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로이드 존스, "예수의 주 되심"(로마서강해7권10장, 김영희강의안)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케 하나니”(롬 1:3-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 신약 기자들이 우리 주님에게 즐겨 쓴 위대한 명칭이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그 이름을 열 번이나 쓰고 있다. 그 이름만으로도 그들의 믿음과 그들의 전체 지위에 절대적으로 사활적인 것들을 생각해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인의 믿음의 모든 것이 이 이름을 인식하는 것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초대 그리스도인은 ‘예수가 주’(가이사가 주가 아닌)라고 했기 때문에 체포당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있어서 이 문제야말로 절대적으로 중추적이고 사활을 좌우하는 문제였다.
초기 3세기 동안 기독교회의 큰 문제는 이단들이 들어와 주님의 신성을 또 주님의 인성을 부인하였다.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은 예수의 주되심에 조금이라도 의문이 있게 되면 그리스도인 지위 전체가 붕괴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마22장을 보면 우리 주님께서 바로 그 일을 정확히 가르치고 강조하고 있다. 시편 110편을 언급하시면서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는데 그것은 어떻게 되는 것이냐고 유대인들에게 물으셨다. 그들은 물리적인 관념을 가지고 메시야를 사람으로만 생각하였다. 우리 주님께서는 메시야는 다윗의 자손이면서 동시에 주 –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영원한 아들이라고 가르치셨다.
사도는 이 서신에서 여러 가지 형태로 그것을 지적해 나가고 있다.
첫째, 그는 예수님이시다.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분”이시다. 그는 하나의 지도자요 한 구원자였다.
둘째로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메시야’라는 말의 헬라어이다. 메시야는 건져주시는 자요, 구원자시요, 그 뿐만 아니라 구원하고 건지기 위해서 ‘기름부음 받은 자’라는 뜻을 특별히 함축한다. 메시야 – 그리스도 - 는 ‘기름부음 받은 자’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주장하는 요점은 주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이 특별한 사역을 위해서 하나님께 기름부음을 받으셨다는 점이다.
메시야는 선지자요, 제사장이요, 왕 중 왕이라는 것은 구약에서 예언된 바이며, 특별히 그러한 직무들을 위해서 기름부음을 받을 것을 예언하였다. 어떤 사람도 기름부음을 받지 않고서는 선지나 왕이 될 수 없었다. 그 모든 것은 메시야가 오실 때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아 그의 일을 위해서 능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예언한 것이다. 요단강에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때 성령을 그에게 보내심으로써 인치시고 구별하셨다.
예수님은 당신이 기름부음 받은 자- 그리스도- 메시야라고 외치고 계신다. 사복음서를 읽어보면 메시야의 삼중직이 드러난다.
첫째 그는 선지자, 교사, 율법을 해석하는 분이시다. 산상설교에서 그 점을 발견한다.
둘째, 또한 동등하게 그는 우리의 대제사장이 되셔서 자신의 피를 가지고 지성소로 들어가셨다.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신 분이시며, 그러면서도 동시에 하나님의 영원한 아들이시다. 그 분은 항상 살아서 우리를 위해서 간구하신다.
셋째, 그 분이 왕인 것을 발견한다. 그 분은 자연과 피조물을 다스리는 권위를 가지신 분이시다. 그는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권세가 나에게 주어졌노라고 외치신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리고 그는 주님이시다. 그가 하나님의 이들이시기 때문에 그는 주님이시다.
‘주’ - 라는 용어는 구약성경에서 여호와, 전능하신 주 하나님 자신에게 쓰여진 용어와 같다. 예수를 주라할 때는 예수는 ‘여호와’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주’라고 우리가 말할 때,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 나사 하늘에 들어가시고 지극히 높으신 곳에 오르신 주님을 생각하기도 한다. 여기서 사도가 특별히 진술하고자 하는 내용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2:9-11).
예수, 그 베들레헴의 아기가 하나님의 그리스도요, 오랫동안 기다리던 메시야라는 것이다. 또한 그가 우리를 사셨기 때문에 우리의 주님이시다. 우리가 ‘우리’ 주님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가 우리의 소유주이심을 알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의 노예이다. 우리는 그가 우리의 주님임을 알고, 그에게 복종한다. 만일 여러분이 주 예수그리스도가 여러분의 주라는 것을 인식하지 않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생각한다면, 저는 서슴없이 당신의 믿음이야말로 아무가치가 없다고 말하겠다.
여러분은 구주로만 받을 수 없다. 그는 여러분의 주시다. 그를 주로 받지 않고도 구주로 받을 수 있다고 가르치는 것은 순전히 이단이다. 우리 자신을 시험해 보아야 한다. 우리가 그 분에 대해서 말하고 생각할 때 “주 예수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 내 주”로 말하자.(완전한 칭호) 그 분 앞에 서서 그 모든 충만하심과 그의 완전하심과 그의 모든 영광의 차원에서 그 분을 생각하자.
바울은 어느 곳에서나 완전한 칭호를 붙이고 있다. 그 이유는
첫째, 바울이 바울된 것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된 것이다. 사도는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하나님을 모독하는 자였고, 해를 끼치고 핍박하는 자였다. 이제 잡힌 바 되고 자신이 비열한 죄인임을 알게 되고 구원을 받은 것은 바로 이 은혜 때문이다.” 그것만이 아니다. 그는 ‘사도 직분’을 받았다고 말한다.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1절에서 말한 바 있으나 되풀이 하는 것은 그것이 너무나도 사활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자기를 불러서 사도로 만드신 분이 다름 아닌 주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었다.
둘째, 그에게 있어서 그 이름이 전부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그가 그 일을 행하였기 때문이다. 그의 임무이다.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케 하나니” 사도가 여기서 말하고 끝인 16:26절에서 다시 되풀이 하고 있다.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좇아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으로 믿어 순종케 하시려고 알게 하신 바 그 비밀의 계시를 좇아 된 것이니”. 사활적으로 중요한 문제를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믿음의 순종’에 관한 것으로, 믿음이 산출하는 순종, 즉 믿음을 가져오는 순종을 뜻하거나, 믿음이 결과하는 순종을 뜻하지 않는다. 사도가 말하는 것은 믿음으로 구성된 순종에 관해서 말하고 있다. 즉 믿음을 중심 원리로 삼는 순종, ‘믿음의 순종’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제가 믿음 자체는 순종이며 믿는 것은 순종하는 것이라고 강조하는 것은, 복음전도에서 나타나는 난제 중 하나, 죄란 일차적으로 불순종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데 있다. 사람들은 죄를 이기도록 도와줄 길을 찾고, 평강하길 원하고 행복하길 원한다. 그가 나를 도울 수 있다면 그를 믿을 것이라고 말한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단순히 난제에서 우리를 도와주는 분으로만 생각할 큰 위험이 항상 존재한다.
죄는 하나님의 음성 듣기를 싫어하는 것이다. 죄는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자기가 생각한대로 행하는 것이다. 이것이 죄의 본질이다. 사람의 원죄는 살인이나 간음이나 그러한 것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음성 듣기를 멈추고, 복종하기를 멈춘 것이 죄이다. 죄가 불순종이라면 복음은 순종을 촉구한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라고 바울이 여기서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것은 ‘믿음의 순종’이라고 부른다.
롬 6:7,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에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여러분이 건전한 말씀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한 것이 여러분으로 하여금 그리스도인이 되게 한다.
9, 10장에서 바울이 유대인에 대하여 고심하는 것을 발견한다.
롬9:1-3,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라”.
10:2-3,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10:16, “그러나 저희가 다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였도다”.
복음을 순종한다는 것은 복음을 받아들이고 복음에 자신을 복종시킨다는 뜻이다. 여러분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하는 이유는 구원을 받고 도움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명령하셨기 때문이다. 우리 주님께서 친히 그 점을 가르치셨다.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이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요6:28-29) 우리에게 무엇을 하라고 요구하고 있는가? ‘하나님이 보내신 자를 믿어라’ 그것이 바로 순종케 되는 길이다.
우리 모두 복음을 믿어야 하는 첫 번째 이유는 그것이 나를 위해 이러저러한 것을 해주기 때문이 아니다. 그런 식으로 복음을 전해서는 안 된다. 내가 복음을 전하는 것은, 복음은 하나님의 아들에 관하여 주신 기록이기 때문이다. 만일 여러분이 그것을 믿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들고 있는 것이고, 거룩하시고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것이며, 그것은 가장 무서운 죄이다. 우리는 이 복음을 전해야 하고, 만일 복음을 믿지 않으면 하나님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고 멸망과 심판밖에 남는 것이 없다고 전해야 한다.
갈수록 더하여 지는 우리의 모든 고통은 이런 식으로 전파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있다. 그리스도인들이 된 것처럼 보이던 사람들이 떨어져 나간 이유는 바로 이 문제 때문이다. 어떤 도움이나 위로를 위해서 교회에 나왔던 것이 아니었는가?
그 분은 여러분을 위해서 그 모든 것을 하실 것이다. 그러나 다만 여러분이 그 분을 주 예수 그리스도로 믿을 때만 그러한 일이 일어난다.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순종한다는 것이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명하셨기 때문에 그의 아들을 믿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 분을 높이도록 세우고 여러분더러 회개하고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으라고 하셨기 때문에 그 아들을 믿는 것이다. 사도가 여기서 로마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케 하나니”(사람들로 믿음의 순종에 이르게 하나니).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다.(믿음의 순종) 그리스도인들은 다 자신들을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시키고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는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