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라일

존 라일, 「곧은 길」, 제10장, 진정한 그리스도인만이 행복한 사람이다(김영희강의안9)

강대식 2015. 6. 23. 05:40

10 장  행복

 

이러한 백성은 복이 있나니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은 복이 있도다”(144:15)

 

1. 모든 행복에 가장 중요한 몇 가지 요소를 지적해 본다.

행복은 모든 인류가 얻기를 염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행복에 대해 말할 때, 얼마나 되는 사람들이 그것이 진정으로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는가?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의 생각은 공허하고, 어렴풋하며 애매하다.

진정한 행복은 슬픔이나 불안으로부터의 완벽한 자유를 뜻하지 않는다. 만일 행복이 그러한 것으로부터 자유를 뜻한다면 이 세상에서는 행복 같은 것은 있을 수도 없을 것이다. 우리의 모든 본성은 죄로 더렵혀졌고, 세상은 온갖 사악함이 가득하다. 이러한 상태에서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상의 행복은 필연적으로 복합적인 것이어야 한다.

웃는다고 해서 진정하게 행복한 것은 아니다. 표정이란 것은 사람의 내면을 아주 가끔 부분적으로만 표시해 줄 뿐이다. 전혀 행복하지 않으면서도 아주 즐거운 표정을 지을 수 있는 사람도 있다. 그것은 순전히 실질과 현실을 피해가는 끝없이 공허한 쇼이다. 꽃을 꺾어다가 정원을 만들 수가 없듯이 웃는다고 해서 반드시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진정으로 행복해지려면 인간의 본성의 가장 숭고한 욕구가 채워져야 한다. 때때로 내면에서 이 삶이 전부가 아니다. 무덤 저편에도 또 다른 삶이 있다라고 미세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모든 사람들이 이것을 안다. 우리는 두려우리만치 놀랍게 창조된 존재이다. 인간에게는 영혼의 욕구가 있고, 양심의 욕구가 있다. 이들 요구들이 충족되지 않는 한 진정한 행복은 있을 수 없다.

진정으로 행복해지기 위해 사람은 이 세상의 어느 것에도 의존하지 않는 기쁨의 원천을 가져야만 한다. 지상에는 불안정과 불확실의 흔적이 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곳에 자신의 행복을 전적으로 맡기는 사람은, 모래위에 자신의 집을 세우는 사람이거나 갈대를 의지하는 사람과도 같다. 그것은 진정한 행복이 아니다. 진정으로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모든 면에서 불안한 느낌 없이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과거를 돌아볼 때에 죄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야 하고, 자신의 주위를 돌아볼 때 아무런 불만을 느끼지 않고, 미래를 내다볼 때 걱정스런 주저함이 없어야 한다. 만일 당신이 현재가 아닌 어떤 때도 편안하게 바라볼 수 없다면 당신이 자랑하는 행복은 빈약하고 허구적인 것임을 똑똑히 인식하라.

 

2. 행복해 지기 위한 방법에 있어서 야기되는 몇 가지 보편적인 잘못들을 밝힌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하게 될 것이라고 믿는 몇 가지 길이 있다. 그들 각각은 만일 자신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달성할 수만 있다면 행복해질 것이라는 망상을 품는다.

지위와 위대함만으로 행복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전적으로 잘못이다. 그들은 황금사슬이 채워진 채 일하는 노예들로, 그들의 마음을 누르는 짐과 책임으로 그 누구보다도 실제적으로 자유가 없다. 로마 황제 안토니우스는 제왕의 권력이란 비탄의 바다이다라고 말했다. 젖 짜는 여자의 노래 소리를 들은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은 자신이 그녀와 같은 운명을 타고 태어났더라면 하고 소망했다. 부귀로 즐거운 정신과 마음을 살 수 없는 것이다. ‘이란 골칫거리의 다른 이름이며, 영어 단어로 토지’(acres)란 또한 근심거리’(cares)와 같다고 말한 사람은 현명한 사람이다.

 

학문과 과학만으로 행복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전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그들이 더 많이 배울수록 자신들의 무지만을 발견한다.(1:18) 한 사람이 지병과 죽음과 무덤에 대해 생각할 때, 어떠한 세속적인 지식도 그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주지는 않을 것이다. 유식한 학자였던 셀텐은 자신의 임종 시에 그의 학문의 어떤 것도 바울의 네 구절(2:11-14)의 말만큼 위안을 주지는 못했다고 고백했다.

무위도식만이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전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노동자가 흔히 부자의 문 앞을 지날 때 이런 생각을 한다.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피조물은 아무것도 할 일이 없는 사람이다. 에덴동산에서도 무위도식은 없었다. 아담과 하와는 동산을 다스리며 지켜야만 했다’(2:15) 천국에도 무위도식은 없을 것이다. 하나님의 종들은 하나님을 섬겨야할’(22:3) 것이다.

즐거움에 대한 추구와 쾌락만으로 행복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전적인 오해이다. 인생을 보내는 모든 지루하고 피곤하며 어리석고 이득 없는 방법들 중에도 가장 잘못된 것이다. 어린 아이 라도 자신의 장난감을 하루 온 종일 가지고 놀지는 않는다.

 

만일 당신이 이 길들 중 어떤 것이라도 진정한 평화로 인도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가게 된다면, 당신의 양심은 결코 만족을 느끼지 못할 것이며 결코 행복을 얻지 못할 것이다. 당신은 방황하고 또 방황할 것이고 소망했던 목적은 출발했던 때와 마찬가지로 각각의 길 저 끝에 멀리 있는 것으로만 보일 것이다. 당신은 올이 성긴 체에 물을 채우려는 자나 구멍 뚫린 가방에 돈을 집어넣는 자와도 같다. 당신은 코끼리에게 하루에 모래 한 알의 먹이를 주며 그 코끼리가 행복해지도록 하려는 것과 마찬가지로 지위와 부귀와 학문, 무위도식, 쾌락으로 당신의 마음을 만족시키려 하고 있다.

권력과 지혜, 부를 지녔던 솔로몬의 전도서를 보라.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1:14)

프랑스 루이 15세의 총애를 받은 귀부인 드 퐁파두르 부인은 프랑스 궁전 내에서 무제한의 영향력을 지녔다. “야망에는 평화란 있을 수 없다. 나는 항상 우울하고 가끔은 미친 듯이 우울해지기도 한다. 찬사, 충성, 애착들은 더 이상 나의 흥미를 끌지 못한다. 나는 살고 있지 않다. 모든 것이 나의 삶을 고통스럽게 하기 위해 공모하고 있다.”

산 자 속에서도 죽은 자들 속에서도 위대해지고 권력을 잡는다 해서 반드시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슬픈 증거들은 너무나 많다.

 

행복을 찾지 못하는 곳에서 그것을 완고하게 찾아 헤매는 것보다 더 인간 본성의 부패를 입증하는 것은 없다고 본다. 현자들은 행복해지는 방법에 대한 자신들의 체험을 기록에 남겼다. 그러나 사람들은 경고를 바람 속에 던져 버리고 모두가 자신만의 길로 몰려든다. 그들은 공허한 그림자 속을 거닐며 헛되이 불안에 떨고 결국 너무 늦게 정신이 들어 자신들의 전 생애가 잘못된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들은 소경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몽상이 아프리카 사막의 신기루처럼 근거 없고 절망적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 것이다.

당신에게 복음을 전하는 자들의 애정어린 경고를 받아들이고 결코 행복이 찾아질 수 없는 곳에서 행복을 구하지 말 것을 간절히 부탁한다. 미천한 오두막에 있는 만큼의 불행이 훌륭한 저택에도 있다. 가진 것에 만족하자.

 

3. 진실로 행복해지는 방법을 밝힌다.

행복으로 확실하게 이끌어 줄 길은 오로지 그것을 택하기만 하면 분명히 있다. 이 길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부귀도 지위도 학문도 필요 없다. 스스로가 이 길에 들어가기를 거부하는 자를 제외하고는 그 어느 누구도 여기에서 배제되지는 않는다. 이 길은 하나 뿐인 유일한 길이다. 이것은 너무나 간결하고 간단한 처방인 것처럼 보이나, 흔히 가장 위대한 진실은 가장 간단한 것이다.

 

진실한 그리스도인만이 행복한 사람이다. 진실한 그리스도인의 뜻은 거듭나서 진실로 영적이고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자, 생활 속에서 힘차게 원칙을 지키도록 자신을 강제할 수 있는 자, 마음과 생활이 그리스도인인 자를 말한다. 그는 다른 사람처럼 감정과 욕망을 가진 연약한 사람이지만, 그 마음 속 깊은 곳에 굳건한 평화와 절대로 고갈되지 않는 풍부한 기쁨을 가진다. 이것이 진정한 행복이다.

모든 진실한 그리스도인을 똑같이 행복하리라고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돌담 위에는 레바논의 삼목뿐만 아니라 연약한 풀도 자라나는 것이다. 은혜에도 각기 그 등급이 있으며, 믿음에도 등급이 있다. 가장 깊은 믿음과 은혜를 지닌 자가 가장 큰 행복을 가지게 될 것이다. 각각의 사람들의 평안에는 기복이 있는 법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자신 속에 깊은 평화의 샘을 지니는데 그것은 수위가 아무리 낮아진다 해도 완전히 말라붙지는 않는다.

 

진정한 그리스도인만이 행복한 사람이다. 자비롭게도 우리 앞에 자리하고 있는 이 하나님을 향한 신비로운 증인인 양심은 완전히 만족을 얻고 안식을 취할 것이다. 양심은 그리스도의 모든 제사장 직분과 중보자의 직책 안에서 모든 두려움에 대한 완벽한 해답을 얻는다. 주 예수 그리스도가 그 모든 요구들을 충족시켜 주셨다. 양심은 더 이상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적이 아니라 그의 친구이자 충고자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행복하다.

 

진실한 그리스도인만이 행복한 사람이다. 그는 자신의 영혼에 대해 생각할 수 있으며, 앞으로 올 미래는 그리스도와 함께라면 두려워할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느낄 수 있다. 얼마나 축복받음 특권인가?

 

오로지 진정한 그리스도인만이 행복한 사람이다. 그는 이 세상과는 완전히 독립된 행복의 원천을 가졌고, 이 세상의 재난에 의해 영향 받지 않는 모든 이해를 넘어선 하나님의 평화를 가진다. 그는 그를 위해 천국에 예비된 희망을 가지고 있고, 좀이나 녹이 슬지 않는 보물을 가지고 있다. 그는 어느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자기의 기업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진정한 행복이다.

 

진실한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올바른 위치에 있기 때문에 행복하다. 그의 애정은 지상의 것에 있지 않고 천국의 것에 있고, 그의 의지는 자신의 정욕에 굽히지 않고 하나님의 의지에 순종한다. 무질서의 비참함은 바로 회심하지 않은 사람의 마음이다. 은혜는 그 마음속의 모든 것을 올바른 위치에 놓이게 해준다. 진실한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설 자리를 발견한 자이다. 자신이 교만과 자아를 버리고 예수의 발아래 앉아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한다. 그래서 행복하다. 명백한 진실은 그리스도 없이는 이 세상에 행복이 없다는 것이다.

 

4. 맺는 말

1) 자신의 마음에 손을 얹고 당신은 행복한가라는 엄숙한 질문을 해볼 것을 간청한다.

유한한 것을 사랑하고 우상을 만들어 내고 모든 것을 계획하고 체계화 시키지만 심판에 임할 준비는 하지 않는 세속의 사람이여, 당신은 행복한가? 가련하고 덧없는 육체를 위해 수없는 시간을 보내며 사람들의 찬사가 마치 세상의 전부인 양 그 우상을 만들어내는 어리석은 여인이여, 당신은 행복한가? 쾌락과 방종에 미치고 자신이 영리하고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무지한 젊은이들이여, 당신은 행복한가? 당신들의 양심은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당신들의 마음속에는 커다랗게 공허한 자리가 있어 아무것으로도 그것을 채울 수 없을 것이다. 당신들은 정말로 비천한 사람들인 것이다. 당신이 회심하기 전에는 절대로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경고를 받아들이라.

 

2)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에게, 행복해질 수 없는 삶을 사는 우둔함에 대해 경고한다.

당신들에게 심심한 동정을 표하며, 너무 늦기 전에 발길을 멈추고 생각해 볼 것을 부탁한다. 당신은 스스로 물을 담을 수 없는 수조를 애써 만들어내고 있다.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55:2)

당신은 자신의 설계로 바벨탑을 세우고 있으며, 그분이 그것에 멸시를 퍼부으실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당신이 죽음에 임하여 수치스럽게 여기게 될 삶의 길의 헛됨과 당신이 가장 필요로 할 때 실패로 이끌 순전히 명목상의 신앙을 가진 공허함에 대해 생각해 보라.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성령 없이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었던 사람이 있다면 그가 누구인지 말해 달라. 행복에 이르는 길과 구원에 이르는 길은 같은 것이다.

 

3) 아직도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행복을 발견될 수 있는 곳에서만 구할 것을 호소한다.

행복으로 가는 길의 열쇠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손에 달려 있다. 그 문이 겸손하고 기도하는 신자들에게 열리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주 예수께 와서 자신의 길을 걷는 데 지쳤다고 고백하고 안식을 구하라. 주 예수 자신께서 당신을 초대하고 계신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11:28-30)

 

당신은 그리스도께의 봉사가 행복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면, 그리고 봉사함으로써 행복을 증가 시키기를 바란다면, 은혜 안에서 자라기 위해 항상 수고하라. 가장 거룩한 사람이 항상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해묵은 은혜에 안주하지 말라. “주 안에서 기뻐하라”(3:1)라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가를 더욱 더 잘 알게 되도록 기억하라. 더욱 더 감사하는 마음을 갖기 위해 정진하라. 더욱 더 많은 선행을 하기 위해 노력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