만, 술라는 카피톨 신전에서, 그리고 원로원의 결의를 사용하여 많은 로마인들의 생명과 재산을 강탈했다. 그 후에 술라가 떠나자, 마리우스 일파는 어떤 것을 신성하게 여기고 남겨두었던가? 술라파의 마지막 명령서에는 고트족이 살해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원로원 의원들을 살해하려는 음모가 담겨 있었다.

 

31. 이방신들이 숭배되고 있을 때에조차도 이런 재앙이 사람들을 덮쳤는데, 오늘날 당하는 고통의 원인을 다신론적인 숭배행위에 대한 금지조치와 그리스도에게 돌리는 것은 얼마나 파렴치한 일인가?

 

그리스도의 큰 은혜에 대하여 감사할 줄 모르는 자들로 하여금 이런 엄청난 재난에 대한 책임을 그들 자신의 신들에게 묻게 하라. 확실히 이런 일들이 발생되었을 때, 신들의 재단에는 불꽃이 피어오르고 있었으며, “아라비아 향료와 신선한 화환에서 나오는 향기가 혼합되어 풍기고 있었다. 신관들은 존중히 여겨졌으며, 성소는 호화스럽게 장식되었으며, 신전마다 제사가 드려지고 연극이 공연되며, 사람들이 거룩한 황홀경에 빠져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먼 장소에서 뿐만 아니라, 바로 신들의 제단 사이에서 시민들의 피가 엄청나게 흘러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주 용납될 수 없을 정도로 이 그리스도교 시대에 대해 중상모략하는 자들은 스스로 도피처를 찾아 특별히 그리스도에게 봉헌된 장소로 도망쳐 오거나, 야만인들이 목숨을 살려주려고 이끌고 오는 바로 그 사람들이다.

 

그 많은 재앙들이 오늘날 발생했더라면, 그토록 생각없이 우리를 비난하며 우리에게 답변을 강요하는 저들은 그 원인을 그리스도교에 돌리지 않았을 것인가? 옛날에 그 신들을 숭배한 사람들이 훨씬 심한 재앙을 모면하지 못했는데도 불구하고, 오늘날 겪고 있는 보다 가벼운 고통을 모면하기 위하여 그 신들을 다시 숭배하자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