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플라벨
[스크랩] 존 플라벨 은혜의 방식 10장 영혼의 의사
강대식
2015. 11. 12. 19:38
10장 영혼의 의사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마 9:12).
Ⅰ 병든 영혼만을 위한 의사이신 그리스도
우리는 이 사건에서 자신의 상태가 온전하다고 착각하고 있는 안연(晏然)한 죄인들의 모습을 발견한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귀하게 여기거나 높이 평가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그리스도는 필요하신 분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스스로 건강한 자라고 자부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하지만 자신의 죄를 깨닫고 겸비해진 죄인들은 다르다. 그들은 자기 자신이 병들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귀하여 여기고 진실로 그리스도를 필요로 한다. 그리스도만이 자기들 영혼의 병을 고치실 유일한 의사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의사가...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이 두 부류의 사람들에게 그리스도께서 어떠한 태도를 보이셨는가?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영혼이 병들었음을 인식하고 그리스도를 필요로 하는 자들을 치료하시기 위해 친해 다가가셨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온전하다고 믿는 사람들을 그냥 지나쳤을 뿐, 어떠한 관심도두지 않으셨다. 그리스도는 병든 영혼만을 위한 의사이신 것이다.
세상은 병들어 죽어가는 영혼들로 가득 차 있다. 허다한 사람들의 영혼이 ‘죄’라는 질병으로 신음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 전부가 자신의 질병을 인식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자신의 비참이 무엇인지, 그로 인한 고통이 무엇인지에 대해 아무런 느낌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다. 그러기에 자신들의 병을 치료해줄 누군가에 대한 필요성을 그들이 느끼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치료자를 찾아 헤매는 모습은 자기의 병이 무엇인지, 그로 인한 자신의 비참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는 사람들만이 가질수 있다. 자기들의 조건을 알고 그것으로 애통하고 탄식하는 사람들이라야 치료자를 애타게 찾게 되는 것이다.
그처럼 갈급해 하는 영혼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충만하신 긍휼의 풍성하심으로 한 의사를 보내셨습니다. 그 의사께서는 하늘의 인장이 찍혀진 명령장을 지니고 오셨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듣도록 그 명령장을 펴서 읽으셨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눅 4:18).
죽어가는 세상에 오신 그분은 만국을 소성케 하시는 ‘생명의 나무’이시다. 병든 영혼을 치료하시는 ‘여호와라파’이시며, 죄인들의 의되신 ‘여호와 찌드케누’이시다.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높이 들렸던 놋 뱀은 우리의 위대한 의사이신 그리스도에 대한 모형이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을 치료했던 놋 뱀은 바로 우리의 의대한 의사이신 그리스도를 탁월하게 그려주었던 모형이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여야 하리니”(요 3:14).
그리스도께서는 당신께 나오는 어느 누구도 거절치 아니하시는 분이시다. 그가 어떠한 종류의 질병을 가지고 있던지 말이다.
Ⅱ 영혼을 병들게 하는 것들과 치료책
1 죄책
병든 영혼들이 가지는 죄책을 보라. 죄책이란 영혼에게 있어 매우 치명적인 상처이다. 교황주의자들은 치명적인 죄악과 가벼운 죄를 구분지으려 한다. 하지만 그것은 어떠한 근거도 없는 착각에 불과하다. 그것이 어떠한 죄이든지 간에, 모든 죄는 본질 자체에 치명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롬 6:25).
그러한 죄책의 상처를 치료하실 분은 오직 그리스도 한 분이시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엡 1:7).
죄를 지은 영혼이 영원한 형벌과 비참에 처해지는 것은 사실상 당연한 것이다. 죄책에 기인한 하나님의 정죄의 선고는 가히 두려운 것이다. 세상에서 처할 수 있는 궁핍과 환난을 모두 더한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정죄의 무게보다 가벼울 것이다.
치료책
죄책은 오직 그리스도께서만 치료하실 수 있으시다. 그 치료는 마땅히 받아야 할 하나님의 진노와 정죄로부터 영혼을 풀어내시는 일이다. “여호와여 주의 분노로 나를 책망하지 마시오며 주의 진노로 나를 징계하지 마옵소서 2 여호와여 내가 수척하였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여호와여 나의 뼈가 떨리오니 나를 고치소서”(시 6:1-2). 그리스도로부터 이 사면의 은혜를 받은 영혼은 죄로 인해 받을 수밖에 없었던 모든 책임에서 온전히 벗어나게 된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롬 8:1).
영혼을 옭아매고 있던 모든 결박은 해체된다. 영혼에게 부과되었던 모든 죄의 책임이 그리스도로 인해 완전히 제거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원죄이든, 자범죄이든, 또 큰 죄이든 작은 죄이든 그 모든 죄의 책임에서 완전한 자유를 얻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시행된다. 그리스도의 피외에 하늘이나 땅에서 그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것이란 없다.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 9:22). 모든 신자 여러분, 영혼의 위대한 의사를 찬미하십시오. 그리고 그 의사를 우리에게 보내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십시오.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계 1:5-6).
2 죄의 영향력
죄인들의 영혼을 지배하는 죄의 영향력 또한 매우 치명적인 것이다. 죄의 지배를 받는 영혼은 영혼의 총명은 무뎌지고 그 양심은 둔감해진다. 마음은 굳어져 그 의지는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하고, 모든 정서는 무질서하게 뒤죽박죽 엉켜있을 뿐이다.
영혼이 가지고 있던 모든 기능은 죄의 권세 아래 완전히 상실 당해 있다. 사람들 중 아니 천사들이라 할지라도 누가 이 질병을 치료할 수 있겠는가? 오직 그리스도만이 그 질병을 치료하실 분이시다. 그분께서만 그 일을 담당하시어 완벽히 치료하실 분이시다. 보배로운 피로 우리의 죄책을 치료하시는 그분께서 당신의 성령을 부어주심으로 우리 영혼을 지배하는 있던 죄의 문제를 해결하신다. 곧 죄책의 치료로 칭의를, 죄의 지배에 대한 치료로 성화를 이루시는 것이다.
죄의 지배에 대한 치료과정
어두워진 총명을 밝히시는 일이다(고전 2:14).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주시는 성결의 영이신 성령께서는 어두워지고 무뎌진 총명의 기능을 성령의 기름 부으심으로 치료하시는 것이다.
죄의 권세 아래 있는 양심은 더러워지고 부패하여(딛 1:5) 그 직무와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그러한 양심을 가진 영혼은 말씀으로 죄를 깨닫거나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성결의 영이 그 양심을 소생케 하시면, 양심은 매우 예민한 감각을 가지게 된다. 죄에 대한 강한 거부감은 다시 예민함을 찾은 양심을 가진 영혼만이 가질 수 있다.
거룩하게 된 영혼이라 해도 그 안에 옛 질병의 잔재가 남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성령님의 거룩케 하시는 역사를 통해 죄가 그 지배의 권좌를 잃게 되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성령님의 영혼의 치료는 시작되었다. 영혼은 거룩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갈 것이다. 그리고 결국 완벽한 치료의 상태에 이르게 될 것이다.
3 본성 속에 내재하는 죄
죄는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영혼에 존재하는 지독한 질병이다. 우리의 모든 건전치 못함의 뿌리가 바로 그것이다. 사도는 이를 매우 고통스럽게 여기며 탄식했다(롬 7:17). 거룩함을 입은 사람들이 애통하는 부분이 바로 이것이다.
우리가 죄책과 죄의 지배에 대한 치료를 받았다 하더라도 우리의 본성 속에 내재하는 죄의 문제 자체가 치료되기 전까지는 완전한 상태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위대하신 의사께서 우리를 위해 그 일을 완전히 이루실 것이다. 우리를 영화롭게 하심으로 말이다. 이것이 구원의 마지막 단계이다.
그러니 이 세상에 사는 날 동안 우리가 온전하게 치유되는 일은 기대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 일은 우리의 영혼이 우리의 몸을 떠날 때 이루어질 것이다. 바로 그때 그리스도께서 그 일을 수행하실 것이다. 만약 그리스도께서 그 일을 수행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늘에 들어갈 허락을 받지 못한다. 죄의 잔재를 가지고는 결코 하늘에 들어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엡 5:27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히 12:23 하늘에 기록된 장자들의 모임과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하게 된 의인의 영들과) (계 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
모태에서 영혼과 몸이 연합하는 순간 죄가 임하였던 것처럼 영화는 다시 우리의 몸과 영혼이 분리되는 때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영화롭게 된 영혼은 죄로부터 어떠한 영향도 받지 않는다. 죄가 그 영혼을 유혹하거나, 그들을 더렵혀 그 마음을 슬프게 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어두워진 총명으로 하나님과 교통하지 못하는 일은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죄의 불행한 효과들은 두 번 다시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지상에 있는 동안만큼은 그러한 완전함은 아직 기대할 수 없다. “우리가 오늘날 여기서는 각기 소견대로 하였거니와 너희가 거기서는 하지 말지니라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주시는 안식과 기업에 아직은 이르지 못하였거니와”(신 12:8-9.)
우리의 총명은 여전히 온전치 못함으로 실수를 범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생각은 진리에서 벗어날 수도 있고, 우리의 정서는 메마르게 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교통은 매일 방해를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힘을 내십시오. 우리가 하늘에서는 결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복된 치료는 하늘에서 완전히 끝날 것입니다. 하늘에서 우리는 더 이상 지상에서 하나님을 알거나 사랑하거나 즐거워하는 수준으로 행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위로를 받으시고 용기를 내십시오. 그리고 명심하십시오. 우리는 죄의 질병을 치료하시는 그리스도의 방식을 전적으로 의존해야 할 사람들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4 박해의 골짜기를 통과하기
모든 성도들은 하늘에 가기 전에 ‘박해’의 골짜기를 지나야 한다. 하나님과 화해한 뒤에도 성도들은 이 땅에서 주어지는 외면적 고통 때문에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는지 모른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우리는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한다(행 14:22).
그리스도께서는 성도들이 당하는 고통의 문제들을 당신께 속한 영혼들을 거룩하게 하실 재료로 삼으신다. 그들의 고통을 치료하는 약으로 사용하시어 작은 고통으로 더 큰 고통을 미연에 방지하시는 것이다. 외면의 슬픔으로 내면의 슬픔을 치료하시는 것이다.
또 그리스도께서는 내면적 위로를 통해서 외적인 고통을 치료하신다. 내면적 위로의 거대한 파도로 외적 고통의 물결을 덮도록 만드시는 것이다(고후 1:5).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신령한 위로 한 방울은 겉 사람이 받는 고통의 대양을 달콤한 것으로 바꾸기에 충분하다.
성도에게 있어서 이 땅을 떠나는 것은 세상이 주는 모든 슬픔과 결별하는 순간을 맞이하는 일이다. 성도의 죽음은 슬픔의 장소에서 영원한 평안과 안식의 처소로 옮겨지는 복된 전환점이다. 이제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의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다. 그들의 모든 애통의 날들은 끝나고, 찬란한 옷을 입은 채 영원한 평안으로 들어가게 하실 것이다(사 57:2).
그리스도 말고 병든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자애로운 마음을 가진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당신께서 친히 그 고통을 당하셨기 때문입니다(그가 무식하고 미혹된 자를 능히 용납할 수 있는 것은 자기도 연약에 휩싸여 있음이라(히 5:2)).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당하는 외적 고통의 고뇌가 무엇인지, 하나님의 진노와 하나님께 버림을 받는 것의 두려움을 체험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곤고한 영혼들을 향해 가지시는 자애로운 마음은 당신께서 직접 체험하신 일에 기인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어떠한 방식을 사용하셨습니까?
그는 채찍에 맞으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우리의 상처를 치료하시기 위해 그분은 상처나시고 피를 흘리셔야 했습니다. 죄 있는 환자를 살리시기 위해 선하신 의사께서 죽으셨습니다. 이 세상의 의사 중 다른 사람을 치료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 자가 누구입니까?
Ⅲ 회복하는 영혼에게 나타나는 달콤한 표증들
영혼의 의사이신 그리스도께서 치료를 시작하시면 영혼으로 하여금 가장 먼저 이제껏 사랑하던 죄를 미워하도록 하십니다. 지금까지 가장 즐겁고 유익한 것으로 여겨왔던 정욕들에 대하여 ‘나가라’고 명하십니다(사 30:22). 만약 이와 같은 표적이 마음속에 일어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영혼을 치료하고 계시다는 근거를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고 보아야 합니다.
치료받는 영혼이 가지는 영적인 일들에 대한 즐거움은 날로 자라날 것이다. 영적인 의무를 갈망하고 그것을 가장 즐거운 일로 여기게 될 것이다. 살아난 양심의 감각은 소홀히 했던 영적인 의무들에 대한 가책으로 고통스러워 할 것이다. 하나님의 모든 계명에 대하여 깊은 존중심을 가지게 될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하시고 두려우신 눈앞에 있음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 영혼을 압도하시는 하나님의 위엄있는 눈을 느끼게 될 것이다(창 17:1).
Ⅳ 죄에 대한 신령한 아픔을 처음으로 느끼는 분들에 대한 몇 가지 권고들
1 가장 먼저 조심해야 할 것은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육적인 사람들이나 친지들의 위험천만한 권고이다. 그들은 신령한 고통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자들이다. 죄에 대한 고통을 느껴보지 못한 그들이 어떤 효력 있는 처방을 제시할 수 있겠습니까? 마귀는 늘 그런 사람들의 손을 통해 곤고한 영혼들을 시험한다.
아마도 우리의 마음은 고통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는 것에만 집중되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고통가운데서 느껴지는 하나님의 섭리와 방식을 발견하라고 권하고 싶다. 고통에서 벗어나는 일에만 관심을 가지지 마십시오. 고통의 시간이 더디게 지나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속되는 고통의 때가 우리에게 더 큰 유익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아시기 바랍니다. 거짓된 평안만큼 위험한 것은 없습니다.
2 여러분이 느끼는 고통을 지혜롭고 분별력 있는 경험많은 그리스도인들, 특히 그리스도의 참된 사역자들 앞에 가져가십시오. 그들의 직무는 어려움에 처한 여러분을 권고하고 지도하는 일입니다. 자신의 은밀한 죄를 노출시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여러분에게 유익이 될 것입니다.
3 은밀한 가운데 보시는 하나님과 누구보다도 더 많은 시간을 보내십시오.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 마음을 열고 여러분 가슴 속에 있는 모든 것으 털어놓으십시오. 자비하신 하나님의 손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영혼이 치료되길 원하십니다. 용기를 내시고 하나님께 나아가십시오. “내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가 주께 범죄하였사오니 나를 고치소서 하였나이다”(시 41:4).
평강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안식에 이르십시오. 영혼이 그리스도께 나아가는 믿음을 온전히 이해하는 일은 우리 생애에 있어 가장 큰 과제입니다.
Ⅴ 그리스도 안에 오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고통 가운데 있는 분들을 위한 권고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죄에 대한 각성을 처음 받은 이후 지금까지 그리스도와의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은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려고 애를 쓰셨습니까? 만약 그렇지 않다면 여러분의 상처가 여전히 피를 흘리고 있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영혼이 평안과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을 의아해 하지 마십시오.
하지만 만일 여러분이 그리스도와의 교제를 위해 힘써 왔음에도 불구하고 평안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 고통은 여러분의 천성적 기질로부터 나오는 것으로 의심해 볼만 합니다. 보다 우울한 감성을 지닌 사람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의롭다하심을 받을만한 믿음의 본질에 대해서 더 깊이 알아가야 할 사람들입니다. 그 본질이 말하는 요점을 상기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이 처한 고통의 기간은 더욱 연장될 수밖에 없습니다.
위의 두 가지의 경우 중 어디에 해당 되든지 간에, 여러분이 죄를 부끄러워하게 되었다는 것을 더 감사히 여기십시오. 가리어진 눈으로 아무것도 분별하지 못한 채 누리는 평안은 그 자체로 위험천만한 것입니다. 주님의 성령을 근심시키느니 차라리 고통을 당하는 길을 택하십시오. 고통가운데 있으면서 죄를 짓지 않도록 해주시고, 믿음의 길에 하나니을 바라며, 끝까지 죄에 대한 민감한 심령을 견지할 수 있도록 간구하십시오. 위대한 의사이신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상처를 낫게 하실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마 9:12).
Ⅰ 병든 영혼만을 위한 의사이신 그리스도
우리는 이 사건에서 자신의 상태가 온전하다고 착각하고 있는 안연(晏然)한 죄인들의 모습을 발견한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귀하게 여기거나 높이 평가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그리스도는 필요하신 분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스스로 건강한 자라고 자부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하지만 자신의 죄를 깨닫고 겸비해진 죄인들은 다르다. 그들은 자기 자신이 병들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귀하여 여기고 진실로 그리스도를 필요로 한다. 그리스도만이 자기들 영혼의 병을 고치실 유일한 의사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의사가...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이 두 부류의 사람들에게 그리스도께서 어떠한 태도를 보이셨는가?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영혼이 병들었음을 인식하고 그리스도를 필요로 하는 자들을 치료하시기 위해 친해 다가가셨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온전하다고 믿는 사람들을 그냥 지나쳤을 뿐, 어떠한 관심도두지 않으셨다. 그리스도는 병든 영혼만을 위한 의사이신 것이다.
세상은 병들어 죽어가는 영혼들로 가득 차 있다. 허다한 사람들의 영혼이 ‘죄’라는 질병으로 신음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 전부가 자신의 질병을 인식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자신의 비참이 무엇인지, 그로 인한 고통이 무엇인지에 대해 아무런 느낌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다. 그러기에 자신들의 병을 치료해줄 누군가에 대한 필요성을 그들이 느끼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치료자를 찾아 헤매는 모습은 자기의 병이 무엇인지, 그로 인한 자신의 비참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는 사람들만이 가질수 있다. 자기들의 조건을 알고 그것으로 애통하고 탄식하는 사람들이라야 치료자를 애타게 찾게 되는 것이다.
그처럼 갈급해 하는 영혼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충만하신 긍휼의 풍성하심으로 한 의사를 보내셨습니다. 그 의사께서는 하늘의 인장이 찍혀진 명령장을 지니고 오셨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듣도록 그 명령장을 펴서 읽으셨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눅 4:18).
죽어가는 세상에 오신 그분은 만국을 소성케 하시는 ‘생명의 나무’이시다. 병든 영혼을 치료하시는 ‘여호와라파’이시며, 죄인들의 의되신 ‘여호와 찌드케누’이시다.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높이 들렸던 놋 뱀은 우리의 위대한 의사이신 그리스도에 대한 모형이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을 치료했던 놋 뱀은 바로 우리의 의대한 의사이신 그리스도를 탁월하게 그려주었던 모형이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여야 하리니”(요 3:14).
그리스도께서는 당신께 나오는 어느 누구도 거절치 아니하시는 분이시다. 그가 어떠한 종류의 질병을 가지고 있던지 말이다.
Ⅱ 영혼을 병들게 하는 것들과 치료책
1 죄책
병든 영혼들이 가지는 죄책을 보라. 죄책이란 영혼에게 있어 매우 치명적인 상처이다. 교황주의자들은 치명적인 죄악과 가벼운 죄를 구분지으려 한다. 하지만 그것은 어떠한 근거도 없는 착각에 불과하다. 그것이 어떠한 죄이든지 간에, 모든 죄는 본질 자체에 치명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롬 6:25).
그러한 죄책의 상처를 치료하실 분은 오직 그리스도 한 분이시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엡 1:7).
죄를 지은 영혼이 영원한 형벌과 비참에 처해지는 것은 사실상 당연한 것이다. 죄책에 기인한 하나님의 정죄의 선고는 가히 두려운 것이다. 세상에서 처할 수 있는 궁핍과 환난을 모두 더한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정죄의 무게보다 가벼울 것이다.
치료책
죄책은 오직 그리스도께서만 치료하실 수 있으시다. 그 치료는 마땅히 받아야 할 하나님의 진노와 정죄로부터 영혼을 풀어내시는 일이다. “여호와여 주의 분노로 나를 책망하지 마시오며 주의 진노로 나를 징계하지 마옵소서 2 여호와여 내가 수척하였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여호와여 나의 뼈가 떨리오니 나를 고치소서”(시 6:1-2). 그리스도로부터 이 사면의 은혜를 받은 영혼은 죄로 인해 받을 수밖에 없었던 모든 책임에서 온전히 벗어나게 된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롬 8:1).
영혼을 옭아매고 있던 모든 결박은 해체된다. 영혼에게 부과되었던 모든 죄의 책임이 그리스도로 인해 완전히 제거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원죄이든, 자범죄이든, 또 큰 죄이든 작은 죄이든 그 모든 죄의 책임에서 완전한 자유를 얻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시행된다. 그리스도의 피외에 하늘이나 땅에서 그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것이란 없다.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 9:22). 모든 신자 여러분, 영혼의 위대한 의사를 찬미하십시오. 그리고 그 의사를 우리에게 보내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십시오.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계 1:5-6).
2 죄의 영향력
죄인들의 영혼을 지배하는 죄의 영향력 또한 매우 치명적인 것이다. 죄의 지배를 받는 영혼은 영혼의 총명은 무뎌지고 그 양심은 둔감해진다. 마음은 굳어져 그 의지는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하고, 모든 정서는 무질서하게 뒤죽박죽 엉켜있을 뿐이다.
영혼이 가지고 있던 모든 기능은 죄의 권세 아래 완전히 상실 당해 있다. 사람들 중 아니 천사들이라 할지라도 누가 이 질병을 치료할 수 있겠는가? 오직 그리스도만이 그 질병을 치료하실 분이시다. 그분께서만 그 일을 담당하시어 완벽히 치료하실 분이시다. 보배로운 피로 우리의 죄책을 치료하시는 그분께서 당신의 성령을 부어주심으로 우리 영혼을 지배하는 있던 죄의 문제를 해결하신다. 곧 죄책의 치료로 칭의를, 죄의 지배에 대한 치료로 성화를 이루시는 것이다.
죄의 지배에 대한 치료과정
어두워진 총명을 밝히시는 일이다(고전 2:14).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주시는 성결의 영이신 성령께서는 어두워지고 무뎌진 총명의 기능을 성령의 기름 부으심으로 치료하시는 것이다.
죄의 권세 아래 있는 양심은 더러워지고 부패하여(딛 1:5) 그 직무와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그러한 양심을 가진 영혼은 말씀으로 죄를 깨닫거나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성결의 영이 그 양심을 소생케 하시면, 양심은 매우 예민한 감각을 가지게 된다. 죄에 대한 강한 거부감은 다시 예민함을 찾은 양심을 가진 영혼만이 가질 수 있다.
거룩하게 된 영혼이라 해도 그 안에 옛 질병의 잔재가 남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성령님의 거룩케 하시는 역사를 통해 죄가 그 지배의 권좌를 잃게 되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성령님의 영혼의 치료는 시작되었다. 영혼은 거룩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갈 것이다. 그리고 결국 완벽한 치료의 상태에 이르게 될 것이다.
3 본성 속에 내재하는 죄
죄는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영혼에 존재하는 지독한 질병이다. 우리의 모든 건전치 못함의 뿌리가 바로 그것이다. 사도는 이를 매우 고통스럽게 여기며 탄식했다(롬 7:17). 거룩함을 입은 사람들이 애통하는 부분이 바로 이것이다.
우리가 죄책과 죄의 지배에 대한 치료를 받았다 하더라도 우리의 본성 속에 내재하는 죄의 문제 자체가 치료되기 전까지는 완전한 상태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위대하신 의사께서 우리를 위해 그 일을 완전히 이루실 것이다. 우리를 영화롭게 하심으로 말이다. 이것이 구원의 마지막 단계이다.
그러니 이 세상에 사는 날 동안 우리가 온전하게 치유되는 일은 기대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 일은 우리의 영혼이 우리의 몸을 떠날 때 이루어질 것이다. 바로 그때 그리스도께서 그 일을 수행하실 것이다. 만약 그리스도께서 그 일을 수행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늘에 들어갈 허락을 받지 못한다. 죄의 잔재를 가지고는 결코 하늘에 들어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엡 5:27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히 12:23 하늘에 기록된 장자들의 모임과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하게 된 의인의 영들과) (계 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
모태에서 영혼과 몸이 연합하는 순간 죄가 임하였던 것처럼 영화는 다시 우리의 몸과 영혼이 분리되는 때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영화롭게 된 영혼은 죄로부터 어떠한 영향도 받지 않는다. 죄가 그 영혼을 유혹하거나, 그들을 더렵혀 그 마음을 슬프게 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어두워진 총명으로 하나님과 교통하지 못하는 일은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죄의 불행한 효과들은 두 번 다시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지상에 있는 동안만큼은 그러한 완전함은 아직 기대할 수 없다. “우리가 오늘날 여기서는 각기 소견대로 하였거니와 너희가 거기서는 하지 말지니라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주시는 안식과 기업에 아직은 이르지 못하였거니와”(신 12:8-9.)
우리의 총명은 여전히 온전치 못함으로 실수를 범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생각은 진리에서 벗어날 수도 있고, 우리의 정서는 메마르게 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교통은 매일 방해를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힘을 내십시오. 우리가 하늘에서는 결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복된 치료는 하늘에서 완전히 끝날 것입니다. 하늘에서 우리는 더 이상 지상에서 하나님을 알거나 사랑하거나 즐거워하는 수준으로 행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위로를 받으시고 용기를 내십시오. 그리고 명심하십시오. 우리는 죄의 질병을 치료하시는 그리스도의 방식을 전적으로 의존해야 할 사람들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4 박해의 골짜기를 통과하기
모든 성도들은 하늘에 가기 전에 ‘박해’의 골짜기를 지나야 한다. 하나님과 화해한 뒤에도 성도들은 이 땅에서 주어지는 외면적 고통 때문에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는지 모른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우리는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한다(행 14:22).
그리스도께서는 성도들이 당하는 고통의 문제들을 당신께 속한 영혼들을 거룩하게 하실 재료로 삼으신다. 그들의 고통을 치료하는 약으로 사용하시어 작은 고통으로 더 큰 고통을 미연에 방지하시는 것이다. 외면의 슬픔으로 내면의 슬픔을 치료하시는 것이다.
또 그리스도께서는 내면적 위로를 통해서 외적인 고통을 치료하신다. 내면적 위로의 거대한 파도로 외적 고통의 물결을 덮도록 만드시는 것이다(고후 1:5).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신령한 위로 한 방울은 겉 사람이 받는 고통의 대양을 달콤한 것으로 바꾸기에 충분하다.
성도에게 있어서 이 땅을 떠나는 것은 세상이 주는 모든 슬픔과 결별하는 순간을 맞이하는 일이다. 성도의 죽음은 슬픔의 장소에서 영원한 평안과 안식의 처소로 옮겨지는 복된 전환점이다. 이제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의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다. 그들의 모든 애통의 날들은 끝나고, 찬란한 옷을 입은 채 영원한 평안으로 들어가게 하실 것이다(사 57:2).
그리스도 말고 병든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자애로운 마음을 가진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당신께서 친히 그 고통을 당하셨기 때문입니다(그가 무식하고 미혹된 자를 능히 용납할 수 있는 것은 자기도 연약에 휩싸여 있음이라(히 5:2)).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당하는 외적 고통의 고뇌가 무엇인지, 하나님의 진노와 하나님께 버림을 받는 것의 두려움을 체험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곤고한 영혼들을 향해 가지시는 자애로운 마음은 당신께서 직접 체험하신 일에 기인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어떠한 방식을 사용하셨습니까?
그는 채찍에 맞으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우리의 상처를 치료하시기 위해 그분은 상처나시고 피를 흘리셔야 했습니다. 죄 있는 환자를 살리시기 위해 선하신 의사께서 죽으셨습니다. 이 세상의 의사 중 다른 사람을 치료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 자가 누구입니까?
Ⅲ 회복하는 영혼에게 나타나는 달콤한 표증들
영혼의 의사이신 그리스도께서 치료를 시작하시면 영혼으로 하여금 가장 먼저 이제껏 사랑하던 죄를 미워하도록 하십니다. 지금까지 가장 즐겁고 유익한 것으로 여겨왔던 정욕들에 대하여 ‘나가라’고 명하십니다(사 30:22). 만약 이와 같은 표적이 마음속에 일어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영혼을 치료하고 계시다는 근거를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고 보아야 합니다.
치료받는 영혼이 가지는 영적인 일들에 대한 즐거움은 날로 자라날 것이다. 영적인 의무를 갈망하고 그것을 가장 즐거운 일로 여기게 될 것이다. 살아난 양심의 감각은 소홀히 했던 영적인 의무들에 대한 가책으로 고통스러워 할 것이다. 하나님의 모든 계명에 대하여 깊은 존중심을 가지게 될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하시고 두려우신 눈앞에 있음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 영혼을 압도하시는 하나님의 위엄있는 눈을 느끼게 될 것이다(창 17:1).
Ⅳ 죄에 대한 신령한 아픔을 처음으로 느끼는 분들에 대한 몇 가지 권고들
1 가장 먼저 조심해야 할 것은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육적인 사람들이나 친지들의 위험천만한 권고이다. 그들은 신령한 고통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자들이다. 죄에 대한 고통을 느껴보지 못한 그들이 어떤 효력 있는 처방을 제시할 수 있겠습니까? 마귀는 늘 그런 사람들의 손을 통해 곤고한 영혼들을 시험한다.
아마도 우리의 마음은 고통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는 것에만 집중되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고통가운데서 느껴지는 하나님의 섭리와 방식을 발견하라고 권하고 싶다. 고통에서 벗어나는 일에만 관심을 가지지 마십시오. 고통의 시간이 더디게 지나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속되는 고통의 때가 우리에게 더 큰 유익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아시기 바랍니다. 거짓된 평안만큼 위험한 것은 없습니다.
2 여러분이 느끼는 고통을 지혜롭고 분별력 있는 경험많은 그리스도인들, 특히 그리스도의 참된 사역자들 앞에 가져가십시오. 그들의 직무는 어려움에 처한 여러분을 권고하고 지도하는 일입니다. 자신의 은밀한 죄를 노출시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여러분에게 유익이 될 것입니다.
3 은밀한 가운데 보시는 하나님과 누구보다도 더 많은 시간을 보내십시오.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 마음을 열고 여러분 가슴 속에 있는 모든 것으 털어놓으십시오. 자비하신 하나님의 손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영혼이 치료되길 원하십니다. 용기를 내시고 하나님께 나아가십시오. “내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가 주께 범죄하였사오니 나를 고치소서 하였나이다”(시 41:4).
평강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안식에 이르십시오. 영혼이 그리스도께 나아가는 믿음을 온전히 이해하는 일은 우리 생애에 있어 가장 큰 과제입니다.
Ⅴ 그리스도 안에 오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고통 가운데 있는 분들을 위한 권고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죄에 대한 각성을 처음 받은 이후 지금까지 그리스도와의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은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려고 애를 쓰셨습니까? 만약 그렇지 않다면 여러분의 상처가 여전히 피를 흘리고 있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영혼이 평안과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을 의아해 하지 마십시오.
하지만 만일 여러분이 그리스도와의 교제를 위해 힘써 왔음에도 불구하고 평안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 고통은 여러분의 천성적 기질로부터 나오는 것으로 의심해 볼만 합니다. 보다 우울한 감성을 지닌 사람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의롭다하심을 받을만한 믿음의 본질에 대해서 더 깊이 알아가야 할 사람들입니다. 그 본질이 말하는 요점을 상기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이 처한 고통의 기간은 더욱 연장될 수밖에 없습니다.
위의 두 가지의 경우 중 어디에 해당 되든지 간에, 여러분이 죄를 부끄러워하게 되었다는 것을 더 감사히 여기십시오. 가리어진 눈으로 아무것도 분별하지 못한 채 누리는 평안은 그 자체로 위험천만한 것입니다. 주님의 성령을 근심시키느니 차라리 고통을 당하는 길을 택하십시오. 고통가운데 있으면서 죄를 짓지 않도록 해주시고, 믿음의 길에 하나니을 바라며, 끝까지 죄에 대한 민감한 심령을 견지할 수 있도록 간구하십시오. 위대한 의사이신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상처를 낫게 하실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출처 : 청교도 아카데미 PBA
글쓴이 : 박성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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