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언제 1662년의 자리로 오게 될까요?/ 로이드 존스
1962년 7월에 로이드 존스는 복음주의 도서관에서 연간 강의를 했다. 청교도 대축출 300주년을 기념하는 강의였다. 그는 청교도들이 대규모로 국교회를 떠났던 역사적 사건을 되짚어 보며 청교도들의 거룩함과 불굴의 정신을 칭찬했고, “종파 분립은 언제나 통탄할 만한 죄이지만 분리는 종종 그리스도인의 의무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다양한 교단에 섞여 있는 복음주의자들을 겨냥해 다음과 같은 날카로운 적용을 하며 강의를 끝맺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자연적인 탄생과 성장과 전통 습득의 결과로 가지게 된 지위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진리입니까? -- 찬성하라고 요구되는 신조나 신앙고백을 개인적으로 해석해 버려야 합니까? 아니면 결정을 보류하는 것이 정직하고 옳은 것입니까? -- 우리는 언제나 다수의 결정에 따라야 하고, 투표에 지면 비록 다수의 의견이 아주 틀리다고 생각될 때도 그대로 남아서 진리의 증인이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까? 다른 사람들도 그 방향으로 가도록 그들에게 영향을 미치려고 애쓰면서 말입니까? --- 우리는 언제 1662년의 자리로 오게 될까요? 어느 지점에서 진리에 타협하고 양심을 어기고 있다고 느끼게 됩니까? --- 1662년 때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가 해야 하는 선택도 바로 순응이냐 순결이냐의 선택이 아닙니까?”
카슨은 로이드 존스의 강의가 “나의 양심을 자극” 했으며 탈퇴자의 길로 가는 여정에 “끝의 시작”이 되었다고 회상했다. 그리고 카슨은 이런 질문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다. “청교도를 깊이 존경하고 청교도의 신학을 설명해서 가르치되 이들의 모범은 따르지 못하는 자로 남아 있을 것인가?”
이안 머리는 ‘우리가 잊은 스펄전’이라는 책에서 스펄전의 입장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설교하지 않는 목회자들과 연합하고 제휴한다는 것은 도덕적 죄를 짓는 일이다 --- 오류야말로 교회의 연합을 깨뜨리는 장본인이며, 따라서 오류를 용인하는 교단 연맹 가운데 남아 있는 것은 곧 분열을 지지하는 것이다.” 머리는 또한 스펄전이 라일에게 국교회의 부패에서 나오라고 도전했던 글을 다시 출판했는데, 이 일은 로이드 존스가 존 스토트를 비판했던 일과 일맥상통하는 의미심장한 빅토리아 시대의 사건이었다. 스펄전은 성공회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로이드 존스가 1966년 10월 전국복음주의회의에서 했던 연설은 폭발적일 수밖에 없었다. 로이드 존스는 다음과 같이 호소했다.
“여러분과 저는 복음주의자입니다. 우리는 신앙의 본질에 대해 동의하지만 아직 분열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식으로 종종 열리는 콘퍼런스를 통해서 만나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시간을 우리는 따로 떨어져 보내며, 구원의 본질적 내용에 대해 부인하고 반대하는 사람들과 연합하여 협력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냅니다. 그리고 가시적으로 이들과 연합되어 있습니다. 자, 이런 것을 저는 죄라고 말하겠습니다 — 저는 진정으로 중요한 모든 것에 대해 동의하는 우리가 분열되어 있다는 것, 삶의 중요한 방침에서 분열되어 있고 또한 많은 시간을 서로 떨어져 보내는 것, 이것이 바로 다름 아닌 분열이라는 죄를 짓는 것이라고 말하겠습니다. 우리는 참으로 이 문제에 아주 긴박하게 대응해야 합니다. 따라서 오늘 저녁 여기 있는 복음주의자 여러분께 호소합니다. 우리가 하나 될 수 없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새로운 일을 할 수 있는 이런 새로운 기회, 그리고 제가 보기에는 하나님이 주신 기회가 여기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대로 이 자리에 머물러야 하는 설득력 있는 이유가 있습니까? 변화를 거절하고 거부해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거꾸로 묻겠습니다. 우리가 가끔이 아닌, 언제나 함께 모여야 한다는 외침이 들리지 않습니까? 제 시간을 저의 형제들과 거의 함께 보내지 못하는 것이 저에게는 큰 슬픔입니다. 전 저의 모든 시간을 그들과 함께 보내고 싶습니다. 저는 에큐메니컬주의를 지지합니다. 복음주의적 세계기독교 말입니다.”
로이드 존스는 복음주의자들이 신앙의 본질을 거부한 교회 위에 복을 내려 주시라고 하나님께 요청할 권리는 없다고 선포했다. 하지만, 만약 이들이 함께 선다면 성령이 ‘강력한 부흥과 재각성’으로 임하실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고 주장했다. 로이드 존스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맺었다.
“친애하는 여러분, 우리는 굉장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역사의 커다란 전환점이 되는 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미 말했지만, 또다시 말하고 싶은 것은, 16세기 이래로 이와 같은 일은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영광스런 기회의 때입니다 --- 누가 압니까? 에큐메니컬 운동이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문제를 운동의 수준에서뿐만 아니라 교회적 차원으로 직면할 수 있게 해준 것에 대해, 그리고 우리가 이로 말미암아 복음주의 교회 연합이나 협회를 이루어 진정으로 하나가 되게 해준 점에 대해,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 하나님이 어서 그날을 앞당겨 주시기를 바랍니다.”
존스는 루터가 가졌던 가장 중요한 질문은 “어떻게 우리가 하나의 지역적인 교회를 가질 수 있을까?”가 아니라 “기독교인이란 무엇인가?”였다고 주장했다. 존스는 복음주의자들이 “한여름 밤의 광란”처럼 국교회를 내부에서부터 개혁할 수 있다는 생각에 비웃었고, 탈퇴를 향한 로이드 존스의 외침은 요한계시록 18장 4절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라!”를 인용하면서 더욱 분명해졌다. 그러나 반대자들은 존스가 자신의 추종자들을 “극단적이고 배타적인 개혁주의적 고립주의로 이루어져 있는 분리주의적 황무지 속으로” 이끌고 갔다고 주장한다. 존스를 “사탄의 도구”라고 부르기까지 했다.
패커의 책 「연합으로 자라 가기」는 1970년 7월 웨스트민스터 목회자 모임의 월간 회의에서 “책에 명시된 교리적 입장을 복음주의적이라고 할 수 없으며, 하물며 더더욱 청교도적이지 않다”는 만장일치의 의견에 도달했다. 로이드 존스는 “그 책을 놓고 보았을 때, (그와) 콘퍼런스를 지속한다는 것은 참으로 우스꽝스러운 일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느끼기에 우리 친구가 더 이상 복음주의자도, 청교도도 아닐 정도로 가톨릭을 너무 많이 용인해 버렸기 때문이다”라고 단호히 말했다. 존스는 그와의 관계를 끊기로 결정했다.
- 앤드루 아더스톤 외, 「로이드 존스를 말하다」, pp 415-4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