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설교, 구원의 옷, 공의의 겉옷
본문: 이사야 61:1-11
1. 하나님의 구원과 의의 역사는 하나님의 영이 임하심으로 이루어진다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사61:1)
복음을 전하는 자도 복음을 받는 자도 다 하나님의 영의 역사에 의해 이루어진다.
구약에서 왕, 선지자, 제사장은 다 기름부음을 받음으로 세워졌다.
그것은 성령의 부으심의 상징이었다.
우리 주님께서도 사역을 시작하시기 전에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으셨다.
주님은 삼중직을 수행하기 위한 기름부음이었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마3:16)
제자들에게도 성령의 능력을 받기 전까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하셨다.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눅24:49)
오순절 날 마가의 다락방에 이 성령이 임하심으로 교회는 시작되었고 사도들의 사역도 시작되었다.
사도 바울도 사람의 지혜의 아름다움으로가 아니고 오직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사역을 하였다.
성령이 아니고서는 하나님이 은혜로 우리에게 주신 것들을 알 수도 받을 수도 없다.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고전2:12)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 성령을 받지 않으면, 하나님도, 성경도, 믿을 수가 없다.
교회를 대적하고 믿을 수 없는 것은 그들이 세상의 영을 받아 그 영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하나님의 영을 받은 자들과 세상의 영을 받은 자들로 둘로 갈라진다. 중간은 없다.
하나님의 영이 오셔야 하나님의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된다.
세상 지혜로 성경을 해석하고 가르치는 자들은 거짓 선지자들이고 배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의 순전한 말씀을 세상 지혜와 지식으로 혼잡하고 제도권을 장악하고 대적하여 왔다.
우리 주님은 회당에서 이 이사야의 말씀을 읽으시고 이 말씀이 오늘 응했다고 하셨다.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행10:38)
믿는 자들은 항상 성령을 구하고 성령을 의지하고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야 한다.
산에 가서 능력을 구해야 주시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며 기도하는 삶을 살 때에 자연스럽게 부어주신다.
오늘날 대개 성령의 능력과 은사라고 하는 것들이 사탄의 능력인 것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고 제멋대로 해석하고 말씀대로 살지 않기 때문이다.
거짓 능력과 가르침은 그들의 열매를 보면 알 수 있고 열매로 판가름이 난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말씀과 법도대로 살려고 하는 사람들은 이미 성령이 와 계신다.
성령이 없고서는 이렇게 살 수 없고, 예수를 주라 고백할 수 없다.
우리가 성령을 구하는 것은 그 성령으로 충만하여 살고자 함이요,
그 성령의 능력을 힙입어 보다 성숙한 자가 되기 위해 우리도 힘을 다해 수고하고자 하는 것이다.
성령이 없는 자들의 감언이설과 사탕발림에 속아 넘어가지 말아야 한다.
항상 성경에 비추어 보아야 하고, 항상 기도하여 성령의 조명을 받아야 한다.
우리 마음이 탐욕을 향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향하면 성령은 우리와 함께 하신다.(시119:36)
성경의 말씀이 있는 곳에 항상 성령이 계시고,
성령이 계신 곳에 항상 성경의 말씀이 있다는 것을 믿으라.
이에서 벗어나는 것은 미혹의 영인 것을 알고, 영을 다 믿지 말아야 한다.
성품과 삶의 변화 없이 요란하게 간증하고 성경에 없는 현상을 행할수록 거짓 영임이 틀림 없다.
하나님의 영이 임하면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한다.
가난한 자는 심령이 가난한 자요 죄를 회개하고 애통함으로 겸손하게 낮아진 자를 말한다.
이러한 사람에게 아름다운 소식,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해진다.
죄를 회개하지 않고서는 복음을 믿을 수 없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이지, 무조건 예수 믿으라, 복음 믿으라가 아니다.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막1:15)
이방인들 뿐만이 아니라, 성령이 없는 바리새인 사두개인 장로 대제사장 서기관 율법사들은
회개하지 않고 복음을 믿지 않았다.
현대판 이스라엘도 똑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는데, 결국 멸망으로 인도되는 다수가 모를 뿐이다.
성령이 계시고 안 계시고, 성령을 받고 아니 받고가, 아버지와 아들을 바로 믿는 시금석이다.
기독교는 성령과 성경의 종교이다.
성령 없으면 성경 없고, 성경 없으면 성령 없다는 진리를 믿기 바란다.
2. 성령이 오시면, 은혜의 해가 선포되어 자유와 재건과 보상이 이루어진다.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음 받게 하려 하심이라”(사61:1-3)
세상 일로 우울증에 걸린 자나 세상 근심으로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는 것이 아니다.
성령이 작용하여 죄로 인하여 아파하고 고통하는 자가 마음이 상한 자이다.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시34:18)
“지극히 존귀하며 영원히 거하시며 거룩하다 이름하는 이가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있으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있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생시키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생시키려 함이라”(사57:15)
이사야 선지자는 지금 바벨론 포로에서 풀려 나온 자들의 자유와 위로와 보상을 말씀하고 있다.
그것은 복음으로 구원 받는 자의 자유와 위로와 보상의 비유이기도 하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애굽으로부터의 해방과 구원이 우리의 해방과 구원의 비유인 것과 같다.
이스라엘의 바벨론 포로 생활의 고난은, 우리의 낮추심과 시험의 광야 생활과 같다.
이제 그들에게 은혜의 해, 모든 것이 회복되는 희년이 선포된 것이다.
모든 슬픈 자는 위로를 받을 것이다. 어떻게?
무릇 시온에서, 광야 교회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게 하시는 것이다.
슬픔은 기쁨의 기름으로, 회개의 상징인 재를 대신하여 아름다운 화관을 씌워주며,
회개케 한 근심은 이제 회복되어 찬송의 옷, 하나님을 찬양하여 영광을 돌리는 것으로 대신할 것이다.
그들은 이제 포로생활의 고난과 슬픔을 통해 의의 나무가 되었다.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다.
고난도 광야도 슬픔도 여호와께서 심으신 것이요 그것을 통해 의를 이룰 때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함이었다.
우리가 받는 잠시의 고난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이루게 된다.
그들은 이제 오래 황폐하였던 곳을 다시 쌓을 것이다.
포로 생활 동안, 광야 생활 동안, 기업은, 교회는, 한 없이 황폐해지고 무너졌다.
옛부터 무너진 곳도 다시 일으킬 것이다.
황페한 성읍 곧 대대로 무너져 있던 것들을 중수할 것이다.
외인은 서서 너희 양 떼를 칠 것이요
이방 사람은 너희 농부와 포도원지기가 될 것이다.
오직 너희는 여호와의 제사장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다.
너희를 우리 하나님의 봉사자라 할 것이다.
너희가 이방 나라들의 재물을 먹으며 그들의 영광을 얻어 자랑할 것이다.
이제까지 우리를 핍박하고 조롱하던 자들과 신세가 역전되어 영광을 누리게 된다는 것이다.
그동안의 수치 대신에 보상을 배나 얻으며 능욕 대신에 받은 몫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할 것이다.
이 땅에서도 갑절이나 얻고, 영원한 기쁨이 있게 될 것이다.
이 땅에서 받은 갑절의 보상이나 몫은 영원한 기쁨으로 받는 영원한 것에 비하면 맛배기라 할 것이다.
그들의 자손은 뭇 나라 가운데에, 그들의 후손은 만민 가운데에 알리게 될 것이다.
무룻 이를 보는 자들이 그들은 여호와께 복 받은 자손이라 인정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그들과 맺은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이다.
3. 그 날이 불의를 행한 자들에게는 보복의 날이다.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믿는 자들에게 은혜의 해가 불의한 자들에게는 보복의 날이다. 심판의 날이다.
한 쪽에서는 포로 생활에서 슬픔과 근심에서 영원한 자유와 기쁨을 얻고 배나 보상을 받을 때에,
다른 한 쪽에서는 감옥에 갇히고 슬픔과 근심을 뒤집어 쓰고 영원한 고통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정의와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동일한 잣대로 의인은 보상하고 악인은 처벌한다.
“무릇 나 여호와는 정의를 사랑하며 불의의 강탈을 미워하여 성실히 그들에게 갚아주고”(사61:9)
하나님의 그 거룩과 정의와 공의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형벌을 받게 하셨고,
우리는 그 공로로 은혜로 선물로 의롭다 함을 받고 구원을 받았다.
하나님의 그 거룩과 정의와 공의로 말미암아,
고난과 핍박 받은 우리에게는, 자유와 기쁨과 보상을 받게 하시고
불의한 자들에게는, 감옥과 슬픔과 영원한 고통을 받게 하시는 것이다.
우리가 보상을 갑절로 받고 영원한 기쁨을 누리는 그곳은
하나님의 거룩과 정의와 공의가 함께 하는 곳임을 명심해야 한다.
의와 평강과 희락을 하나님 앞에서 영원히 누릴 수 있게 하기 위해 우리를 연단하고 시험하시는 것이다.
4. 구원의 옷을 입은 자는 공의의 겉옷을 더해야 한다.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을 내게 입히시며 공의의 겉옷을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석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사61:10)
이 모든 구원과 고난과 축복이, 출애굽과 광야와 가나안이, 하나님이 시작하시고 이루신 것이다.
그 이루신 것이 기쁘고 즐거운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 일을 이루신 여호와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고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해야 한다.
지금 이사야는 그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며 하나님을 찬송하고 영광을 그 하나님께 돌리고 있다.
한나도 주신 아들이 아니라, 아들을 주신 하나님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을 본다.
“내 마음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내 뿔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높아졌으며 내 입이
내 원수들을 향하여 크게 열렸으니 이는 내가 주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기뻐함이니이다”(삼상2:1)
하박국 선지자는 고난 중에도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고 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합3:17-19)
고난 중에도, 환경이 변화는 것이 없고 악화되고 있을지라도,
주 여호와만이 나의 힘이고 방패인 것을 믿고,
자기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자기를 자기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실 것을 믿고 있다.
오직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고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이다.
바울은 감옥에 있으면서도 항상 기뻐하라고 하였다.
범사에 감사할 줄 알고, 쉬지 않고 기도하라고 하였다.
정말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섭리와 지혜를 믿는다면, 우리도 할 수 있는 일이다.
구원의 옷은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은혜로 거저 의롭다 하심으로 입혀 주신다. 칭의라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구원의 옷으로 끝나지 않고 공의의 겉옷을 반드시 더해야 한다.
하나님은 이 일을 위해서 출애굽의 구원 이후, 광야의 연단을 하시는 것이다.
구원의 옷에 공의의 겉옷을 더해야 한다.
칭의로 구원 받고 우리는 고난과 연단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으며 공의의 겉옷을 더해야 한다.
그것은 성화의 겉옷이요, 성화의 길은 공의를 이루는 길이다.
그분의 형상을 닮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과 삶을 닮아가고 그 향기를 풍겨야 한다.
그분이 거룩하시고 정의와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항상 함께 하시기에 우리는 넉넉히 이기고 이룰 수 있다.
믿음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고, 거룩, 공의의 겉옷을 이뤄가시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그 믿음으로 우리는 순종하고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그 광야 길을 가는 것이다.
그 결과, 신랑이 그 사모를 씀과, 신부가 자기 보석으로 단장함과 같게 된다.
우리도 영화롭게 되고 하나님도 그로 인하여 영광을 받으시게 된다.
주 여호와께서 공의와 찬송을 모든 나라 앞에 솟아나게 하실 것이다.
찬송도 공의와 함께여야 한다.
공의와 함께 찬송이 솟게 되는 것은,
그것은 마치 땅이 싹을 내며, 동산이 거기 뿌린 것을 움돋게 함과 같을 것이다.
여호와께서 심은 그 작은 가지가 천을 이루고 강국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항상 작고 연약한 가지로 시작하신다.
죄로 쌓은 탐욕의 커다란 바벨탑으로 시작하지 않으신다.
지극히 낮아짐에서 지극히 높은 곳으로 가는 것이 하나님의 역사이다.
베들레햄 마굿간에서 시작하여 나사렛 목수를 거쳐,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의 십자가로, 보좌로 간다.
그렇게 얻은 기업이 세상을 밝히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고 공의와 찬송이 만방에 퍼지게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