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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아이작 암브로스, "예수를 바라보라1" 9장 그리스도의 탄생 적용

강대식 2015. 7. 15. 08:30

9장 그리스도의 탄생 적용

1. 탄생 속에서도 우리의 구원이라는 위대한 사역을 수행하신 예수님을 아는 것

성육신해서 처음으로 오셔서 우리의 구원 사역을 수행하신 예수님을 알자. 우리를 위해 무슨 일을 하셨는지를 와서 배우자. 오, 내 영혼아! 네가 그리스도에게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이 모든 것이 너에게 중요하고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분은 너를 위해 성육신하셨다. 그분은 너를 위해 잉태되셨고 이 세상에 태어나셨다. 그 모든 것을 단지 추상적인 개념이나 보편적인 원리로 바라보지 말라. 세상의 공허한 역사로 바라보지 말라. 아! 만일 왕이나 왕자가 순전한 은혜와 사랑으로 이곳저곳에 있는 모든 지하 감옥을 방문해 모든 죄수를 구해 준다고 한다면 그것이 죄수에게 얼마나 평안과 위로가 넘치는 소식이겠는가! 그러나 그 왕이 가엽고 비참한 죄인이 차디찬 족쇄와 수갑을 찬 채 누워 있는 곳에는 결코 가까이 오지 않는다면 어떻겠는가? 혹은 왕이 죄수를 찾아와 은혜와 자유를 관대히 베푼다고 해 보자. 그런데도 죄수는 단지 고집 때문에 그 자비로운 제안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결국 왕이 죄수에게 제안을 받아들이고 자유를 누리라고 설득하고 간청한다. 그러나 끝까지 그 제안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다면 그 죄수가 무슨 위로를 누릴 수 있겠는가? 귀한 영혼이여, 이것이 당신의 이야기다. 오 하나님, 우리가 그런 본질적이고 복된 진리를 문밖으로 던지지 않게 하소서! 그것을 우리의 것으로 삼는다면 얼마나 큰 그리스도인의 기쁨을 누리겠는가!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눅2:10-11). 분명히 그리스도의 탄생은 당신에게 너무나 중요하다. 그리고 모든 점에서 그분을 아는 것은 당신을 구원으로 이끄는 지식이 될 것이다. 그리스도에 대한 연구는 모든 연구 가운데 가장 으뜸이다.

2. 탄생 속에서도 우리의 구원이라는 위대한 사역을 수행하신 예수님을 생각하는 것

성육신해서 처음으로 오셔서 우리의 구원 사역을 수행하신 예수님을 생각하자. 이 생각은 그리스도를 영혼과 점점 더 가깝고 친밀하게 이끌어 준다. 그리고 영혼을 그리스도에게 더 단단히 고정시키고 마음속에 그리스도를 더 견고히 묶어 준다. 영혼아, 묵상 속에서 혼란에 빠지지 않도록 다음의 구체적인 것들을 생각하라.

(1)예수님보다 앞서 온 자 안에서 예수님을 생각하라. 그리고 예수님이 육체로 오셨다는 복된 소식을 생각하라. 마침내 하늘에서 영광스런 천사를 보내신다. 복된 메시지를 전해 주기 위해서다.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눅1:31). 오, 얼마나 황홀하고 기쁜 소식인가! 얼마나 복된 소식인가!

오, 복된 소식이여! 모든 사람이 기쁜 소식을 듣고 싶어 한다. 심지어 당장이라도 죽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에게도 구주에 대한 소식만큼 반가운 소식은 없다. 오, 목숨을 잃는 문제나 이 세상의 문제가 있는 곳에서 구주에 대해 듣는 것이 복된 소식이라면 천국을 잃는 문제 앞에서는, 지옥에 떨어질 위험의 문제 앞에서는, 우리의 영혼이 위험에 처해 있고 영원한 심판을 받아야 한다면 구주에 대한 소식이 얼마나 더 복된 소식이겠는가? 그런 구주가 우리가 귀 기울여 들을 만한 가치가 있는 분이 아닌가! 그런 분이 이 세상에 나셨다는 것이 복된 소식이 아닌가! 오 내 영혼아, 이 말씀을 깊이 묵상하라.

(2)예수님의 잉태에 대해 생각하라. 천사가 소식을 전하자마자 그리스도가 성령으로 동정녀의 자궁 속에 잉태된다. 이 잉태는 우리가 깊이 묵상할 가치가 있다. 아, 위대하신 하늘의 하나님이 우리의 형상을 지니기 위해, 우리가 형상을 지니게 된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우리의 형상을 지니기 위해 그토록 낮아지셔야 하다니! 그러나 능력으로 동정녀를 덮으신 성령님이 어떻게 역사 하셨는지에 대해서는 지나친 호기심을 갖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단순히 우리의 머리가 아닌 우리의 마음으로 이해해야 할 부분이다. 호기심으로 가득한 탐구가 아닌 겸손한 믿음만이 이 신비의 아름다움과 달콤함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3)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본질의 이중성을 생각하라. 잉태되시자마자 에수님은 하나님이자 인간이요, 인간이자 하나님이셨다. 예수님은 온전하게 형성되셨고 그 즉시 영원하신 말씀과 연합되셨다. 오 내 영혼아, 이 위대한 신비에 경탄하라! 그러나 동시에 이것을 생각하라. 이 모든 것이 우리와 우리의 구원을 위한 것이었음을!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죽으려고 인간이 되셨다. 그분의 죽음이 우리를 구원하기에 충분한 것이 되게 하기 위해, 그분은 하나님이셨다. 오 내 영혼아, 그것을 너 자신과 연관해서 생각하라. 너의 죄를 위해 고난받으시고 그 죄를 만족시키기 위해 예수님은 하나님이자 인간이시다. 너의 구원 사역을 가장 온전히 성취할 합당한 자가 되기 위해 그분은 하나님이자 인간이시다. 오, 놀라운 방식 속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지혜여! 오, 그것을 묵상하라.

(4)그리스도 안에 있는 두 본질의 진정한 차이에 대해 생각하라.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신성의 빛이 인간의 육체라는 희미하고 어두운 등불 속에 들어간 것처럼, 이 두 본질은 어떤 대립이나 혼합, 혼동이 없이 철저하고 완벽하게 공존한다. 보라. 예수님이 잉태된 첫순간에 그분이 하나님이자 인간이셨듯이 이 두 본질은 실체와 속성, 행위에서 여전히 구별된 채로 존재한다. 아, 내 영혼아, 너 자신과 연관되어 이것을 생각해 보라. 오, 그 안에 위로가 있다! 예수님의 인성은 연약하고 힘 없는 영혼들을 위로해 준다. 예수님의 신성은 우리를 경이롭게 한다.

(5)그리스도의 두 본질이 한 분 안에서 연합을 이루고 있는 것에 대해 생각하라.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가지이자 이 땅의 열매였다.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이라는 두 본질의 연합은 여전히 견고하고 흔들 수 없으며 나눌 수 없는 상태로 존재했다. 우리는 연합의 예를 발견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비유는 접붙임한 가지와 나무의 비유다. 우리는 한 종류의 나무를 다른 종류의 나무에 접붙임할 수 있다. 그 나무는 접붙임한 줄기 속에서 자라 하나의 나무가 된다. 비록 그 안에 여전히 두 본질 혹은 두 종류의 열매가 존재하지만 말이다. 마찬가지로 인간이 되신 하나님의 아들 안에 비록 두 본질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두 본질 모두 한 분 안에서 연합되어 있기 때문에 한 분 하나님의 아들, 한 분 예수 그리스도만이 계신 것이다. 이 위대하고 경건한 신비를 더 깊이 생각하길 원한다면 그 대상에 대해 설명한 것을 잘 살펴보라. 그곳에 그분의 연합이 더 풍부하고 구체적으로 제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특별히 이 연합의 복된 결과를 당신과 연관해서 생각하라. 우리의 본질이 그리스도 안에서 신성과 연합 되었듯이 우리의 존재가 그리스도의 이 연합 속에서 그리고 이 연합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간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은 그분의 성전과 성막을 우리 가운데 세우신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거하시는 것이다. 또한 우리를 하나님이 친히 성령을 통해 거하기를 기뻐하시는 집으로, 거할 곳으로 만드신 것이다.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셨느니라”(고후6:16).

(6)그리스도의 탄생에 대해 생각하라. 인간이자 하나님이고 하나님이자 인간이신 분, 하나님의 아들이신 분이 인간의 마구간에서 태어나셨다. 황소와 노새처럼 무지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리스도와 포도나무의 달콤한 유사성을 계속해서 생각하는 것은 풍성한 열매를 맺는 묵상이다. 마치 귓가에 내 사랑하는 자의 음성이 들리는 것만 같다.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무화과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고 포도나무는 꽃을 피워 향기를 토하는구나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아2:10,13). 오, 예수님을 당신의 마음속에 간직하라! 그분이 당신의 마음속에서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며 열매를 맺게 하라. 그분이 당신의 영혼을 그분의 신적 은혜로 충만히 채우시게 하라. 오, 당신이 온 마음을 담아 이렇게 말할 수 있다면!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갈2:20). 오, 이것이 그리스도의 탄생에 대한 당신의 묵상 주제가 되기를!

(7)그리스도가 나신 뒤에 일어난 몇 가지 결과에 대해 생각하라. 그리스도의 모든 행위는 우리를 가르치기 위한 것이다. 그리스도는 다양한 개념 속에서 생각해 볼 수 있고 그 모든 것이 달콤한 기쁨을 준다. 오 내 영혼아, 예수 그리스도를 묵상하면서 지치고 싫증이 날 수 있겠는가? 보라, 오 내 영혼아, 네 앞에 생각하고 묵상할 것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가! 이 모든 것을 자주 그리고 깊이 묵상하라. 그리고 네 마음이 뜨거워지기 시작하는 것을 느낄 때까지 묵상을 멈추지 말라. 참된 묵상은 거룩한 감정에 불을 피우고 활활 타오르게 하는 영혼의 커다란 울부짖음과 같다. 또한 묵상은 더 새로워지고 강력해진 돌풍처럼, 더 새로워지고 강력해진 생각들을 통해 그 불꽃을 더 새롭게 하고 뜨겁게 타오르게 한다.

3. 탄생 속에서도 우리의 구원이라는 위대한 사역을 수행하신 예수님을 갈망하는 것

분명히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갈망이거나 갈망이어야 한다. 오 내 영혼아, 끓어오르는 그리움과 사모함, 애타는 연모함으로 그리스도를 열망할 수 있기를! 그리고 아가서의 신부처럼 이렇게 부르짖게 되기를! “너희는 건포도로 내 힘을 돕고 사과로 나를 시원하게 하라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생겼음이라”(아2:5).

왜 그렇게 갈망해야 하는지 이유를 못 찾겠는가? 그리스도 안에 우리가 갈망하지 않을 것이 무엇이 있는가? 놀라운 그리스도의 잉태를 깊이 살펴보라. 서로 완전히 구별되지만 경이롭게 연합되어 있는 그리스도의 두 본질을 주의 깊게 살펴보라. 그분의 탄생과 그로 인한 결과들을 살펴보라. 당신에게는 그리스도를 더 많이 갈망해야 할 이유가 있다. 다음의 글을 주목해서 보라. ‘그리스도에 대한 영적 갈망은 마음을 무겁게 하지도, 싫증나게 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마음을 점점 더 열어주고 넓어지게 한다.’ 누가 모세만큼 하나님을 잘 안다고 할 수 있는가? 그러나 모세보다 하나님을 더 잘 알기 위해 끈질기게 매달린 자가 누가 있는가? “원하건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출33:18). 누가 바울만큼 예수님에 대해 잘 알고 있었는가? 그러나 그리스도와 더 가까이 거하기를 바울보다 더 끈질기게 갈망한 자가 누가 있는가?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빌1:23). 그리스도와의 더 깊은 교제와 연합은 우리가 가장 갈망해야 할 것이다. 네 갈망을 흔들어 깨우라! 네 갈망 앞에 그 영광스런 분을,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놓으라.

4. 탄생 속에서도 우리의 구원이라는 위대한 사역을 수행하신 예수님을 소망하는 것

그리스도의 성육신이 나와 관계가 있는가? 선지자는 이렇게 말한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사9:6). 그러나 이 아이가 태어나기를 소망할 수 있는가? 이 아들이 내게 주신 자라는 것을 어떻게 소망할 수 있는가? 그것을 소망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인가? 전반부의 말씀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만일 우리가 새롭게 거듭났다면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난 것이다.” 그리스도의 탄생이 우리와 연관이 있는지를 알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사도 바울이 갈4:19에서 말하고 있듯이, 우리 안에 나신, 혹은 우리 안에 형성되신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 새로운 거듭남은 그리스도가 나신 결과다.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나셨다는 분명한 증거인 것이다. 그러니 오 내 영혼아, 대답하라. 너는 거듭났느냐? 네 안에 새로운 피조물이 있고 새로운 원리가 있느냐?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형상이 내 영혼 안에 있는가?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것을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는 것”(고전15:49)이라고 불렀다. 당신이 새롭게 거듭났는지가 충분히 명확하지 않다면 왜 그리스도가 당신을 위해 성육신하셨겠는가? 당신이 거듭난 자인지 아닌지를 다음의 규칙들을 통해 더 명확히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1)새로운 거듭남이 있는 곳에는 새로운 갈망, 새로운 위로, 새로운 만족이 있다.

(2)새로운 거듭남이 있는 곳에는 새로운 말과 새로운 행위, 새로운 감정, 새로운 대화가 있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5:17).

(3)새로운 거듭남이 있는 곳에는 새로운 본질, 새로운 원리가 있다. 베드로는 그것을 “마음에 숨은 사람, 신성한 성품”(벧전1:4, 3:4)이라고 불렀다. 바울은 “속사람, 새로운 피조물”(롬7:22)이라고 불렀다. 성령님은 영혼이 전에는 갖지 못했던 힘과 능력, 씨앗, 영적 생명의 원리를 주신다. 그리고 새로운 피조물, 신의 성품, 유입된 영적 생명의 습관 혹은 원리를 따라 영혼 안에 심어진 영적 생명의 원리로부터 영적인 움직임과 작용들이 흘러나오거나 샘솟아 나온다. 그러니 와서 보라. 네 안에 있는 원리가 무엇이냐? 당신의 내면에는 생명이 있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거듭난 것이다. 당신에게 한 아기가 태어난 것이다.

(4)말씀의 후반부에서는 다음의 의견을 주장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과 연관이 있는지를 알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그리스도가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아들이듯이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 자녀가 되었음을 아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와 공동의 상속자다. 다만 그리스도가 장자이고 모든 것에서 가장 탁월함을 갖고 계신다. 우리의 자녀권은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에 나온 결과다. 그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다”는 확실한 증표다. 그러니 말하라. 내 영혼아, 너는 하나님의 자녀인가? 하나님이 거룩하시므로 너는 거룩함에서 하나님을 닮았느냐? 그렇다면 그리스도가 너를 위해 성육신하신 것이다. 만일 당신의 자녀권이 충분히 명확하지 않다면 다음의 규칙들을 통해 그것을 확실히 알 수 있다.

①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을 경외한다(말1:6).

②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을 사랑한다. 그리고 사랑의 원리에서 하나님께 순종한다.

③하나님의 자녀는 모든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선하심을 본받는다(마5:48).

5. 탄생 속에서도 우리의 구원이라는 위대한 사역을 수행하신 예수님을 믿는 것

성육신 해서 이 세상에 처음으로 오셔서 우리의 구원이라는 위대한 사역을 수행하신 예수님을 믿자. 아! 내 영혼아, 그리스도의 성육신이 너와 관계가 있음을 결코 의심하지 말라.

믿음을 가로 막는 세 가지 방해물

(1)자신이 지극히 무가치한 영혼이기 때문에 믿을 수 없다.

(2)자신이 하나님의 무한하고 정확한 공의에 만족시킬 능력이 없기 때문에 믿을 수 없다.

(3)중보자가 없이 내가 직접 하나님의 영광 앞에 나가야 한다면, 단지 절망 속에서 부르짖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에 믿을 수 없다.

믿음을 돕는 것

(1)하나님이 가엾은 피조물의 무가치함을 눈 감아 주기를 기뻐하신다는 것을 생각하라.

(2)하나님이 그 자체로 공의이신 그리스도를 세우셔서 공의를 만족시키신다는 것을 생각하라.

(3)하나님이 그리스도를 중보자로 세우셨다는 것을 생각하라.

믿음을 행동으로 옮기는 방식

(1)믿음은 직접 그리스도에게 나가야 한다. 영혼은 먼저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한 다음 그리스도에게서 흘러나오는 특권들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한다. 네 믿음이 이렇게 행하게 하라. ‘하나님이 가장 큰 복인 그리스도를 내게 주셨다면 분명히 이 모든 것도 주실 것이다. 그것들이 내게 유익한 것이라면 말이다.’

(2)믿음은 육신을 입은 하나님이신 그리스도에게 직접 나가야 한다.

(3)믿음은 그리스도의 발 앞에 가서 엎드려야 한다.

(4)믿음은 육신으로 온 하나님이신 그리스도의 목적과 의미를 바라보아야 한다. 그리스도의 계획과 의미가 무엇인가? 사도 바울은 이렇게 대답한다.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롬8:3). ‘죄를 정하사’라는 단어는 죄를 폐지한다는 의미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믿도록 영혼을 이끄는 격려들

(1)우리가 믿는 대상의 탁월함에서.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우리를 위해 하나님이 하시는 다른 모든 행위의 기초가 된다. 그리스도의 성육신이 모든 것을 움직이는 중심점이요, 기둥이다. 하나님의 모든 계획이 들어 있는 보물 창고다. 택하심, 구속, 칭의, 양자로 택함, 영화 등 모든 것이 그 안에 들어 있다.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하나님의 지혜와 선하심, 능력과 영광을 가장 크고 높게 선포한다. 오, 그것이 얼마나 아름답고 달콤한 믿음의 대상인가!

(2)우리가 믿는 대상의 합당함에서. 성육신하신 그리스도는 우리의 믿음을 끌어내기에 가장 합당하신 분이다. 우리는 진정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 하나님은 본질적으로 믿음의 궁극적인 대상이다.

(3)찬양받으실 믿음의 대상이 우리의 영혼에게 제안하시는 복음에서.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기 위해 우리의 모습으로 오셨듯이, 그분은 복음 안에서 온전한 사랑의 관계를 당신에게 값없이 제안하기 위해 오셨다. 복음은 그리스도의 성육신이 사랑과 은혜와 영광에서 나온 하나님의 행위였음을 선포한다. 오 내 영혼아, 당신과 똑같은 본질을 지니신 분, 즉 그리스도에게 나오라. 그리고 믿으라. 오, 당신이 성육신하신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임을!

6. 탄생 속에서도 우리의 구원이라는 위대한 사역을 수행하신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

사랑이 무엇인가? 바로 “사랑하는 대상 혹은 마음이 끌리거나 사로잡히는 대상을 향한 마음의 확장, 표출”이 아닌가?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보다 더 매력적인 것이 있는가? 성육신하신 그리스도를 보는 것만으로도 그분의 무한한 선하심에 대한 깨달음으로 마음이 온통 황홀해진다. 오, 오라! 그리고 당신 자신을 그분에게 내어 드리라. 당신의 모든 감정과 행위들을 그분의 뜻에 맞추라. 온 마음을 다해 그분을 사랑하라.

그러나 이 사랑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나는 단지 그 대상을 제시하고 설명할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사랑이야말로 사랑을 불러일으키는 원인이다.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첫 사랑을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시는 것 안에서 볼 수 있었다면 하나님의 두 번째 위대한 사랑은 하나님이 스스로 인간의 형상을 지닌 분이 되셨다는 것에서 볼 수 있다. 그러니 잠시 이 사랑에 머무르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요3:16). 사람들은 세상을 창조하는 것보다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 하나님의 더 위대한 사랑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단지 우리의 영혼을 구원하는 것보다 우리의 본질을 취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더 위대한 사랑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왕이 법을 시행하고 자신의 사면권을 가지고 교수대에서 살인자를 구하는 것도 위대한 사랑이다. 그러나 왕이 스스로 살인자의 옷을 취해 자신의 옷처럼 입는 것은 그보다 더 위대한 사랑과 자비의 행위다. 우리의 본질을 취하신 하나님은 바로 그 일을, 아니 그 이상의 일을 하셨다. 하나님은 그분만이 갖고 계신 사면권으로 구원하시려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의 옷을, 우리의 육신을 취하시고 그 육신 속에서 우리와 같이 되셨다. 그리고 그 육신 속에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 그분을 통해 우리가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도록 말이다. 분명히 그것은 사랑이다. 그것은 단순히 표현하자면 하나님이 더 이상 하나님이 되지 않으신 것이다. 하나님은 그분의 영광의 빛을 우리 영혼에 비추시는 것보다 우리의 본질을 취하시는 것을 택하셨다.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향해 사랑을 품게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성육신하신 그리스도다. 그러니 오라. 내 영혼아, 나는 너에게 예수님을 사랑하라고 요구하지 않을 수 없다. 예수님을 향해 너의 사랑을 일깨우라고, 이 사랑스런 대상을 향해 네 눈을 고정시키라고 요구하지 않을 수 없다. 와서 네 초에 불을 붙이라. 네 마음이 아직도 불타오르고 있지 않는가? 적어도 따뜻해지기 시작하지 않았는가? 아, 좀 더 가까이 나오라. 이 계획 안에 어떤 사랑의 마음이 있는지를 생각하라. 하나님이 바로 너의 본질 속에 계신다. 하나님이 네 비참한 본질을 취하신다. 주목해서 보라. 이것이 바로 우리의 품 속으로 뛰어들어오신 하나님의 심장이 아니고 무엇인가? “가엾은 영혼들아, 나는 네게서 멀리 있을 수가 없구나. 나는 너의 본질을 사랑한다. 나는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될 것이다. 네가 특별한 자가 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말이다. 내 영광이 나를 가로막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스스로 내 영광을 가릴 것이다. 내 영광이 너를 상하지 못하도록 말이다. 나를 너에게 자애롭고 부드럽게 보여 주기 위해, 내가 너와 교제를 나누고 네가 나와 교제를 나눌 수 있게 말이다. 나는 너와 하나가 될 수 있다면, 너의 육체를 지니고 사는 것도 개의치 않는다.” 오, 내 마음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너의 사랑이 아직도 차갑단 말이냐? 너를 그토록 사랑하신 분을 조금이라도 사랑할 수 없단 말이냐? 그런 너를 위해 어떻게 그리스도에게 하소연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오, 아름다우신 예수여, 구름을 옷처럼 입으신 분이여, 그리고 인간의 본성으로 옷 입으신 분이여, 오, 제 마음을 당신을 향한 사랑으로 불타오르게 하소서! 오직 당신만이 제게 가장 소중한 분이 되게 하소서!”

7. 탄생 속에서도 우리의 구원이라는 위대한 사역을 수행하신 예수님을 기뻐하는 것

갈망과 소망, 믿음과 사랑으로 우리의 영혼이 갈망했던 대상에게 진정으로 나아갔다면 우리가 어떻게 기뻐하고 즐거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우리가 그분에게 나아갔던 목적은 고요함과 안식을 얻기 위한 것이었다. 기쁨이 무엇인가? 바로 ‘어떤 선의 결실과 소유 속에서 누리는 감미롭고 즐거움이 넘치는 고요와 평안’이 아닌가! 당신의 영혼이 그리스도의 임재와 결실을 얻었는가? 그렇다면 지금이야말로 예수님 안에서 기뻐할 때다. 지금이야말로 당신의 생각이 안식할 때이고 심령 안에 고요와 평강이 넘쳐흐를 때다. 그러나 당신은 말할 것이다. ‘어떻게 그 기쁨을 천국에 가기 전에 누릴 수 있단 말인가?’ 그 대답은 이것이다. 우리가 이곳에 머물러 있는 동안에는 완전한 기쁨을 누릴 수 없다. 이 세상에는 완전한 연합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완전하지는 않아도 그리스도와 연합을 누릴 수 있기 때문에 기쁨도 누릴 수 있다. 당신이 가지고 있는 소망의 근거들과 믿음의 행위들을 점검해 보라. 만일 당신이 그것들 속에서 만족하고 있다면 이 찬양받으실 분으로 인해 기쁨 속에서 뛰놀라. 당신이 기뻐해야 할 일이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당신이 기뻐해야 할 일이다. 네가 다음의 구체적인 것들을 생각한다면 기뻐할 수 있을 것이다.

(1)하나님이 친히 세상에 오셨다. 당신이 하나님에게 가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친히 당신에게 오셨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슥9:9). 그분은 왕이라고 불린다.

(2)하나님은 육신을 입고 이 땅에 내려오셨다. 그분은 당신과 이야기를 나누시기 위해 자신의 영광을 버리셨다.

(3)하나님은 우리의 본질을 취하시고 그것을 그분의 신성과 이어 주는 거대한 관이 되게 하셨다. 하나님의 신성이 모든 달콤한 방식으로 우리 마음속에 흘러들어올 수 있도록 말이다. 하나님이 단지 우리에게 속하기 위해 육신을 입고 오셨다고 해도 실로 경이로운 낮아지심이고 위대한 자비다. 그러나 우리 영혼의 구원이라는 위대한 사역을 수행하기 위해 이 땅에 육신을 입고 내려오신 것에 참된 위로가 있다. 우리가 얼마나 큰 기쁨으로 이 구원의 우물에서 물을 길어야 하겠는가?

(4)우리의 본성을 입으신 하나님은 모든 성도에게 그분이 영원히 어떤 일을 하실 것인지를 보여 주는 밑그림을 제시해 주셨다. 아! 우리 인간이 천사보다 더 영화롭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과 존재적 연합을 이루는 것이다. 우리는 분명 그 연합에서 위대한 것들을 기대할 수 있다. 그 연합이 우리의 존재가 하나님을 누리도록 이끌기 때문이다. 오, 내 영혼아, 너는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그 결과로 인해 얼마나 즐거워해야 하겠느냐? 이것이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충만할’ 만큼 충분히 기쁜 일이 아닌가! 네 마음을 일깨우라.

8. 탄생 속에서도 우리의 구원이라는 위대한 사역을 수행하신 예수님께 간구하는 것

(1)우리는 예수님이 성육신해서 처음 오셨을 때 그분이 하신 모든 일이 우리의 것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바로 성육신하신 그리스도 안에 우리의 기도를 위한 격려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주목해서 보라.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하나님의 임재로 풍성히 들어가는 문을 열어 준다(히10:20). 우리는 이제 얼마나 놀라운 담대함과 자유로움 속에서 지성소에 들어가 은혜의 보좌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단 말인가! 오 내 영혼아, 예수님에게 나가라.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 아버지에게 나가라. 그리고 그분의 잉태와 탄생, 그리스도가 지니신 두 본질의 놀라운 연합과 그 결과, 열매와 혜택이 모두 너의 것이 되게 해달라고 간구하라.

(2)우리는 찬양해야 한다. 이것은 모든 성도와 천사가 그리스도가 나실 때 행한 특별한 의무였다. 마리아(눅1:46-47), 사가랴(눅1:68), 천사(눅2:13-14).

9. 탄생 속에서도 우리의 구원이라는 위대한 사역을 수행하신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

(1)그리스도는 마리아 안에 성령으로 잉태되셨다. 그래서 그분은 우리 안에서도 똑같은 성령으로 잉태되셔야 한다. 그것을 위해 말씀의 씨앗이 뿌려진다. 그리고 은혜의 원리들이 성령을 통해 부어진다. “그가……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약1:18). 말씀과 성령을 통해 모든 은혜의 씨앗이 마음속에 뿌려진다. 그리스도가 성령으로 마리아 안에서 잉태되었듯이 우리 안에서 그리스도가 같은 성령님으로 말씀과 결합하여 잉태된다.

(2)그리스도는 동정녀의 자궁 속에서 거룩하게 되셨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거룩해져야 한다. 거룩하게 되는 것은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아름답고 감미로운 일이다.

(3)인자이신 그리스도는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아들이다. 가엾은 인간의 후손인 우리도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한다. 이것은 그리스도가 본질적으로 하나님 아버지와 맺고 계신 관계를 우리도 은혜로 소유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4)하나님의 아들인 그리스도는 인자였다. 이 점에서 가장 위대한 위엄과 겸손을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지만 우리 자신이 단지 인간의 후손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5)그리스도의 두 본질은 실제로 구별되기는 하지만 서로 불가분하게 결합되어 있다. 그리고 그리스도라는 한 분 안에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본질과 존재도 하나님과 가장 멀리 떨어져 있지만 그리스도와 불가분하게 결합되어 있고 연합되어 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하나님과 연합되어 있다.

(6)그리스도가 태어나셨다. 그래서 우리는 새롭게 거듭나야 한다. 그리스도가 태어나셨을 때 하나님의 많은 영광스런 속성이 계시되었다(하나님의 자비, 선하심, 사랑, 능력, 지혜). 우리도 새로운 거듭남 속에서 이런 하나님의 속성들이 나타나야 한다.

(7)그리스도는 태어나신 뒤 유년 시절에도 많은 일을 행하고 겪으셨다. 우리도 “젊었을 때에 하나님의 멍에를 메는 것”(애3:27)을 배워야 한다. 고난의 시기에도 그리스도를 본받아야 한다. 오 자녀들이여,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셨던”(눅2:52) 예수님의 복된 모습을 본받으라. 나사렛에서의 그리스도를 주목해서 보라. 미성년 시절에 예수님은 부모에게 순종하셨다. 그러므로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엡6:1).

출처 : 청교도 아카데미 PBA
글쓴이 : 말씀을사모하는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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