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 설교, 한 하나님, 한 주
본문: 고전 8:1-6
1. 지식은 교만하게 하고 사랑은 덕을 세운다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 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 사람은 하나님도 알아 주시느니라”(고전8:1-3)
당시 커다란 도시 고린도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이방신들을 섬기는 많은 이방인들과 함께 살았다.
이방인들은 먼저 제물로 바치지 않고 개인 식탁에서 고기를 먹으면 엄청난 신성모독으로 생각했다.
이방 신전에서 제물로 바쳐진 고기는 그 잔치에 초대된 친구들이 가져갔고, 남은 것이 있다면,
제사장들의 소유가 되었는데, 그들은 그것을 시장에 내다 팔았다.
친구의 초대를 받아 가서 식탁에 오른 고기를 먹을 때, 그리고 시장에 나온 제물의 고기를 살 때,
그 우상에게 바쳐졌던 제물인데 그것을 먹어도 되는가에 대해 논란이 되었다.
그에 대해 지식이 있다고 하는 자들은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없다고 하였다.
이 문제를 바울은 여기서 시작하여 10장에서 자세히 다루고 있다.
“무릇 시장에서 파는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이는 땅과 거기 충만한 것이 주의 것임이라 불신자 중 누가 너희를 청할 때에 너희가 가고자 하거든 너희 앞에 차려 놓은 것은 무엇이든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누가 너희에게 이것이 제물이라 말하거든 알게 한 자와 그 양심을 위하여 먹지 말라”(고전10:25-28)
음식물에 대한 대원칙은 이렇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딤전4:4-5)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 안다고 하였다(1절).
그러나 문제는 그 지식이 교만을 낳는 데 비해, 사랑은 덕을 세운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식도, 그냥 아는 지식이 있고, 마땅히 알 것을 아는 지식이 있다는 것이었다.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법이다.
가장 잘 알고 있는 자는 자신의 무지와 인간 지식의 불완전함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자이다.
지식이 아무리 많아도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아무 유익이 되지 못하고 교만만 키우는 경우가 있다.
알면서도 도무지 선을 행하는 데는 쓰지 않는 지식이 있다.
많이 배워 지식이 많아 높은 자리 차지한 사람들이 그 지식으로 선을 행하지 않고 악을 행하는 것이다.
자신에게도 우선은 유익이 되는 것 같지만 결국 해가 되고 이웃에게는 더 큰 해악을 끼치는 것이다.
삼국시대와 고려시대에 그 많은 불교의 선한 지식들이 나라를 살리지 못했다.
이조시대에 그 많은 공맹철학의 선한 지식들이 나라를 선하게 만들지 못하고 망했다.
아는 것이 힘이 될 때도 있지만, 아는 것이 병이 되고 해악이 되는 것은 역사의 아니러니이다.
10장에서 바울은 이렇게 결론 짓는다.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니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이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10:23-33)
사람은 아담의 타락으로 죄성이 유전되어 선한 것이 없다.
마음으로는 선을 원하되 선을 행하는 것은 가뭄에 콩 나는 정도가 될까 말까이다.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롬7:18)
마음에 하나님이 없으면 자기 사랑 자기 중심 자기 유익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그 많은 유행가가 사랑 타령인 것을 보면 사랑을 원하나 사랑이 없다는 반증이다.
하나님이 성령을 통해 우리 마음 가운데 영혼 가운데 들어오셔야 이웃도 이웃의 유익도 보인다.
마음을 다해 성품을 다해 목숨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은 하나님이 욕심쟁이여서가 아니다.
자기 부모보다 처자보다 형제나 자매보다 나를 더 사랑하라는 것은 사랑을 독점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천지와 사람을 창조하시고 모든 것이 자기 것인 하나님에게
무엇이 부족한 것이 있어서 사람에게 사랑을 달라고 하겠는가?
하나님을, 마음을 다해 사랑하는 자가,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고 믿음은 사랑으로 역사한다.
그 사랑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그의 계명을 지킨다고 하였다.
하나님 사랑과 그의 진리에 대한 사랑은 분리될 수가 없다.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지키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위선이고 거짓이고 착각이다.
사랑은 맹목적이고 무질서한 것이 아니다.
사랑은 진리 안에서 사랑이고 진리와 함께 하는 사랑이고, 그것이 진정한 사랑이다.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며 -- 교만하지 아니하며 --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전13:4-7)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에게서 나온 사랑이 이웃과 교회에 덕을 세운다.
하나님의 사랑은 거룩과 공의와 조화되는 사랑인 것을 진리의 말씀은 증거하고 있다.
먼저 거룩이요 다음이 공의요 그 다음이 사랑인 것을 알아야 한다.
거룩도 공의도 없는 사랑은 무질서와 불법과 죄악을 낳을 뿐이다.
하나님은 사랑이고,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한다고만 가르치며 교회가 타락하고 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먼저 거룩해야 하고 의로워야 하고 그리고 사랑해야 한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의로우시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희생제물로 화목제물로 삼아
그분의 거룩과 공의를 충족하셨고, 그 공로로 믿는 자들을 의롭다 하시고 사랑하셨다.
우리의 믿음도 같은 순서와 단계를 밟아야 한다.
거룩이 없는 사랑, 그 표현인 공의와 정의가 없는 사랑에 속아 넘어가지 마시기 바란다.
우리도 거룩과 공의와 정의가 없는 사랑을 하지 말아야 한다.
무절제하고 맹목적이고 이기적인 것을 사랑이라 하지 말아야 한다.
그 사랑이 이웃에게도 교회에게도 덕을 세우는 것이다.
훌륭함을 이루고 능력과 위엄과 영광을 이루는 것이다.
사랑으로 이러한 덕을 세우면 하나님도 인정하시고 알아 주신다.
2. 하늘과 땅에는 많은 신들과 많은 주가 있다
“하늘에나 땅에나 신이라 불리는 자가 있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으나”(고전8:5)
일본에는 800 신들이 있다 하고, 인도에도 수많은 신들이 있고
희랍과 로마에도 수많은 신들과 주들이 있어 왔다.
우리 나라의 민속 신앙에도 샤마니즘의 수많은 신들이 있다.
이단 정명석은 예수님을 만나 만강(일만 강의)를 들었다고 한다.
지금 안산에 있는 예수 왕권 이단주에게서 그 중 33강을 들으면 제자가 된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대개 이단 교주들이 예수님 또는 하나님을 만났다고 계시를 받았다고 성령을 받았다고 것들은
거짓이 아니라 하늘과 땅에 있는 신들과 주들을 만난 것이다.
대개 산 기도 좋아하고 철야 기도 좋아하고 수도원 생활 좋아하는 사람들이
이런 신들과 주를 만나고서 그것이 성경의 하나님으로 예수님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사단이 광명의 천사처럼 나타나 그들의 욕심을 따라 만나주고 노예로 삼고 부리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성령으로 역사하는 부흥과 각성의 시대에도 미혹의 영들이 나타나 물을 흐리고 체험과 계시를 강조했다.
신비한 영적 체험을 했다고 그것을 다 성령의 역사로 알았다가는 큰 일이 난다.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요일4:1)
조나단 에드워즈가 쓴 「영적 감정을 분별하라」를 구입하여 꼭 읽으시기 바란다.
1740년대의 미국의 제1차 각성시대에 부흥의 주역이었던 그의 탁월한 영적 분별을 배워야 한다.
우리 나라의 성령 운동 은사 운동 관상 기도 운동들이 얼마나 잘못 되었는지 분별과 확신을 줄 것이다.
“그들은 세상에 속한 고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하매 세상이 그들의 말을 듣느니라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요일4:4-5)
하나님께 속하지 않는 자들은 세상에 속한 말을 듣고 미혹의 영들의 미혹에 빠진다.
하나님께 속한 자들은 “우리의 말” 곧 사도의 말, 진리의 영이 기록한 성경의 말씀을 듣는다.
신비주의자들은 힌두교나 불교나 동양 신비주의자들의 영을 접하고 체험하는 방법을 답습해 왔다.
오늘날 교회에 대 유행하는 관상기도는 힌두교도들의 만트라 기도법 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만트라를 반복하면 의식의 변용이 오고 음성을 듣고 빛을 보고 환상을 체험한다.
사탄은 얼마든지 광명의 천사로 하나님 행세를 하고 말씀과 기적적인 현상을 일으킬 수 있다.
이 사탄과 그 졸개들인 귀신들을 상대하여 우리는 영적 싸움을 해야 한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엡6:12)
사탄과 귀신들은 작은 지역의 통치자들이 있고, 그 위에 권세들이 있고,
그 위에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이 있고, 그 위에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이 있다.
하늘과 땅에 많은 신들과 주들이 있는 것이다.
다니엘서에서 이십일 일 동안 접근을 막은 바사 왕국의 군주는 그 왕국을 다스리는 영이었다.
“첫날부터 네 말이 응답 받았으므로 내가 네 말로 말미암아 왔느니라 그런데 바사 왕국의 군주가 이십 일 일 동안 나를 막았으므로 내가 거기 바사 왕국의 왕들과 함께 머물러 있더니 가장 높은 군주 중 하나인 미가엘이 와서 나를 도와주므로 이제 내가 마지막 날에 --- 왔노라”(단10:12-14)
마귀는 미혹 당하여 끌려 갈 것이 아니라 대적해야 한다.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엡6:11)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약4:7)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벧전5:8-9)
80년대의 ‘경배와 찬양’, 90년대의 ‘빈야드 운동’, 2000년대의 ‘신사도운동’(피터 와그너)이 위험하다,
신사도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예수 전도단, CCC, 인터콥, G-12, 등등이 미혹의 영의 역사들이다.
우상과 거짓 영, 미혹의 영들은 아무것도 아니고 대적해야 할 악한 영들이다.
구약에서의 ‘바알’을 위시한 많은 지역신들이 다 악한 영들이었다.
3. 한 하나님, 한 주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있고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아 있느니라”(고전8:7)
이방의 우상들은 신이 아니며 신으로 대접받거나 존경받을 수 없는 존재들이다.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기 때문이다.
신성의 단일성, 기독교와 모든 참종교의 근본원리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을 통해 오직 한 분 하나님이 계심을 믿고 있다.
그분은 모든 존재의 근원이요 만물의 창조자이시요, 보존자이시요, 통치자이시다.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 하나님을 위해 존재한다.
여기서 한 하나님이 곧 ‘아버지’라고 하는 것은 다른 신격 아들과 성령을 배제하는 뜻이 아니다.
아버지는 다른 두 신격의 기원이고, 신성 전체를 대표하는 개념이다.
이 아버지 명칭은 세 신격 모두를 포괄하고 대표하는 개념으로 받아야 한다.
성부 하나님은 신성의 제일인격이자 삼위일체의 근원 또는 원천이시다.
아버지는 다른 두 신성의 근원 또는 원천이시기 때문에 두 신성은 아버지로부터 나서 소유하게 되었다. 성자 하나님은 아버지로부터 영원히 났고, 성령은 하나님은 아버지와 아들로부터 나왔다.
아버지는 아들 및 성령과 함께, 한 하나님이 되시고, 그분들 없이는 한 하나님이 아니시다.
한 하나님은 세 신격으로 계시고 세 신격은 한 하나님으로 계신다.
그것이 삼위일체의 중요한 개념이다.
또한 우리에게는 한 주가 계신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유일하신 중보자가 계시니 그분이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아버지도 성령도 다 주 하나님이시지만, 성경은 특히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주이신 것을 강조한다.
바울 서신은 대부분 이렇게 시작한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고전1:3,롬1:7)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만물이 있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아 있다.
만물이 아버지에게서 났고, 아들로 말미암아 만물을 지으셨고(히1:1),
우리는 아버지와 아들을 위해 있다.
우리는 아들이 없이는 아버지에게 갈 수 없고,
성령이 없이는 아들과 하나님을 믿을 수 없다.
아들이 화목제물이 되어 아버지의 거룩과 공의를 만족시키셨기에
성령이 이 아들의 공로로 말미암아 우리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시고 구원하시는 것이다.
창조의 역사도 삼위 하나님의 공동 역사로 이루어졌고,
우리 구원의 역사도 삼위 하나님의 공동 역사로 일체의 한 역사로 이루어진다.
이것이 삼위일체 하나님의 신비스럽고 영광스러운 비밀이고 역사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행2:36)
그분의 이름에 모든 무릎을 꿇도록 그리고 모든 입으로 그분을 주라 시인하도록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받으셨다.(골2:9-11)
따라서 그분은 한 주요 유일하신 중보자이시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아버지로부터 받으셨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마28:18)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한 주이시면서 유일한 중보자로서 하늘과 땅의 권세를 받아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셔서 지금 이 땅을 통치하시고 만물을 붙드시며 심판주로 오실 것이다.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실 것이다.
그분이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어
그들이 그의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실 것이다.
우리의 모든 소망과 행복이 오직 한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