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듭나지 않은 본성이 하는 일을 은혜의 역사로 착각하지 말라/ 옥타비우스 윈슬로우
거듭나지 않은 사람이 십자가를 아무리 뚫어지게 응시하고 거기에서 무엇을 배운다고 할지라도 그 사람의 마음에 영적인 감동이 일어날 수는 없다. 혹시 육적인 감동은 일어날 수 있을지 몰라도 영적인 감동은 절대로 일어날 수 없다. 거듭나지 못한 사람은 결코 영적인 열매를 맺을 수 없기 때문이다.
거듭나지 못한 사람의 본성은 절대 자기 수준 이상으로 올라가지 못한다. 늘 자기 수준 안에서 맴돌 뿐이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고난 받은신 장면을 묵상할 때,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의 마음에도 깊은 감수성이 있기 때문에 뜨거운 감정이 생길 수도 있고, 십자가의 광경에 깊이 감동받아 뜨거운 눈물을 흘릴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거듭나지 않은 본성에서 나온 육신적인 눈물일 뿐이다.
감정의 종교는 그것이 전부이다. 그 이상은 없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거듭나지 않은 본성이 하는 일을 은혜의 역사로 착각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눈물샘이 자극을 받아서 자연스럽게 흘러내리는 눈물을, 상하고 통회하는 심령의 눈물로 착각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감정이 자극을 받아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이런 현상을 신령한 감정으로 착각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그리스도를 통해서 죄를 바라보는 눈은 믿음의 눈이다. 거듭난 영혼의 이 놀라운 눈은, 보이지 않는 것들을 바라보며 영원한 세계를 들여다보고, 장래의 일을 현재의 일로 만든다. 바로 이런 눈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볼 때 우리의 완악한 마음이 녹아내려 거룩하고도 부드러운 회개의 상태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죄로 우리가 찔렀던 그리스도를 믿음의 눈으로 바라볼 때, 단단한 바위 같던 우리의 마음이 깨뜨려지고, 경건한 슬픔의 생수가 솟구쳐 오르게 된다. 시내산 꼭대기에 내리쳤던 모든 번개와 천둥보다도, 믿는 마음으로 소박하고도 친밀하게 십자가를 한 번 바라보는 것이 더욱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우리의 마음을 낮춘다. 그리하여 죄를 깨닫게 하고 죄의 사악함을 더 깊이 보게 하며, 우리의 죄를 사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더 큰 확신을 갖도록 만들어 준다.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한 번 바라보는 것, 속죄의 보혈 한 방울이 우리 심령에 떨어지는 것, 죄를 용서해 주시는 사랑이 우리 영혼에 한 번 비치기는 것이, 무덤처럼 음산하며 어둡던 우리의 영혼을 변화시켜서 하나님이 이루신 구원의 찬란한 빛 가운데 거하게 함을 여러분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슥12:10)
아, 이 말씀은 세상에서 가장 의미심장한 말씀이다. 이제 사람들은 모세와 율법과 여러 가지 제사로부터 눈을 돌릴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자신들의 죄와 범죄로부터도 눈을 돌릴 것이다. 오직 한 가지 대상이 그들의 마음을 끌어당길 것이며, 그들은 믿음으로 그것을 주목해서 볼 것이다.
- 옥타비우스 윈슬로우, 「십자가 아래서」, pp 67-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